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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민 <김련희>씨를 서울에서 만나다니, 참 운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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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로스께
댓글 0건 조회 1,812회 작성일 17-09-1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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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온지 벌써 반세기가 흘렀다. 천신만고 끝에 서울을 떠난 탓인지 서울 보다는 평양엘 더 자주 다닌 셈이다. 10년만에 서울을 찾았다. 서울은 그때와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였다. 굳이 변한 것을 대라면 우선 인천공항에서 색안경을 끼고 보질 않아 여타 승객들과 같이 취급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아마도 촛불 혁명의 덕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또 다른 변화를 이야기 하라면 전철차량 내에 간첩 신고와 포상금 선전물이 전혀 보이질 않고 사라졌다는 것을 들 수 있다. 10년 전에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덕지덕지 붙어있는 간첩신고 포드터를 전철안에서 보고나면 왼종일 기분을 잡쳤던 당시를 회상하며 열심히 살펴봤으나 정말 그게 사라진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서울에서나 평양에서나 으례히 가장 먼저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석방된 장기수들이다. 2007년 <뉴욕필하모니>가 평양에서 연주를 했다. 당시에는 북미 적대관계가 해소되는 분위기에서 축하의 의미로 미국 오케스트라 공연이 성사됐다고 볼 수 있었다. 이 역사적 공연을 참관하고 북송 장기수 김동기 선생을 비롯한 여러 장기수 선생들을 만났다. 이 신념의 화신들을 상봉한 소식을 가지고 서울에 들어섰다. 인천공항 이민국 직원의 매서운 눈초리에 정내미가 떨어진 상태에서 공항을 빠져나왔지만, 분통은 사라지질 않았다.
평양의 북송장기수들의 소식을 전하고저 낙성대 <만남의 집>으로 달려갔다. 처음으로 만나는 나를 조순덕 여사와 권오헌 선생이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이윽고 문상봉, 양희철, 김영식 장기수 선생님들을 소개받았다. 금세 정이 들고 오가는 대화도 진지했다. 나는 이들에게 "평양 같던 강남 재비가 봄소식을 가지고 서울에 왔습니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물론 남북에 산재한 장기수와의 만남을 미주 일간 신문에 발표한 바도 있다. 그런데 이번 <만남의 집> 방문에선 문상봉 선생이 고인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고 권오헌 선생은 병마와 싸움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나를 퍽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런데 뜻밖에 <만남의 집>에서 평양 시민 <김련희>씨를 만났다. 직접 만난 일은 없지만 언론매체를 통해 익히 잘 아는 사람이라 하나도 어색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놀란 것은 보기 드문 미녀라는 사실이다. 병마에 시달린다는 보도를 접한 탓이라 바싹 마른 체구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아주 적당한 키에 외모는 완벽한 미모를 가졌기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후원회 사무실을 동행한 사람은 신필영 <6.15 미주 대표위원장>인데, 신 회장도 "보통 미녀가 아니네, 남남 북녀라더니 맞는 말이군!"이라고 감탄을 한다. 
<민가협양심수후원회> 최동진 사무국장이 즉석에서 정성껏 마련한 점심대접을 받으며 늦게 도착한 안재구 박사 (6.15 학술분과위원회)의 구수한 경상도풍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김련희씨에 대해 몇 번 글을 쓴 나로선 직접 만난다는 게 보통 기쁨이 아니었다. 김씨를 만난 그날 오후 늦게 마침 그녀의 출판기념회가 있다는 속식을 들었지만, 미리 짜여진 나의 약속 때문에 불참하게 돼서 마음이 퍽 편칠 않았다. 촛불이 만든 대통령이 촛불의 뜻을 따라 당연히 가장 먼저 억울하게 창살없는 감옥을 전전하는 김련희 여성을 북송하는 게 옳고, 동시에 수많은 양심수를 즉시 석방하는 게 순서이고 도리이건만, 이명박근혜와 어쩌면 점점 닮아가는 지 알길이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누가 뭐래도 분명 김련희씨는 또 하나의 "의지의 화신"이자 "통일의 화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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