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 스웨덴의 설계자 ‘비그포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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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포르스(왼쪽)는 1930년대 대공황기에 ‘잠정적 유토피아’ 개념을 도입해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스웨덴 복지국가’를 탄생시켰다. 비그포르스가 착안한 잠정적 유토피아의 진면목을 들여다보았다.
진보 통합이 화두다. 과연 진보 정치는 도약할 것인가, 아니면 한국 현대사의 아름다우나 덧없는 에피소드로 남을 것인가. <시사IN>과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소장 홍기빈)는 ‘진보 정치 도약’의 경험을 찾아 1930년대 대공황기 스웨덴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곳에서 오늘날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스웨덴 복지국가’의 설계자 비그포르스를 만날 수 있었다. 1930년대는 ‘지금 여기’와 마찬가지로 지구적 시장자유주의가 발흥했다가 폐허만 남겼고, 당대의 정통 이념이 실천적 무기력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시작한 대안 부재의 시대였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자본주의 변방의 빈국에 지나지 않던 스웨덴 진보 정치세력이 이후 수십 년의 황금시대로 이어진 경제·사회적 기획과 정치연합에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살펴보았다. 이 기획을 함께 진행한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는 오는 9~10월 비그포르스 관련 단행본을 출간함과 동시에 연속 심포지엄을 개최할 계획이다.
사회 곳곳에서 ‘삶’이 짓눌리고 터지는 비명소리가 흘러넘치고 있다. 집권 세력은 ‘삶’을 억눌러 ‘경제 살리기’를 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삶의 파괴는 경제의 앞날까지 위협한다. 한편 우리 삶의 적절한 사회적 형식을 만들어내야 할 정당 정치는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총체적이고 일관된 해법으로 새 사회의 미래상을 제시하기는커녕 지역 및 계층 갈등만 부추긴다. 경제의 독주로 인한 삶의 황폐화,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당 정치의 무능력이 2011년 대한민국이 처한 난국의 성격이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체제 경쟁의 최종 승리자로 ‘역사의 종말’까지 선언했던 지구적 금융자본주의는 2008년의 세계 경제위기를 통과하면서 인간 및 자연과의 삶은 고사하고 경제 스스로의 안녕조차 보장하기 힘든 지경에 몰리고 말았다. 지구인들은 수십 년 전 소련 공산주의 몰락 이후 지금 또 하나 우상이 황혼으로 저물어가는 것을 목도하면서 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파란만장했던 20세기 체제 경쟁의 최후 승자는 누구인가?
최소한 현 시점에서 그 승리자는 엉뚱하게도 북유럽 한구석의 작은 나라 스웨덴에 구현된 사회민주주의로 보인다. 세로축에 정치와 경제를 놓고 가로축에 자유(혹은 성장 및 역동성)와 평등(혹은 분배 및 안정성)의 가치를 놓아 네 칸짜리 평가표를 만들어보라. 현재 지구상에 스웨덴만큼 네 칸 모두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스웨덴 모델을 배워오자’는 것이 해법이 될 수는 없다. 모든 나라는 그 고유한 시간적·공간적 맥락 속에 처해 있기에, 다른 나라의 정치·경제 제도라는 것을 마치 워드프로세서처럼 ‘자르기’ ‘붙이기’로 간단하게 베껴오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오히려 아직 성공적이고 일관된 정치·경제 모델을 창출하지 못한 우리로서는, 스웨덴 정치·경제 모델이 처음으로 형성되던 당시로 돌아가 그것을 건설한 이들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어떤 아이디어로 무엇을 실천했는지 돌아보는 일이 더 유익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실천적 파산과 노동자 정당
우리가 지금 에른스트 비그포르스(Ernst Wigforss)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그포르스는 20세기 전반에 걸쳐 스웨덴 정치·경제 모델을 주도적으로 건설한 사회민주당의 가장 중요한 지도적 이론가였을 뿐만 아니라, 의회와 행정부에서 핵심 구실을 맡았던 정치가요 관료였다. 또 그 자신이 독창적인 경제 이론가로서 1930년대 초 대공황이 스웨덴을 덮쳤을 때에는 지구상 최초로 ‘케인스주의적’인 대안적 경제 모델을 제시해 1932년 총선거에서 사민당을 대승으로 이끌었다. 그는 성공적으로 공황을 극복하는 데 핵심 구실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 17년간 재무장관을 역임하면서 현실 정책의 자리에서 스웨덴 모델과 복지국가의 초석을 다졌다. 하지만 이 ‘20세기의 가장 성공적인 사회(민주)주의자’였던 비그포르스의 사상과 실천에서 가장 중심적이고도 괄목할 만한 혁신은 바로 ‘잠정적 유토피아(provisoriska utopier)’라는 개념일 것이다.
