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 '친구' 혹은 '위협'? 우리 하기에 달렸다!"
페이지 정보
본문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00827164258§ion=05
[프레시안 books 인터뷰] <중국의 내일을 묻다> 펴낸 문정인 교수
문정인 연세대학교 교수(정치외교학과)가 쓴 <중국의 내일을 묻다>(삼성경제연구소 펴냄)가 화제다. 중국에 관한 책들이 옥석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넘쳐나는 시절, 중국이 어떤 나라이고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큰 그림을 '정확히' 그려주는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생각을 들여다보기 위한 문정인 교수의 전략은 간단했다. 중국의 비전과 국가 정책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거나 혹은 그 비전을 만들어낸 최고 학자들을 찾아가 직접 얘기를 들어 보는 것이었다. 문 교수는 2009년 가을 학기 베이징 대학교 국제관계학원 초빙교수로 있으면서 이 작업을 진행했다. 대담 전에는 인터뷰이들의 책과 논문을 샅샅이 읽었고, 때론 아쉬운 소리까지 해가며 발품을 팔았다.
그러나 <중국의 내일을 묻다>에 드러난 중국인의 속내는 결코 간단치 않다. 대국(大國) 중국이 걸어야할 길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주제만 보더라도 화평굴기론, 대국굴기론, 책임국가론 등이 치열하게 경합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의 노선과 대립하기도 한다. 문 교수가 만난 이들은 속내를 너무나도 솔직하게 털어놓는 동시에 공산당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그런 그들의 태도 자체가 중국을 다시 보게 한다.
책을 구상하게 된 계기, 책의 내용과 못 다한 얘기를 듣기 위해 26일 문정인 교수를 서울 연희동 자택으로 찾아가 만났다. 치열하게 탐구하는 학자이자 전략가답게 문 교수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진행했다.
중국굴기에 대한 백가쟁명
프레시안 : 인터뷰에 응한 이들이 굉장히 솔직하다고 느꼈다.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문정인 : 나는 중국 전문가가 아니지만 중국인들이나 중국 전문가들도 내 책을 읽고 그들(인터뷰이들)의 속엣말이 많이 나왔다고 평가했다. 사전에 내가 그 사람들의 책과 논문을 다 읽고 인터뷰를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학자들은 서구의 문헌을 통해, 서양의 시각으로 중국을 봤다. 그러나 나는 '중국의 시각에서 중국을 본다'(以中國, 觀中國)는 입장에서, 내 얘기보다는 그들의 얘기를 듣고자 했기 때문에 이른바 '잘 나가는 학자'들이 3시간 이상 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복거일 씨의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문학과지성사 펴냄)를 읽고 화가 났었다. 그 책은 중국의 힘이 커짐에 따라, 핀란드가 러시아에 굴종했던 것처럼 한반도도 '핀란드화'(finlandization)될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라고 본다. 그 책의 참고 문헌을 보니 왜 얘기가 그렇게 흐를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단 한 권만 중국학자가 쓴 오래된 책이었고 대부분은 미국, 영국, 일본의 문헌이었다. 외국의 문헌으로 중국을 얘기하는 게 말이 되나.
한국에서는 사회과학논문인용색인(SSCI)을 기준으로 학자를 평가하는데 SSCI에 등재되려면 논문을 영어로 써야 한다. 그렇다 보니 베이징대, 칭화대 등 중국의 명문대에서 수학한 한국의 인재들이 중국을 중국어로 연구한다는 이유로 오히려 배제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중국에 대한 공부를 미국에서 한다? 중국 공부를 영어로 한다? 아니라고 봤다. '이중국 관중국'하자는 생각, 중국을 제대로 알자는 생각이 이 책을 쓴 계기다.
프레시안 : 제목은 '중국의 내일을 묻다'이지만 내용은 '중국의 오늘을 보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문정인 : 지적한 대로 제4부('거대 중국의 미래 구상과 안팎의 도전')를 제외하고 제1~3부는 중국 사람들이 현재의 중국을 어떻게 보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오늘을 알아야 내일을 알 수 있으니까.
내가 원래 제안했던 제목은 책 서문의 제목인 '중국굴기(中國屈起. '중국이 큰 나라로 우뚝 선다')와 백가쟁명(百家爭鳴)'이었다. 중국굴기에는 한 가지 시각이 아닌 여러 가지 시각이 있음을 보여주자는 의도였다. 중국 당국과 공산당, 학자들이 저마다의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내부적 논쟁을 보여주고 싶었다.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의 왕지쓰(王緝思) 원장은 인터뷰에서 "사람도 겸손해야 하고, 국가 또한 겸손해야 하며, 공산당도 겸허해야 한다. 공산당이 계속 자신만이 최고라고 강조하면 발전이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 발언만 봐도 중국 사회가 놀라울 정도의 중용(中庸)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의 기본 노선은 있지만 거기에 모두 맹목적인 순응을 하는 것이 아니고, 학자들 간에는 엄청난 논쟁도 있다. 기본적으로 다른 시각을 존중해주고 있다.
제1부('대국의 길')는 당의 기본노선인 '화평굴기'(和平屈起. 세계와 평화롭게 조화를 이뤄나가며 대국화한다)에 대한 생각들을 담고 있는데, 정비젠(鄭必堅) 전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상무부교장의 인터뷰에 잘 나와 있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중국공산당의 가장 큰 목적은 인민들을 잘 먹여 살리고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선 외부 환경이 평화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국내 정치·경제적 목적 때문에 외국과 패권을 두고 다툴 겨를이 없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있다. '도광양회'(韜光養晦. 어둠속에서 사태를 관망하듯 실력이 있으되 드러내지 않는다)로 밀고 나가면서 '영원히 머리를 들지 말자'는 덩샤오핑(鄧小平)의 주장을 지켜나가자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1부에 나란히 인터뷰가 실린 옌쉐퉁(閻學通)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장의 생각은 다르다. 중국과 같은 대국이 굴기하는 것과 평화는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의 능력과 지위가 높아지는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같은 1부에 인터뷰가 실린 왕이저우(王逸舟)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옌쉐퉁과도 대립한다. 그의 주장을 한마디로 하면 '자유주의적 책임대국론'이다.
프레시안 : 왕이저우는 구체적으로 어떤 주장을 하는가.
문정인 : '중국의 가장 중요한 국가 목표는 발전이지만 중국만 발전한다고 좋은 건 아니다'는 것이다. 중국이 경제적 대국인만큼 국제 사회에 책임을 져야한다면서 특히 유엔이나 개발도상국에 대한 공헌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이 만드는 부(富)를 국제 사회와 공유하는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공헌을 해야만 중국이 국제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고 그 속에서 새로운 위상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대만이나 신장위구르 자치구 문제 등 중국 내정에 간섭을 하면 용납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이 부분은 현실주의적이다. 이런 입장이 중국 외교부의 기본 노선이라고 보면 된다.
프레시안 : 정비젠의 화평굴기를 기본 토대로, 한쪽으로는 왕이저우처럼 적극적인 책임을 강조하고 한쪽으로는 옌쉐퉁처럼 갈등과 충돌의 필연성을 강조하는 두 갈래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정인 : 먼저 주변국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대내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데에선 화평굴기론과 줄기를 같이 하지만 거기서 그쳐선 안 된다는 것이 왕이저우의 주장(책임대국론)이라고 보면 된다. 중국이 너무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소프트 파워론'과 연결된다. (소프트 파워 : 정보 과학, 문화·예술 등이 행사하는 영향력. 군사력이나 경제 제재 등 물리적으로 표현되는 힘인 하드 파워에 대응하는 개념)
옌쉐퉁이 화평굴기론을 계승하는 방식은 왕도(王道)와 패도(覇道)의 논쟁으로 보면 된다. 왕도는 성군(聖君)이 인과 덕을 바탕으로 통치하면 신민들이 따른다는 정치 사상으로 유가(儒家)들이 이상향으로 생각한 구도였다. 주(周) 시대가 그 예다. 옌쉐퉁은 이것을 이상으로 생각하긴 하지만 지금 중국에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중국이 춘추전국시대처럼 세력 균형의 길인 패도로 갈 수밖에 없고, 그에 앞서 (패권 다툼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현실로 보는 입장이다.
