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조국 방문기 15. 평양에 핀 무궁화와 옥류관의 선생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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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 방문기 15
평양에 핀 무궁화와 옥류관의 선생님들
만경대 고향집 답사를 마친 후 차를 타고 점심식사를 위해 평양시내의 옥류관으로 향한다. 얼마쯤 달렸을까, 차는 길이 막혀 더 이상 달릴 수가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버스 행렬들이 느릿느릿 움직이며 앞길을 막아섰는데 교통안내원이 이 길로 지나가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한다. 운전사 영호동무가 여기서 길이 트이기까지 기다리기 보다는 다른 길로 가겠다고 결심을 하고는 차를 돌린다.
조금 되돌아서 가는 길가에 울타리로 된 낯익은 꽃나무가 보인다싶어 살펴보니 무궁화 꽃이다. 내가 무궁화 꽃이야 어려서부터 보아서 알고 있지만 고향과 조국이 그리워 미국에서 십여년 전에 화분을 구입하여 심었었다. 이사를 하면서도 뒤뜰에다 옮겨심은 탓에 올해도 여름 동안 활짝 꽃을 피웠기에 너무도 익숙해서 멀리서 얼핏 보아도 알 수 있는 꽃이다. 얼른 사진으로 남겼다.
아, 무궁화 꽃을 평양에서도 보게 되다니. 남부조국에서 국화로 부르는 무궁화꽃을 북부조국에서도 천대하고 괄시하지 않고 이렇게 가꾸기도 하는구나 생각을 하니 가슴이 뭉클하다. 차안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역시 북부조국의 인민들은 통이 크다 싶다. 모든 인민이 한결같이 말로만 통일을 소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부조국의 국화를 무시하지 않고 심기도 하고 가꾸기도 하는 것으로 너무도 동족을 사랑하고 하나가 되길 소원하는 그 진심을 엿볼 수 있지 않은가.
옥류관 인근의 모습. 길 너머 수십대의 버스들이 늘어서 있다.
옥류관 입구. 평양에서 제법 많아진 택시도 보인다.
옥류관에 가까이 가니 아까 만났던 그 버스 행렬들이 모두 이곳으로 모였다. 그때문에 길이 막혔던 것이다. 멀찌감치 차를 대어놓고 운전기사 영호 동무도 함께 옥류관으로 걷는다. 옥류관 앞에는 한복을 입은 중년 여성들과 양복 차림의 중년 신사들이 구름처럼 여기저기 모여있다. 수십대의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다. 알고 보니 북부조국 곳곳에서 선생님들이 전국교육일군대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평양으로 모였고, 오늘 이곳 옥류관에서 점심으로 냉면을 드시기로 한 것이다. 어떤 선생님들이 이번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을까? 각 학교에서 모범이 되는 선생님들이 오셨으리라. 북부조국이 선생님들을 귀하게 여기고 잘 대접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게 된 셈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주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버지가 내가 여섯살 쯤 되던 때에 거제도의 작은 섬인 칠천도에 자원하여 발령받아 근무하며 살았는데 그때 서울로 교육을 받는다며 출장을 가서 며칠동안 집을 비웠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후에 아버지를 포함한 이삼백 명쯤의 선생님들과 당시 윤보선 대통령이 함께 찍은 사진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4.19 혁명 이후 잠깐이었지만 새로운 민주 정권이 들어서면서 모범적인 선생님들을 서울로 초대하여 격려하는 그런 대회였을 것 같다.
당시 아버지가 참 교육자로서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입학금을 몇 달치 월급을 털어서 대신 내어주었다는 이야기를 자라면서 듣곤 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부산에서 살 때 그렇게 아버지께서 도와준 어떤 여학생이 장성하여 어머니를 우연히 만나서는 자신이 당시 아버지의 도움을 받은 한 사람으로 이렇게 성공한 삶을 사노라고 그 이야기를 다시 해주어서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내가 크게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지금 북부조국에서 훌륭한 선생님이라면 어떤 선생님일까? 학생들에게 자상하고, 열심을 다하여 가르치고, 조금 뒤떨어지는 제자들에게 보다 헌신적으로 가르치고, 혹시라도 잘못되는 제자가 있으면 만사 제쳐두고 그 제자를 위해서 시간과 정성을 들여 옳은 길을 가도록 노력하는 분일까. 12년제 의무교육 제도가 확립되어 있으니 나의 아버지처럼 박봉을 털어서 진학할 수 있도록 하지는 않겠지만 제자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자신의 월급을 사용하기도 하리라. 이후에 북부조국의 선생님들에 대하여 내가 좀 더 공부해야 할 것 같다.
