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미래행 급행렬차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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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편
36
누군가 김광우가 혼자 있는 사무실나들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였다.
들어오라는 응답을 한 다음에도 한참 있다가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뜻밖에도 백발이 성성한 로인이였다.
로인이 《안녕하십니까? 부국장어른이신가요?》 하고 조심스러우면서도 결코 주접을 모르는 당당한 기품이 느껴지는 행동을 보일 때 그리고 김광우자신이 존대의 표시로 일어나 벽가의 쏘파를 권할 때 그는 이상한 감정을 체험했다.
그것은 그자신의 속에 그가 아닌 또 누군가가 있으면서 불안의 조짐을 귀띔하는듯 한 착각이기도 했다.
로인의 출현은 김광우를 아득히 먼 과거에로 한순간 이끌어갔는데 사실 인간의 기억이란 놀라운것이여서 그 짧은 순간에도 기나긴 한생에 겪은 일들을 다 소급해볼수도 있는것이였다.
한데 로인은 자기 인생의 어느 한 구간에서 만났던적이 있는것 같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전혀 생면부지의 인간같기도 했다.
로인이 자기가 누구라는것을 소개하자 김광우는 그만에야 눈앞이 아찔해졌다. 바로 아버지네 사단 정찰과장이였던 로병이 아닌가! 그러니 며칠전에 이 방에 찾아왔던 바로 그 건설사업소 지배인의 아버지였다.
김광우는 여기서 또 아득한 과거로 되여버린 그때를 돌아보았다.
사단장을 하던 아버지가 33살이라는 너무도 이른 나이에 뜻밖의 일로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는 굳이 부대군인사택마을을 뜨려고 하지 않았다.
고향에서 오라고 했고 부대에 있는 아버지의 전우들도 마음의 상처를 잊자면 그렇게 하는것이 좋겠다는 권고를 했지만 어머니는 남편의 산소가 있으며 남편의 온기가 어디에나 슴배여있는 그 땅을 뜰수가 없었다.
하여 거기서 살며 부대병원에서 의사로 일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날이 돌아오면 광우도 집에 내려가군 했는데 그런 때면 부대에서 아버지의 전우들도 모여왔다. 그들중에는 아버지와 함께 전쟁시기 락동강계선에까지 나갔다왔다는 그 정찰과장도 있었다. 아버지를 못 잊어하던 아버지의 전우였다.
그렇다. 아버지의 전우였다. 이제 이 로인이 무슨 말을 할것인가? 로병의 아들되는 광우의 소꿉동무가 아들의 대학추천문제를 들고 찾아왔던것이 며칠전의 일이 아닌가.
두려웠다. 조국을 위해 전쟁에 나가 피를 바친 로병이 《우린 이 제도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웠소. 그런데 가문의 대를 이을 손자녀석 하나 대학공부시킬 자격이 없단 말이요? 어디 말해보오.》 하면 이 광우는 뭐라고 대답해야 한단 말인가?
《용서하시오, 부국장동무!》 하고 로인이 말했다.
김광우는 한순간 어정쩡해졌다.
그는 고개를 들어 로인의 거무죽죽하고 로년의 검버섯이 박힌 강마른 얼굴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 아들놈이 푼수없이 제 애녀석문제를 들고 여기에 찾아왔더랬다는걸 아오. 그래서 내 욕을 했소. 이놈아, 너도 나라일을 한다는게 지각이 있는 행동을 했느냐? 하고 말이요.》
로인의 얼굴에는 고뇌의 빛이 진하게 어려있었다.
《부국장동무는 아마 난처했을거요. 난 부국장동무의 그때의 그 심정을 리해할수 있소. 하지만 난 가슴이 아프오. 난 우리 세대가 나라를 위해 전쟁판에 나가 피를 흘렸다고 무슨 재세를 하자는것이 아니요. 그저 가슴이 아파서 그러는거요.
어쩌면 사람들이 그럴수가 있소? 나라일이야 어떻게 되든 알바가 아니라는 식으로 배운 지식과 가지고있는 수단을 저 하나의 살도리를 위해 깡그리 바치며 분주히 뛰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요.