프레시안 : 중국 인민해방군(PLA)이 옌쉐퉁의 시각을 따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부 내에서도 그런 관점이 많이 느는 추세인가?
문정인 : 기본 노선인 도광양회의 원칙이 있기 때문에 (그런 관점은) 억제되는 편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반대를 부르기 때문에 조심하라고 한다. 옌쉐퉁같은 경우만 공개적으로 자기 입장을 밝히는 것이고.
프레시안 : 그래도 그런 얘기가 공개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중국의 자신감이 커지긴 했나보다.
문정인 : 그렇다. 하지만 나이 많은 학자들과 젊은 학자들 간에 차이가 있다. 1950~60년대 대약진이나 60~70년대에 문화혁명을 겪고 하방(下放, 지식 청년들이 문화혁명 시기 전국 농촌에 투입됐던 것)을 경험했던 윗세대는 겸손과 인내를 강조하고, 다시 어려운 시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위 개방·개혁 이후 세대들, 우리로 치면 81~82학번에 해당하는 비교적 젊은 학자들은 '거침없이 하이킥'하듯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지금 중국이 크고 있지 않느냐, 미국에 기죽을 것 없지 않느냐, 그러니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한다.'
"호랑이 꼬리를 밟을 생각이 없다"
프레시안 : 톈안먼(天安門) 사태까지만 해도 중국은 국제 사회의 아웃사이더였다. 그런데 이번 책을 보니 이제는 완벽히 인사이더가 됐다는 느낌이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인사이더의 입장, 즉 기존 체제를 바꾸기보다는 체제의 수혜자가 되려는 입장인가?
문정인 : 내가 인터뷰한 인물 거의 모두가, 현재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바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미국이 만든 자유주의나 자유무역 체제의 수혜자가 중국이라고 말한다.
프레시안 : 그러나 중국이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 체제를 바꾸려 할지 모른다는 '중국 위협론'이 부상하고 있다.
문정인 : 국제정치학적으로 보면 중국 위협론은 세력 전이론에서 나온다. 국제 관계를 힘으로 이해하는 시각에는 세력 균형론과 세력 전이론 두 가지가 있다. 세력 균형론은 강대국 간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면 전쟁을 막을 수 있고 평화를 지속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세력 전이론은 강대국의 힘이 비슷해지면 전쟁이 온다고 본다. 패권국의 힘이 신장하는 속도는 둔화되고, 도전국의 힘이 신장하는 속도는 가속화해서 결국 도전국이 호랑이(패권국)의 꼬리를 밟으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거다. 세력 전이론자들은 중국의 부상을 지켜보면서, 이 나라가 곧 힘의 신장이 둔화되고 있는 패권국 미국을 거센 속도로 따라잡을 것이며 물리적 충돌이 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그런데 여기서 전쟁이 결국 일어나느냐 마느냐는 패권국이 만든 기존 질서에 도전국이 얼마나 만족하느냐에 달려있다. 도전국으로선 자신들의 힘은 신장되는데 구조적 위상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물리적 도전을 할 수 있다. 중국학자들은 세력 전이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는 기존 질서에 만족한다. 우리는 미국 질서의 수혜자다. 미국과 '맞장 뜰' 의도가 없다"고 하니까.
물론 그들도 미국적 질서 안에서 부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는 말한다. 또 중국이 사활을 거는 문제인 대만·위구르 문제에 미국이 간섭을 했을 때는 과감히 도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질서 자체, 기본 프레임을 바꾸려는 의도는 없다는 게 모든 인터뷰이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중국 위협론이 나오는 것은 위협이 객관적으로 존재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 위협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결국 국제관계학의 구성주의가 말하는 정체성의 문제, 역지사지의 문제다. 중국을 위협으로 규정하면 중국은 스스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주로 미국이나 한·중·일의 보수 우파 세력들이 그 위협을 만들어낸다.
미국의 보수 세력은 중국 위협론을 기정사실화하고 동중국해·남중국해에서 미중 간 마찰이 필연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중국을 대한다. 그쪽에서 먼저 그렇게 나오면 중국도 맞대응 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것이 해상 군비 경쟁의 발단이다.
우리와 북한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세상의 어느 나라가 국방백서에서 주적((主敵)이란 표현을 쓰나. 내가 상대를 주적이라 규정하면 상대도 나를 주적으로 보는 게 당연지사다. 이스라엘조차 팔레스타인을 주적이라고 명시하지 않는다. 그냥 생존·안보에 대한 위협 세력이라고 하지.
중국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중국을 위협으로 생각하면 중국은 위협이 되는 것이고, 선린관계나 전략적 동반자라고 생각하면 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인민대 국제관계학원의 진창룽(金燦榮) 부원장과의 인터뷰에서도 분명히 언급되지만 세계가 중국을 환대하면 중국도 거기에 화답하고, 반대로 세계가 중국을 위협으로 간주하면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그러나 실제로 중국이 항공모함 건조를 준비하는 등 대양해군화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돼 왔다. 미국과 일본 입장에선 위협으로 느낄 만한데.
문정인 : 그 문제도 (해상 마찰이 아니라) 해상 공동 협력으로 이해하고 풀어나가면 된다. 사실 중국이나 미국, 한국, 일본 모두 제일 관심 갖는 문제는 해상 통로의 안전성 확보 문제다. 해적 문제 심각하지 않나. 미국을 배척하거나 맞서서 대결하자는 게 아니라 해상 통로의 안전을 구축하기 위해 안보 공공재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게 해상 군비 경쟁에 빠지는 것보다 낫다.
그러나 그렇게 잘 안 되는 것은 미·중 양쪽 모두 관료정치 때문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자기들대로 예산을 늘려야 하고, 미군 태평양사령부도 예산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무기 구입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거다. 여기에 바로 정치와 외교 간 조율의 중요성이 있다. 대외적으로 다자안보체제를 구축하면 해상 군비 경쟁을 예방할 수 있는데, (국내 정치 때문에) 그쪽으로 못 나가는 경향이 있다.
프레시안 :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만족하지만 부분적으로 개선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고 했다. 무엇을 바꾸자는 것인가?
문정인 : 도하개발어젠다(DDA)에서 드러났던 (선진국들에 유리한) 무역 구조에 대한 불만도 다소 있지만 중국은 기본적으로 세계 통화 체제의 문제를 제기해 왔다. 미국과 달러화에 대해 신뢰감을 잃은 것이 사실이고, 국제통화기금(IMF)이 제 역할을 못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장이 지난해 SDR(Special Drawing Rights, IMF의 특별인출권)을 새로운 기축통화로 하자고 주장한 것이 통화 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의 예다. 중국은 IMF 체제 그 자체를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지배 구조를 개선하고 브레튼우즈 통화 체제를 그대로 두되 부분적으로는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맥락에서 달러화가 기축통화 역할을 못한다면서 안정된 기축통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던 것이다.
미국은 SDR이 기축통화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축통화가 되려면 측정 수단, 교환 수단, 국제준비자산(International reserve asset)으로서의 역할을 충족해야 하는데 SDR이 측정·교환 수단은 될 순 있어도 준비자산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요즘은 기축통화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잦아들었지만, 전반적으로 중국은 여전히 통화 체제에 부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경제 말고 안보 질서의 경우는 6자회담을 살리자는 입장이다. 6자회담 채널로 북핵 문제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동북아 다자안보체제를 구축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 등 6자회담의 결과물을 보면 동북아 평화·안보 체제를 만들자는 언급이 있지 않나. 중국은 통화든 무역이든 안보든 어떤 분야에서도 '다자협력체제'를 강조하고 있다. 그게 기본적 구상인 듯하다. G2에도 거부감을 보이고 있지 않나.
중국 지도부의 관심?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
프레시안 : 중국 경제가 과연 언제까지 성장할 수 있겠느냐는 비관론도 있다.