비그포르스가 본격적으로 사회민주당 이론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제1차 세계대전 종결에서 1920년대에 이르는 동안 스웨덴 사회는 여러모로 오늘날의 한국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전쟁 이후 경제는 급속히 본격적인 산업 체제로 이행하게 되지만 높은 실업 상태가 만성화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실질적인 생활수준을 개선할 수 있는 각종 사회복지정책에 대한 민중의 요구가 드높은 상태였다.
한편 1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참정권이 보편적으로 주어지면서 본격적인 의회 정치가 시작되었지만, 우파는 19세기 이래 시장근본주의만 거머쥐고 있었다. 재정·통화 정책에서나 노동 정책에서나 종래의 틀을 그대로 고집하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사회적 형식과 제도의 창출 작업을 방기했던 것이다.
당시의 사회민주당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것이 스웨덴 사회민주당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19세기 말부터 독일 등 여러 나라의 노동자 정당이 마르크스주의를 중심 이념으로 받아들이지만, 20세기로 접어들면서 마르크스주의가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당혹스러운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마르크스주의는 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을 해법으로 제시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러한 사회주의와 혁명은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숙한 뒤에만 나타나게 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면 그때까지 노동자 정당은 무엇을 하라는 말인가? 만약 그러한 파국이 몇 년 후로 임박한 상태라면 그나마 ‘그날’을 준비하고 교육하는 것이 노동자 정당의 임무라고 우길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파국이 나타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노동자 정당은 현실에서 다수 대중의 집단적 호응을 끌어낼 유효한 실천 프로그램은 하나도 없는 채 하릴없이 급진적인 혁명의 수사나 읊어대고 허구한 날 학습 세미나나 벌이는 무기력한 집단으로 전락할 뿐이다.
현실에 가치와 이념 적용해 구체적 정책 도출
그래서 독일의 베른슈타인 등 ‘수정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가 내놓는 사회주의 도래의 ‘각본’을 폐기할 것을 주장한다. 이들은 오지도 않을 혁명만 기다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신, 현실의 여러 모순과 문제에 직접 뛰어들어 의회를 통해 구체적인 ‘개량’을 일구어내는 것이 사회민주당이 나아갈 바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개량주의’ 또한 현실에서 무능력하기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각국 노동자 정당 역시 현실 의회에서는, 다른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사안마다 인기에 영합하고 현실에 타협하는 무능한 기회주의 정당으로 전락해버렸던 것이다. 산업사회 전체의 비전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이념과 가치는 노동자 정당에도 없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그포르스가 착상한 개념이 바로 ‘잠정적 유토피아’였다. 정당은 전 사회가 지향해야 할 미래 사회의 모습, 즉 유토피아를 생생하게 그려내어 사람들에게 제시할 임무가 있다. 하지만 이 유토피아를 학자나 이론가의 머릿속에서 논리적으로 도출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대신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사는 사람들의 갑갑한 마음, ‘이것보다 좋은 세상이 어딘가 있을 텐데’라는 꿈에서 출발해야 한다. 거기에서 제기되는 구체적이고도 절실한 쟁점을 붙잡고 이를 현실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자유·평등·연대·민주주의 등 사회민주주의적 가치와 이념은 ‘길잡이’ 노릇을 한다. 현실에 대한 철저한 이해에 가치와 이념을 적용해서 구체적 정책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현되었을 때에 어떤 모습의 사회가 오게 될지를 마음속에 그려보라. 이것이 잠정적 유토피아다. 눈앞의 현실에는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천지개벽 이후에 올까 말까 한, 꿈같은 나라도 아니다. 이처럼 정당은 잠정적 유토피아를 엮어내고 이를 통해 현실에 분개하고 있으나 마땅히 힘과 상상력을 모을 방향을 찾지 못한 다수 대중을 만나야 한다. 그래서 대중의 마음속 깊이 잠재된 열망과 에너지를 정치 운동으로 폭발시키는 것이 정당의 임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한 대로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행동 강령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 강령이 정권을 잡을 가능성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그포르스가 강조하는바 이러한 유토피아는 어디까지나 ‘잠정적’이다. 좌파든 우파든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세력은 ‘완벽한 시장경제’나 ‘자본주의의 모순이 근본적으로 해결된 사회’와 같은 논리적 구성물을 도그마(독단적 신념이나 학설)로 삼아 이에 현실을 끼워 맞추려 든다. 하지만 비그포르스의 잠정적 유토피아는 어디까지나 ‘작업가설’일 뿐이다.
