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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경이 거리에서 맨발로 노래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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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이엘
댓글 0건 조회 1,807회 작성일 11-06-07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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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daybox_top.gif [195호] 2011년 06월 08일 (수) 10:33:13 김은지 장일호 newsdaybox_dn.gif

‘맨발의 디바’라는 수식어는 이제 응당 가수 박혜경씨의 것이다. 10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하이힐이 바닥에 곱게 벗어졌다. 박씨는 뒤쪽에 자리한 사람들까지 잘 보이도록 파란색 플라스틱 이동의자 두 개에 각각 한 발씩 딛고 올라섰다. 대중 앞에서 신발을 벗고 노래하기는 데뷔 이래 처음이다. 데뷔 14년차 가수가 서기에 무대는 옹색했고, 음향은 형편없었다. 그러나 박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6월7일 서울 청계광장 근처 파이낸셜센터 앞 계단과 인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반값 등록금 실현을 요구하는 대학생 500여명이 관객이었기 때문이다. “저는 여러분에게 즐거움을 주고 사랑받는 한낱 대중가수일 뿐이에요. 그럼에도 여러분들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싶어서 이 자리에 왔어요. 여러분이 항상 옳고 맞습니다. 힘내세요.” 


   
블로거 미디어몽구가 찍은 열창하는 가수 박혜경씨
‘레몬트리’ ‘안녕’ ‘주문을 걸어’. 그의 히트곡 세 곡이 연달아 이어졌다. 대학생과 시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특히 ‘안녕’의 노래가사는 박씨의 말처럼 ‘어쩌다보니’ 대학생들을 위한 맞춤곡이 됐다. “외로운 날들이여 모두 다 안녕/내 마음속에 눈물들도 이제는 안녕” 반값 등록금 집회를 이어가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선배부대’ 중 한 사람인 박씨의 응원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교통정리를 하고 있던 경찰들마저도 들썩이게 하는 노래 소리였다.

애초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문화제를 열려고 했던 청계광장은 철저히 봉쇄됐지만, 옆으로 물러앉은 길바닥은 훌륭한 ‘식당’ 역할도 했다. 경희대 민주동문회는 십시일반 돈을 모아 아예 ‘카트’채로 음료수와 간식을 싣고 왔고, “학생들이 닭이랑 피자만 먹는 게 안쓰러웠던” 민주노동 여성연맹 조합원들은 아예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청소로 다져진 거친 손은 막 지은 뜨거운 밥을 둥글게 뭉치는데도 끄떡없었다. 척, 척 양 손을 바쁘게 오가는 밥알들은 김 가루와 깨까지 더해져 고소한 주먹밥이 되고 있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찍은 가수 박혜경씨의 맨발
조합원은 6월7일 밤부터 최저임금 인상을 위해 동화면세점 앞에서 노숙농성에 돌입한다. 최저임금 인상도 중요하지만, 등록금 문제로 나와 싸우는 학생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이춘배 위원장(57)에게도 대학생 딸과 아들이 있다. 한 학기 500만 원에 육박하는 등록금을 한 번에 내줄 수 없었던 엄마는 등록금을 세 차례로 쪼개 분납했다. 최저임금을 겨우 받고 있는 청소노동자인 엄마에게는 매달 분납해야 하는 100만 원 가까운 돈도 부담스러웠다. 아들은 군대로 보냈다. "여기 나와 있는 학생들이 다 내 자식같죠. 이게 학생들만의 일이 아니거든요. 애들 투쟁하는 거 보면서 마음이 뭉클했어요. 엄마 아빠가 해야 할 일을 여기 나온 효자, 효녀들이 하고 있잖아요."

이러한 광경이 낯선 이들도 있었다. 구호는 어색했고 전경은 무서웠다. 촛불집회도 한 번 나와 본 적 없었던 20대 초반의 어린 커플은 마냥 어리둥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리번거리며 열심히 자리를 지켰다. 김가람(21) 이승환(20) 커플은 순전히 '반값 등록금'이라는 말에 마음이 동해 일단 나와 봤다. 두 사람의 배후세력은 '인터넷'이었다. 대학에서 각각 귀금속 디자인과 사회체육을 전공하고 있는 이들의 등록금은 한 해 천만 원이 넘는다. 재료비도 만만찮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부모님께 미안해 최저임금 4320원도 채 되지 않는 돈을 받으면서 빵집으로 커피숍으로 ‘알바’를 뛰어다녔지만, 등록금에 보태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외국인의 눈에도 마냥 생경한 풍경이었다. 카를로스(25·스페인)씨는 서울지하철 1호선 종각역에서부터 청계광장까지 걸어오면서 경찰버스를 35대까지 세다가 그만뒀다. 이 날 청계광장에 배치된 경찰 병력은 2700여 명으로 알려졌다. 전경들이 타고 온 버스는 광장을 따라 송곳하나 꼽을 틈 없이 빽빽이 주차되어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카를로스는 "인크레이블레(믿을 수 없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인천대에서 토목과 박사 학위 중인 그는 한국 생활 4개월차다. "이렇게 많은 경찰은 살면서 처음 봤다. 평화롭고 소음도 별로 나지 않는 시위를 왜 막는지 이해할 수 없다."

   
경찰은 행사 전부터 청계광장을 봉쇄했다
정장을 갖춰 입은 50대 아버지는 절박했다. 문화제를 마치고 밤 10시경 경찰과 대치하며 행진을 시도하던 대학생들을 그는 길 건너편에서 마냥 지켜보고 있었다. 퇴근 길이었다.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에게도 여대에 다니는 2학년 딸이 있고, 얼마 전 군 제대한 아들은 가을학기에 복학 할 예정이다. “이건 다른 데모하고 다르잖아요. 끝까지 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당장 가을학기부터 등록금이 좀 내리면 싶어요. 지금 비록 내가 아무 힘도 보탤 수 없지만…. 이 시간에 왜 퇴근하겠어요. 애들 등록금은 생각만해도 가슴이 답답해요.”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시위는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6월7일로 어느덧 열흘 째. 고려대․서강대․숙명여대․이화여대는 6월10일 동맹휴업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제 더는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 ‘촛불’은 6월8일 저녁에도 타오를 예정이다.

 

출처: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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