문정인 : 중국 사회과학원 아시아태평양지역 연구소의 장위옌(張宇燕) 소장은 그런 관점에 이렇게 응수한다. 지금까지 중국은 연안 중심으로 경제가 성장해 왔는데 아직 미개척지가 많고, 특히 서북쪽과 동북쪽을 활성화시키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인터뷰이들은 중국 경제의 과열화 문제를 알고 있다. 부동산 문제, 부실 채권 문제 등의 과열 양상을 인식하면서 국가의 경제 개입이나 관리, 규제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또 다른 국가들의 실패에서도 많이 배우려고 한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요즘 미국이 리밸런스(공정 경쟁의 추진) 얘기를 많이 하지 않나. '중국도 이제 경제 대국이니 미국산 물건 많이 사야 한다. 그래야 공정 경쟁이다'라고. 하지만 문제는 얼마나 내수를 진작시킬 수 있냐는 데에 있다. 그건 양극화와 소득·분배의 불평등 구조 문제와 연관된다.
또 관리들의 불출사(不出事, 일을 벌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나 부정부패 등 다른 문제도 산적해 있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 경제를 앞으로도 잘 이끌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낙관이다, 비관이다를 규정하긴 어렵다. 둘 다 아닌 '신중론'이 중국의 입장인 듯하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중국은 역시 내부 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정인 :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작년 7월 우루무치 시위 사태가 일어나자마자 이탈리아에서 열린 G8(주요 8개국) 확대정상회담을 박차고 바로 귀국했다. 내정 문제의 우위가 압도적이다. 그래서 중국 외교 정책 전문가들이 불만이 많다. 당 지도부가 외교보다는 내치에 역점을 두니까 외교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것이다.
내가 봐도 당 지도부에겐 그들의 생존보다 더 큰 목적은 없다.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중국의 생존은 중국 공산당의 안전"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에 문제가 생기면 나라 전체에 정치적·사회적 문제가 생겨서 안정이 깨지고, 그러면 중국 자체가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라는 거다. 인민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런 혼란을 원치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당의 안전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프레시안 : 공산당 일당독재에 반대하는 지식인도 있지 않나.
문정인 : 진창룽, 왕지쓰 등 인터뷰이들도 공산당 비판할 거 다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국 사람들은 아편전쟁 이후 150년 이상 '중국에 내부적 혼란이 있으면 외교적으로 나쁜 일을 겪는다'는 인식을 확고하게 공유해 왔다. 대내적 내실이 없었기 때문에 대외적 굴욕의 역사가 생겼다는 인식이다. 따라서 내실을 다스리는 것이 먼저고, 그래야만 외교적으로도 떳떳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 당 지도부의 기본 입장이며, 과거 덩샤오핑의 생각과도 같다. 많은 지식인들이 여기에 따른다. 이렇듯 중국인들은 중국 내부가 분열되고 혼란이 오는데 대한 강박관념이 있어서 (공산당 독재에 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점이) '중국적 실용주의'라고 볼 수 있겠다.
프레시안 : 대내 문제 가운데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인가?
문정인 : 당연히 경제다. 처음도 끝도 경제다. 경제 발전의 모멘텀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양극화나 소득·세대 간 불평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그래서 당이 인민의 정체성을 어떻게 회복하느냐가 핵심적인 문제다.
프레시안 : 중국은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함께 G2로 불리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문정인 : 책에서도 장위옌과 정비젠이 지적했듯, 솔직히 중국이 G2로 묶여서 무슨 득을 보겠냐는 입장이다. 그러나 손해 볼 건 많다. 국제 사회의 모든 책임을 미국과 함께 져야지, 러시아나 일본, 한국 등 주변국들은 불만이지….
G7, G8, G20, 유엔과 같은 다양한 채널로 여럿이 국제 문제를 풀면 되지 굳이 G2만 부각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도 있다. 인터뷰한 학자들도 베이징 컨센서스나 G2 같은 말은 서구에서 만든 것에 불과하다며, 중국은 어떤 제안도 한 적 없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 : 진찬룽(金燦榮) 중국인민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당분간 중국 지도부는 기술 관료가 지배할 텐데 그들은 큰 구상을 못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국제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 혹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보였다.
문정인 : 리빈(李彬)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 부소장이나 진찬룽 같은 사람들은 중국의 역할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다. 특히 핵물리학자인 리빈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중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데 국제적인 책임과 지도력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 지도자들이 정치적 비전이 없고 국내 경제 발전에만 관심 있다고 비판한다.
진찬룽 부원장은 '49년 혁명 이후 중국의 진정한 지도자는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 밖에 없다'고 대놓고 말한다. 두 사람만 비전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였고, 나머지는 전부,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 역시 관리형 테크노크라트였다는 것이다. 관리형의 특징은 사고 안 치고, 현상 유지하고, 국내 문제에만 매진하지 큰 메시지를 던져서 중국 인민에게 비전과 희망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다음 지도부도 그렇게 될 것인가?
문정인 : 차기 대권 주자인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도 마찬가지이다. 등소평이 만들어 놓은 노선에 따라 안정적으로 관리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찬룽이 시사하는 것은, 과거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지 않았을 때는 그게 가능했지만 지금은 세계의 운명이 미국과 중국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중국 지도부도 세계적인 안목과 비전을 가져서 중국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지도자가 안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내부에서도 엄청난 논쟁이 있을 것 같다.
프레시안 : 국제 사회에서도 미국에 도전할 정도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에너지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문정인 : 과거 일국사회주의란 개념을 상기해 볼 때 중국이 이제는 일국이기주의에 빠진 것 아니냐는 지식인들의 자기반성 같은 의미이다. 그렇게 보는 게 타당하다. 국제적인 공헌도 하고 리더십도 발휘하고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열망이 그런 표현으로 나왔다고 보는 게 맞다. 나로서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들었다.
프레시안 : 민주주의 문제로 넘어가서, 인터뷰한 사람들은 민주주의라는 말을 안 쓰고 정치 발전이란 표현을 쓰면서 당·정·군 분리, 전인대 권한 강화 같은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방에서는 아직도 중국을 공산당 일당독재로 보고 있고, 인터뷰한 사람 중 하나는 '민주주의 측면에서 중국은 북한보다 조금 나은 체제에 불과하다'고까지 말했다.
문정인 : 모든 국가의 제도에는 관성이 있다. 1949년 혁명 이후 중국공산당이 영도를 해왔다. 지금은 중국공산당이라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에 있는 이 제도를 서구 민주주의와 접목시키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왕이저우 부원장은 '우리도 민주주의 있다. 광저우(廣州) 같이 남부 지역에 가면 지방선거를 하고 있고 밑으로부터의 민주주의 열기가 일어나고 있고 점차 제도화되고 있다. 당 안에서, 그리고 당·정·군 사이에서도 엄청난 논쟁이 있다. 학계도 마찬가지다. 또, 언론을 통제한다고 하지만 <환구시보(環球時報)>를 봐라. 그런 식으로 삼권분립도 형성되어 가고 있고, 특히 사법부의 힘이 상당히 강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시민 참여, 삼권분립이 점차 이뤄지고 있다.
특히 가장 큰 변수는 세대 교체다. 지금 공산당이나 국무원은 물론 거의 모든 분야의 핵심 자리에는 학번으로 치면 80~82학번들이 지도적인 그룹으로 있는데, 그들은 대부분 텐안먼 사태 때 학교에 다니면서 시위를 했던 사람들이다.
프레시안 : 그렇지만 공산당의 영도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인가?
문정인 : 그렇다. 공산당원이 되어야 핵심적인 자리에 갈 수 있는 건 물론이다. 그게 중국식 삶의 패턴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중국도 변화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만난 사람들도 중국공산당의 부조리나 모순이 상당히 많은데, 지금 그걸 하나씩 발견하면서 고쳐 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솔직한 말을 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단시간에 이뤄지겠느냐, 시간이 걸린다, 그걸 봐줘야 한다, 그렇게 말했다. 우선 서구식 민주주의가 중국 토양에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옳다 해도 제도를 변화시키려면 시간이 필요하지 당장 바꿀 수 없지 않느냐는 게 그 사람들의 생각이다.
