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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짓 골라하는 게 공정사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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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홍근
댓글 0건 조회 2,478회 작성일 11-05-19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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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27>'극우'가 '파견'한 북한 특수부대



필자가 '그' 광주에 들어간 건 그해 5월 20일이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31년 전 바로 오늘이다. 취재기자였다. 출장명령을 받고 서울을 출발한 것은 전날인 19일이었으나, 계엄군들이 광주로 접근하는 길을 모두 다 막고 있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외부세력의 합세를 막기 위해서였다. 광주 주변을 이리저리 돌며 꼬박 하루를 허비한 끝에, 영광쪽 좁은 길을 어찌어찌해서 광주로 스며들 수 있었다.

도시는 어느새 상처투성이였다. 백주대로에서 속옷만 입은 채 벗겨진 수십 명의 젊은 남녀가, 공수부대원들로부터 곤봉세례를 받고 피가 튀기는 모습이 보였다. 숨어서 보았다. 목숨을 잃은 사람도 나왔다. 김경철이라는 젊은이가 전날 숨졌다고 했다. 그는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농아라고 했다. 그런 그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 몰라도, 공용터미널 근처에서 붙잡혀가 공수부대원들로부터 맞아죽었다.

겉으로는 구호도 외치고 돌도 던져보지만, 원천적으로 시민들은 공수부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계엄군은 곤봉으로 피터지게 머리를 패고 대검으로 찌르고 있었다. 온몸이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으나, 필자 보기에 시민들은 공포에 질려, 속으로 파르르 떠는 새 새끼처럼 가냘파보였다.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서, 수백 대의 택시가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금남로를 가득 메우는 차량시위를 벌였다. 일순간 도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고 방송국이 불길에 싸이고, 필경 계엄군의 조준사격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광주의 5월은 피에 흠뻑 젖어들기 시작했다.

최미애 씨의 기막힌 사연을 들은 것은 그 무렵 김준태 시인으로부터였다. 최 씨는 5월 21일 중흥동 셋집 앞에서 남편을 기다리며 서 있다가,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진 24세의 가정주부였다. 남편은 전남고교 영어교사였고, 김준태 시인은 같은 학교에서 독일어를 가르치는 동료교사였다. 낮 1시쯤이었다. 시내 쪽에서 무섭게 총소리가 이어져 들렸다. 최 씨는 학교에 가본다며 나간 남편이 걱정되었다. 집 앞에 서서 남편이 돌아오는 길목을 가슴조이며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둘째 아이를 가진 임신 8개월의 만삭이었다. 계엄군들이 학생차림의 한 젊은이의 다리를 잡고 질질 끌며 그녀 앞을 지나갔다. 누군가 "놓고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몇 발의 총소리가 났다. 최 씨가 쓰러졌다. 이웃에 사는 최 씨의 친정어머니가 달려갔을 때 딸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뱃속에서 태아가 몸부림치듯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날은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따로 찍어놓은 영정사진이 없어 면사포를 쓴 결혼식 사진을 오려서 썼다. 상여나 영구차도 구할 수 없었다. 가족들은 동네 연탄배달 리어카를 빌려 밤새껏 비눗물로 씻어낸뒤, 가마니를 깔고 그 위에 관을 싣고 가 묻었다. 김준태 시인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면서, 극도의 분노가 차올랐을 때 사람이 그러하듯이, 말을 심하게 더듬고 있었다.

최미애 씨는 지금 묘지번호 135번으로 망월동에 묻혀있다. <여보! 당신은 천사였소/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남편이 쓴 묘비명이다. 최 씨가 집 앞에서 기다린 건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자유나 인권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기다린 건 그저 사랑하는 남편이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 가족들 곁의 '안전권'으로 귀환하는 것을 기다렸을 뿐이다. 그런 민초(民草)들의 소박한 삶을 지켜줘야 할 공권력이 오히려 살인을 했다. 불법으로 탈취한 권력을 내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저지른 용서받지 못할 범죄였다.

그때 광주에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내가 기자'라는 사실이었다. 기사 한줄 보도할 수 없는 '거세된' '무정란' 기자였다. 마음 놓고 취재수첩에 메모도 못했다. "보도할 수 있습니까?" 악에 받친 시민들의 핀잔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상무관에 시신은 즐비했고 통곡은 하늘에 사무쳤다. 금남로 가로수치고 총탄자국 없는 나무는 없었다. 시민군들의 차량이 멈춰서면 시민들은 주먹밥과 목축일 물바가지를 들고 달려갔다. 기자인 것도 잊고 필자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시내를 뛰어다니기만 했다. 지금도 부끄럽기만 하다.

