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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전역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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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9,113회 작성일 22-03-1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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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5 회

북방의 려명

김 성 금

3


10월이 절반쯤 흐르고나니 연사땅에 때아닌 봄이 왔다. 무연하기만 하던 페허우에 새싹이 움트고 꽃이 피여나듯 체모를 갖춘 꽃동네들이 여기저기 생겨나기 시작했다. 살림집들에 연분홍색이 나는 외장재를 바르니 더욱 그렇게 보였다. 새로 둘러지는 울타리들도 아롱다롱 아담해보였다.

한주일전만 해도 만장공사를 끝낸 5층살림집 꼭대기에서 눈물범벅이 된 건설자들이 붉은기를 휘날리며 만세를 불렀었다.

이제는 먼발치에서 꽃동네를 바라보는 현지주민들의 얼굴에서 호기심과 부러움을 력력히 읽을수 있었다.

겉은 각시처럼 말쑥한데 안은 어떨가?

사람들은 흙먼지가 가라앉을새 없이 분주한 도로를 무심히 바라보지 않았다. 큼직한 판자로 든든하게 짠 짐함들이 련속 실려오는 모양이 누구의 눈엔들 안 보였겠는가. 환희와 긍지가 공기처럼 북방 곳곳에 흘렀다.

헌데 우리 《류경》조성원들의 얼굴에만은 근심과 우려가 점점 더 짙어갔다.

팔소지구에서 고급중학교복구가 제대로 안되여 사령부적인 물망에 오르고있었던것이다. 체육관건설은 아직 기초단계에서 전진을 못하고있었다.

《2실장동무, 도대체 어찌된 감투끈이요? 설계합의를 보긴 보았는가 말이요?》

하루는 우리 세명의 실장들을 모여놓은 자리에서 부소장이 열을 올렸다.

그러자 김영일실장의 용해보이던 인상이 당장 수수떡처럼 변했다. 안타까움이 도를 넘어 피부를 툭툭 째며 튀여나올 기세였다.

《글쎄 경성군돌격대가 도면을 접수하지 못하겠다니 낸들 어쩝니까?》

《도면도 인계하지 못했단 말이요? 지금 제정신이요?》

영일실장의 예기치 못했던 변명을 듣고는 나도 참을수 없었다.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내게서까지 이런 말을 듣자 영일실장의 벌개졌던 얼굴빛은 아예 거멓게 죽어버렸다.

김영일실장이 수정완성된 새 설계안을 들고 현장에 나와보니 경성군돌격대는 전번부터 해오던대로 종전규모의 세로 12m에 가로 30m짜리 기초구뎅이를 다 파놓은 상태였다.

《이게 뭡니까? 설계는 19. 5m에 36m짜리루 수정완성했는데… 더 파야겠습니다.》

《아니, 한쪽에선 벌써 기초타입까지 하고있는데 이제와서 그러면 어쩝니까.》

경성군동무들은 이제라도 설계규모를 더 줄여달라고 막무가내로 사정했다.

《아무래두 목조트라스를 올려야 할텐데 19. 5m루 어떻게 만든다구 그러나 말입니다.》

시공참모를 하는 송연이 외삼촌까지 나서서 한마디 보탰다.

김영일실장은 그러는 경성군동무들을 상대로 새 수정안을 합의보려고 했다.

《그건 걱정마십시오. 10m짜리 두대치기루 하면 되겠다구 토론 됐습니다.》

《10m짜리라구요? 그렇게 긴 원목은 또 어데 있다구 그럽니까. 우리에겐 기껏해서 6m짜리나 있단 말입니다.》

지붕트라스를 두길이이상 이어대면 하중에 대한 견딜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그러니 이들이 10m짜리 원목을 구할수 없다고 뻗대는것은 결국 본래의 규모대로 하자는 주장이나 다름없었다.

영일실장은 화를 눅잦히려고 축조중인 기초구뎅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이게 무엇인가. 그의 눈앞에 보이는것은 일체식콩크리트기초가 아니였다. 이들은 이것을 막돌련적기초라고 변명했다.

