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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자리다툼, 이들을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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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이엘
댓글 0건 조회 1,732회 작성일 10-11-1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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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선출직 정치인으로 성공할 꿈을 꾼다면 첫 번째 목표는 연방하원이다. 주별로 인구 비례(인구 75만명)에 따라 나눈 지역구를 대표하는 지위이다. 하원에서 경력을 쌓으면 그만큼 국민의 뜻을 반복해 수행했다고 평가받는다. 그 다음 소속 정당의 지도부에 진입해 전국적 정치인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따라서 2년마다 의회가 새로 구성되면 각 당은 지도부 구성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다수당은 하원의장(Speaker)을, 그리고 각 당은 원내대표(Majority Leader)·원내총무(Whip)·당간부회의장(Caucus Chair)·선거대책위원장(Campaign Committee Chair)·수석부총무(Chief Deputy Whip)와 부총무(Deputy Whip) 6명으로 지도부를 구성한다. 하원의장은 주로 의원 경력이 오래되고 원내총무 등 지도자 수업을 마친 의원 중에서 선출한다.

    
ⓒReuter=Newsis
중간선거에서 압승한 뒤 차기 하원의장으로 내정된 존 뵈너(오른쪽)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 옆이 차기 원내대표로 유력한 에릭 캔터 의원이다.

대통령 집권 2년을 평가하는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공화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상원에서는 6석을 추가해 47석으로 늘었으며, 하원에서는 60석을 추가해 총 239석으로 다수당 자리를 확보했다. 워싱턴 권력 서열 3위인 하원의장과 하원 전체 상임위원장직을 공화당이 독식하게 되었다. 선거 시작 전부터 하원 장악이 확실했던 만큼 공화당 내부에서는 당직과 상임위원장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존 뵈너 원내대표가 의장이 될 것이 확실시되면서 당내 중진 간에 대표와 거리 좁히기 경쟁이 가열되었다.

1994년 공화당은 혜성같이 나타난 하원 지도자 뉴트 깅리치의 지도력으로 54석을 추가하면서 40년 만에 하원의 다수당이 되었다. 2000년 백악관에 입성한 조지 부시의 첫 중간선거(2002년)에서는 9·11 테러 덕에 오히려 6석을 더하면서 다수당의 지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부시 재선 이후 치러진 중간선거(2006년)에서는 대패했다. 하원에서 26석, 상원에서 6석을 잃었다. 이라크 전쟁이 잘못된 전쟁임이 입증되었고, 부시 권력의 핵심 인물 톰 딜레이 하원 원내대표가 유명 로비스트 잭 아브라모프의 불법 로비에 연루되어 연방검찰에 기소되면서 그 여파가 선거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톰 딜레이가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공화당 원내대표 자리는 갑자기 공석이 되었다. 톰 딜레이의 수족인 로이 블런트 부대표(Majority Whip)가 임시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당 대표 경선을 치르게 되었다.

임시 대표직을 수행한 로이 블런트, 존 뵈너 교육 및 노동위원장(오하이오 주), 존 새덕 정책위원장(미주리 주)이 나서 치열한 3파전을 벌인 결과 첫 선거에서는 블런트가 110표, 뵈너가 79표, 새덕이 40표를 얻었다. 이렇게 누구도 과반수를 얻지 못해 재선거를 치렀는데 이 과정에서 새덕이 사퇴했고, 그 덕에 뵈너가 122대109로 블런트를 따돌리고 공화당 원내대표가 되었다(이번 중간선거에서 로이 블런트는 미주리 주 상원의원에 도전해 성공했다).

