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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래일에 사는 사람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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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541회 작성일 22-04-26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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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제 1 편 최 첨 단 목 표

2


진수현은 리윤덕이 부소장으로 임명되였다는 소리에 어지간히 놀랐었다. 진수현이 공동연구차로 떠나기 전부터 그런 기미가 보이기는 했지만… 정작 승급했다니 별나게 마음이 착잡해지는것이였다.

리윤덕은 리과대학 입학초기부터 빼여난 인물이였다.

《알고 지내자구! 리윤덕이라구 해, 함흥내기지.》

헌걸찬 자기 소개에 진수현은 인차 응대를 못했었다.

리윤덕은 첫 예비등교날 누가 시키기도 전에 낯선 입학생들을 휘동하여 강의실을 정돈하고 교구비품과 청소도구를 갖추는 분담조직을 한 다음 지시를 받으러 스스로 강좌실로 찾아갔다. 그날부터 윤덕은 학급의 책임자였다. 그를 보고 중뿔나게 나선다고 뒤소리를 하는 학급생들은 하나도 없었다. 어글어글한 눈에 열기가 펄펄 끓고 구변이 좋으며 궁리가 트인데다 성적이 출중하고 대학적인 웅변가요, 응원대장이 바로 리윤덕이였다.

한번은 평성사대와의 축구경기에서 7번으로 뛰던 진수현의 실수로 리과대학이 그만 패하게 되자 상모군차림에 턱수염을 붙이고 응원을 지휘하던 리윤덕이 두드리던 북통을 둘러메쳐 깨버린 일도 있었다.

대학졸업후 수현과 윤덕은 함께 현대화연구소에 배치되여왔다.

기계를 자동조종하는 장치들을 연구제작하는 이곳에는 수자조종장치실, 수행장치실, 로보트실, 유연체계실과 같은 연구실들이 수십개나 되였다.

그중에서도 제일 인기가 있는 실은 CNC(콤퓨터수자조종)기술의 정수를 연구하는 조종장치실이였다.

두사람은 다같이 이 조종장치실에 들어가고싶어하였다.

그런데 소장이 그들과 담화를 하면서 조종장치실은 이미 정원이 다 찼으니 수행장치실에 들어가는게 어떤가고 설복하였다. 그 말을 좇아 수현은 수행장치실로 갔지만 윤덕은 끝끝내 뻗쳐서 애초의 결심대로 조종장치실로 가고야말았다. 결국 윤덕은 조종기계의 《머리》를, 수현은 《손》을 연구하게 되였다.

두사람은 거의 동시에 실장이 되였고 학위도 받았다.

그후 진수현이 박사론문을 쓰자고 이야기하니 윤덕은 나라가 《고난의 행군》을 하는데 자기 론문이나 주무르는게 어쩐지 부끄러운 일처럼 생각된다고 대답하는것이였다. 말은 일견 그럴듯하였지만… 확실히 윤덕은 점점 더 당면과제에 치중하는것 같았다.

리윤덕은 큰 과제 책임자로 임명될 때마다 연구소행정에 제기하여 여러 실들의 중진들을 뽑아 연구조에 망라시켰다가 그대로 조종장치실에 눌러앉혀 력량을 보강하군 하였다. 대신 젊은 연구사들은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수현은 리윤덕의 일을 우려하지 않을수 없었다. 저러다가는 조종장치실의 전망적인 연구사업에서 부진이 올수 있었다. 이제라도 앞을 내다보며 후비를 키워야 할게 아닌가.

수현은 걱정되는 점을 윤덕에게 귀띔하였다.

한창 승세하는 《정예부대》를 이끄는 리윤덕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수현이 윤덕의 연구실에서 부진의 징조를 느낀것은 작년에 그가 진흥기계공장에 나가서 새형의 수자조종장치를 연구도입하던 때였다. 그 연구조에는 30살 이전의 젊은 연구사가 하나도 없었고 중진들이 개발했다는 조종장치는 세계 첨단수준에 따라서지 못하는것이였다.

현대화연구소의 일이 잘되려면 조종장치연구실부터 추켜세워야 하였다. 여기서 연구제작하는 수자조종장치 즉 기계의 《머리》가 좋아야 《손》을 연구하는 수행장치실이나 《머리》, 《손》을 다 제작하는 로보트실 그리고 진수현이 지금 실장으로 있는 유연생산체계실의 일이 펴일수 있었다. 유연생산체계는 직장, 공장단위로 이런 수많은 《머리》들에 콤퓨터로 종합지령을 주어 저절로 일하게 하는 체계였다.

