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이 하고 있는 꼴을 보면 ‘참 저 나라도 답 안 나오는 나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국가의 핵심은 의사결정 구조다. 어떤 국가의 시스템이 우수한가 혹은 그렇지 못한가는 결국 최적화된 의사결정구조를 갖추었는가의 여부로 판별된다. 지금 일본의 의사결정 시스템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일본은 선진국 중에 유일하게 근대시민혁명을 거치지 않은 나라다. 아직도 봉건시스템이 상당부분 작동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얼마전 일본의 4대세습 의원이 북한의 3대세습을 비판했다는 이야기도 있더라는 거다. 일본은 총리도 4대연속으로 세습되었다. 아베신조부터 후쿠다, 아소다로, 하토야마까지 모두 부친이나 조부, 외조부가 총리를 지냈던 집안 출신이다. 이번에 간 나오토 총리가 나와서 겨우 세습을 끊었다. 21세기에 세습이라니, 이거 쪽 팔리는 거다.
간 총리가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도쿄전력에 화를 냈다는 보도다. 총리가 보고를 받지 못했다면 그건 총리 잘못이다. 사태를 장악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제대로 보고받을 생각 자체가 없더라는 거다. 도쿄전력이 제발로 찾아와서 보고하는 성의를 보여주면 나야 고맙지 하는 식이다.
더 문제는 일본국민들마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거다. ‘원전? 그건 후쿠시마의 문제이지’ 하는 식이다. 한국인들이 오히려 더 신경을 쓰고 호들갑을 떠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카터 대통령 재임 중에 드리마일 섬에서 원전이 녹았는데, 카터는 즉시 전문가를 파견하여 전권을 위임하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중앙에서 독재관을 파견한 것이다. 일본은 여전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현장책임자가 누구인지도 불명확하다. 도쿄전력 사장이 있다지만 잘 나타나지도 않고 그 영감에게 실권과 능력이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당연히 총리가 나서야 하는데 ‘그건 도쿄전력의 사유재산인데? 총리인 내가 어떻게?’ 하는 식이다. 이거 국가 맞나?
국가는 안보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고, 인명과 안전에 관한 문제는 사유재산 여부를 넘어 국가가 개입하는게 당연하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 전쟁통에는 사유재산도 필요하면 징발하는 거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쓰나미로 떠밀려온 자동차가 처박혀 있는데 그게 사유재산이라 치우지 못해서 이재민 대피소로 쓰지 못한다는 보도도 있다. 이건 상식이하다.
일본은 쓰나미의 위력을 진작에 알고 있었으며, 쓰나미가 여기까지 온다고 곳곳에 표지판을 세워놓고도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 문제는 해당지역에서 알아서 할 문제이며 중앙에서 개입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그들은 봉건시스템에 익숙해 있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의 왕이나 대통령과 같은 실권자가 있었던 역사가 없다. 2차대전 전후로 잠시 왕이 실권을 가진것처럼 포장했지만 겉보기가 그러할 뿐 내막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실세가 배후에서 다 조정했다.
그들은 유럽의 제국주의 침략을 보고 이를 흉내내어 막부를 타도하고 왕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척 했지만, 실제로는 봉건시대의 관습대로 행동한 것이다. 그들이 히로히또를 섬기며 우상화 한 것은 그때만 해도 크게 추앙을 받았던 영국왕을 보고 거기에 걸맞는 체면을 세우려면, 일본왕도 좀 있어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럴듯하게 연출했을 뿐인 거다.
그때만 해도 러시아왕, 독일왕 등이 목에 힘을 주던 시대라 유럽의 제국주의에 일본의 제국주의로 맞서려면 왕실 대 왕실로 격을 맞추어야 하고 그래서 히로히또 씨에게 왕홀을 쥐여봤던 뿐이었던 거다.
일본은 심지어 독도문제도 그렇다. 한국이 항의하면 좀 안다는 지식인들도 ‘아 일본에는 원래 그런 애들 있어. 그게 뭐 대수라고 신경을 쓰시나. 세상이 다 그런 거지.’ 하는 식으로 나온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가부간에 확실하게 결정을 지을 생각은 없고 눈치보다가 얼렁뚱땅 눙치고 넘어갈 생각이나 하고 있다.
일본이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것도 이런 봉건구조와 관련이 있다. 도무지 의사결정을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약자를 때려주는건 쉽다. 그냥 때리면 된다. 강자에게 맞서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의사결정을 하기가 어렵다.
전쟁을 해도 그렇다. 여러 제후들이 들판에 모여 회전을 벌이는데 실제로는 전투가 아니라 배후에서의 외교협상으로 승패가 결정된다. 양쪽 진영이 서로 자기편에게 우세하게 협상이 이뤄졌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양다리를 걸친 집단이 하나 둘이 아니므로 일단 붙어봐야 아는 것이다.
전투가 벌어지면 누가 어느편에 붙었는지 대략 판가름이 나고 한번 대세가 결정되면 중간에서 눈치보던 자들이 일제히 약자쪽을 들이친다. 눈치보며 머뭇거린 죄를 추궁당할까봐 전장에 제일 늦게 나타난 넘이 제일 사납게 몰아치는 것이다.
2차대전도 그렇다. 전쟁을 시작하기는 쉬웠다. 그런데 끝내지를 못한다. 패전이 확실해 졌는데도 아무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을 끈다. 전쟁을 도발할 때는 밑에 있는 젊은 장교들이 총대를 매고 나서면 위에 있는 늙은 장군들이 마지못해 추인을 하는 모양새로 시작을 했다. 전쟁을 끝낼 때는? 밑에서 떠들던 젊은이들은 입 다물고 있고, 위의 늙은이들 역시 밑에 애들 등이나 쿡쿡 찌르면서 입 다물고 있다.
