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조국 방문기 45. 복 가운데 복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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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 방문기 45
복 가운데 복을 모른다
어둠이 내리는 원산 앞바다를 지켜보다가 짐을 대충 풀고는 시간이 되어 호텔 로비로 내려가니 김미향 안내원과 리영호 운전기사와 함께 우리를 마중나온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가 반겨 맞아준다. 한 사람은 김씨 성을 가진 50대 중반 남자로 강원도 해외동포사업처 처장이라고 소개하였는데 그 부서에 모두 4명이 근무한다고 하였다. 강원도를 찾는 우리같은 해외동포들을 안내하는 것이 주요 직분으로 여겨진다. 다른 한 사람은 서씨 성의 40대 초반의 남자로 원산시 해외동포지도원으로 비슷한 일을 원산에서 담당하는데 혼자서 일을 맡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가 강원도 원산으로 왔으니 강원도의 책임일군과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안내를 받게 되는 것이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었기에 모두 식사를 함께 하자고 제안하고는 호텔에서 차로 금방 갈 수 있는 원산식당으로 향했다.
어둠이 내리는 원산 앞바다. 추석 며칠 전의 달이 떴다.
원산식당은 제법 넓은 식당이었는데 홀에는 손님 몇명이 두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을뿐 한적한 편이었고, 우리는 안쪽의 작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바닷가로 왔으니 당연히 모두에게 싱싱한 회를 대접하고 싶었다. 원산에서 살고 있는 두 분은 물론이고 함께온 안내원과 운전기사 모두 회를 좋아한다고 해서 모듬회중합이라는 이름의 큼직한 회 한 접시와 멍게 해삼 등 모듬해산물 안주와 매운탕을 주문하였다. 한데 모듬해산물이 준비가 안된다고 해서 내가 동포들에게 잘 대접하려고 한 것에 차질이 생겨났는데 그래도 아주 싱싱한 회가 맛있었고 서비스로 송이버섯을 후하게 내어주었다. 나중에 밥과 함께 도다리 국이 나왔는데 그 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각자의 국 그릇에 도다리가 한 마리씩 들어있는데 하얀 살점을 풀어서 떠먹는 시원한 국물맛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여섯 명이 맛있게 식사를 하였는데 나중에 계산서를 받아보니 미국에서 세 사람이 일반 식당에서 식사한 비용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다.
원산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필자의 맞은 편이 김 처장이다.
서 지도원에게 원산에는 무엇이 유명한가 물어보니 여러가지 특산물 가운데 까막조개가 유명하다고 한다. 까막조개라고 부르는 이유는 조개의 꼭대기가 까맣기 때문이라고 하였는데 지역마다 조개의 생김새도 다르고 부르는 명칭이 다르기에 내가 비슷한 조개를 본 적이 있는지 모르지만 직접 확인해볼 기회는 없었다. 까막조개는 감탕에서 캔다고 하는데 감탕이 무엇인가하고 의아해하다고 곧 이해하게 되었다. 나도 내가 사는 곳에서 한 해에 한 두번씩 바닷가에서 미역을 채취하고 갯벌로 나가 조개를 캐는 일에 익숙하니 감탕이란 바로 갯벌이구나하고 짐작을 한 것이다. 원산을 찾은 재일동포 지인들이 조개구이를 실컷 먹었다고 들었는데 그것이 까막조개인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호텔에서 내려다볼 때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내가 낚시를 워낙 좋아하니 그것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무슨 고기가 잡히는가고 물어보니 검은도미를 낚는 것이라고 하였다. 크기는 손바닥만한 생선이지만 아주 맛이 좋다고 하였다. 검은도미 낚시와 생김새는 다음 날 내가 직접 가까이에서 확인하고 사진들도 남겼다.
왼편으로부터 김 처장, 김미향 안내원, 서 지도원, 리영호 운전기사, 노길남 박사
김 처장은 제법 높은 직책인데도 북부조국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얼굴과 피부가 좀 더 검은 편이었다. 그래 내가 맡고있는 일 외에 노동현장에서도 봉사하고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분의 대답으로 1주일에 한 번 내지 두 번 ‘사회적인 노동’을 한다고 했다. 주로 어떤 노동을 하는가고 물어보니 환경미화사업이나 정리사업으로 꽃밭을 가꾸기도 하고 모내기 등 농사일을 돕기도 한다고 하였다.