한국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MB 외교의 거대한 착각
프레시안 : 한반도 문제로 넘어가자. 책을 보면 북핵 문제에 대해 중국 내 의견도 일치되지 않고 있고,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해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정인 : 기본적으로 중국 사람들은 6자회담이 잘 되길 바란다. 후진타오 외교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이 6자회담이고, 중국이 의장국이기기 때문에 뭔가 성과를 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상당히 강하다. 그들도 북한이 핵을 가지는 걸 원치 않고, 2005년 6자회담에서 나온 9·19 공동성명에 대해서는 냉전 후 나온 가장 성공적인 문서라고 생각한다. 이게 기본 전제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표현한 중국의 속내가 있다. 북한 문제가 이렇게 나락으로 빠져들고 어렵게 된 것은 한·미·일 3국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앞으로도 한·미·일이 협조를 잘 안 해서 북핵 문제가 안 풀린다고 해도 중국이 북한하고 못 지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설령 북한이 결국 핵을 가지더라도 중국과 선린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는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는 생각도 있다.
그런 소리를 듣고 내가 '그럼 북한이 핵 갖는 거 동의한다는 말인데, 그렇게 되면 일본이나 한국도 가지려고 할 것 아니냐?'고 따지는 식으로 물었더니 '과연 미국이 그런 상황을 허용하겠나? 우리한테는 그런 식으로 허풍 치지 마라'고 답하더라.
그러면서 중국 사람들은 '6자회담을 만든 이유가 뭐냐. 북·미 양자대화 시키려고 만든 건데 왜 그 판을 깨느냐'는 것이다. 한때는 미국이 판을 깨다가 조금 유연하게 나오면 일본이 깨고, 한국도 깨고, 이렇게 3국이 돌아가면서 판을 깬다는 인식이 강하다. '한·미·일은 북핵 해결에 관심 없지 않느냐. 김정일 체제가 붕괴한 후에 핵 문제 해결하겠다고 하는 것 같은데 중국이 보기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미국이 얼마 전 북한 급변 사태에 관해 논의해 보자고 중국 쪽에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북한이 붕괴되지 않을 것이고, 그걸 원치도 않는다는 입장이다. '협상을 통해 풀어야 하는데 협상판을 다 깨고 있다. 그러니 알아서 하라'는 일종의 체념도 보인다. 특히 한국을 많이 비판한다.
프레시안 : 중국은 할 만큼 했는데 한·미·일 때문에 안 된다면 교착 해소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문정인 : 결국 미국에 달려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우리가 틀면 미국도 안 나올 거라고 자신하는 것 같다. 그게 오바마 정부의 한계인데,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프레시안 : 중국 사람들은 한미동맹에서 '가치동맹'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한국이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MD) 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한중관계의 마지노선이라고 말했다.
문정인 : 중국 사람들의 얘기는 이렇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한미 동맹을 잘 하겠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반대하지 않았다. 다 인정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 와서 한중 관계는 왜 이렇게 됐나? 지금 정부는 한미 동맹에 가치동맹이라는 표현을 쓰기 때문에 한미 동맹 강화라는 구호가 결국은 중국 견제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실제로 그렇게 행동해 왔다.'
프레시안 : 천안함 사고 이후 한중 관계에 대해서는 어떤 말들을 하나.
문정인 :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의 케이스를 보면 알 수 있다. 주펑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입장을 그나마 많이 이해해 주고 북한에 대해서는 비판도 많이 하면서 대표적인 전략파로 분류되어 왔다. 그런데 천안함 사건이 나고 나서 완전히 반(反)MB로 돌아섰다.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 중에 이명박 정부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전략파라고 불렀는데, 물론 그 분류에도 무리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천안함 이후 없어져 버렸다.
나는 CCTV의 영어 채널 '채널9'에서 정기적으로 코멘테이터를 한다. 천안함 사건이 한창 고조됐을 때 나한테 보낸 질문을 보니까 걱정이 많이 됐다. '왜 한국 사람들은 중국을 위협으로 인식하느냐?' '중국은 서해에서 항공모함이 동원되는 한미 해상 군사 훈련을 했을 때 미국과 한국 물품에 대한 불매 운동을 할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네티즌 의견을 반영해서 나온 질문인데 그만큼 중국의 여론이 들끓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대통령이 왜 상황을 이렇게 방치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중국을 너무 우습게 봤고 가볍게 봤다.
프레시안 :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을 주중 대사로 보내면서 중국에 상당히 신경을 쓴다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나?
문정인 : 누군가 역대 주중 대사 중에서 황병태 대사가 가장 일을 잘했다는 말을 했다. 실제로도 그랬지만, 환경적인 이유도 있었다. 텐안먼 사태 이후 중국이 고립됐을 때 한국이 수교를 통해 손을 잡았으니까 중국도 한국한테 잘 해준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중국이 아쉬울 게 없는 상황에서는 대통령 측근을 보낸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다. 중국이 우리한테 아쉬울 때면 센 사람을 보내는 게 좋지만, 우리가 중국한테 얻을 게 많을 때는 오히려 노련한 전문 외교관,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외교관을 대사로 보내야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정부는 자신들이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미국의 도움 때문에.
프레시안 :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 국제관계학과 교수가 '한국이 소외될까 두렵다'고 했던 말이 인상에 남았다. 한국은 중국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문정인 : 책을 보면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온다. '한국 사람들은 자기네 말만 하고, 중국을 자꾸 바꾸려고 한다는 말을 한다. 한국이 바꾸라고 해서 중국이 바꿀 나라냐. 중국 입장도 들어 달라'는 것이다. 중국 전문가들이 내 인터뷰에 호의적으로 응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과거에 장관급 자리까지 있었던 학자가 중국에 와서 발로 뛰어다니면서 자신들의 말을 듣겠다고 하니까 고마워한 것이다.
결국 역지사지의 태도를 가지고 중국을 이해하려고 하고, 어떻게 하면 양국의 최대공약적인 이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잘못은, 워싱턴을 통하면 중국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완전히 깨져 버렸다. 중국 사람들이 그런다. '동북아에 큰 문제가 생기면 미국이 누구랑 얘기할까? 한국인가? 아니다 중국이다.' 한국이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센 나라인 줄은 알아도 중국이 센 줄은 모른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인터뷰한 전문가들이 중국의 정책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나.
문정인 :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우선 현대국제관계연구중심이라는 건 중국 안전부 산하에 있는 연구기관이다. 왕지쓰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은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소장을 한 사람으로 중국 지도부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다. 미국의 제프 베이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 보좌관은 중국에 오면 제일 먼저 왕지쓰의 연구실을 찾는다. 그 사람 얘기를 듣고 움직이는 것이다.
친야칭(秦亞靑) 외교학원 상무부원장은 외교관을 양성하는 기관의 책임자이기 때문에 영향력이 상당하다. 장윈링(張蘊嶺) 중국사회과학원 국제학부 주임은 정책에 직접 관여한다. 옌쉐퉁(閻學通)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장은 인민해방군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왕이저우(王逸舟)와 친야칭은 외교부의 핵심 중 핵심이다. 장위옌(張宇燕)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 및 정치연구소장은 동아시아 정책에 상당히 관여를 많이 한다. 일반적인 동아시아 정책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공동체론, 동북아 자유무역협정(FTA) 등은 그 사람이 다 주도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리빈은 핵 군축 쪽 핵심 브레인이다. 이런 식으로 거의 다 연계되어 있다.
<중국의 내일을 묻다>에 이은 문정인 교수의 다음 프로젝트는 일본이다.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방황하는 일본에 미래는 있는가'라는 주제로 일본 내 전략가들을 만나 또 하나의 대담집을 만든다는 것이다.
문정인 교수는 이러한 작업들을 종합해 "동아시아의 대전략(Grand Strategy)"라는 제목의 영어판 책을 쓸 계획이라고 한다. '국제적인 마당발' 문정인 교수의 다음 책들이 기대된다.