이미 보았듯이 잠정적 유토피아로부터 영감을 얻은 대중이 힘과 상상력을 모아 현실을 바꿔나가는 데 성공한다고 치자. 이 과정에서 대중은 수많은 일을 경험할 것이고 이에 따라 ‘작업가설’에 불과한 잠정적 유토피아는 수정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반드시 새롭게 수정되어야 한다. 좌우파의 ‘도그마’와 잠정적 유토피아의 차이점이다.
스웨덴 모델과 복지국가가 ‘종착역’은 아니다
또 잠정적 유토피아는 정당이 쟁점과 현실에 따라 끝없는 야합과 타협을 거듭하는 무원칙한 기회주의 정당으로 타락하는 것을 막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른바 ‘현실 정치인’ 중에는 이런저런 사회 세력의 요구에 대응해 정책 대안을 남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각각의 정책 대안들은 훌륭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불일치와 모순이 벌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복지 확대와 감세를 동시에 수행하겠다는 ‘기회주의 정치’가 좋은 사례다. 잠정적 유토피아처럼 미래의 총체적인 사회상을 먼저 그려놓지 않으면 이런 불일치와 모순이 발생할 때 어떻게 풀어야 할지, 어떤 정책을 우선해야 할지 일대 혼란을 겪게 된다.
여기에 설명한 잠정적 유토피아의 개념은 단순히 책 속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그와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이룩한 스웨덴 복지국가 건설 과정 속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1930년대에 그가 들고 나온 ‘케인스주의적’ 경제 모델도 흔히 오해되어왔듯이 케인스의 영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산업 생산의 효율성’이라는 사회민주주의 가치를 ‘실업 문제 해결’이라는 현실적 문제에 투영해 ‘더 높은 생산성을 달성하는 완전고용 사회’라는 하나의 잠정적 유토피아를 구성해낸 예라고 보아야 한다.
또 비그포르스가 1919년 제출했던 ‘요텐보리 강령’에는 이후 스웨덴에서 실현된 각종 복지정책과 그 전체 틀의 얼개가 원형적으로 나타나 있거니와, 이 또한 그가 사회민주당의 이념과 가치를 당시 전쟁이 끝난 후 생활의 고통에 처해 있는 노동 대중의 마음속에 실현 가능한 모습으로 그려내고자 했던 잠정적 유토피아로 생겨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말년의 비그포르스에게는 당시 성공적으로 안착되었던 스웨덴 모델과 복지국가 또한 종착점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더 멀리 나아가야 할 잠정적 유토피아에 불과한 것이었다.