결정적으로 조종장치실부터 세계첨단수준에 올려세워야 하였다.

진수현은 이번에 도이췰란드 학자들과 공동으로 조종분야의 새로운 최량화설계계산법을 연구하면서도 첨단급 수자조종장치들에 관심을 돌렸다.

지난 세기 중엽에 어느 한 나라의 공과대학에서 만든 수자조종후라이스반으로부터 시작된 CNC기술개발은 요즘 《열린형》이 추세로 되고있었다. 공업이 발전된 몇개 나라만 속에 꿍지고 돌아앉아 비밀리에 추진하던 《닫긴형》체계가 깨여져나가고 경쟁적으로 《열린형》을 개발하면서 고속화, 정밀화,복합화를 급속히 추진하고있었다. 주축회전수는 분당 15만회를 돌파하고 가공정밀도는 그야말로 리상적인 수준에로 치달아오르고있으며 다축종합선삭반과 같은 종합적인 CNC공작기계들이 계렬생산되고있었다.

여기서 핵심부분은 물론 수자조종장치였다.

진수현은 여러 나라들에서 온 CNC전문가들을 만나보았다. 그들도 잠을 자는것은 아니였다. 무서운 야심과 경쟁열, 뒤떨어지면 파산이라는 공포심으로 머리들이 화끈 달아있었으며 남들을 견주어보면서 다투어 《경기주로》를 달리고있었다. 잠시라도 방심하고 주춤거리다가는 그들을 따라잡을수 없을 정도로 아득히 떨어지는판이였다.

진수현은 이를 사려물지 않을수 없었다.

앞선 나라들의 성과들을 따라가며 모방만 하다가는 언제가도 세계 첨단에 이를수가 없었다.

그는 남들이 닦아놓은 평탄한 길에서 벗어나 새 지름길을 모색하였다.

새로운 방식, 우리 식으로 세계 첨단수준을 뛰여넘는수밖에 없다고 강심을 먹고 접어드니 눈이 트이고 길이 열리는것이였다.

과학자의 재능은 도식에서 벗어날 때 나타나는것이다.

진수현은 세계 최첨단급 수자조종장치를 개발할수 있는 기술비결의 실마리를 쥐고 귀국하게 되였다. 그것을 리윤덕의 실에 넘겨주려 했는데 막상 와보니 리윤덕이 부소장으로 올라갔다는게 아닌가.

그가 부소장이 되였으니 조종장치실에 내재하고있던 결함이 연구소적인 범위로 번져지지는 않을가? 그러면 그의 결함이 보다 많은 사람의 눈에 띄게 되고 연구소나 그의 처지가 오히려 이전보다 못해질수도 있다.… 너무 극단적인 예감일지도 모른다. 이번 승급을 계기로 혹시 리윤덕이 새로운 각오와 부소장다운 높은 안목을 가지고 연구소사업을 일신시키고 전망성있게 밀고나갈수도 있을것이다. 조직자적수완이 있고 손탁도 센 사람이 아닌가.

그럼 조종장치실은 누가 맡아 이끌어야 하는가?

승용차가 과학원 정문을 지나자 그의 생각에 마치 답변을 주듯 리윤덕이 넌지시 말했다.

《혹시 소장이나 비서가 자네를 보고 조종장치실을 맡으라고 권고할수도 있는데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게 좋겠네.》

《나한테 조종장치실을?!…》 진수현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뜻밖이였다.

《응, 비서가 더 그걸 바라는것 같네. 새로 온 일군이니까 귀가 넓을수밖에,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은 모양이야. 물론 옳지. 조종장치실을 잘 꾸리자는데는 나도 동감이네. 거기에 자네같은 후임을 앉히면 우선 나부터 마음을 놓겠네. 하지만 난 자네한테 맡기는걸 반대했어.》

《그래?…》

《그새 자네가 여러 실의 실장을 력임해왔는데 이제 또 다른 실을 맡으라는거야 좀 무리한 요구지. 안 그런가? 흔히 연구사 나이 마흔고개를 넘긴 다음부터는 이미 쌓아놓은걸 써먹는다고 하는데 이제 또 조종장치라는 새 학문을 터득해서 실장의 학적권위까지 세우자면 세월이 있나. 자네야 그러지 않아도 교류싸보계통이나 유연체계분야에서는 일러주는 권위자가 아닌가, 학자로서야 이제 뭘 더 바랄게 있나. 더구나 자네 시력도 자꾸 떨어지는것 같은데…》