내가 질문한 의도는 북에서 고위층이라해서 책상 앞에 앉아 지시만 하지 않고 직접 노동현장에서 인민들과 함께하는 것이 너무도 귀하고 모범된 일이라 자세하게 알고 싶어하였는데 본인은 스스로의 건강을 위해서도 좋고 노동하는 것이 즐겁다면서 애써 자신의 피부는 햇볕에 그을리기도 하였겠지만 타고난 것이라면서 날때부터 까무잡잡하게 태어났노라고 겸손해한다.
내가 북은 가난한 나라라고 하지만 인민들이 집 걱정, 교육 걱정, 직장 걱정을 않고 살아가는 좋은 점들이 참 많다고 하니 김 처장은 ‘복 가운데 복을 모른다’라는 속담이 있다면서 해방둥이들은 그 복을 모르고 산다고 하였다. ‘복 가운데 복을 모른다’라는 속담은 내가 처음 듣는 속담이다. 불행을 당해보지 않고 행복한 상태로 살다보면 그것이 행복한 것인지 아닌지를 모른다는 말인데 생각해보니 남부조국에 그런 뜻의 속담이 없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복에 겹다’라는 말은 가끔 사용하고 있지만 조금 다른 의미다.
해방둥이란 말도 내가 참 오랜만에 듣는데 우리가 해방될 무렵에 태어난 사람들을 일컫는 것과 달리 북에선 해방을 맞고 한참 이후까지 태어난 사람을 해방둥이라고 부른다면서 50 중반인 김 처장 자신도 해방둥이라고 했다. 이미 윗 세대가 모두 이뤄놓은 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자신들은 처음부터 지금의 복이 주어져있었고 자본주의에서 살아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는 말해주었다. 내가 해방둥이들도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온 인민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고생하지 않았느냐고 말하고 지나치긴 했지만 생각해보니 김 처장의 의미는 그런 것은 큰 고생이 아니고 선대들의 나라 잃은 당시의 항일투쟁이나 전쟁때의 고생, 그리고 전후복구사업을 완성한 것에 비하면 그 이후에 나고 자란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 세상에서 살아왔는지 모른다는 의미였다.
자신은 사회적인 노동으로 햇볕에 타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검은 피부로 태어났다는 김 처장
내 방문기에서 이미 거론하였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쓰게 될 부분으로 북부조국의 인민들은 국가에서 어떤 큰 사업을 벌이면 너도나도 참여하여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서 그 일에 참여하고 힘차게 이뤄내곤 한다. 우리가 세뇌교육을 통하여 그것을 거꾸로 강제노동을 하는 것으로 배운 부분이다. 나는 그렇게 참여하여 노동하는 것도 고생을 한 것에 은연중 포함한 것에 반하여 김 처장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북의 인민들은 그렇게 집단으로 참여하여 이루어내는 동안 물론 육체적으로는 엄청난 시련을 이겨내는 것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 오히려 조국을 위해 일하는 것에 대한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그것을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처럼 인민들이 노동으로 고생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조국이 있고, 그런 조국을 위해서 참여하며 스스로 헌신할 수 있는 것을 행복해하고 자랑스러워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쉽진 않겠지만 우리들 또한 참민중은 사회정의를 위하여 불의에 맞서 아무런 댓가도 없이 시간과 노력을 다하여 온몸으로 감옥에 가면서까지 투쟁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들이 그 일을 피하지 않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일에 발벗고 나서는 것을 생각해보면 북부조국 인민들 또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험한 과업이 주어져도 바로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행동하며 실천해나가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북부조국 인민들은 세계에서 유례없이 드높고 고상한 사상을 갖춘 인민들이 아닌가?
북부조국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 하나하나가 내겐 참으로 커다란 공부이기에 원산에서 처음 만난 분들에게 계속 질문을 하는 내게 곁의 노길남 박사님이 넌지시 한마디 해주신다. 내일 또 만나게 되니 대화하기로 하고 오늘은 분위기를 바꿔서 노래라도 하나씩 부르자면서 여기도 노래방 시설이 되어있다고 하신다. 박사님이 봉사원을 부르니 지금 시설이 수리중이라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박사님은 아마 이전에 이 식당에서 노래방 시설을 이용해보신 듯하였는데 이렇게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니 많이 실망한 모습이었다. 그래 자리를 파하고 두 안내원들과 헤어져 호텔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원산에서의 밤은 그러나 그렇게 노래도 부르지 못하면서 싱겁게 마감된 것은 아니었다. 다음 회에서 이야기는 이어진다.
아래 링크에서 지난 방문기들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hanseattle.com/main/bbs/board.php?bo_table=freeboard&wr_id=11761
페이스북 통일그룹 '우리는하나'로 통일을 꿈꾸는 민중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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