한편, 지금의 남한의 선생님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남한에서 요즈음 저렇게 참 교육자들을 초대하여 대회를 갖는가? 오히려 내가 귀하게 여기는 전교조 선생님들을 현정권에서는 탄압하고 있는 시절이다. 참교육을 위해 애쓰는 선생님들을 배척하는 세상인 것이다. 과연 지금의 입시위주와 무한경쟁 속의 교육을 받고 자라난 후세들로 이뤄질 미래의 사회는 어떠할까?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다. 이미 그런 교육을 받고 자라난 지금의 대학생들은 예전보다 훨씬 자유로운 가운데서도 사회 정치적인 문제에 참여하지 않는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살아가는 것이다. 옛날엔 대학생들이 먼저 참여하고 시위를 했는데 이제는 40대 50대의 중년들이 줄기차게 외치고 시위를 하여도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본척도 않는다.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는가? 엄청난 금액의 등록금도 정치적인 것이고 졸업 이후의 직업을 갖고 사회인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도 정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내가 참여하지 않고 개혁하지 않는다면 함께 살아가야할 이웃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자신들이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만은 열심히 노력해서 혹은 잘나서 현상태의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입시와 경쟁위주의 교육은 이런 이기적인 인간을 양산하고, 이렇게 기본적인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자질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결국 제대로 된 인격을 갖추지 못한 상태로 세상에 내보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젊은이들이 어떻게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고 온 민족이 함께 잘 살아가는 꿈을 꿀 수가 있으랴. 참으로 통일일군들의 앞길이 험난하다.
옥류관은 아주 아름다운 대형 건물이다. 수백명이 한꺼번에 식사할 수 있기에 충분한 규모로 보인다.
수많은 선생님들이 모인 자리라 우리도 그 유명한 옥류관의 냉면을 먹기 위하여 기다려야 하는가하고 편안하게 마음을 먹고 있는데 건물 왼편의 제법 넓은 별관으로 안내를 한다. 오늘같은 날은 북부조국에서 손님으로서가 아니라 인민들과 똑같은 자리에서 기다리다 함께 식사를 해도 나는 괜찮은데 멀리서 찾아온 동포라고 이렇게 각별하게 대접을 하는가보다.
아래 링크에서 방문기 14호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hanseattle.com/main/bbs/board.php?bo_table=freeboard&wr_id=11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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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갯가용님의 댓글
갯가용 작성일
일종 대외적 전시를 위해 허위로 꾸며졌다는 평양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모두가 못먹어 계속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데 평양 사람들만 이렇게 좋은
시설에서 배터지게 먹어재껴도 과연 되는 일인지 분간이 잘 안됩니다.
더구나 질서와 정의 그리고 주체를 내세우는 공산정권이, 먼저 기다린 손님들을
도외시하고 외국에서 왔다고 급행티켓을 제공한다는 자체가 벌써 잘못된 일이 아닐까요.
글쓴이는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북한에서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참교육을 위해 애써는 교사들을 오히려 정부에서
억압하고 있다는 글쓴이의 대비가 눈에 띄입니다.
과연 그런 교사들이 진정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한국 정부의 인식이나 시각이
문제가 있는 것인지 한국의 지식인들은 보다 깊은 관심을 가져보아야 겠지요.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갯가용님, 윗 글에서 나오듯 옥류관의 별미를 북부조국 전역의 훌륭한 선생님들에게 대접하는 것으로 저 옥류관은 평양시민들만의 것이 아니란 걸 알 수 있겠습니다. ㅎㅎ.
저도 인민들이 식사하는 엄청나게 커다란 방에서 함께 저 훌륭한 선생님들과 호흡하며 맛난 음식을 먹고 싶었는데 아마 제가 그럴 자격이 없으므로 따로 먹도록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북부조국에서 평등을 주잘할 만큼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사람인데 그래도 대우해준 것은 저도 명백히그쪽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ㅎㅎㅎ
남부조국의 선생님들은 요즘 잘 대우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학교에서 참교육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서 귀한 후세들로 키워나가는 것이겠지요.
댓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갯가용님의 댓글
갯가용 작성일
어렵게 평양에 초대되어야 그나마 냉면 국물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는 모양이니
지방 소도시에 있는 일반 평범한 민중들은 언제 옥류관에 들러나 볼 수 있을지-
그러니 자본주의에만 빈부격차가 있는게 아니라 평등하다는 공산주의에도
분명 격차가 있는게 아닐까요. 그러지않고 사람간의 평등만을 중요시 해서는
무슨 일이든 발전적이고 효과적으로 업무를 해내기가 어려운 모양이지요.^^
오랜 인류역사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사람 사는 곳이 어디든 얼마간의 불평등은 불가피할 것입니다.
