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조국 방문기 64. 조청애국호와 김일성경기장의 축구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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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 방문기 64
조청애국호와 김일성경기장의 축구경기
내가 머문 평양호텔의 주차장은 제법 넓은 곳인데 늘 버스들이 여럿 주차되어 있었다. 별로 차량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다가 세워진 버스 몇 대가 눈에 띄여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버스 외벽엔 ‘조청애국호’라고 쓰여 있어 낯설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이 글귀를 대한 적이 있었다 싶어 생각해보니 25년 전 평양축전때 방문하였다가 거의 매일같이 이 버스를 탔던 기억이 떠올랐다.
마침 한 버스의 문이 열려 있어 앞쪽 출입구 계단을 올라보니 벌써 25년이나 된 버스라 요즘의 신형버스에 비하여 많이 낡았지만 그래도 깔끔하게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버스 앞쪽 측면의 창유리 위편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진 얇은 동판이 붙어 있다. “제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즈음하여 재일조선청년학생들의 애국지성으로 마련한 조청애국호” ‘재일조선청년동맹 1989년 7월’. 아, 그렇구나. 그동안 내가 궁금했던 점들이 바로 이 동판 하나로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89년 평양축전 당시 재일조선청년동맹에서 성금으로 마련한 조청애국호 가운데 한 버스
평양호텔 주차장에서 늘 만나볼 수 있는 조청애국호 버스들
89년 평양축전 당시 우리들은 서산호텔에 머물렀는데 20여 명 정도의 미주동포들이 매일 함께 움직일 때마다 바로 저 버스를 이용했다. 저 버스를 타고 평양시내 곳곳을 다녔을뿐 아니라 상원시멘트 공장과 청산리협동농장, 남포갑문, 그리고 원산과 금강산까지 저 버스를 이용했던 기억이 뚜렸하다. 당시에 내가 저 동판을 보았는지는 너무 오래 되어 기억이 아물거린다.
아마 당시 수십 대의 저 ‘조청애국호’ 버스들이 온 세상에서 평양축전에 참여했던 수많은 청년 학생들과 우리들을 위하여 준비되었던 듯하다. 그런데 저 버스들을 바로 일본의 조선청년학생들이 성금을 모아서 마련하였다는 것이다. 근래에 내가 알게된 어떤 재일동포와의 교류를 통하여 당시 그가 대학생으로서 조청애국호의 모금활동에 참여하였고 평양축전에도 참가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과 당시 조청애국호의 모금활동에 대하여 잠깐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청년 학생들이야 어느 시기 어느 나라든지 주머니 사정이 넉넉할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일본의 수많은 애국청년학생 동포들은 조청애국호를 마련해서 북부조국에 보내자는 결정을 내리자 그야말로 한 마음이 되어 목표 달성을 위하여 각자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다했다고 한다. 열심히 피땀흘려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고, 용돈을 아끼어서 성금 모금에 참여했다. 세상 어느 곳의 청년학생들이 이처럼 큰 돈이 들어가는 대범한 일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겨 이뤄낼 수 있을까?
조청애국호는 재일조선청년학생들의 애국지성으로 마련하였다는 설명의 동판
재일동포 청년학생들의 조국을 사랑하는 그 귀한 마음을 나는 25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잘 정비되어 운행되고 있는 저 조청애국호 버스들을 바라보면서 다시금 느껴볼 수 있다. 북부조국이 해방 후 수십 년 동안 조선학교를 비롯하여 재일동포들에게 쏟아부은 사랑을 그들은 이번엔 조국에 대한 애국으로 보답해보자고 결심했던 것이다. 그렇게 보답하는 길로 당시 청년학생들이 수십 대의 조청애국호 버스들을 마련하자고 결의하고 행동하고 이뤄낸 것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결정이고 행동이다. 재일동포 젊은이들의 의식은 그렇게 살아있었고, 그들이 중장년이 된 오늘도 그들의 의식은 그대로 이어져 일본의 총련이 지금도 탄탄하게 자리하여 그 아래 지금처럼 잘 단결된 재일동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평양호텔 주차장에서 내가 본 조청애국호 버스들은 그때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도 북부조국을 찾은 조선대학교 학생들이 매일같이 이용하고 있었는데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이 새 세대 청년학생들은 버스에 오르내리면서 그들의 부모들 나이가 된 선배 청년학생들의 간절히 조국을 사랑한 그 귀한 정신을 그대로 기억하고 이어받게 되리라.