[프레시안 books 인터뷰] <중국의 내일을 묻다> 펴낸 문정인 교수
문정인 연세대학교 교수(정치외교학과)가 쓴 <중국의 내일을 묻다>(삼성경제연구소 펴냄)가 화제다. 중국에 관한 책들이 옥석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넘쳐나는 시절, 중국이 어떤 나라이고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큰 그림을 '정확히' 그려주는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생각을 들여다보기 위한 문정인 교수의 전략은 간단했다. 중국의 비전과 국가 정책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거나 혹은 그 비전을 만들어낸 최고 학자들을 찾아가 직접 얘기를 들어 보는 것이었다. 문 교수는 2009년 가을 학기 베이징 대학교 국제관계학원 초빙교수로 있으면서 이 작업을 진행했다. 대담 전에는 인터뷰이들의 책과 논문을 샅샅이 읽었고, 때론 아쉬운 소리까지 해가며 발품을 팔았다.
그러나 <중국의 내일을 묻다>에 드러난 중국인의 속내는 결코 간단치 않다. 대국(大國) 중국이 걸어야할 길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주제만 보더라도 화평굴기론, 대국굴기론, 책임국가론 등이 치열하게 경합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의 노선과 대립하기도 한다. 문 교수가 만난 이들은 속내를 너무나도 솔직하게 털어놓는 동시에 공산당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그런 그들의 태도 자체가 중국을 다시 보게 한다.
책을 구상하게 된 계기, 책의 내용과 못 다한 얘기를 듣기 위해 26일 문정인 교수를 서울 연희동 자택으로 찾아가 만났다. 치열하게 탐구하는 학자이자 전략가답게 문 교수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진행했다.
▲ 문정인 연세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중국굴기에 대한 백가쟁명
프레시안 : 인터뷰에 응한 이들이 굉장히 솔직하다고 느꼈다.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문정인 : 나는 중국 전문가가 아니지만 중국인들이나 중국 전문가들도 내 책을 읽고 그들(인터뷰이들)의 속엣말이 많이 나왔다고 평가했다. 사전에 내가 그 사람들의 책과 논문을 다 읽고 인터뷰를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학자들은 서구의 문헌을 통해, 서양의 시각으로 중국을 봤다. 그러나 나는 '중국의 시각에서 중국을 본다'(以中國, 觀中國)는 입장에서, 내 얘기보다는 그들의 얘기를 듣고자 했기 때문에 이른바 '잘 나가는 학자'들이 3시간 이상 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복거일 씨의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문학과지성사 펴냄)를 읽고 화가 났었다. 그 책은 중국의 힘이 커짐에 따라, 핀란드가 러시아에 굴종했던 것처럼 한반도도 '핀란드화'(finlandization)될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라고 본다. 그 책의 참고 문헌을 보니 왜 얘기가 그렇게 흐를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단 한 권만 중국학자가 쓴 오래된 책이었고 대부분은 미국, 영국, 일본의 문헌이었다. 외국의 문헌으로 중국을 얘기하는 게 말이 되나.
한국에서는 사회과학논문인용색인(SSCI)을 기준으로 학자를 평가하는데 SSCI에 등재되려면 논문을 영어로 써야 한다. 그렇다 보니 베이징대, 칭화대 등 중국의 명문대에서 수학한 한국의 인재들이 중국을 중국어로 연구한다는 이유로 오히려 배제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중국에 대한 공부를 미국에서 한다? 중국 공부를 영어로 한다? 아니라고 봤다. '이중국 관중국'하자는 생각, 중국을 제대로 알자는 생각이 이 책을 쓴 계기다.
프레시안 : 제목은 '중국의 내일을 묻다'이지만 내용은 '중국의 오늘을 보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문정인 : 지적한 대로 제4부('거대 중국의 미래 구상과 안팎의 도전')를 제외하고 제1~3부는 중국 사람들이 현재의 중국을 어떻게 보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오늘을 알아야 내일을 알 수 있으니까.
내가 원래 제안했던 제목은 책 서문의 제목인 '중국굴기(中國屈起. '중국이 큰 나라로 우뚝 선다')와 백가쟁명(百家爭鳴)'이었다. 중국굴기에는 한 가지 시각이 아닌 여러 가지 시각이 있음을 보여주자는 의도였다. 중국 당국과 공산당, 학자들이 저마다의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내부적 논쟁을 보여주고 싶었다.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의 왕지쓰(王緝思) 원장은 인터뷰에서 "사람도 겸손해야 하고, 국가 또한 겸손해야 하며, 공산당도 겸허해야 한다. 공산당이 계속 자신만이 최고라고 강조하면 발전이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 발언만 봐도 중국 사회가 놀라울 정도의 중용(中庸)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의 기본 노선은 있지만 거기에 모두 맹목적인 순응을 하는 것이 아니고, 학자들 간에는 엄청난 논쟁도 있다. 기본적으로 다른 시각을 존중해주고 있다.
제1부('대국의 길')는 당의 기본노선인 '화평굴기'(和平屈起. 세계와 평화롭게 조화를 이뤄나가며 대국화한다)에 대한 생각들을 담고 있는데, 정비젠(鄭必堅) 전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상무부교장의 인터뷰에 잘 나와 있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중국공산당의 가장 큰 목적은 인민들을 잘 먹여 살리고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선 외부 환경이 평화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국내 정치·경제적 목적 때문에 외국과 패권을 두고 다툴 겨를이 없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있다. '도광양회'(韜光養晦. 어둠속에서 사태를 관망하듯 실력이 있으되 드러내지 않는다)로 밀고 나가면서 '영원히 머리를 들지 말자'는 덩샤오핑(鄧小平)의 주장을 지켜나가자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1부에 나란히 인터뷰가 실린 옌쉐퉁(閻學通)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장의 생각은 다르다. 중국과 같은 대국이 굴기하는 것과 평화는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의 능력과 지위가 높아지는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같은 1부에 인터뷰가 실린 왕이저우(王逸舟)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옌쉐퉁과도 대립한다. 그의 주장을 한마디로 하면 '자유주의적 책임대국론'이다.
프레시안 : 왕이저우는 구체적으로 어떤 주장을 하는가.
문정인 : '중국의 가장 중요한 국가 목표는 발전이지만 중국만 발전한다고 좋은 건 아니다'는 것이다. 중국이 경제적 대국인만큼 국제 사회에 책임을 져야한다면서 특히 유엔이나 개발도상국에 대한 공헌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이 만드는 부(富)를 국제 사회와 공유하는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공헌을 해야만 중국이 국제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고 그 속에서 새로운 위상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대만이나 신장위구르 자치구 문제 등 중국 내정에 간섭을 하면 용납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이 부분은 현실주의적이다. 이런 입장이 중국 외교부의 기본 노선이라고 보면 된다.
프레시안 : 정비젠의 화평굴기를 기본 토대로, 한쪽으로는 왕이저우처럼 적극적인 책임을 강조하고 한쪽으로는 옌쉐퉁처럼 갈등과 충돌의 필연성을 강조하는 두 갈래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정인 : 먼저 주변국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대내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데에선 화평굴기론과 줄기를 같이 하지만 거기서 그쳐선 안 된다는 것이 왕이저우의 주장(책임대국론)이라고 보면 된다. 중국이 너무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소프트 파워론'과 연결된다. (소프트 파워 : 정보 과학, 문화·예술 등이 행사하는 영향력. 군사력이나 경제 제재 등 물리적으로 표현되는 힘인 하드 파워에 대응하는 개념)
옌쉐퉁이 화평굴기론을 계승하는 방식은 왕도(王道)와 패도(覇道)의 논쟁으로 보면 된다. 왕도는 성군(聖君)이 인과 덕을 바탕으로 통치하면 신민들이 따른다는 정치 사상으로 유가(儒家)들이 이상향으로 생각한 구도였다. 주(周) 시대가 그 예다. 옌쉐퉁은 이것을 이상으로 생각하긴 하지만 지금 중국에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중국이 춘추전국시대처럼 세력 균형의 길인 패도로 갈 수밖에 없고, 그에 앞서 (패권 다툼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현실로 보는 입장이다.