새로 집을 짓는 곳은 옛날 곳보다 더 잘 지을텐데 거긴 누가 들어가느냐 하는
문제도 따르고요.
단지 국가에서 누구든지 집 없는 사람이 없게하려는 정책, 누구든지
기본적인 식량과 의료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큰 정책을 그 나라가
실현하려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북이 보다 잘 살게 되면 각 지방마다 맛집들이 많이 들어서게 되겠지요.
그때가 되면 평양 시민들이 서로 다퉈서 멀리 원산에 사는 사람들이 싱싱하고
맛난 회를 실컷 먹게 되는 것을 부러워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ㅎㅎ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인간의 의식을 발전시키면 평등하게 모든 것을 대해주어도 그 안에서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태해지는 사람들이 당연히 생기겠지요. 북은 그렇게 모든 사람에게 그가 어떻게 하던지간에 보수를 지급할 때 평등하게 대하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북에서 탄부나 어부들에게 의사보다 더 많은 보수를 주는데 어떻게 보면 아주 합리한 일이기도 합니다. 북의 의사는 정부에서 모든 학비를 제공하여 키워주니 훨씬 보수가 적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귀하고 중요한 것은 에너지와 먹거리인데 그걸 생산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특히 위험한 곳에서 중노동을 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라면 칭찬을 해줘야 할 일이라 봅니다.
제이엘님의 댓글
제이엘 작성일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중의 하나가 냉면인데
언젠가는 그곳 옥류관의 냉면맛을 볼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희망하면서..
강산님의 연재글 덕분에 감사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제이엘 님, 저도 냉면을 워낙 좋아해서 매일같이 북에서 점심은 냉면을 먹었습니다.
옥류관의 냉면을 함께 먹는 그날을 기대하면서 내일쯤엔
사진으로나마 옥류관 냉면을 올려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황진우님의 댓글
황진우 작성일
오늘, 평등이란 말을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어른이나 갓난 아이나 똑같이 밥을 먹는게 평등은 아니죠.
육체노동 하는 이와 정신 노동 하는 이에게 밥을 똑같이 주면 평등이 아닙니다.
우등생과 낙제생을 함께 졸업시키는건 평등이 아닙니다.
애국자는 삭월셋방에 살게 하고 매국노는 고래등같은 집에 살게 하는것 또한 평등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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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작은 사람에겐 작은 신발을 주고 발이 큰 사람에겐 큰 신발을 주는게 평등입니다.
주체님의 댓글
주체 작성일
황진우님 비유의 말씀이 아주 귀에 쏙 들어옵니다.
북한이란 단어만 나오면 무조건 화를 내며 미친듯 욕을 해대는 사람들은
어찌보면 오래세월 크게 세뇌된 사람들이라 다른 일에는 아주 명석함을
나타내지만 북한과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거의 백치와 다를 바 없는
언행이나 인식을 무의식 중에 내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등이란 단어의 정의에 대해서도 평소에는 황진우님과 같은 올바른 분석적
해석을 하지만 이 단어가 북한과 연결이 되면 이내 갯가용과 같은 우둔한
질문을 해대며 화를 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와같은 현상은 비단 평등이란 단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북한과
연결되는 대부분의 사항에 모두 적용됩니다.
누가 주도했는지는 모르나 그간의 세뇌작업이 참으로 성공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현싯점 대다수 한국인들이 가진 아주큰 문제라 하겠으며 이후로도 제대로
극복해내기가 참으로 어려운 문제라 여겨집니다.
권종상님의 댓글
권종상 작성일
긴 장정... 그리고 자세한 사진들.
황석영 씨의 '거기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던가요? 과거에 북쪽 실상을 담은 글들, 혹은 화보들은 늘 뭔가 틀에 박힌듯했는데, 강산님께서 찍어서 올려주시는 사진으로 실제로 그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분단의 현실이 같은 민족을 서로 이렇게 막고 있군요. 다 똑같은, 우리 친척이고 가족이고 형제들인데... 이 분단의 잔인한 세월이 21세기엔 극복될까 했는데, 아직도 이렇게 요원합니다. 얼른 정권이 바뀌고 다시 조금이라도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고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와 문을 열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권종상 님, 황석영의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얼핏 들으면 아..거기는 모두 뿔난 도깨비들만 사는 곳인가 했는데 사람이 살고 있었구나...하고 여긴 것 같지만.................
제가 요즘 생각하기엔 황석영 씨가 '거기에 사람이 살고 있었네'로 이해한 것 같습니다.
거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