우리 나라가 어디에서나 기적이 솟는 나라가 되였다고 만세는 부르면서 거기에 자기가 바친것은 하나도 없는 그런 사람들을 뭐라고 해야겠소.
부국장동무, 그런 인간에게는 인정을 베풀지 마오. 그렇게 하는것이 좋은 사람이 아니요. 부국장동무가 그래도 내 손자녀석이 걱정되여 바쁜 시간을 내여 내려와 좋은 말을 해주고 갔다는것도 아오. 난 그게 고마와서 인사를 하자고 찾아온게 아니요. 이 령감이 오늘 여기에 찾아온것은 내 아들놈대신에 부국장동무앞에서 사죄를 하기 위해서요. 내 아들놈을 용서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소. 그저 사죄를 하오!》
광우는 무엇때문에 로인이 쉽지 않은 걸음을 했는가에 대하여 알게 되자 가슴을 예리한 쇠꼬치로 콱콱 찔러대는것만 같았다.
《고맙습니다, 정찰과장동지!》
광우는 자기도 모르게 로병의 옛 군사직무를 부른것이였다.
그는 이 로인앞에서 아무것도 에두를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말하기가 쉬워졌다. 그는 군인사택마을에서 함께 자란 동무앞에서 자기의 진심을 말하기 괴로왔던 그때의 심정에 대하여, 자기는 그때 언땅에 엎드려 동상을 입으면서도 지켜야 했던 최전연초소에서의 그 가혹한 밤을 생각했으며 지금도 물러설수 없는 《마지막계선》에 대하여 생각했노라고 말했다.
로병은 떠나갈 때 자기의 아들같은 광우에게 군인시절에 몸에 밴 경례를 붙이였다.
《고맙소! 고맙소!》
그것은 로병세대가, 그들이 피로써 지킨 조국이 그에게 하는 인사였다.
로병을 배웅하고 사무실로 올라오니 전학선이 전화를 걸어왔다.
《로병아바이가 동무한테 들렸댔소?》
전학선의 목소리는 밝지 못했다.
《바래주고 올라오는 참입니다. 제가 이제 그 방에 건너가겠습니다.》
두사람은 정작 마주앉자 서로 말이 없었다.
하여 방안에는 한동안 무거운 정적만이 깃들었다.
이윽해서야 광우는 로인과 만났던 이야기를 했다.
전학선은 다 듣고나서도 인차 말이 없다가 긴 한숨을 내그었다.
《로병동지가 나한테도 들렸댔소.》
《…》
《나한테도 못난 아들대신에 사죄를 한다고 그러더구만. 하지만 로인이 돌아가면서 마음이야 편했겠소?》
《…》
《동무두 참!》 전학선은 몹시 괴로운듯 머리를 저었다. 인연이 없었던 사람도 아닌 그가 일부러 찾아까지 와서 손을 내미는데 좀 도와주면 안되오 하는 뜻인지 아니면 먼길을 찾아온 로병아바이가 그렇게 나오더라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야 할수 있지 않았겠소 하는 노여움의 소리인지 알수 없는 말이였다.
광우는 괴로왔다. 눈앞에는 군인경례를 붙이며 《고맙소! 고맙소!》하던 로인의 모습만 떠올랐다. 그것은 로인의 진심이였다. 그런데 마음은 괴로운것이였다.
전학선이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광우를 언짢게 하던 첫번째의 경우와 전혀 다른 의미였다.
《아니, 아니.》
마치 김광우의 속을 빤드름히 들여다보는듯 전학선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동무를 노엽게 생각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요. 동무는 잘못한게 없소. 그래야 하오. 개인적의리를 지키자고 국가의 리익을 희생시킬수야 없지 않소. 그런데 마음은 편치 않단 말이요. 그래서 인간이겠지. 그러니 달리 생각지 마오.》
《고맙습니다.》 광우는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이 입에서 나갔다. 그는 부상을 리해한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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