2011년,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그려낼 수 있고 또 그려내야 할 잠정적 유토피아는 어떤 모습의 사회일까. ‘더 많은 복지’를 요구하는 소리는 사방에서 들려온다. ‘더 공평하고 안정된 노동 시장’ ‘지속 가능한 대학 교육 체제’ ‘집 때문에, 교육 때문에 삶을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따위. 이런 바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일관되고 실현 가능한 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이를 그려내는 것은 오롯이 우리 몫이다. 또 무엇보다도 다가오는 두 차례 선거에 임하는 여러 정당이 먼저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출처: 시사in
진보 통합이 화두다. 과연 진보 정치는 도약할 것인가, 아니면 한국 현대사의 아름다우나 덧없는 에피소드로 남을 것인가. <시사IN>과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소장 홍기빈)는 ‘진보 정치 도약’의 경험을 찾아 1930년대 대공황기 스웨덴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곳에서 오늘날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스웨덴 복지국가’의 설계자 비그포르스를 만날 수 있었다. 1930년대는 ‘지금 여기’와 마찬가지로 지구적 시장자유주의가 발흥했다가 폐허만 남겼고, 당대의 정통 이념이 실천적 무기력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시작한 대안 부재의 시대였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자본주의 변방의 빈국에 지나지 않던 스웨덴 진보 정치세력이 이후 수십 년의 황금시대로 이어진 경제·사회적 기획과 정치연합에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살펴보았다. 이 기획을 함께 진행한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는 오는 9~10월 비그포르스 관련 단행본을 출간함과 동시에 연속 심포지엄을 개최할 계획이다.
ⓒ스웨덴 노동운동 아카이브 도서관 비그포르스(왼쪽)는 1930년대 대공황기에 ‘잠정적 유토피아’ 개념을 도입해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스웨덴 복지국가’를 탄생시켰다. 비그포르스가 착안한 잠정적 유토피아의 진면목을 들여다보았다. |
사회 곳곳에서 ‘삶’이 짓눌리고 터지는 비명소리가 흘러넘치고 있다. 집권 세력은 ‘삶’을 억눌러 ‘경제 살리기’를 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삶의 파괴는 경제의 앞날까지 위협한다. 한편 우리 삶의 적절한 사회적 형식을 만들어내야 할 정당 정치는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총체적이고 일관된 해법으로 새 사회의 미래상을 제시하기는커녕 지역 및 계층 갈등만 부추긴다. 경제의 독주로 인한 삶의 황폐화,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당 정치의 무능력이 2011년 대한민국이 처한 난국의 성격이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체제 경쟁의 최종 승리자로 ‘역사의 종말’까지 선언했던 지구적 금융자본주의는 2008년의 세계 경제위기를 통과하면서 인간 및 자연과의 삶은 고사하고 경제 스스로의 안녕조차 보장하기 힘든 지경에 몰리고 말았다. 지구인들은 수십 년 전 소련 공산주의 몰락 이후 지금 또 하나 우상이 황혼으로 저물어가는 것을 목도하면서 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파란만장했던 20세기 체제 경쟁의 최후 승자는 누구인가?
최소한 현 시점에서 그 승리자는 엉뚱하게도 북유럽 한구석의 작은 나라 스웨덴에 구현된 사회민주주의로 보인다. 세로축에 정치와 경제를 놓고 가로축에 자유(혹은 성장 및 역동성)와 평등(혹은 분배 및 안정성)의 가치를 놓아 네 칸짜리 평가표를 만들어보라. 현재 지구상에 스웨덴만큼 네 칸 모두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스웨덴 모델을 배워오자’는 것이 해법이 될 수는 없다. 모든 나라는 그 고유한 시간적·공간적 맥락 속에 처해 있기에, 다른 나라의 정치·경제 제도라는 것을 마치 워드프로세서처럼 ‘자르기’ ‘붙이기’로 간단하게 베껴오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오히려 아직 성공적이고 일관된 정치·경제 모델을 창출하지 못한 우리로서는, 스웨덴 정치·경제 모델이 처음으로 형성되던 당시로 돌아가 그것을 건설한 이들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어떤 아이디어로 무엇을 실천했는지 돌아보는 일이 더 유익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실천적 파산과 노동자 정당
우리가 지금 에른스트 비그포르스(Ernst Wigforss)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그포르스는 20세기 전반에 걸쳐 스웨덴 정치·경제 모델을 주도적으로 건설한 사회민주당의 가장 중요한 지도적 이론가였을 뿐만 아니라, 의회와 행정부에서 핵심 구실을 맡았던 정치가요 관료였다. 또 그 자신이 독창적인 경제 이론가로서 1930년대 초 대공황이 스웨덴을 덮쳤을 때에는 지구상 최초로 ‘케인스주의적’인 대안적 경제 모델을 제시해 1932년 총선거에서 사민당을 대승으로 이끌었다. 그는 성공적으로 공황을 극복하는 데 핵심 구실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 17년간 재무장관을 역임하면서 현실 정책의 자리에서 스웨덴 모델과 복지국가의 초석을 다졌다. 하지만 이 ‘20세기의 가장 성공적인 사회(민주)주의자’였던 비그포르스의 사상과 실천에서 가장 중심적이고도 괄목할 만한 혁신은 바로 ‘잠정적 유토피아(provisoriska utopier)’라는 개념일 것이다.
