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조국 방문기 18. 연극 '승리의 기치따라' 공연을 보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강산 작성일 14-10-30 16:59 조회 52,572 댓글 9본문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 방문기 18
연극 ‘승리의 기치따라’ 공연을 보다
내가 25년 전 평양축전에 참여하였을 때는 가극 ‘꽃파는 처녀’를 비롯하여 여러 공연들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이번 방문에서도 북부조국의 공연을 보고싶다고 하였더니 얼마후 안내원 미향동무가 연극관람을 하겠느냐고 미리 물어왔었다. 여기서 연극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싶어 바로 그렇게 해달라고 하였다. 평양호텔에서 걸어서 금방 갈 수 있는 거리에 국립연극극장이 있는데 마침 이번에 새로 연극을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아침 산책길에 찍은 국립연극극장의 모습
아직은 햇살이 뜨거운 오후인데 슬슬 걸어서 극장에 도착하니 벌써 사람들로 빼곡하게 찼다. 관람객들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남여노소들로 보인다. 직장에서 단체로 관람하기도 하는지 노동자들과 학생들, 젊은 청춘 남여, 그리고 군인들도 보인다. 모두 624석의 좌석이 관람에 적합하도록 잘 배치되어 있다. 내가 이후에 듣기로 이곳 인민들은 관람료가 아주 저렴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외국인이라 입장료로 거금 27달러를 들여서 표를 구입하였다. 이 금액이면 해외에서 연극 입장료로 받는 금액과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북부조국 최고의 국립연극 극장에서 올려지는 무대이니만큼 기대가 컷다.
어디나 마찬가지듯이 연극공연은 절대로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나는 아예 사진을 찍을 생각도 않았는데 옆에 앉았던 노 박사님이 연극이 시작되기 직전에 일어나 저쪽의 담당자를 만나 몇 마디를 나누더니 촬영을 허락받았노라고 하신다. 역시 ‘무엇이 불가능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조선말이 아니다’란 말씀을 이번에도 믿고 밀어부친 것이 성공한 모양이다. 그래 이곳 북부조국을 노 박사님 만큼 홍보해줄 사람이 그 어디 있으랴.
이곳 국립연극극장의 책임자가 원리원칙만 따지지 않고 그 상황을 잘 판단하여 노 박사님에게 사진촬영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이 고마우면서 또한 그가 아주 현명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노 박사님이 민족통신의 기자로서 사진을 찍되 아무 조명이나 소리 없이 찍었으니 공연에 방해를 하지도 않았거니와 그 담당자가 비록 당시엔 알지 못하였겠지만 이렇게 그 사진들을 내가 이용하여 방문기를 통하여 북의 예술작품을 세상에 알리게 하였으니 그 결정은 칭찬을 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연극의 제목은 ‘승리의 기치따라’로 한국전쟁 때 강원도 철령 고지가 그 배경이었다. 지재룡 원작, 길낙전 각색, 리단 연출로 원래 1990년대의 작품인데 20여년이 지난 지금 후세들이 새롭게 각색하여 무대에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기치’라는 단어가 낯설었지만 깃발이라는 뜻으로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남한의 사전에서 ‘기치’라는 단어는 없는 것 같다. 그래 북에서 사용하는 문귀를 살펴본바로 깃발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막이 오르자 전쟁터를 배경으로 한 조명과 음향, 무대장치들이 아주 완벽한 수준으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집중하게 만든다. 수십 명의 배우들이 출연하는데 남여 인민군으로 분장한 배우들의 연기력도 대단하다.
철령 전투가 그렇게도 치열하였던 것인지 우리들은 들은 바 없지만 북의 인민들은 모두들 알고 있었으리라. 엄청난 화력을 바탕으로 미군의 폭격이 계속되지만 그 가운데서도 인민군들이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고지를 지키고, 심지어 전장에서의 공연을 준비하는 낙천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한편 이런 급박한 순간에 필요없이 그런 공연을 준비한다고 나무라는 사람도 꼭 등장하게 만들어서 얼마간의 갈등도 보여준다.
미군이 이곳을 크게 공격할 것이니 미리 철수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잡혀온 미군 포로의 이야기를 듣고는 약간 동요하기도 하였지만 오히려 전투를 이길 작전을 계획한다. 결사대에 서로 나가겠다고 지원하여 목숨을 내어놓고 맡은바 임무를 다한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였지만 서로의 마음만은 간절했던 군인이 결국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자 여인이 오열하고 온 부대가 통곡하고 온 관중도 함께 울게 만든다.
