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군이 시위대에 총격 안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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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정부를 떠맡은 이집트 군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6개월 뒤 권력 이양’을 약속했지만 지켜질지는 미지수이다. 미국은 군부에 영향력을 미쳐 무슬림형제단의 정권 장악을 막으려 한다.
“우린 이집트 군부와 아주 밀접한 접촉을 유지하고 있다.” 마이클 멀린 미국 합참의장이 2월15일 이집트를 방문해 공개적으로 한 말이다. 이집트의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결국 거센 퇴진 요구에 굴복해 하야한 뒤 이집트 군부가 오는 가을 새 정부 구성 때까지 과도정부를 떠맡으면서 미국의 역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집트 군부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때문이다. 실제 국방부 수뇌부는 지난 1월 하순 무바라크의 퇴진 시위대 앞에 탱크와 장갑차로 무장한 병력이 배치되자 이집트 군부 지도자에게 시위대에 발포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 결과 18일간의 시위 기간에 군은 단 한 발도 발포하지 않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무바라크가 하야한 2월12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특별 성명을 통해 이집트 군부에 대해 비상조치 해제와 헌법 개정,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 등 일련의 민주화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공교롭게도 이집트 군부는 오바마의 성명이 나온 지 이틀 뒤 구체적인 정치 일정을 내놓았다. 이집트 군부가 의회를 해산하고, 앞으로 6개월 안에 헌법을 개정하고, 국민투표에 부쳐 이를 확정한 뒤 선거를 치르겠다고 공약한 것이다.
물론 이집트 군부의 이런 조치가 미국의 요구에 ‘화답’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집트 군부가 지난 30년 이상 미국과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해왔음을 감안할 때, 미국의 민주화 요구에 신경을 쓴 것만은 분명하다.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 따르면 이집트 군부는 1979년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맺은 뒤 미국으로부터 해마다 약 20억 달러에 이르는 군사 지원을 받아왔다. 그뿐인가. 이집트 장교들은 지난 30년간 매년 수백명씩 미국 연수를 받았다. 지금도 매년 500명 이상의 장교가 미국 국방부 초청으로 미국 연수를 다녀간다. 50만명에 이르는 이집트군과 비슷한 규모의 예비군이 소지한 각종 무기도 모두 ‘미제’이다.
미국, 이집트 군부에 대한 영향력 엄청나
세계적 군사 전문기관 ‘제인스 인포메이션 그룹’은 미국의 대이집트 원조액이 연간 약 50억 달러인 이집트 국방비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고 분석한다. 미국이 이집트에 제공하는 군사 지원은 전투기에서 탱크·레이더·헬기·대공포 등 각종 미제 장비로 이루어져 있고 이 장비들은 미국 유수의 방위산업체 록히드 마틴, 보잉, 제너럴 일렉트릭, 제너럴 다이내믹스 등이 만든다. 최신예 M1A1 에이브럼스 탱크는 아예 이집트에서 하청·조립되고 있다. 바로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제인스 그룹은 “이집트의 방위산업이 간접적으로는 미국의 군사 지원 때문에 활기를 띠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이집트 군부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집트 군부에 대한 미국의 압도적 군사 지원이 향후 이집트 새 정부 구성과 관련해 어떤 영향을 주느냐 하는 점이다. 사실 이집트가 친미 국가이지만 엄연한 주권국가인 데다, 이집트 군부는 이집트 어느 사회집단보다 자부심이 강하고 전문성도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때문에 이집트 군부가 지난 30년간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군사 지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워싱턴 소재 중동정책연구소(MEI)의 그래미 배너먼은 블룸버그 통신 인터뷰에서 “미국이 이집트 군부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미국의 말을 경청하겠다는 뜻이지, 따르겠다는 건 아니다. 결국 이집트 군부도 최선의 국익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라고 관측했다.
그러나 미국이 오는 8월 새 민간 정부가 탄생할 때까지 과도정부를 맡게 된 이집트 군부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는 관측이 적지 않다. 존 네그로폰테 전 국가정보국장이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는 앞으로 이집트 군부가 헌법을 개정하고 복수 정당의 탄생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집트 군부의 고삐를 쥐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한 것도 이집트 군부에 대한 미국의 속내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이 먼저 주목하는 부분은 과연 이집트 군부가 이미 제시한 정치 일정대로 일을 처리해 이집트를 진정한 민주국으로 재탄생하도록 할 수 있겠느냐이다. 아랍 근대 역사상 군부가 집권한 나라치고 민주국으로 재탄생한 선례가 없기 때문이다.
일부 미국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집트에 민주화가 촉진되면 될수록 군부의 특권이 사라질 가능성이 커 이집트 군부의 민주화 공약을 의심하기도 한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중동 전문가인 케네스 폴락 선임 연구원은 <USA 투데이> 인터뷰에서 “민주주의는 군부가 누렸던 특권에 대한 위협이라 앞으로 군부와 충돌할 여지가 남아 있다”라고 염려했다.
미국이 바짝 신경을 쓰는 부분은 또 있다.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이집트 최대 야당 조직으로 떠오른 무슬림형제단의 정치 세력화 여부가 그것이다. 무슬림형제단은 이번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중심 세력으로 떠올랐을 뿐 아니라 현재 이집트 최대 야당 조직이다. 그러나 무슬림형제단은 이스라엘을 혐오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도 반대하고 있어 미국이 가장 경계하는 조직이기도 하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도 재임 30년 동안 이 단체의 정치 세력화를 철저히 차단했다.