《그럼 누구한테 맡기겠나? 중심실의 실장자리를 계속 비워둘수는 없는거구…》

《원, 제 걱정이나 하라구. 조종장치실에는 력량이 그쯘한 중진들이 많아서 일없네. 자네가 못하겠다고 딱 자르면 비서나 소장도 더 강하게 요구하지는 못할거네.》

《…》

진수현은 자기를 념려해주는 그 진정을 모르지 않았고 또 그의 론리가 십분 옳다고 여겨지면서도 웬일인지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승용차가 연구소마당에 가닿자 유연체계실 연구사들이 법석 떠들며 수현을 맞아들이고 성수가 나서 손짐들을 날라들였다.

연구소 초급당비서 김정태도 현관에 나와 그를 맞아들였다. 올해 50살인 비서는 반년전에 임명되여왔는데 수리계획법을 전공하던 사람이여서 그런지 매사에 깐깐하고 겸손하다는 평이 있었다.

비서는 진수현과 이야기를 하면서 3층에 있는 소장방으로 함께 들어갔다. 그뒤를 리윤덕이 따랐다.

나이 70을 바라보는 김응일소장은 몇년째 천식으로 신고하더니 지금은 퍼그나 기운을 차린것 같았다.

진수현이 소장선생의 신색이 퍽 나아보인다고 인사를 하니 그는 흐뭇하게 웃으며 숨찬 소리를 하였다.

《담배를 아예 끊었지. 그보다두 마음이 좀 편해지니 차도가 보이는것 같소. 내가 자주 병원신세를 지는 대신 저 윤덕부소장이 도맡아 수골하지. 그래 갔던 일은 잘되였소?》

진수현은 도이췰란드에서 진행한 공동연구정형을 보고하였다. 그는 두명의 연구사들과 협력하여 새로운 다변량보조변수최량화설계계산법을 내놓고 모의실험까지 거쳤는데 이 결과는 공업조종분야에서 널리 쓰일수 있는것이였다.

그 연구자료를 뒤적이던 소장이 진수현을 쳐다보았다.

《이번에 성과가 크구만. 끝내 이 문제를 풀어냈소! 이건 내놓고 떠들만 한 일이요. 수골했소. 허허…》

소장이 너무도 치사를 하는 바람에 수현은 열린형 수자조종장치개발에도 관심을 돌렸다는 이야기는 한마디로 스치고말았다. 이 문제는 먼저 윤덕과 따로 만나 진지하게 토의하고싶었다.

소장은 만족한듯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곁에 앉은 초급당비서와 눈을 맞추더니 아니나다를가 그 말을 꺼냈다.

《리윤덕동무가 부소장이 되면서 조종장치실의 실장자리가 비게 되였소. 조종장치실사업이 중요하니만치 수현실장이 그 부서를 맡아주었으면 하는데 …》

《…》

《물론 이 자리에서 당장 대답을 듣자는건 아니요. 수현실장은 이제 외무성에도 들리고 며칠간 려독을 풀면서 천천히 이 문제를 생각해보오.》

구석에 앉은 리윤덕이 수현에게 눈짓을 하였다. 못하겠다고 아예 딱 자르라는 신호였다.

《생각해보겠습니다.…》 진수현이 대답하였다.

그는 유연체계실로 내려와 짐들을 풀면서도 그리고 자기 연구실과 수행장치실, 로보트실들에 자료들과 실험설비들, 기념품들을 이것저것 나누어주면서도 그 생각에서 헤여나지 못했다.

그는 생각을 가다듬고 입직년한이 어린 제대군인출신 연구사 리정철이로부터 시작하여 매 연구사들이 넉달간에 한 일들을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세포비서 리병섭이 오늘은 그만 집으로 들어가라고 그의 등을 떠밀었다. 퇴근시간도 다 되였다.

언제보나 유쾌하던 임창만이 오늘따라 남들의 뒤전에서 수굿하고있더니 마침내 진수현실장에게 다가와 귀속말을 했다.

