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대법원 ‘잔혹한 판결’성폭행 피해자 ‘9년 투쟁’ 기각
페이지 정보
본문
여성인권 아이콘’ 마이 성폭행한 6명중 5명 석방 확정 마이 “대법, 신변 책임져야”…국제사회 “대의 역행” | |
조일준 기자 | |
“원고의 상고를 기각한다.”
21일 파키스탄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떨어지자 무크타란 마이(39)의 가슴은 무너져내렸다. 여성의 존엄성과 인권을 위해 9년간이나 힘겹게 벌여온 법정투쟁의 의미도 함께 기각되는 순간이었다. 파키스탄 대법원은 마이에 대한 집단 성폭행 혐의자 6명 중 1명에게만 유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하고 나머지 5명의 석방을 명령했다고 현지 일간 <더 돈>(새벽)이 보도했다. 마이의 끔찍했던 악몽은 2002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30살이던 마이는 12살짜리 남동생이 펀자브 지방 유력 가문의 여성과 간통했다는 혐의로 그 가문의 씨족회의에서 ‘명예 보복’의 대상이 됐다. 마이는 얼마 뒤 건장한 남성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성 규율이 유난히 보수적이고 엄격한 이슬람 원리주의 관례대로라면 성폭행을 당한 마이는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죄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 그러나 마이는 자살 대신 법정투쟁을 결심했고, 14명의 남자를 고소했다. 파키스탄에서 여성이 성폭행 피해를 알리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모험이었다. 마이 사건은 전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고, 마이는 ‘파키스탄 여성 인권’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지방법원은 피고 6명에게 사형을, 나머지 8명은 무죄를 판결했다. 마이는 즉각 항소했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2005년 3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오히려 1심 판결을 뒤집고 6명 중 5명을 석방했다. 나머지 한 명도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다시 지루한 상고심이 시작됐다. 그리고 6년, 대법원도 같은 이유로 마이의 상고를 기각하고 항소심 판결을 확정한 것이다. 사건 당시 글을 읽을 줄도 몰랐던 마이는 그동안 나라 안팎의 인권단체와 여성계의 지원에 힘입어 여학교를 세우고 인권운동가로 변신했다. 2005년 미국의 여성잡지 <글래머>가 선정하는 ‘올해의 여성’으로 뽑혔고, 2007년엔 유럽연합(EU) 인권상인 남북위원회상을 받았다. 2009년엔 결혼해 행복한 가정도 꾸렸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 판결로 당장 ‘보복 살해’ 등 생명의 위협에 놓이게 됐다. 마이는 22일 영국 <인디펜던트> 인터뷰에서 “정말 실망스럽다.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을 지지할 거라면 왜 지난 5년 동안 나를 욕보였나?”라며 극도의 불신을 표시했다. 그는 “가해자들이 우리 마을을 찾아와 가족과 나를 위협했지만, 난 내 마을에서 계속 살겠다”며 “만일 내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대법원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 워치’와 ‘파키스탄 전국여성지위위원회’ 등 10여개의 인권단체들은 22일 공동성명에서 “이번 판결은 여성 인권을 위한 투쟁과 사법부 독립의 대의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큰 충격과 우려”를 표시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파키스탄의 대다수 보통사람은 마이를 존경하지만, 일부 유력 토호들과 여성의 순종을 중시하는 세력들은 마이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
- 이전글영국 철도 민영화, 왜 실패했을까 11.04.22
- 다음글‘사우디 정변’은 어렵다 11.03.2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