그러나 이집트 군부가 무슬림형제단이 정치 조직화해 정권을 장악하는 것을 저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무슬림형제단이 이집트 국민 30% 정도의 지지를 받을 만큼 강력한 야당 조직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도 종전에는 이 단체와 일절 상대하지 않았지만, 이번 이집트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무슬림형제단과 배후 접촉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보수 우익 방송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무슬림형제단의 새 정부 참여와 관련해 “내가 원하는 건 이집트의 대의 정부다. 이집트가 질서정연한 권력 이양을 한다면 새로 들어설 이집트 정부와도 함께 일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도 기조 변화를 대변한다.
아무튼 미국은 30년에 걸쳐 이집트 군부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 덕분에 이집트 국민의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군의 발포 자제를 이끌어냈다. 이런 독특한 관계가 앞으로 6개월간 이집트 과도정부를 책임진 군부에 과연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출처: 시사인
“우린 이집트 군부와 아주 밀접한 접촉을 유지하고 있다.” 마이클 멀린 미국 합참의장이 2월15일 이집트를 방문해 공개적으로 한 말이다. 이집트의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결국 거센 퇴진 요구에 굴복해 하야한 뒤 이집트 군부가 오는 가을 새 정부 구성 때까지 과도정부를 떠맡으면서 미국의 역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집트 군부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때문이다. 실제 국방부 수뇌부는 지난 1월 하순 무바라크의 퇴진 시위대 앞에 탱크와 장갑차로 무장한 병력이 배치되자 이집트 군부 지도자에게 시위대에 발포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 결과 18일간의 시위 기간에 군은 단 한 발도 발포하지 않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무바라크가 하야한 2월12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특별 성명을 통해 이집트 군부에 대해 비상조치 해제와 헌법 개정,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 등 일련의 민주화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공교롭게도 이집트 군부는 오바마의 성명이 나온 지 이틀 뒤 구체적인 정치 일정을 내놓았다. 이집트 군부가 의회를 해산하고, 앞으로 6개월 안에 헌법을 개정하고, 국민투표에 부쳐 이를 확정한 뒤 선거를 치르겠다고 공약한 것이다.
ⓒAP Photo 이집트 군부는 18일간의 시위 기간에 단 한 발도 발포하지 않았다. 그전에 미국은 군부 지도자에게 “발포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
미국, 이집트 군부에 대한 영향력 엄청나
세계적 군사 전문기관 ‘제인스 인포메이션 그룹’은 미국의 대이집트 원조액이 연간 약 50억 달러인 이집트 국방비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고 분석한다. 미국이 이집트에 제공하는 군사 지원은 전투기에서 탱크·레이더·헬기·대공포 등 각종 미제 장비로 이루어져 있고 이 장비들은 미국 유수의 방위산업체 록히드 마틴, 보잉, 제너럴 일렉트릭, 제너럴 다이내믹스 등이 만든다. 최신예 M1A1 에이브럼스 탱크는 아예 이집트에서 하청·조립되고 있다. 바로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제인스 그룹은 “이집트의 방위산업이 간접적으로는 미국의 군사 지원 때문에 활기를 띠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이집트 군부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AP Photo 오바마는 이집트의 질서정연한 권력 이양을 바란다. |
그러나 미국이 오는 8월 새 민간 정부가 탄생할 때까지 과도정부를 맡게 된 이집트 군부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는 관측이 적지 않다. 존 네그로폰테 전 국가정보국장이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는 앞으로 이집트 군부가 헌법을 개정하고 복수 정당의 탄생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집트 군부의 고삐를 쥐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한 것도 이집트 군부에 대한 미국의 속내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이 먼저 주목하는 부분은 과연 이집트 군부가 이미 제시한 정치 일정대로 일을 처리해 이집트를 진정한 민주국으로 재탄생하도록 할 수 있겠느냐이다. 아랍 근대 역사상 군부가 집권한 나라치고 민주국으로 재탄생한 선례가 없기 때문이다.
일부 미국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집트에 민주화가 촉진되면 될수록 군부의 특권이 사라질 가능성이 커 이집트 군부의 민주화 공약을 의심하기도 한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중동 전문가인 케네스 폴락 선임 연구원은 <USA 투데이> 인터뷰에서 “민주주의는 군부가 누렸던 특권에 대한 위협이라 앞으로 군부와 충돌할 여지가 남아 있다”라고 염려했다.
미국이 바짝 신경을 쓰는 부분은 또 있다.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이집트 최대 야당 조직으로 떠오른 무슬림형제단의 정치 세력화 여부가 그것이다. 무슬림형제단은 이번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중심 세력으로 떠올랐을 뿐 아니라 현재 이집트 최대 야당 조직이다. 그러나 무슬림형제단은 이스라엘을 혐오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도 반대하고 있어 미국이 가장 경계하는 조직이기도 하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도 재임 30년 동안 이 단체의 정치 세력화를 철저히 차단했다.
그러나 이집트 군부가 무슬림형제단이 정치 조직화해 정권을 장악하는 것을 저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무슬림형제단이 이집트 국민 30% 정도의 지지를 받을 만큼 강력한 야당 조직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도 종전에는 이 단체와 일절 상대하지 않았지만, 이번 이집트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무슬림형제단과 배후 접촉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보수 우익 방송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무슬림형제단의 새 정부 참여와 관련해 “내가 원하는 건 이집트의 대의 정부다. 이집트가 질서정연한 권력 이양을 한다면 새로 들어설 이집트 정부와도 함께 일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도 기조 변화를 대변한다.
아무튼 미국은 30년에 걸쳐 이집트 군부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 덕분에 이집트 국민의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군의 발포 자제를 이끌어냈다. 이런 독특한 관계가 앞으로 6개월간 이집트 과도정부를 책임진 군부에 과연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출처: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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