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을 부끄러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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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이명박 정부 개각관련 인사청문회 관련하여 우리사회에 그런대로 알려진 칼럼니스트 송호근 교수가 최근 중앙일보에 쓴 글의 일부다.
--중략-- 그럼에도 대중들은 혐의가 있는 것이라면 더 철저히 규명하라고 요구한다. 지난 20일 열렸던 첫 번째 청문회는 ‘시시했다’는 게 일반적 여론이다. 그런 감이 없지는 않으나, 어디까지 파헤쳐야 하는가는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사생활은 자기 고유의 감성, 취향, 성향이 작동하는 영역으로 자신의 존재를 직조하는 제조창이다. ‘존재의 이유’가 생성되는 이 영역의 스토리를 공공 영역으로 끄집어내는 데는 지극히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탈세, 위장전입, 땅투기 등 청문회의 단골메뉴들도 더 깊이 파내려 가면 프라이버시와 맞닿기 때문이다. --중략-- 부도덕의 대명사인 ‘위장전입’에도 부모 봉양, 자녀 교육, 재산 증식 등 다중 변수가 깔려 있다. 누가 봐도 투기꾼임이 명백하다면 거론할 필요도 없지만, ‘피치 못할 속사정’은 가려내는 지혜도 필요하다. --중략-- 사회학자들이 사적 관계로 이뤄진 공동사회의 미덕인 ‘우애’를 어떻게 이익사회에서 개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했던 것은 100년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은 프라이버시에서 건진 소재들을 공공연하게 도마질하고 탐닉하는 관음증에 걸린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아래는 한국내 종교계나 일반 지식인들 중의 유명인들이 자주 언급하는 발언이다.
‘세상의 많은 일이 꼭 옳거나 꼭 틀리거나 하지 않은 것이 그렇지 않은 것 보다 훨씬 많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만 옳고 네 말은 틀리다는 생각을 버리고....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는 아량이 우리 모두에게 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자체로만 놓고보면 그럴싸 할 뿐만 아니라 당연히 옳고 바른 말처럼 들린다.
포용/아량/배려 야말로 진정 사람사는 세상의 근원적 덕목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글 깨나 배웠다는 주류들의 인식이 대부분 이러하니 윈칙과 상식을 바탕으로 사회변화를 이루고자 혼심을 다한 노무현 전대통령은 외롭게 포효하는 단지 한 마리의 고독한 사자일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흔히 배웠다는 것, 소위 ‘지식’이라 함은 앎을 바탕으로 사물을 바르게 보는 행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즉 많이 알고 있는 상태를 뜻하기보다 무엇이 허위이고 거짓이며 무엇이 참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인지능력을 나타내는 단어란 것이다. 쉽게 말해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는 능력이 바로 지식인 셈이다.
가방끈이 길다든지 많이 배워 안다는 것은 진위구분 능력의 필요조건이긴 하나 당연히 충분조건은 되지 않는다. 최근 총리를 지내다 사임한 정운찬 같은 사람이 그 좋은 예다.
이러한 견지에서, 옳다 그러다가 아닌 어떤 주제의 거짓과 진실(=진위)를 가리고자 하는 지적인 행위와, 서로의 판단이나 견해가 더 옳다고 내세우려 하는 공명적 행위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겠다.
어떤 예술가의 작품을 어떤 식으로 읽어야 겠는가 하는 주제의 경우는 후자의 범주에 속한다. 각기 견해가 여러가지 다르더라도 부족하나마 각자 느끼는 점들을 서로가 인정하고 수긍하는 자세가 곧바로 아량이자 배려가 된다.
반면에 책상을 탁치니 앉아있던 학생이 ‘억’ 하며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거나, 혹은 주어가 없는 문장이므로 본인이 주장한 것이 아니다 라는 등의 신문기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겠는가 하는 경우는 전자에 속하는 주제라 보아야 할 것이다.
이를 신문에 발표된 것이므로 그럴 수도 있는 사실로 당연하게 받아 들이는 것은 아량이나 포용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무지이거나 무식 또는 무관심의 소치가 아닐까?
물론 주어진 자료를 취사선택하고 그 진위를 판단 하는 행위는 각 본인들이 가졌거나 길러온 지성적 통찰에 근거될 수 밖에 없으니 바로 이 지점이 항상 논란이 될 수 있는 취약한 부위가 된다.
즉 단순한 겉보기로는 보다 진지한 포용노력 없이 서로의 통찰이 더 낫다고, 또는 서로가 더 잘났다고 내세우는 부끄럽고 유치한 모습으로 비치게 되는 바로 그 장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헛점사이로 언론을 비롯한, 진실을 호도하고자 하는 부패한 집단들이 집요하게 물고 들어오면 대부분 그들의 논조에 빠져들어 자신도 모르게 동의하게 된다.
아니땐 굴뚝에 연기나랴… 뭔가 미심쩍은 일을 한 게 있으니까 그렇겠지…
평소에 멀쩡하던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육백만불을 받아 챙겼다던지 논두렁에 고가의 시계를 던져버렸다던지 하는 한낱 우스개 같은 소리를 그렇고 그런 당연한 진실의 하나로 믿게 되는 현상의 내면구조다.
무엇이 사실인지 판단하기가 혼돈스러울 뿐아니라 진실을 찾고자 하는 자신의 행위가 왠지 유치하고 부끄럽게 여겨져 그냥 지명도 있는 신문이나 또는 평소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 주장하는 의견에 동의하여 안주해 버린다.
이것이 바로 간디 이전의 인도인들의 모습이자 우리 스스로를 포함한 대부분 한국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순수 우리말 배우기를 비롯한 주체성 있는 공부가 게을리된 폐해의 전형이라 하겠다.
이러한 맹점때문에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그냥 평범한 시민이 아닌, 수준있는 통찰력을 부단히 다듬어가는 '깨어있는' 시민의 역량이 필요하다고 누군가가 그렇게나 안타까이 역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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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송호근 교수라는 자는 궤변으로 완전한 결격사유의 인물을 감싸고 도는군요.
지도층 인사가 저렇게 위정자의 도덕성에 대한 논쟁마저 부끄러워하는 세태가 되었으니
정말 문제가 크군요.
진실을 찾고 (천안함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뛰어든 각성한 시민들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합니다. 우리 또한 떳떳하게 내놓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요..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경계인님의 댓글
경계인 작성일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세상인거죠. 기회주의적인 먹물들과 갑싼 은혜와 성공 지상주의를 외치는 한국 대형교회의 부자 목사들이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도덕적 기준의 하향평준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변명이 부끄러울 만큼 가지고 누리고 사는 인간들인데 왠 욕심이 그리 많은지......
제이엘님의 댓글
제이엘 작성일가장 기본적인 원칙과 상식도 지키지 않는것을 당연시 여기며 뻔뻔스럽게 고개들고 당당할수 있는 마음들은 도대체 어디서 나올수 있는지...
무식이님의 댓글의 댓글
무식이 작성일
무식하면 용감하다 !
가 아닐까요.
단테님의 댓글
단테 작성일
송호근이란 견자가 하는 얘기는 뭐 완전 '대놓고 부정부패 옹호'네요.
그런데 가끔 보면,옳고 그른 걸 분명히 해야 하는 사안에도 중립인 척, 그래서 자기는 꽤 이성적인 척 하는 사람들이 있죠. 한쪽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흑백논리라고 매도하며. 그래서 일찍이 단테는 다음과 같이 말했죠.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에게 예약되어 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