프레시안 : 중국 인민해방군(PLA)이 옌쉐퉁의 시각을 따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부 내에서도 그런 관점이 많이 느는 추세인가?
문정인 : 기본 노선인 도광양회의 원칙이 있기 때문에 (그런 관점은) 억제되는 편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반대를 부르기 때문에 조심하라고 한다. 옌쉐퉁같은 경우만 공개적으로 자기 입장을 밝히는 것이고.
프레시안 : 그래도 그런 얘기가 공개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중국의 자신감이 커지긴 했나보다.
문정인 : 그렇다. 하지만 나이 많은 학자들과 젊은 학자들 간에 차이가 있다. 1950~60년대 대약진이나 60~70년대에 문화혁명을 겪고 하방(下放, 지식 청년들이 문화혁명 시기 전국 농촌에 투입됐던 것)을 경험했던 윗세대는 겸손과 인내를 강조하고, 다시 어려운 시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위 개방·개혁 이후 세대들, 우리로 치면 81~82학번에 해당하는 비교적 젊은 학자들은 '거침없이 하이킥'하듯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지금 중국이 크고 있지 않느냐, 미국에 기죽을 것 없지 않느냐, 그러니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한다.'
"호랑이 꼬리를 밟을 생각이 없다"
프레시안 : 톈안먼(天安門) 사태까지만 해도 중국은 국제 사회의 아웃사이더였다. 그런데 이번 책을 보니 이제는 완벽히 인사이더가 됐다는 느낌이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인사이더의 입장, 즉 기존 체제를 바꾸기보다는 체제의 수혜자가 되려는 입장인가?
문정인 : 내가 인터뷰한 인물 거의 모두가, 현재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바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미국이 만든 자유주의나 자유무역 체제의 수혜자가 중국이라고 말한다.
▲ <중국의 내일을 묻다>(문정인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펴냄). ⓒ삼성경제연구소 |
문정인 : 국제정치학적으로 보면 중국 위협론은 세력 전이론에서 나온다. 국제 관계를 힘으로 이해하는 시각에는 세력 균형론과 세력 전이론 두 가지가 있다. 세력 균형론은 강대국 간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면 전쟁을 막을 수 있고 평화를 지속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세력 전이론은 강대국의 힘이 비슷해지면 전쟁이 온다고 본다. 패권국의 힘이 신장하는 속도는 둔화되고, 도전국의 힘이 신장하는 속도는 가속화해서 결국 도전국이 호랑이(패권국)의 꼬리를 밟으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거다. 세력 전이론자들은 중국의 부상을 지켜보면서, 이 나라가 곧 힘의 신장이 둔화되고 있는 패권국 미국을 거센 속도로 따라잡을 것이며 물리적 충돌이 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그런데 여기서 전쟁이 결국 일어나느냐 마느냐는 패권국이 만든 기존 질서에 도전국이 얼마나 만족하느냐에 달려있다. 도전국으로선 자신들의 힘은 신장되는데 구조적 위상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물리적 도전을 할 수 있다. 중국학자들은 세력 전이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는 기존 질서에 만족한다. 우리는 미국 질서의 수혜자다. 미국과 '맞장 뜰' 의도가 없다"고 하니까.
물론 그들도 미국적 질서 안에서 부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는 말한다. 또 중국이 사활을 거는 문제인 대만·위구르 문제에 미국이 간섭을 했을 때는 과감히 도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질서 자체, 기본 프레임을 바꾸려는 의도는 없다는 게 모든 인터뷰이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중국 위협론이 나오는 것은 위협이 객관적으로 존재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 위협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결국 국제관계학의 구성주의가 말하는 정체성의 문제, 역지사지의 문제다. 중국을 위협으로 규정하면 중국은 스스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주로 미국이나 한·중·일의 보수 우파 세력들이 그 위협을 만들어낸다.
미국의 보수 세력은 중국 위협론을 기정사실화하고 동중국해·남중국해에서 미중 간 마찰이 필연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중국을 대한다. 그쪽에서 먼저 그렇게 나오면 중국도 맞대응 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것이 해상 군비 경쟁의 발단이다.
우리와 북한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세상의 어느 나라가 국방백서에서 주적((主敵)이란 표현을 쓰나. 내가 상대를 주적이라 규정하면 상대도 나를 주적으로 보는 게 당연지사다. 이스라엘조차 팔레스타인을 주적이라고 명시하지 않는다. 그냥 생존·안보에 대한 위협 세력이라고 하지.
중국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중국을 위협으로 생각하면 중국은 위협이 되는 것이고, 선린관계나 전략적 동반자라고 생각하면 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인민대 국제관계학원의 진창룽(金燦榮) 부원장과의 인터뷰에서도 분명히 언급되지만 세계가 중국을 환대하면 중국도 거기에 화답하고, 반대로 세계가 중국을 위협으로 간주하면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그러나 실제로 중국이 항공모함 건조를 준비하는 등 대양해군화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돼 왔다. 미국과 일본 입장에선 위협으로 느낄 만한데.
문정인 : 그 문제도 (해상 마찰이 아니라) 해상 공동 협력으로 이해하고 풀어나가면 된다. 사실 중국이나 미국, 한국, 일본 모두 제일 관심 갖는 문제는 해상 통로의 안전성 확보 문제다. 해적 문제 심각하지 않나. 미국을 배척하거나 맞서서 대결하자는 게 아니라 해상 통로의 안전을 구축하기 위해 안보 공공재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게 해상 군비 경쟁에 빠지는 것보다 낫다.
그러나 그렇게 잘 안 되는 것은 미·중 양쪽 모두 관료정치 때문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자기들대로 예산을 늘려야 하고, 미군 태평양사령부도 예산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무기 구입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거다. 여기에 바로 정치와 외교 간 조율의 중요성이 있다. 대외적으로 다자안보체제를 구축하면 해상 군비 경쟁을 예방할 수 있는데, (국내 정치 때문에) 그쪽으로 못 나가는 경향이 있다.
프레시안 :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만족하지만 부분적으로 개선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고 했다. 무엇을 바꾸자는 것인가?
문정인 : 도하개발어젠다(DDA)에서 드러났던 (선진국들에 유리한) 무역 구조에 대한 불만도 다소 있지만 중국은 기본적으로 세계 통화 체제의 문제를 제기해 왔다. 미국과 달러화에 대해 신뢰감을 잃은 것이 사실이고, 국제통화기금(IMF)이 제 역할을 못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장이 지난해 SDR(Special Drawing Rights, IMF의 특별인출권)을 새로운 기축통화로 하자고 주장한 것이 통화 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의 예다. 중국은 IMF 체제 그 자체를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지배 구조를 개선하고 브레튼우즈 통화 체제를 그대로 두되 부분적으로는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맥락에서 달러화가 기축통화 역할을 못한다면서 안정된 기축통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던 것이다.
미국은 SDR이 기축통화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축통화가 되려면 측정 수단, 교환 수단, 국제준비자산(International reserve asset)으로서의 역할을 충족해야 하는데 SDR이 측정·교환 수단은 될 순 있어도 준비자산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요즘은 기축통화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잦아들었지만, 전반적으로 중국은 여전히 통화 체제에 부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경제 말고 안보 질서의 경우는 6자회담을 살리자는 입장이다. 6자회담 채널로 북핵 문제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동북아 다자안보체제를 구축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 등 6자회담의 결과물을 보면 동북아 평화·안보 체제를 만들자는 언급이 있지 않나. 중국은 통화든 무역이든 안보든 어떤 분야에서도 '다자협력체제'를 강조하고 있다. 그게 기본적 구상인 듯하다. G2에도 거부감을 보이고 있지 않나.
ⓒ프레시안(최형락) |
중국 지도부의 관심?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
프레시안 : 중국 경제가 과연 언제까지 성장할 수 있겠느냐는 비관론도 있다.