당시 존 뵈너는 공화당 내 개혁의 선봉장이었다. 잭 아브라모프의 로비 스캔들에 휘말린 공화당의 탈출구는 오직 개혁뿐이었다. 뵈너는 조지 밀러 민주당 의원과 초당적으로 협력해 조지 부시 대통령의 교육개혁안을 통과시켜 유명해졌다. 그 유명한 아동낙오방지법이 바로 뵈너의 작품이다. 이렇게 해서 공화당 내 비주류였던 7선의 존 뵈너는 한순간에 공화당의 원내대표이자 실질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존 뵈너 차기 하원의장, 자력갱생의 리더십 지녀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뵈너는 온갖 수를 다 써서 2006년 중간선거에 임했지만 대통령의 실정(失政)과, 전임자 톰 딜레이가 연루된 로비 스캔들의 오명을 벗지 못한 채 40년 만에 되찾은 하원 다수당 자리를 12년 만에 다시 민주당에 내주고 말았다. 지난 4년 동안 뵈너는 당 대표로서 잘못된 전쟁을 일으킨 것 말고도, 미국 금융가를 초토화시킨 것까지 책임을 져야 했다. 그는 이 와중에도 당의 이념적 정체성을 근근이 지켜내면서 끝까지 공화당을 지켰고, 마침내 이번 중간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차기 하원의장으로 내정된 뵈너는 정치권력을 순전히 자력갱생의 방식으로 획득한, 독특한 리더십을 지닌 인물이다.

    
ⓒReuter=Newsis
원내총무 후보인 마이크 펜스 의원은 2012년 대선 출마에 더 관심이 많다.

존 뵈너가 차기 하원의장이 된다면, 하원 원내대표로는 에릭 캔터가 유력하다. 워싱턴 DC 인근의 버지니아 주 제7 지역구 출신인 그는 올해 겨우 마흔일곱 살인 6선 의원이다. 공화당 내 유태계의 대표 정치인이라 할 정도로 유태인들의 정치자금이 그에게 쏠린다.

에릭 캔터는 큰 목표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 변신의 귀재이다. 2006년 원내대표 자리를 놓고 존 뵈너와 로이 블런트가 맞붙었을 때 그는 블런트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정작 존 뵈너가 대표가 되자 그는 뵈너와의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맺자고 청하면서 충성을 약속했다. 에릭 캔터의 모금 실력을 알아본 존 뵈너 또한 그를 자신의 수하에 두게 되었다. 에릭 캔터는 신의 조직이라 불리는 유태계 공공정책위원회 에이팩(AIPAC)의 핵심 인물이다. 매년 3월에 개최되는 에이팩 연례총회에서 그는 뵈너를 그곳 최고의 초청 연사로 무대에 세웠고, 당연히 뵈너에게 유태인의 정치자금이 쏠렸다.

오바마 취임 후 존 뵈너를 대신해 공화당을 철저하게 결속시킨 사람이 바로 에릭 캔터다. 깔끔한 외모와 단호한 리더십으로 정평이 난 에릭 캔터는 젊은 나이에 존 뵈너 의장과 함께 하원의 운영을 책임지게 되었다. 그는 모든 의원과 긴밀히 접촉하면서 지도부의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주요 법안 투표 시 사전 표 점검과 단속을 책임지면서 당의 정책을 관철시키는 당내 채찍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FTA 비준을 요청해도 에릭 캔터가 의사 일정을 잡아야 처리가 된다.

하원의장·원내대표에 이어 다음 서열인 원내총무 후보로는 의총 의장인 6선의 마이크 펜스(인디애나 주)가 거론된다. 그러나 마이크 펜스는 꿈이 원대하다. 그는 이미 2012년 대권에 관심이 있음을 표명했고, 그렇지 않으면 인디애나 주지사직에 도전하겠다고 발표했다. 당 지도부 진입에는 관심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이로 인해 피트 세션 전국공화당하원위원장(텍사스 주)과 하원 영입위원장인 케빈 매카시가 원내총무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고 있다. 피트 세션 위원장은 존 뵈너 대표가 2006년 로이 블런트와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때부터 그를 지지하고 따랐다. 케빈 매카시 의원은 빌 토머스 전 세입위원장이 적극 밀고 있다. 빌 토머스 전 세입위원장은 존 뵈너가 반드시 챙겨줘야 할 만큼 신세를 진 거물이다. 뵈너 대표가 원내총무를 잘못 지명해 의원총회에서 경선을 통해 밀리면 대표의 리더십에 큰 흠집이 생기게 된다. 현재까지는 피트 세션이 원내총무로 유력하다.

다수당의 지도부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의회의 향배를 가늠할 길이 없다. 양당 지도부는 이제부터 의회 운영을 놓고 격돌할 뿐만 아니라 2012년 백악관 입성을 위해 사생결단으로 치고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새로 짜일 공화당 지도부를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일은 앞으로 2년간 미국 의회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필수이고, 대통령 선거전에 임하는 공화당의 전략을 미리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출처: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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