‘조국의 촌토를 목숨을 걸고 지키자’는 바위벽에 쓰여진 구호처럼 미군의 공격을 지혜롭게 막아낸 후 영도자의 전략에 모두가 기운을 얻고 합심하여 마지막 싸움을 벌인 결과 오히려 이전의 전선을 훨씬 넘어서 잃었던 땅을 수복하고 휴전을 맞이하여 모두가 기뻐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전투 가운데서도 서로 어울려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
내가 이번에 본 이 연극을 포함하여 북의 영화를 비롯한 모든 예술작품들 안에는 절절히 흐르는 것은 사랑이다. 인민들의 지도자와 나라에 대한 사랑이 있고, 지도자의 인민에 대한 사랑이 있다. 인민들이 서로 함께 단결하여 이뤄나가는 서로간의 신뢰와 사랑이 있고,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동지들을 지켜주는 깊은 사랑이 있고, 또한 사람사는 세상 어디에나 있는 남여간의 절절한 사랑이 있다. 사랑이란 참으로 고귀한 것이다. 우리가 그런 숭고한 사랑을 작품 속에서 접하면서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인간들은 언제나 그런 차원 높은 사랑에 굶주리고 있기 때문이며, 인간 본성이 그런 고귀한 사랑이 실현된 세상을 꿈꾸고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북부조국이 그런 아가페적인 사랑을 예술작품 속에서 드러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여기는 그런 세상을 추구하는 사회이고 이미 그것을 이뤄나가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각자 생존을 위해서 경쟁해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살아남기 위해서 이기주의가 판을 칠 수밖에 없지만 사회주의 세상에서는 나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을 버리고 함께 서로 어울려 단결하고 사랑하며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나가야 하기 때문인다. 예술작품들이 그것을 주제로 하여 인민들을 감동하게 만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곳 북부조국은 세상이 따로 있고 예술작품이 따로 있는 곳이 아니다. 실제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바로 예술작품 안에 연연히 흐르는 그 사랑이 그대로 일어나는 곳이다. 예술작품을 통하여 인민들이 스스로 지녀야할 고귀한 성품을 보고 익히고 따르게 되는가하면 또한 북의 예술은 이미 현실에서 일어나는 인민들의 참 인간으로서의 귀한 모습을 다시 작품으로 승화시켜 널리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고귀한 사랑이 연연히 흐르는 북의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감동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북에서 예술인들을 귀하게 여기고 대접하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리라.
우리 세상에 가난한 예술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간혹 예술인들 가운데 그가 가진 능력과 자본의 필요가 맞아떨어지는 1%는 예술을 통하여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예술인들은 가난하게 살 각오가 없으면 그 길을 걸을 수 없다. 한데 북의 예술인들은 아무도 의식주 걱정을 할 필요 없이 자신의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나라에서 배려해준다고 한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자신이 어떤 일을 꼭 하고 싶은데 그 직업을 선택하게 되면 평생을 스스로 고생하며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들은 지금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 스스로는 원하지만 그 길을 걸을 수 없어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시인, 소설가, 가수, 배우, 영화인.. 그 외에도 수많은 직업들이 돈벌이와는 별로 인연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관객이 연극이 끝나자 기립박수를 보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무리 귀한 일을 한다해도 돈을 벌지 못하면 불행하게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돈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세상에서 쓸모없는 것인가? 돈이 되지 않아도 귀한 시를 쓰는 사람은 있어야 하고, 좋은 소설을 쓰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영화에 조연이나 엑스트라로 출연하는 사람들도 의식주 걱정 없이 그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복지가 확장되어 모든 사람이 어떤 일을 하던지 누구나 평등하게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이 세상의 모든 나라들은 그 주인인 민중을 위하는 정치를 해야만 한다. 가난하다고 알려진 북부조국이 그 부분에선 세상 어떤 나라보다 앞장선 나라다.
아래 링크에서 북부조국 방문기 17회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hanseattle.com/main/bbs/board.php?bo_table=freeboard&wr_id=11511
댓글목록 9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갯가용 님, 글마다 이렇게 댓글을 주시니 고맙습니다.
전쟁과 혁명 또한 그 안에 사랑이 있는 세상이 바로 북한인 것 같습니다.
혁명을 하는 이유, 전쟁을 해서 꼭 지켜내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인민에 대한
사랑과 나라에 대한 사랑이니까요.