공화국창건 66돌을 맞이한 9.9절 오후 늦게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축구경기를 참관하게 되었다. 어제가 추석이고 오늘도 이어진 명절이라 여러 곳에서 행사들이 열리는 듯한데 평양호텔 건너편의 평양대극장에선 어떤 행사가 있는지 수많은 여학생들이 화사한 색상의 조선옷 차림으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양대극장 광장에서 북부조국을 방문한 해외에서 온 몇몇 동포들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이날 축구경기장에도 사진기 휴대를 금하였기에 나는 아무 것도 지참하지 않았는데 마침 노길남 박사님이 기자 신분이라 자유롭게 사진을 찍었기에 여기서 나눌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이다.
평양대극장 광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촬영한 극장의 입장을 대기중인 조선옷 차림의 여학생들
89년 평양축전에 참가하였을 당시 이곳 김일성경기장에서 수만 명이 출연하는 집단체조 공연을 본 적이 있다. 오직 북부조국에서만 가능하다 싶을 정도의 화려하고 세밀하고 일사분란한 관중석의 카드섹션은 우리 모두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였고, 주제에 따라 수많은 인원이 운동장에 입장하여 갖가지 율동과 체조와 묘기로 온 관중의 감탄을 자아내었다. 어쩌면 그 집단체조 공연이 이후에 내가 아직 볼 기회가 없었던 ‘아리랑’ 공연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1989년 평양축전 당시의 5만명이 출연하는 집단공연
북부조국의 집단공연이 갖는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과연 무엇 때문에 그 많은 시간과 노력과 금전을 다해서 수천 수만 명이 한 몸처럼 되어 집단으로 카드섹션을 통하여 수백 가지 구호와 그림을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내고, 율동과 체조에 참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피나는 연습을 통하여 수천 수만 명이 하나가 되어 그 빼어난 기량을 대운동장에서 보여주는 것일까? 남부조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세계의 눈으로 볼 때 이런 집단공연만큼 청년학생들의 시간과 노력을 쓸데없는 일에 낭비하는 것이 없다고 여기며 북부조국의 이런 대형 행사들을 비난하기까지 한다. 과연 그 비난이 옳은 것일까?
자본주의 세상의 입장에서 볼 때 북부조국의 집단공연을 그야말로 커다란 낭비로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만일 남부조국에서 지난 70년 대에 박정희 유신정권이 중등학생들을 동원하여 북부조국에 비하여 그야말로 엉성한 규모의 카드섹션을 전국체전 행사때 보여주었듯이 그걸 지금도 계속해서 실시하고 있다면 그건 그야말로 커다란 낭비가 되고 불만이 될 것이다.
사회구조 자체가 자본주의 사회는 협동하여 하나가 되어 이뤄나가는 사회가 아니고 개인주의로 각자가 그 동료들과 상관없이 혹은 그 동료들을 제치고 출세지향으로 나가는 사회인데 집단으로 어떤 일을 이뤄내려 한다면 그 개인주의 정신부터 먼저 무너뜨려야 할 것이 다.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집단공연은 이뤄질 수조차 없지 않은가? 그런 집단공연을 준비하는 시간에 학생들도 학부모들도 각자 열심히 공부나 해서 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을 모두가 원하는 세상이 아닌가?
