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냉전을 대신한 자리에 뭐가 있을까? ‘이데올로기 싸움’을 뒤이어 ‘테러와의 전쟁’이 국제사회에 빈번하지만, 어떤 명분을 갖다대도 전쟁의 이면은 자원 확보를 위한 살육에 지나지 않는다. 2차 세계 대전까지 ‘땅 따먹기 게임’을 벌였던 제국주의 나라들은 이제 ‘에너지 게임’에 몰두해 있다. 주동자는 유일패권국가로 군림하는 미국이고, 피해는 주로 중동지역 힘없는 나라들에 속한 평범한 시민들이 입고 있다.
이 책은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중동지역에 전선을 형성한 미국의 패권주의를 고발한다. 익히 알려진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비롯해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가자(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접경지)에서 벌어진 전쟁의 이면에는 석유 혹은 송유관을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한 미국의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고 이 책은 지적한다. 예컨대 미국은 아프간을 공습하면서 ‘탈레반의 전횡에서 여성을 해방한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실상 투르크메니스탄과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그리고 인도를 잇는 이 지역 송유관 사업을 통제 아래 두겠다는 목적이 크게 작용했다. 바레인에 일고 있는 민주화운동에 미국이 유독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도 친미성향의 기존 왕정체제를 유지해야 이 지역 페르시아만을 통한 원유 수송로를 보존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두 사례에서 드러나듯 석유 사업 이점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은 때때로 이중적 면모를 보인다. 바레인의 민주화 운동에 침묵한 이 나라는 이란의 반정부 시위대를 향해 “자유를 표명할 용기를 갖기 바란다”고 적극 지지하는 목소리를 냈다. 미국 최초로 소수인종 정권을 수립해 노벨상까지 거머쥔 오바마 대통령 역시 대외정책만 놓고 보면 이전 부시내각과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다. 저자는 미국의 중동정책이 변하지 않는 한, 오바마시대 중동의 평화를 전망하는 일은 간단치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책을 쓴 유달승 한국외대 교수(이란어과)는 국내 드문 중동문제 전문가로 한국인으로선 최초로 이란 대학에 유학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책의 상당수를 할애해 한국언론에 대한 당부를 함께 담았다. 유 교수는 중동 문제를 다룰 때 미국 일변도 시각에서 벗어나라고 주문하는 한편, 최근 중동지역에 일고 있는 민주화 운동을 1989년 동유럽 민주화 흐름과 동격으로 보지 말 것과 이집트 혁명을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혁명’의 상징으로 규정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두 가지 모두 진실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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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 교수는 연초부터 촉발된 아랍의 민주화 운동이 반미국가뿐 아니라 튀니지, 이집트, 바레인, 예멘과 같은 친미국가에서도 일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1989년 동유럽 민주화 운동이 소련과 사회주의권 붕괴로 이어져 미국이란 세계패권국가를 탄생시켰다면 최근 흐름은 미국 중동정책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가 주목된다는 설명이다.
한국 언론 다수가 이집트 혁명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촉발됐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중동 현지사정을 잘 몰라서 내놓은 틀린 분석일 수 있다. 유 교수는 이집트 인구 8000만 명 가운데 20%만 인터넷을 사용하고 44%가 문맹 혹은 반문맹 상태인 나라에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혁명의 결정적 요인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많다고 지적한다. 이집트 인구 가운데 40%가 하루 2달러 이하 수입으로 살아가는 빈곤층이고 이들이 거리로 나와 정치개혁을 외쳤다면 혁명은 응당 ‘코샤리 혁명(이집트 서민들 주식)’으로 칭하는 게 적절하단 뜻이다.
이 책은 중동지역에 대한 미국 패권주의를 고발하는 책이자, 미국의 관점을 답습하느라 협애한 혹은 무지한 시각으로 중동 문제를 바라보는 한국언론을 꼬집는 책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