그래 당연히 예술작품 안에서도 그 사랑이 주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북에서 인민이 지도자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을 우상화라고 하는 것은 북을 비난하기 위한 터무니없는 악의에 찬 소리로 여겨집니다. 우상이란 죽은 것이고 아무리 그 앞에서 돈을 바치고 빌어도 아무 소용이 없지요. 그런 우상을 섬기는 곳이 어딘지 가만히 다시금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북에서 돌아가신 두 지도자를 섬긴다는 것은 인민들이 계속해서 그분들의 뜻을 이어받고 더 나은 조국을 만들어나가겠다는 의지를 새롭게 하는 것 정도로 여길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이나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을 우리가 기린다면 그것이 우상숭배가 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북에서는 그 두 지도자가 그들의 세상과 삶을 통째로 바꿔놓았고, 지금도 그 틀안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여기기에 진심으로 존경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우상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으로 저는 여깁니다.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인민들이 지도자를 존경하는 이유는 무지 많지만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이어지는 글에서 북의 인민들이나 세계의 숱한 정치인 혹은 재력가들이 북의 지도자들에게 선물을 바친 것을 쓰게 될 것입니다. 한데 그 지도자들은 그 모든 선물을 팔거나 스스로를 위하여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선물관을 만들어서 모든 인민이 그 지도자가 받은 것을 함께 보고 즐기도록 하더군요. 지도자가 받은 선물은 곧 인민의 것이라는 것이지요. 어느 나라에서 귀한 물건을 이렇게 나누는 지도자가 있는지요. 독재자라면 누구처럼 혼자서 그런 것을 다 가져야 할 것이 아닌가요?
그런 지도자를 존경하지 않는 인민은 인민이 아닙니다. 우상숭배라고 폄하하는 자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돌이켜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갯가용님의 댓글
갯가용 작성일
예를 들어 신의 아들이 아닌데 신의 아들이라 주장하며
신비화 하는 작업을 우상화 라는 의미로 본다면
실제 김일성 김정일이 인민을 사랑하지도 않고 그리
흠모할만한 대상이 아닐뿐 아니라 자신들의 독재정권 유지를
위하여 민중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악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어릴적부터 계속 주입교육을 시키고 성인되어서도 계속
'승리의기치따라' 같은 연극을 보여주며 존경흠모할 대상으로
교육시키는 행태가 일종의 우상화 작업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유형의 의문에 대하여 글쓴이는 어떤 대답을 해주실 예정인지요.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이번에 제가 찾지는 않았지만 북에는 항일혁명열사릉이 있고,
제가 찾은 애국열사릉이 있습니다.
항일혁명에 참여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모두 조작하지 않고는
김일성 주석의 항일투쟁을 조작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김구 선생의 이야기에서 수많은 등장인물이 실제 인물이었듯이
김 주석의 혁명과정에서 함께했던 동지들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나면
김 주석의 항일투쟁에 대해서 허튼소리를 하지 못할 것 같군요.
북은 함께 투쟁했던 사람들을 잊지 않고 항일열사릉을 조성한데다
그 후손들을 찾아내어 (남쪽의 독립운동했던 자손들이 가난한 것에 비해서)
잘 교육시키고 좋은 인재로 양성해서 그 후손들이 나라를 함께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그걸 혁명의 의리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세워진 나라를 가짜라고
우기기는 지금 세상에선 어렵다고 봅니다. 그동안 이미 검증되었던 것이고
보천보 전투는 동아일보에서 보도되었기도 하니까요.
항일투쟁이 사실이었고, 그 이후 북의 인민에 대한 정책은 제 방문기에서 앞으로
많이 거론될 것이니 그것 또한 사실이라면 두 지도자를 인민이 떠받들만한 인물로
모시는 것은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북이 인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에 대해서도 아마 이후에 서로
거론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디서든 우리의 자유는 제한되고 있지요.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갯가용 님, 고맙습니다.
평등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지방과 도시간의 격차가 너무 크도록 놔둔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겠지요. 그래도 문화적인 것을 누리는 것엔 차이가 클 것입니다.
서울 사는 사람이 우리도 좀 더 누릴 수 있는 것이 있듯이 말입니다.
그렇다고 서울에서 살지 않는 사람들이 모두 서울로 가서 살려고 하지 않듯이
북의 인민들도 자신의 고장을 잘 가꾸고 그 안에서 행복을 누리려는 것 같습니다.
이후 방문기에서 좀 더 일신의 편안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평양을 굳이 떠나서 지방으로 스스로 찾아가 엄청난 노력을 다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도 알려드리겠습니다.
갯가용님의 댓글
갯가용 작성일사진들이 아주 잘찍혀 색채감이 아름답습니다.
글쓴이는 평소 아주 감성이 풍부하신듯 전쟁이나 혁명을
주제로한 작품 속에서도 사람들간의 다양한 사랑이 그 내용을
주되게 일관하고 있다는 날카로운 해석을 해주시는군요.
그간에 우리는 북의 대다수 문학이 모두 혁명이나 김일성 우상화
정책에 몰두되어있다고 알고 있는데 객관적으로 볼 때 실제
그렇게 비칠만한 내용들은 전혀 없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