문정인 : 중국 사회과학원 아시아태평양지역 연구소의 장위옌(張宇燕) 소장은 그런 관점에 이렇게 응수한다. 지금까지 중국은 연안 중심으로 경제가 성장해 왔는데 아직 미개척지가 많고, 특히 서북쪽과 동북쪽을 활성화시키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인터뷰이들은 중국 경제의 과열화 문제를 알고 있다. 부동산 문제, 부실 채권 문제 등의 과열 양상을 인식하면서 국가의 경제 개입이나 관리, 규제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또 다른 국가들의 실패에서도 많이 배우려고 한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요즘 미국이 리밸런스(공정 경쟁의 추진) 얘기를 많이 하지 않나. '중국도 이제 경제 대국이니 미국산 물건 많이 사야 한다. 그래야 공정 경쟁이다'라고. 하지만 문제는 얼마나 내수를 진작시킬 수 있냐는 데에 있다. 그건 양극화와 소득·분배의 불평등 구조 문제와 연관된다.
또 관리들의 불출사(不出事, 일을 벌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나 부정부패 등 다른 문제도 산적해 있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 경제를 앞으로도 잘 이끌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낙관이다, 비관이다를 규정하긴 어렵다. 둘 다 아닌 '신중론'이 중국의 입장인 듯하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중국은 역시 내부 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정인 :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작년 7월 우루무치 시위 사태가 일어나자마자 이탈리아에서 열린 G8(주요 8개국) 확대정상회담을 박차고 바로 귀국했다. 내정 문제의 우위가 압도적이다. 그래서 중국 외교 정책 전문가들이 불만이 많다. 당 지도부가 외교보다는 내치에 역점을 두니까 외교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것이다.
내가 봐도 당 지도부에겐 그들의 생존보다 더 큰 목적은 없다.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중국의 생존은 중국 공산당의 안전"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에 문제가 생기면 나라 전체에 정치적·사회적 문제가 생겨서 안정이 깨지고, 그러면 중국 자체가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라는 거다. 인민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런 혼란을 원치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당의 안전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프레시안 : 공산당 일당독재에 반대하는 지식인도 있지 않나.
문정인 : 진창룽, 왕지쓰 등 인터뷰이들도 공산당 비판할 거 다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국 사람들은 아편전쟁 이후 150년 이상 '중국에 내부적 혼란이 있으면 외교적으로 나쁜 일을 겪는다'는 인식을 확고하게 공유해 왔다. 대내적 내실이 없었기 때문에 대외적 굴욕의 역사가 생겼다는 인식이다. 따라서 내실을 다스리는 것이 먼저고, 그래야만 외교적으로도 떳떳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 당 지도부의 기본 입장이며, 과거 덩샤오핑의 생각과도 같다. 많은 지식인들이 여기에 따른다. 이렇듯 중국인들은 중국 내부가 분열되고 혼란이 오는데 대한 강박관념이 있어서 (공산당 독재에 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점이) '중국적 실용주의'라고 볼 수 있겠다.
프레시안 : 대내 문제 가운데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인가?
문정인 : 당연히 경제다. 처음도 끝도 경제다. 경제 발전의 모멘텀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양극화나 소득·세대 간 불평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그래서 당이 인민의 정체성을 어떻게 회복하느냐가 핵심적인 문제다.
프레시안 : 중국은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함께 G2로 불리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문정인 : 책에서도 장위옌과 정비젠이 지적했듯, 솔직히 중국이 G2로 묶여서 무슨 득을 보겠냐는 입장이다. 그러나 손해 볼 건 많다. 국제 사회의 모든 책임을 미국과 함께 져야지, 러시아나 일본, 한국 등 주변국들은 불만이지….
G7, G8, G20, 유엔과 같은 다양한 채널로 여럿이 국제 문제를 풀면 되지 굳이 G2만 부각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도 있다. 인터뷰한 학자들도 베이징 컨센서스나 G2 같은 말은 서구에서 만든 것에 불과하다며, 중국은 어떤 제안도 한 적 없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 : 진찬룽(金燦榮) 중국인민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당분간 중국 지도부는 기술 관료가 지배할 텐데 그들은 큰 구상을 못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국제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 혹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보였다.
문정인 : 리빈(李彬)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 부소장이나 진찬룽 같은 사람들은 중국의 역할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다. 특히 핵물리학자인 리빈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중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데 국제적인 책임과 지도력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 지도자들이 정치적 비전이 없고 국내 경제 발전에만 관심 있다고 비판한다.
진찬룽 부원장은 '49년 혁명 이후 중국의 진정한 지도자는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 밖에 없다'고 대놓고 말한다. 두 사람만 비전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였고, 나머지는 전부,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 역시 관리형 테크노크라트였다는 것이다. 관리형의 특징은 사고 안 치고, 현상 유지하고, 국내 문제에만 매진하지 큰 메시지를 던져서 중국 인민에게 비전과 희망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다음 지도부도 그렇게 될 것인가?
문정인 : 차기 대권 주자인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도 마찬가지이다. 등소평이 만들어 놓은 노선에 따라 안정적으로 관리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찬룽이 시사하는 것은, 과거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지 않았을 때는 그게 가능했지만 지금은 세계의 운명이 미국과 중국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중국 지도부도 세계적인 안목과 비전을 가져서 중국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지도자가 안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내부에서도 엄청난 논쟁이 있을 것 같다.
프레시안 : 국제 사회에서도 미국에 도전할 정도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에너지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문정인 : 과거 일국사회주의란 개념을 상기해 볼 때 중국이 이제는 일국이기주의에 빠진 것 아니냐는 지식인들의 자기반성 같은 의미이다. 그렇게 보는 게 타당하다. 국제적인 공헌도 하고 리더십도 발휘하고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열망이 그런 표현으로 나왔다고 보는 게 맞다. 나로서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들었다.
프레시안 : 민주주의 문제로 넘어가서, 인터뷰한 사람들은 민주주의라는 말을 안 쓰고 정치 발전이란 표현을 쓰면서 당·정·군 분리, 전인대 권한 강화 같은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방에서는 아직도 중국을 공산당 일당독재로 보고 있고, 인터뷰한 사람 중 하나는 '민주주의 측면에서 중국은 북한보다 조금 나은 체제에 불과하다'고까지 말했다.
문정인 : 모든 국가의 제도에는 관성이 있다. 1949년 혁명 이후 중국공산당이 영도를 해왔다. 지금은 중국공산당이라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에 있는 이 제도를 서구 민주주의와 접목시키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왕이저우 부원장은 '우리도 민주주의 있다. 광저우(廣州) 같이 남부 지역에 가면 지방선거를 하고 있고 밑으로부터의 민주주의 열기가 일어나고 있고 점차 제도화되고 있다. 당 안에서, 그리고 당·정·군 사이에서도 엄청난 논쟁이 있다. 학계도 마찬가지다. 또, 언론을 통제한다고 하지만 <환구시보(環球時報)>를 봐라. 그런 식으로 삼권분립도 형성되어 가고 있고, 특히 사법부의 힘이 상당히 강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시민 참여, 삼권분립이 점차 이뤄지고 있다.
특히 가장 큰 변수는 세대 교체다. 지금 공산당이나 국무원은 물론 거의 모든 분야의 핵심 자리에는 학번으로 치면 80~82학번들이 지도적인 그룹으로 있는데, 그들은 대부분 텐안먼 사태 때 학교에 다니면서 시위를 했던 사람들이다.
프레시안 : 그렇지만 공산당의 영도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인가?