《안되겠습니다. 몽땅 까내야겠습니다. 우리가 짓는것은 체육관입니다. 간벽이 많은 건물과 다르단 말입니다. 일체식으로 단단히 다지지 않으면 천년책임, 만년보증할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나 공사기일을 당겨보려고 자기들 식으로 기초공사를 진행하던 돌격대원들은 영일실장이 원칙을 따지고들자 은근히 맥풀려 했다.

《젠장! 펜대 한번 놀리면 그만이겠는데…》

시공참모인 송연이 외삼촌도 화가 나는지 로골적으로 두덜댔다.

영일실장은 가슴이 아팠다. 그는 여직껏 숱한 현장들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무시당한적은 있었던것 같지 않았다.

이런 옥맺힌 마음때문이였던지 그후로 학교건설장엔 영일실장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이렇게 하루 또 하루가 흘러갔다.

그사이 경성군돌격대는 종전규모의 협소한 기초공사를 계속 내밀었다. 하지만 설계에 반영된 수치와 어긋났기때문에 결국은 전선사령부로부터 엄중히 지적되게 되였다.

《감히 설계를 무시하다니. 명령을 흥정하자는것과 다를바 없지 않은가.》

《설계대루 하면 지붕처리가 걸리겠기에…》

《구차한 조건타발이나 하라구 전투대오가 무어진게 아니요.》

10m짜리 원목을 구하기 어렵다고 목조트라스제작도 뒤전에 밀어놓고있던 경성군돌격대는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지경이 되였다. 결국 이러루한 사연으로 체육관건설은 중단되게 되였다. 나중엔 종전규모의 복구마저도 후날 자체의 력량으로 천천히 하는게 어떤가고 팔소리당과 토론해보자는 의견까지 나왔다고 한다.

영일실장의 고백을 들은 우리는 더욱 격해졌다.

《어쩌면 그럴수 있소. 지금이 우리의 개별적인 흥에 따라 일감을 조절할 때요?! 최고사령관동지의 작전적의도를 관철하는 길에서 우유부단하다니. 복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 땅에 사랑의 기적을 창조하러 왔지 쬐쬐한 복구나 하러 온게 아니라구 왜 납득시키지 못했소. 그 동무들이라구 정녕 리해 못하겠소. 이 땅의 전변과 기적이 우리 손에 달렸다는걸 말이요. 그래 북방땅 곳곳에서 로동당만세소리가 터져나올 때 팔소리아이들만은 뒤전에서 구경이나 하게 하려는가 말이요.》

나는 김영일실장의 우유부단한 행동을 비수같이 찔러댔다.

《전후사연이 어찌되였든 우리에게 딴길은 없소. 무조건 기한내에 건설을 끝내야 하오.》

부끄럽지만 우리는 현실태를 그대로 전선사령부에 보고하기로 합의했다.

그러지 않아도 자책감에 모대기던 김영일실장은 더욱 기가 죽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였다. 그리고는 침통한 어조로 공사가 지연된 책임은 전적으로 자기가 지겠노라고 하였다.

《이 마당에서 책임가르기나 해선 뭘하겠소. 어떻게 하나 공사를 보장할 방도를 짜내야지.》

일단 전선사령부에 사태를 보고한 우리는 다음날부터 팔소리현장으로 몽땅 침식을 옮겼다. 거기서 6m짜리 원목밖에 없는 현장조건에 맞게 또다시 설계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북방입니다. 겨울철에 폭설이 내리면 지붕이 받는 하중도 엄청나게 커질겁니다.》

《그러니 6m짜리 세길이룬 안전담보가 어렵다는거겠소?》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하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루 만들구 무에서 유를 창조하라구 우리 기술자들이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지혜를 짜내봅시다.》

미타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지만 나도 한광춘실장도 배짱내대고 동무들에게 힘을 주었다.