그렇지만 북부조국은 그와는 정반대의 사회다. 바로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를 내걸고 그 구호와 똑같이 살아가는 사회다. 그러니까 개개인 각자는 사회 전체를 위하여, 온 사회는 작은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온 인민이 함께 노력해서 함께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회다. 모두가 한 덩어리가 되어 고난의행군을 극복하였고, 내가 방문하였던 평양방직공장의 생산을 높여나가고, 만경대협동농장을 더욱 효율적으로 운영하며, 고산과수농장과 세포등판을 자신의 일처럼 노동으로 봉사하기 위하여 전국각지에서 남녀노소 인민들이 지원하여 몰려오는 사회인 것이다.
이런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집단공연을 위하여 연습하는 그 시간과 노력은 청년학생들에게 어려서부터 세상에 나가 살아갈 때에 서로 협동하고 함께 이뤄나가는 삶을 살기 위한 가장 값어치 있는 훈련을 하는 시간이 아니겠는가? 그들 하나하나가 함께 인내하면서 연습하고 기여하여 그 결과가 아주 아름답고 훌륭한 공연으로 마무리지어 나온 것을 확인하면서 그들은 커다란 기쁨을 누림과 동시에 서로가 협동하면 무엇이든지 이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 아닌가? 이보다 더 귀중한 배움의 시간은 없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교과과정 어느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함께 돕고 함께 이루면서 살아가는 훈련인 것이다. 그러므로 북부조국에서의 대형집단공연은 인민 각자의 협동정신 앙양을 통하여 이미 이뤄놓은 그 사회자체를 잘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89 년의 집단공연과 카드섹션 모두 참가한 출연진 모두가 단합하여 이뤄낸 완벽한 예술작품이었다.
25년 전 그날 김일성 주석이 그 집단체조 공연을 함께 관람하였다. 우리들의 좌석으로부터 백여 미터쯤 떨어진 곳이 주석단이었는데 행사 도중에도 여러 차례 공연에 참여하였던 수많은 출연진들이 김 주석을 향하여 만세를 외치며 환호하였고 김 주석은 손을 들어 답례를 하곤 하였다. 우리가 행사를 마친 후 조금 일찍 운동장 밖으로 나와서 버스에 오르려는데 일찌감치 공연에 참여하였던 수백 명의 학생들이 공연복 차림으로 경기장 밖에서 머물다가 갑자기 와~ 하는 소리와 함께 어딘가로 몰려가기에 무슨 일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공연 관람을 마치고 차에 오르려는 김 주석을 가까이에서 보겠다고 모두들 그쪽으로 달려갔다는 것이다. 인민들이 그 지도자를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하는지를 보여주는 자그마한 사건이었다.
25년이 지난 오늘 김일성경기장은 아주 멋진 축구장으로 인조잔디가 깔려 있고 편안한 관중석 좌석에다 야간경기를 위한 조명이 잘 설치되어 있었다. 이미 경기장엔 수많은 관중들이 빼곡히 들어찼는데 경기를 기대하는 열기가 아주 높았다. 오늘 경기는 홰불 팀과 4.25 팀의 대결이라 한다. 4.25 팀은 지난 8월 홰불대회 우승팀이고 홰불은 준우승을 하였던 팀인데 이번에 홰불이 도전을 하였다고 한다. 4.25는 인민군 소속의 축구팀이고 홰불은 직장인들로 약간 나이가 더 어리다고 안내원이 말해준다.
축구경기 관람을 위해 북부조국을 찾은 해외동포들은 한 곳에 자리를 배치하여 앉도록 하였고, 나는 미주지역에서 온 몇몇 동포들과 함께했는데 그들과는 머무는 호텔이 달라서 오늘 처음으로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우리들의 좌석 앞쪽은 일본에서 온 동포들과 조선대학교 학생들이 자리를 하였다.
관중석의 수만 명의 관중들은 응원단이기도 하였다. 한데 그 관중석의 한쪽 절반은 홰불, 나머지 절반은 4.25 팀을 응원하는 것이 참 이색적이다. 미리 관중석의 절반씩을 각자 지지하는 팀의 응원단에게 분배한 것일까? 평등한 나라에선 응원까지 평등하게 골고루 두 팀을 응원하는 문화가 참으로 신선하다.