ⓒ스웨덴 노동운동 아카이브 도서관 1935년 노동절을 기념해 노조원들과 거리를 행진하는 비그포르스(가운데). |
한편 1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참정권이 보편적으로 주어지면서 본격적인 의회 정치가 시작되었지만, 우파는 19세기 이래 시장근본주의만 거머쥐고 있었다. 재정·통화 정책에서나 노동 정책에서나 종래의 틀을 그대로 고집하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사회적 형식과 제도의 창출 작업을 방기했던 것이다.
당시의 사회민주당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것이 스웨덴 사회민주당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19세기 말부터 독일 등 여러 나라의 노동자 정당이 마르크스주의를 중심 이념으로 받아들이지만, 20세기로 접어들면서 마르크스주의가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당혹스러운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마르크스주의는 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을 해법으로 제시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러한 사회주의와 혁명은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숙한 뒤에만 나타나게 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면 그때까지 노동자 정당은 무엇을 하라는 말인가? 만약 그러한 파국이 몇 년 후로 임박한 상태라면 그나마 ‘그날’을 준비하고 교육하는 것이 노동자 정당의 임무라고 우길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파국이 나타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노동자 정당은 현실에서 다수 대중의 집단적 호응을 끌어낼 유효한 실천 프로그램은 하나도 없는 채 하릴없이 급진적인 혁명의 수사나 읊어대고 허구한 날 학습 세미나나 벌이는 무기력한 집단으로 전락할 뿐이다.
현실에 가치와 이념 적용해 구체적 정책 도출
그래서 독일의 베른슈타인 등 ‘수정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가 내놓는 사회주의 도래의 ‘각본’을 폐기할 것을 주장한다. 이들은 오지도 않을 혁명만 기다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신, 현실의 여러 모순과 문제에 직접 뛰어들어 의회를 통해 구체적인 ‘개량’을 일구어내는 것이 사회민주당이 나아갈 바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개량주의’ 또한 현실에서 무능력하기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각국 노동자 정당 역시 현실 의회에서는, 다른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사안마다 인기에 영합하고 현실에 타협하는 무능한 기회주의 정당으로 전락해버렸던 것이다. 산업사회 전체의 비전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이념과 가치는 노동자 정당에도 없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그포르스가 착상한 개념이 바로 ‘잠정적 유토피아’였다. 정당은 전 사회가 지향해야 할 미래 사회의 모습, 즉 유토피아를 생생하게 그려내어 사람들에게 제시할 임무가 있다. 하지만 이 유토피아를 학자나 이론가의 머릿속에서 논리적으로 도출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대신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사는 사람들의 갑갑한 마음, ‘이것보다 좋은 세상이 어딘가 있을 텐데’라는 꿈에서 출발해야 한다. 거기에서 제기되는 구체적이고도 절실한 쟁점을 붙잡고 이를 현실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자유·평등·연대·민주주의 등 사회민주주의적 가치와 이념은 ‘길잡이’ 노릇을 한다. 현실에 대한 철저한 이해에 가치와 이념을 적용해서 구체적 정책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현되었을 때에 어떤 모습의 사회가 오게 될지를 마음속에 그려보라. 이것이 잠정적 유토피아다. 눈앞의 현실에는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천지개벽 이후에 올까 말까 한, 꿈같은 나라도 아니다. 이처럼 정당은 잠정적 유토피아를 엮어내고 이를 통해 현실에 분개하고 있으나 마땅히 힘과 상상력을 모을 방향을 찾지 못한 다수 대중을 만나야 한다. 그래서 대중의 마음속 깊이 잠재된 열망과 에너지를 정치 운동으로 폭발시키는 것이 정당의 임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한 대로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행동 강령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 강령이 정권을 잡을 가능성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그포르스가 강조하는바 이러한 유토피아는 어디까지나 ‘잠정적’이다. 좌파든 우파든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세력은 ‘완벽한 시장경제’나 ‘자본주의의 모순이 근본적으로 해결된 사회’와 같은 논리적 구성물을 도그마(독단적 신념이나 학설)로 삼아 이에 현실을 끼워 맞추려 든다. 하지만 비그포르스의 잠정적 유토피아는 어디까지나 ‘작업가설’일 뿐이다.