또다시 3일간의 전투 또 전투, 현장이라는 불편한 조건이였지만 우리는 새로운 목조트라스구조를 탐구해보고 계산해보았다. 이 사업에는 전선사령부 설계분과력량까지 합세되였다. 그리하여 여러가지 안들가운데서 드디여 그중 합리적인 구조형식이 선정되였다.

당의 배려로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로 떠난 마을아이들이 돌아오기전으로 기초공사라도 끝내자고 모두가 달라붙었다.

전화위복이란 어떤것인지 팔소리아이들도 직접 보게 하자. 현대적인 체육관을 번듯하게 지어주어 후날 이 학교에서도 세계상공에 공화국기를 휘날리는 체육인재가 나올수 있게 해주자.

이렇게 마음먹고 총돌격전을 벌렸더니 설계력량이니 시공력량이니 하는 장벽이 다 없어졌다. 한삽이라도 더 뜨고 한맞들이라도 더 나르겠다고 모두가 현장에서 아글타글했다.

어느날 나는 영일실장의 부르튼 손에 치료반창고를 발라주려고 막무가내로 그의 덧장갑을 벗겨냈다.

《춘명동무, 그만하오. 나같은 놈은, 나같은 놈은…》

영일실장의 얼굴에선 땀방울과 눈물이 범벅되여 번들거렸다. 헌데 내가 그의 얼굴을 닦아주기도 전에 웬 퍼런 수건이 우리사이에 끼여들었다.

《아니, 시공참모동무가…》

《안됐소. 제 고집만 부리느라 괜히 설계가동무만 욕먹히구…》

《아니요. 천지를 개벽시키는 과정에 무슨 일인들 없겠습니까.》

《내 송연이한테서 다 들었수다. 그 애한테 생일상까지 안겨준분들에게 외삼촌이라는게 인사는 못할망정 망녕되게 굴었으니 실컷 욕해주시우.》

《자, 이거 한전호에 선 사람들끼리 뭘 그럽니까. 그건 그렇구, 헌데 송연일 만났댔습니까?》

심각하게 뉘우치는 시공참모의 입에서 송연이소리가 나오자 나도 은근히 싱숭생숭해졌다.

《예. 자기두 체육관건설을 돕겠다구 아침일찍 왔습디다.》

《그래요?》

착공하여 이틀사이에 갑자기 해결되는 여러 사람들 사이를 두고 기쁘기도 하고 송연이가 왔다는 소식이 반갑기도 하여 건설장을 둘러보던 나는 다시한번 놀라게 되였다. 분명 우리쪽으로 오는듯 한 굉장한 증원력량이 보이기때문이였다.

그러고보니 인민군대의 3개 중대력량이 군가소리높이 기세를 올리며 행진해오고있었다. 여기 형편을 보고받은 전선사령부에서 긴급조치를 취한 모양이였다.

《증원이 온다. 인민군대가 왔으니 이젠 됐어.》

늦게 착공하여 근심이 컸던 우리에게는 인민군대동무들의 대오만 보아도 힘이 되였다.

공사장의 분위기가 즉시로 달라졌다. 군민이 힘을 합쳐 뛰여다니니 팔소리일판이 들썩해졌다.

인민군대의 일본새를 모르는 우리가 아니였지만 그들의 결사적인 자세를 보고는 충격이 컸다. 그들은 적의 공격을 눈앞에 두고 진지를 굴설하는 공병들처럼 삽이며 곡괭이를 도무지 손에서 놓을줄 몰랐다.

팔소고급중학교에서는 밤에도 홰불이 꺼지지 않고 작업이 계속되였다. 어떤 병사들은 불뭉치를 들고 금방 미장해놓은 벽체에 바싹 붙어 선채로 식사를 하였다. 다음공정을 위해 미장해놓은 벽체를 말리우느라 그럴것이다.

그럴수록 우리에겐 시공지도를 실속있게 해야겠다는 자각이 들었다.

상식에 어긋날 정도로 공정을 당기는 조건에서 시공지도를 바로하지 못하면 건설물의 질이 떨어질수 있었기때문이였다.