그 5월을 놓고 강인한 시인(당시 사레지오고 교사)은 이렇게 울었다. <…/ 유리창밖에 죽음이 서성이는/ 오월의 전라도 광주/ 아카시아 향기가 저주처럼 풍기는/ 철길엔 열차가 끊어지고/ 시외전화도 끊겼습니다 아아, 형님/ 보고 싶은 누님/ 여기는지도에 없는 섬입니다/ 허공에 떠있는 섬입니다/ …/ 햇볕만이 침묵으로 타는 학교둘레/ 돌담에 기대어/ 장미는 핏방울로 툭툭 피어나도 좋습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 이것은 꿈입니다 아득한/ 석기시대 야만의 꿈입니다> ― 「이것은 꿈입니다」 중에서

'석기시대 야만의 꿈'같은 일이 요즘 벌어지고 있다. "광주에서 살인자들은 한국군이 아니라 북한이 파견한 600명의 특수부대"라는 소리가 들린다. 일부 극우단체들이 5·18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반대하는 청원서를 통해 주장한 내용이라 했다. 이미 작년 11월 유네스코 본부에 직접 찾아가 그 청원서를 제출했다고 했다. 다음 주에 최종 결정될 등재여부에 우려할 만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들 단체는 광주학살을 자행한 전두환 신군부에 대해서도 "더 이상 살인 정권이라 불러서도 안 되고 그들의 훼손된 명예도 회복돼야한다"고 목청을 높인다고 했다.

진실을 근거로 하더라도, 유네스코의 눈에 5·18 기록물들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에는 적절치 않다거나, 자기들 기준으로 볼 때, 함량미달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래서 등재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등재여부와 진실의 훼손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광주에서의 '민주화운동'과 '계엄군의 만행'은 이미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되어있다. 그 5월에 기자로 광주에 있었던 필자로서도 괴롭다.

그때 필자가 보고 들은 '사람 죽이던 계엄군들'이 바로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 달리 말하자면 북한 특수부대원이 600명이나 광주에 침투했는데도 전두환 신군부는 그 살육만행을 몰랐고, 임무를 마치고 북으로 되돌아가는 것까지 방치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도 아니라면, 그 북한 특수부대는 이 정권의 극우단체들이 불순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31년 전 과거로 '파견'한 게 분명하다.

진상이 드러난 사건을 놓고 배경이나 성격에 대해 견해와 해석을 달리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럴만한 사유도 없이, 사건자체의 진위를 뒤집고자하는 것은 곤란하다. 진실이 뒤바뀌는 건 안 된다. 무엇이 그들 단체로 하여금 한이 맺혀 북한 특수부대까지 끌어들이게 했는지 지금은 어림할 수가 없다. 어찌 보면 일고의 가치도 없다 할 수도 있으나, 짐작이 가는 흐름은 있다.

MB는 벌써 3년째 5·18 기념식을 외면하고 있다. 5·18에 '이론'을 단 것은 이 정권 들어서면서부터였다. 보훈처가 주관한 지난해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못 부르게 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은 5·18을 '민중반란'이라 했다. 600명이나 되는 북한의 특수부대 이야기는 전두환 정권 때도, 노태우 정권 때도, 문민정부·국민의 정부·참여정부 어느 정권에서도 나온 적이 없다.

이번에 '일'을 벌인 일부 단체는 이명박 정부로부터 활동자금까지 지원받고 있다고 했다. 그 단체의 신년 교례회에 이재오 특임장관 등 MB의 측근들이 참석해 '좌우타령'을 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최근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는 누가 보냈는지 모르는 '전두환 대통령 팔순잔치 참관기'가 배달되고 있다. 필자도 받았다. "5·18에 대한 평가는 친북좌파들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먼 훗날 역사가 평가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적혀있다.
▲ "광주시민 학살은 북한 특수부대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국가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의 행사에 참석한 이재오 장관과 원희룡 의원. ⓒ연합

이 정권 들어 '보수 우파'를 자처하는 사람들에 의한 수상한 일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어느 구석엔가 '연출자'도 숨어있는 것 같다. 못된 짓이 횡행하는 사회는 공정사회가 아니다. 이것은 좌우의 문제도 보수진보의 문제도 아니다. 진실과 거짓의 문제이고 옳고 그름의 문제이다.
 

/오홍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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