이미 보았듯이 잠정적 유토피아로부터 영감을 얻은 대중이 힘과 상상력을 모아 현실을 바꿔나가는 데 성공한다고 치자. 이 과정에서 대중은 수많은 일을 경험할 것이고 이에 따라 ‘작업가설’에 불과한 잠정적 유토피아는 수정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반드시 새롭게 수정되어야 한다. 좌우파의 ‘도그마’와 잠정적 유토피아의 차이점이다.
ⓒ스웨덴 노동운동 아카이브 도서관
대공황기인 1930년, 시위를 하던 스웨덴의 한 노동자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스웨덴 모델과 복지국가가 ‘종착역’은 아니다
또 잠정적 유토피아는 정당이 쟁점과 현실에 따라 끝없는 야합과 타협을 거듭하는 무원칙한 기회주의 정당으로 타락하는 것을 막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른바 ‘현실 정치인’ 중에는 이런저런 사회 세력의 요구에 대응해 정책 대안을 남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각각의 정책 대안들은 훌륭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불일치와 모순이 벌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복지 확대와 감세를 동시에 수행하겠다는 ‘기회주의 정치’가 좋은 사례다. 잠정적 유토피아처럼 미래의 총체적인 사회상을 먼저 그려놓지 않으면 이런 불일치와 모순이 발생할 때 어떻게 풀어야 할지, 어떤 정책을 우선해야 할지 일대 혼란을 겪게 된다.
여기에 설명한 잠정적 유토피아의 개념은 단순히 책 속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그와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이룩한 스웨덴 복지국가 건설 과정 속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1930년대에 그가 들고 나온 ‘케인스주의적’ 경제 모델도 흔히 오해되어왔듯이 케인스의 영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산업 생산의 효율성’이라는 사회민주주의 가치를 ‘실업 문제 해결’이라는 현실적 문제에 투영해 ‘더 높은 생산성을 달성하는 완전고용 사회’라는 하나의 잠정적 유토피아를 구성해낸 예라고 보아야 한다.
또 비그포르스가 1919년 제출했던 ‘요텐보리 강령’에는 이후 스웨덴에서 실현된 각종 복지정책과 그 전체 틀의 얼개가 원형적으로 나타나 있거니와, 이 또한 그가 사회민주당의 이념과 가치를 당시 전쟁이 끝난 후 생활의 고통에 처해 있는 노동 대중의 마음속에 실현 가능한 모습으로 그려내고자 했던 잠정적 유토피아로 생겨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말년의 비그포르스에게는 당시 성공적으로 안착되었던 스웨덴 모델과 복지국가 또한 종착점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더 멀리 나아가야 할 잠정적 유토피아에 불과한 것이었다.
2011년,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그려낼 수 있고 또 그려내야 할 잠정적 유토피아는 어떤 모습의 사회일까. ‘더 많은 복지’를 요구하는 소리는 사방에서 들려온다. ‘더 공평하고 안정된 노동 시장’ ‘지속 가능한 대학 교육 체제’ ‘집 때문에, 교육 때문에 삶을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따위. 이런 바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일관되고 실현 가능한 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이를 그려내는 것은 오롯이 우리 몫이다. 또 무엇보다도 다가오는 두 차례 선거에 임하는 여러 정당이 먼저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출처: 시사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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