문정인 : 그렇다. 공산당원이 되어야 핵심적인 자리에 갈 수 있는 건 물론이다. 그게 중국식 삶의 패턴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중국도 변화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만난 사람들도 중국공산당의 부조리나 모순이 상당히 많은데, 지금 그걸 하나씩 발견하면서 고쳐 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솔직한 말을 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단시간에 이뤄지겠느냐, 시간이 걸린다, 그걸 봐줘야 한다, 그렇게 말했다. 우선 서구식 민주주의가 중국 토양에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옳다 해도 제도를 변화시키려면 시간이 필요하지 당장 바꿀 수 없지 않느냐는 게 그 사람들의 생각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한국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MB 외교의 거대한 착각
프레시안 : 한반도 문제로 넘어가자. 책을 보면 북핵 문제에 대해 중국 내 의견도 일치되지 않고 있고,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해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정인 : 기본적으로 중국 사람들은 6자회담이 잘 되길 바란다. 후진타오 외교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이 6자회담이고, 중국이 의장국이기기 때문에 뭔가 성과를 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상당히 강하다. 그들도 북한이 핵을 가지는 걸 원치 않고, 2005년 6자회담에서 나온 9·19 공동성명에 대해서는 냉전 후 나온 가장 성공적인 문서라고 생각한다. 이게 기본 전제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표현한 중국의 속내가 있다. 북한 문제가 이렇게 나락으로 빠져들고 어렵게 된 것은 한·미·일 3국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앞으로도 한·미·일이 협조를 잘 안 해서 북핵 문제가 안 풀린다고 해도 중국이 북한하고 못 지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설령 북한이 결국 핵을 가지더라도 중국과 선린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는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는 생각도 있다.
그런 소리를 듣고 내가 '그럼 북한이 핵 갖는 거 동의한다는 말인데, 그렇게 되면 일본이나 한국도 가지려고 할 것 아니냐?'고 따지는 식으로 물었더니 '과연 미국이 그런 상황을 허용하겠나? 우리한테는 그런 식으로 허풍 치지 마라'고 답하더라.
그러면서 중국 사람들은 '6자회담을 만든 이유가 뭐냐. 북·미 양자대화 시키려고 만든 건데 왜 그 판을 깨느냐'는 것이다. 한때는 미국이 판을 깨다가 조금 유연하게 나오면 일본이 깨고, 한국도 깨고, 이렇게 3국이 돌아가면서 판을 깬다는 인식이 강하다. '한·미·일은 북핵 해결에 관심 없지 않느냐. 김정일 체제가 붕괴한 후에 핵 문제 해결하겠다고 하는 것 같은데 중국이 보기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미국이 얼마 전 북한 급변 사태에 관해 논의해 보자고 중국 쪽에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북한이 붕괴되지 않을 것이고, 그걸 원치도 않는다는 입장이다. '협상을 통해 풀어야 하는데 협상판을 다 깨고 있다. 그러니 알아서 하라'는 일종의 체념도 보인다. 특히 한국을 많이 비판한다.
프레시안 : 중국은 할 만큼 했는데 한·미·일 때문에 안 된다면 교착 해소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문정인 : 결국 미국에 달려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우리가 틀면 미국도 안 나올 거라고 자신하는 것 같다. 그게 오바마 정부의 한계인데,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프레시안 : 중국 사람들은 한미동맹에서 '가치동맹'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한국이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MD) 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한중관계의 마지노선이라고 말했다.
문정인 : 중국 사람들의 얘기는 이렇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한미 동맹을 잘 하겠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반대하지 않았다. 다 인정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 와서 한중 관계는 왜 이렇게 됐나? 지금 정부는 한미 동맹에 가치동맹이라는 표현을 쓰기 때문에 한미 동맹 강화라는 구호가 결국은 중국 견제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실제로 그렇게 행동해 왔다.'
프레시안 : 천안함 사고 이후 한중 관계에 대해서는 어떤 말들을 하나.
문정인 :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의 케이스를 보면 알 수 있다. 주펑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입장을 그나마 많이 이해해 주고 북한에 대해서는 비판도 많이 하면서 대표적인 전략파로 분류되어 왔다. 그런데 천안함 사건이 나고 나서 완전히 반(反)MB로 돌아섰다.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 중에 이명박 정부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전략파라고 불렀는데, 물론 그 분류에도 무리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천안함 이후 없어져 버렸다.
나는 CCTV의 영어 채널 '채널9'에서 정기적으로 코멘테이터를 한다. 천안함 사건이 한창 고조됐을 때 나한테 보낸 질문을 보니까 걱정이 많이 됐다. '왜 한국 사람들은 중국을 위협으로 인식하느냐?' '중국은 서해에서 항공모함이 동원되는 한미 해상 군사 훈련을 했을 때 미국과 한국 물품에 대한 불매 운동을 할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네티즌 의견을 반영해서 나온 질문인데 그만큼 중국의 여론이 들끓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대통령이 왜 상황을 이렇게 방치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중국을 너무 우습게 봤고 가볍게 봤다.
프레시안 :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을 주중 대사로 보내면서 중국에 상당히 신경을 쓴다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나?
문정인 : 누군가 역대 주중 대사 중에서 황병태 대사가 가장 일을 잘했다는 말을 했다. 실제로도 그랬지만, 환경적인 이유도 있었다. 텐안먼 사태 이후 중국이 고립됐을 때 한국이 수교를 통해 손을 잡았으니까 중국도 한국한테 잘 해준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중국이 아쉬울 게 없는 상황에서는 대통령 측근을 보낸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다. 중국이 우리한테 아쉬울 때면 센 사람을 보내는 게 좋지만, 우리가 중국한테 얻을 게 많을 때는 오히려 노련한 전문 외교관,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외교관을 대사로 보내야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정부는 자신들이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미국의 도움 때문에.
프레시안 :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 국제관계학과 교수가 '한국이 소외될까 두렵다'고 했던 말이 인상에 남았다. 한국은 중국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문정인 : 책을 보면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온다. '한국 사람들은 자기네 말만 하고, 중국을 자꾸 바꾸려고 한다는 말을 한다. 한국이 바꾸라고 해서 중국이 바꿀 나라냐. 중국 입장도 들어 달라'는 것이다. 중국 전문가들이 내 인터뷰에 호의적으로 응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과거에 장관급 자리까지 있었던 학자가 중국에 와서 발로 뛰어다니면서 자신들의 말을 듣겠다고 하니까 고마워한 것이다.
결국 역지사지의 태도를 가지고 중국을 이해하려고 하고, 어떻게 하면 양국의 최대공약적인 이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잘못은, 워싱턴을 통하면 중국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완전히 깨져 버렸다. 중국 사람들이 그런다. '동북아에 큰 문제가 생기면 미국이 누구랑 얘기할까? 한국인가? 아니다 중국이다.' 한국이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센 나라인 줄은 알아도 중국이 센 줄은 모른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인터뷰한 전문가들이 중국의 정책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나.
문정인 :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우선 현대국제관계연구중심이라는 건 중국 안전부 산하에 있는 연구기관이다. 왕지쓰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은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소장을 한 사람으로 중국 지도부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다. 미국의 제프 베이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 보좌관은 중국에 오면 제일 먼저 왕지쓰의 연구실을 찾는다. 그 사람 얘기를 듣고 움직이는 것이다.
친야칭(秦亞靑) 외교학원 상무부원장은 외교관을 양성하는 기관의 책임자이기 때문에 영향력이 상당하다. 장윈링(張蘊嶺) 중국사회과학원 국제학부 주임은 정책에 직접 관여한다. 옌쉐퉁(閻學通)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장은 인민해방군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왕이저우(王逸舟)와 친야칭은 외교부의 핵심 중 핵심이다. 장위옌(張宇燕)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 및 정치연구소장은 동아시아 정책에 상당히 관여를 많이 한다. 일반적인 동아시아 정책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공동체론, 동북아 자유무역협정(FTA) 등은 그 사람이 다 주도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리빈은 핵 군축 쪽 핵심 브레인이다. 이런 식으로 거의 다 연계되어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중국의 내일을 묻다>에 이은 문정인 교수의 다음 프로젝트는 일본이다.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방황하는 일본에 미래는 있는가'라는 주제로 일본 내 전략가들을 만나 또 하나의 대담집을 만든다는 것이다.
문정인 교수는 이러한 작업들을 종합해 "동아시아의 대전략(Grand Strategy)"라는 제목의 영어판 책을 쓸 계획이라고 한다. '국제적인 마당발' 문정인 교수의 다음 책들이 기대된다.
- 이전글문성근의 ‘100만 민란’ 첫날… 하늘도 서럽게 울더라 10.08.27
- 다음글세자책봉 vs 총리책봉 10.08.2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