김일성경기장에서 축구관람 가운데 노 박사님이 찍어준 사진. 가운데쯤에 필자.
일본의 조선신보/이어 소속의 김숙미 기자도 이날 취재에 함께하였다.
얼마후 축구경기가 시작되자 응원전도 크게 열기를 띈다. 한쪽에서 ‘4.25 이겨라’하고 외치며 응원대장이 앞에 나서서 응원을 선도하는대로 온 운동장이 떠나갈 정도로 응원을 하면 잠시후 ‘홰불 이겨라’ 하면서 옛날 어렸을 때 보았던 3.3.7 박수로 응원을 하는가하면, 응원대장이 아주 멋지게 몸을 흔들며 응원을 이끌기도 한다. 가끔 파도타기 응원을 시도하여 온 관중석을 물결쳐 누비며 오다가 두 응원단의 경계에서 흐지부지하게 멈추자 와아 하고 모두가 웃는 소리도 들린다.
관중들은 노란 원뿔형 나팔로 소리높여 힘차게 응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축구경기는 양팀 모두 비슷한 실력으로 보였으나 전반을 4.25가 2:0으로 이기자 후반에 들어서는 수비를 위주로 하였고 그 틈을 타서 홰불이 열심히 공격을 하였으나 득점을 하지는 못하였다. 내가 당시에 4.25 팀의 실력이 우세하여 홰불이 이후에도 이기기는 어려운 것이 아닌가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쓰기 두어 달 전에 다시 두 팀의 대결을 인터넷으로 본 적이 있었다. 그 경기에서는 홰불 팀이 아주 잘 싸워서 4.25를 2:0으로 꺾고 당당하게 우승을 하였으니 이 두 팀은 그야말로 맞수임에 틀림없다.
경기가 끝나자 안내원을 따라 우리들을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오르는데 운동장 밖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북부조국의 수많은 인민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각자가 타야할 버스를 찾아 나서는 모습들이 여느 세상과 다름이 없다. 우리가 탄 버스가 출발을 조금 지체하여 평양호텔로 돌아가는 한참 동안의 길거리마다 이미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인민들로 거리는 붐빈다. 지금 이 시간만큼 온 시내가 사람들로 붐비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저 수많은 인파들 모두가 내 동족이고 내 사랑하는 동포다. 이렇게 귀한 조국땅에서 각자 당당하게 제 몫을 다하면서 서로 협동하며 새세상을 이뤄나가는 아름다운 인민들이다. 내가 진실로 마음을 활짝 열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귀한 사람들이다.
통일을 추구하는 모든 민중을 우리는하나 그룹으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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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광개토왕님의 댓글
광개토왕 작성일
북의 집단체조 매스게임이 일상생활속의 협동에 대한 교육적
목적이 있다는 글쓴이의 해석에 상당 동감이 됩니다.
전체주의적 발상으로 국민들을 의도적으로 옭아매기 위한
방편의 하나라는 해석이 있기도 하지만 긍정적 시각에서 볼 때
전자 해석이 보다 상식적으로 타당하리라 여겨집니다.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광개토왕 님, 전체주의적 발상으로 집단체조를 범국가적으로 한번 해보려고 한 것이 바로 박정희 정권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카드섹션을 연습시켜 전국체전에 들러리로 동원시키곤 했는데 그게 영화 시작하기 전의 대한뉴스 등을 통하여 보여주곤 하였지요. 한데 그것이 정권유지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학생들에게 협동정신을 길러주는 것과 자본주의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은 서로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지요. 그렇게 모순된 일들을 저지르다가 저세상으로 가면서 흐지부지 된 것 같습니다.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나만 아니면 돼'란 용어가 유행이지요. 너도 나도 함께 참여한다는 정신이 아니라 어려운 일을 누가 맡아야 할 경우 제비뽑기를 해서라도 나만 안 걸리면 된다는 심리가 깔려있는 것이지요. 나 스스로 어려운 일을 지웒하기보다는 빠져나가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당당하고 정당한 것처럼 사회가 변해버린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