우리에겐 기일보장도 중요했지만 조국의 미래에 풍요로운 토양을 넘겨주어야 할 의무도 있었다.

콩튀듯 뛰여다니는 숱한 맞들이들속에서 나는 눈에 익은 반짝임을 알아보았다. 진홍색다리우에 반짝이는 진주, 송연이였다.

그러지 않아도 혈육같은 그 애를 매일 보게 되여 은근히 기뻤던 내게는 반갑기 그지없었다.

헌데 송연이의 거동이 심상치 않아보였다. 운동장복판에서 오도가도 못하고있는게 아닌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해진 나는 그 애에게 뛰여갔다. 아니나다를세라 그 애는 눈물이 글썽해있었다.

《어디 아프냐?》

《그런게 아니라 이걸 좀 보세요.》

송연이는 내앞에 자루가 부러진 삽을 내보이였다.

《왜 이렇게 됐니?》

몇십리밖에서부터 둘러메고온 삽이 이렇게 되였으니 아쉬워서 그러는줄 알고 나도 심상히 물었다. 그런데 송연이는 뜻밖의 소리를 하였다.

《사실은 웬 군대아저씨가 좀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주었댔는데… 일 하다가 자루를 끊어먹어 미안하다고 하면서 대신 이 솜장갑을 자루에 매달고오지 않았겠나요.》

《뭐라구?》

송연이는 많은 군인들이 흙탕매닥질을 한채 사방 뛰여다니는 이 마당에서 한번 얼핏 본 그 병사를 도무지 알아볼수 없다면서 안타까와하고있는것이였다.

《글쎄 삽자루가 뭐라구 추위가 닥쳐오는데 장갑을…》

일심단결의 대화원에서 살면서 군민대단결이라는 말을 노래처럼 들어온 나로서도 재해지역에서 직접 목격하게 되는 이런 미풍에는 코마루가 다 찡해졌다.

나는 옥토에 심어놓고 보약을 먹인듯 하루가 다르게 키가 쑥쑥 자라는 체육관건물을 무심히 대할수 없었다. 말그대로 군민의 단합된 힘이 완공의 날을 하루하루 당기고있었다.

공법상으로는 도무지 맞출것 같지 못하던 기일보장방도를 저렇듯 심장으로 찾아준 인민군대가 더없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군인들은 쉰줄이 넘은 대좌도, 나어린 병사도 모두 같은 보폭으로 뛰여다녔다. 조건에 구애되지 않는 결사관철의 그 정신, 그 모습은 만리마의 고삐를 쥐고도 망설이던 우리들을 단단히 정신차리게 해주었다.

결국 그처럼 가망없어보이던 학교체육관이 착공 열이틀동안에 번듯하게 일떠섰다.

이 멋진 자랑거리를 새겨두고싶어 나는 송연이를 찾았다.

《송연아, 이리 오너라.》

나는 송연이와 사진 한장 남기려고 손전화기를 꺼내들었다. 띠모양의 색유리장식과 마크처럼 새겨진 우승컵이 현대적으로 어울려보이는 체육관을 배경으로 우리는 손잡고 다정히 섰다.

이때였다. 치마저고리를 떨쳐입은 《우리 집》 어머니가 불쑥 학교마당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송연이의 손목부터 붙잡아쥐였다.

《송-연아!》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모양이였다.

《아니, 이렇게 일찍 무슨 일입니까?》

《송연이를, 송연이를 데리러 왔수다. 오전 10시까지 읍사무소루 나오라기에… 입사증을 수여한대요.》

《송연이한테요?》

《글쎄, 고걸 그만 못 물어보지 않았겠수. 식구를 몽땅 데리구 나오라는 련락을 받구 뭐 더 물어볼 궁리를 해냈어야 말이지요.》

나는 《우리 집》의 이웃이던 송연이가 돌아간 부모들이며 옛 집 추억에 다시 서글퍼질가봐 은근히 근심스러웠다. 그래서 부소장에게 사연을 설명하고 그들과 함께 자리를 떴다.