그들이 강자에게 약한 이유는? 확실한 책임자가 없는 봉건시스템이라 의사결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약자에게 강한 이유는? 그건 또 의사결정이 쉽기 때문이다. 튀는 넘 하나가 먼저 나서면 우르르 따라가면 된다. 전쟁을 도발한 이유는? 의사결정이 쉽기 때문이다.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의사결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독도를 도발하는 이유는? 일본에는 꼭 그런 인간들이 몇 있기 때문이다. 독도 도발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꼭 있는 그런 인간들 말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야꾸자가 설치는 이유는? 그거 말리기 쉽지 않아서다.
일본은 도무지 의사결정을 못한다.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그러나 사고치는 방향으로는 결정을 잘 한다. 일본 어딘가에는 꼭 사고뭉치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들이 총대를 매고 나서면 그걸 아무도 말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빌어먹을 실용주의 때문이다. 미국도 비슷한 점이 있는데 요즘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기복신앙 기독교도 원래 미국 시골에서 유행하던 것이다.
유럽처럼 합리주의가 발달한 나라에는 이런 잘못된 것이 있으면 어떻게든 결말을 짓는다. 지식인들이 먼저 나서고 대중들이 호응해서 어떻게든 잘못을 바로잡고야 만다. 그러지 않고 대충 넘어가려다가는 15억 서구세계 전체에 왕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에이레 등은 한동안 유럽의 왕따였다. 일본은? 원래부터 아시아의 왕따였으므로 문제없다.
미국에는 모르몬교도 설치고 있고 총기소지도 허용되는 등 유럽과 가는 길이 다르다. 미국은 별 희한한 인간들이 사이비짓을 벌이며 요소요소에 짱박혀 있기 때문에 토론하고 논쟁해서 결말을 짓기가 불가능하다. 그렇다 해서 유럽이 미국을 왕따시키는 것도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원래 미국은 유럽의 왕따들이 골내고 도망쳐서 건설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호주나 남아공 백인들도 인종주의로 인하여 한때 유럽세계의 왕따였고. 이스라엘도 비슷한 점이 있고. 섬으로 고립되거나 지리적으로 격리된 집단에는 원래 왕따기질이 있다.
아닌 것은 아니다 하고 확실히 마무리 짓고 넘어가는 것이 합리주의다. 대충 눈치보며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 실용주의다. 그런 일본도 한때 합리주의가 힘을 쓰던 때가 있었다. 막부의 권력이 왕실로 넘어간 것은 퇴계성리학이 전해져서 유교합리주의가 전파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약은 일본인들은 패전의 책임을 모두 유교탓으로 돌리고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며 실용주의로 넘어가서 그들의 소설은 모두 허무주의로 가득차 있고, 지식인의 글에는 냉소주의가 넘쳐나며, 드라마의 남녀주인공들은 서로 등 돌리고 말을 하게 되었다.
한국 드라마라면 모순과 갈등을 그냥 드러낸다. 고부간에 아주 멱살잡고 싸운다. 일본인들은? 얼굴을 마주치지도 않고 등 뒤로, 어깨너머로 조곤조곤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사람은 멀리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문제를 정면으로 드러내지도 못하고 확실하게 해결짓지도 못한다.
패전이후 일본인들은 있었던 그나마 약간의 합리주의를 버렸다. 그들은 실용주의로 도피했으며 그 남아있는 약간의 합리주의자들은 이시하라 도쿄시장과 같은 극우괴물로 변하여 이상주의를 버리고 허무주의에 빠져 나약해진 전후 일본인들을 질타하며 목에 힘을 주고 있다.
그래서 일본의 지식인들은 더욱 더 한국의 유교를 탓하고 합리주의를 탓하며 ‘이시하라 같은 괴물? 이게 다 한국 때문이야’ 하고 일본인 특유의 냉소와 허무로 도피하고 있다. 잘못된게 있어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누군가 바른 말을 해도 ‘원래 일본에는 저런 애들도 꼭 있지’ 하는 식이다.
유교 합리주의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집안에는 어른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책임지는 리더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러나 일본의 전통 사상인 화(和) 사상은 집안에 어른이 버티고 있으면 골치가 아프므로 어른은 상징적 존재로 만들어 물먹여 버리고,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야 한다는 아이디어다.
실제로 일본 드라마에는 젊은이가 노인을 맹렬하게 꾸짖어 질타하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고 한다. 노인은 사무라이에게 목이 잘릴까봐 전전긍긍하는 농부처럼 기가 팍 죽어서 자라목이 되어 있다고 한다.
아시아가 보수화 된 책임의 상당은 아시아에서 서구의 문물을 가장 앞서 받아들인 일본에 있다. 일본이 저러고 나자빠져 있으니 한국도 암암리에 물이 들어서 조갑제, 이문열류가 설치고 있고 명바기 같은 추물이 함부로 들이대곤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나 중국이 잘해주는 것도 아니고.
한국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북, 중, 러, 미, 일, 대만, 싱가포르 중에 한국이 배울 나라는 단 하나도 없다. 힘들어도 우리가 앞장서서 길을 열어가는 수 밖에 없다. 실용주의를 물리쳐야 한다. 힘들어도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마무리지을 것은 마무리짓고 넘어가야 한다. 독재잔당은 확실히 청소하고 넘어가야 한다. 프랑스인들과 독일인들은 이차대전 문제를 확실히 결말 지었다.
지금 독일에 나치를 찬양하는 자는 없다. 일본은? 전범을 숭배하고 있다. 한국은? 이승만과 박정희가 아직도 출몰하고 있다. 이거 해결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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