우리가 헐레벌떡 회의장소에 당도하자 인민반장이 여간 다행스러워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런 날에까지 늦었니?》

아닌게아니라 회의는 이내 시작되였다. 군당위원장의 보고며 인민위원장의 발언, 눈물어린 주민들의 토론도 있었다. 그들이 겪은것을 모두가 함께 겪었고 그들이 받아안은 사랑 또한 모두가 받아안았기에 회의군중들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허나 솔직히 그 시각 나의 관심은 오로지 송연이에게 가있었다.

다른 식구없이 홀로 남은 이 어린 처녀에게도 정말 살림집리용허가증이 차례질것인지… 이윽고 살림집리용허가증이 수여되기 시작하였다. 주석단에서 세대주이름이 불리워질 때마다 군중들속에서는 연방 탄성이 터졌다.

드디여 한 백번째만에 《우리 집》 어머니의 이름도 주석단에서 불리워졌다.

《예, 여기 왔습니다.》

녀인은 가슴을 두근거리며 주석단쪽으로 나갔다.

송연이곁에 서있던 나는 그 애를 쳐다보았다. 측면밖에 보이지 않는 그 애의 표정이 정확히 어떠했던지 그때 나는 볼수 없었다.

그 애가 내 반대켠으로 고개를 돌려버렸기때문이였다.

《우리 집》 어머니 다음으로 다른 사람의 이름이 불리워졌다.

《송연아!》

나는 걱정이 앞서서 조용히 그 애를 불렀다. 하도 조용히 불러서 그런지 송연이는 내게 응대하지 않았다.

나는 인내성있게 다시한번 그 애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송연이의 떨리는 목소리가 크게 응대했다.

《예!》

처음엔 나도 깜짝 놀랐다. 분명 주석단에서 송연이의 이름을 부른것 같아서였다. 그것도 나처럼 이름만 부른것이 아니라 성을 붙여 또박또박 부르지 않는가.

《진송연!》

착각이 아니였다. 송연이가 눈물을 쏟으며 나가지 않는가.

그 애는 남들과 다름없이 큼직한 살림집리용허가증을 수여받았지만 까딱도 못했다. 오열이 터져나와 몸을 가눌수 없는 모양이였다.

《가족중에 혼자 남은 처녑니다.》

좀 젊어보이는 일군에게서 사연을 들은 로간부가 알만 하다는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런 경우를 예견하여 대기해있던 의료진이 급히 송연이에게로 달려갔다. 하얀 위생복을 입은 녀의사 두명이 량켠에서 송연이를 부축하였다. 하지만 송연이는 그들에게 고개를 저어보이고는 회의장에 모셔진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화쪽으로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입속말이나 다름없이 겨우 들리는 소리로 《고맙습니다.》 하고 웨치고는 무릎을 꿇었다. 큰절을 올리는것이였다.

나는 송연이의 모습을 그 이상 더 지켜볼수 없었다. 내 심장도 이런 격정을 견디여낼것 같지 못해서였다. 조용히 회의장에서 나와 밖으로 나서던 나는 문득 따스하게 내려쪼이는 해빛에 눈이 막 부시였다.

그러다가 얼결에 품안에서 울리는 《우리 집사람》의 선률을 가려듣게 되였다.

나는 가슴을 식힐겸 단추를 끄르고 손전화기를 꺼내들었다. 뜻밖에도 손전화기에서는 딸애의 목소리가 또랑또랑 울렸다.

《아버지, 나 송연이야요.》

그 귀여운 목소리에 내 눈이 스르르 감겨지면서 마음도 저으기 진정되였다.

《오, 송연이구나. 아버지는 드디여 약속을 지켜냈다.》

《북쪽하늘이 밝아졌나요?》

《그래, 래일 아침 창문을 열어보거라.》

×

그로부터 며칠후 평양을 떠난지 60여일만에 우리는 귀로에 올랐다.

연사땅에 넘쳐나던 로동당만세소리가 메아리쳐갈 평양의 려명거리가 북부전역의 용사들을 부르고있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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