《저-래일 저녁쯤에 실장선생님이 시간을 좀 낼수 있을가요?》

《오, 론문을 다 썼다고 했지.》

《그보다 좀 별난 일이 있어서…》

《창만동무, 이젠 실장선생을 좀 놔주라구.》

세포비서가 소리쳤지만 진수현은 임창만의 귀전에 대고 물었다.

《무슨 일인데?》

임창만은 어처구니 없다는듯 헤식은 웃음을 지었다. 《혜련이 어머니가 실장선생님을 만나서 확답을 받구야 딸을 나한테 맡기겠다는겁니다.》

혜련이란 마스크제작소에 다니는 연구사처녀인데 창만이와 문화회관에서 예술소조련습을 하면서 서로 눈이 맞았다는것을 진수현도 알고있었다.

《내가 무슨 확답을 한단 말이요?》

《실장선생님이 녀자측 부모들앞에서 날 보증해야 한다는거지요. 실험공출신이라고 탐탁치 않게 보는 모양입니다. 그래 석달째 약혼식을 미루고있습니다.》

《이제 같이 가보자구.》

진수현은 대학시절의 스승인 지형원교수의 댁으로 가는 길에 창만의 애인네 집에도 들려보기로 작정하였다.

《오늘은 그만두십시오. 래일쯤…》 창만은 미안한 기색이였다.

《이런 일은 오래 끌면 재미가 없지. 그러지 않아두 새살림동쪽으로 가려던 참이요.》

가는 길에 임창만은 딴 소리를 꺼냈다.

《지금 연구소에 어떤 소리가 돌고있는지 아십니까, 실장선생님이 이제 조종장치실을 맡게 된다는겁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진수현은 자기로서도 괴이한 질문을 했다. 《그래, 임동문 그 소릴 믿나?》

《그야 뭐 실장선생님의 로정을 돌아보면 뻔하지 않습니까. 수행장치실로부터 로보트실, 유연체계실 그리구 이번엔…》

《…》

《실장선생님, 이번에 조동될 때두 날 데리고 가시겠지요?》

《원 사람두, 누가 금시 떠나는것처럼 그러누만.》

《글쎄 혼자 가시면 안됩니다. 내 론문도 끝까지 봐주셔야지요.》

《이젠 내편에서 임동무의 도움을 받아야 할것 같소.》

《그럼 약속하셨습니다, 예?》

《허허…》

수현은 피치 못할 그 무엇이 자기앞으로 다가오는것 같았다.

두사람은 처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창만은 처녀와 함께 전실에 남고 진수현은 아래방에 안내되여 처녀의 부모와 마주앉았다.

레이자박사인 아버지는 방구석에서 이따금 점잖게 헛기침을 할뿐이고 어머니가 앞에 나앉아 수현실장을 부르게 된 경위를 루루이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자기가 36살에 혜련이를 낳기 전날 밤 친정어머니한테서 들었다는 고담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빨래줄같이 늘어지다가 드디여 처녀총각이 좋아하는걸 눈치채게 된 대목에 이르자 잠간 숨을 돌리며 랭수로 목을 추겼다.

《얘기를 좀 당길수 없겠소?》 하고 남편이 주의를 주었지만 녀인은 혜련이 일생이 좌우되는 중대산데 조급해 말라면서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난 딸에 대한 탄식과 흔한게 총각들이지만 정작 제 사람 고르려면 힘이 든다는 푸념, 총각이 실험공출신이라는 소리에 실망하여 여러 갈래로 뒤조사를 하던 끝에 이제 실장한테까지 알아보고 아퀴를 짓자고 했다는 만단사연을 늘어놓는것이였다. 《근데 실장선생이 인제야 돌아왔구려. 정말이지 학수고대했수다. 그래 창만이 저 사람이 쓴다는 론문이 성사될것 같애요?》

과학원지구에 사는 녀인다운 질문이였다.

《예.》 하고 진수현이 대답하였다.

《사람됨은 어떤지?》

진수현은 8년간의 일을 돌이켜보았다.

《글쎄요. 난 마음에 듭니다만 기본은 당자들끼리…》

《얘들아!- 이젠 들어오너라.》

그리고 혜련이 어머니는 진수현에게 술잔을 권했다.

《이담에 저 애들 금슬이 좋으면 그만이지만 티각태각하는 날엔 실장선생이 책임지라구요. 옛날부터 이 노릇 잘하면 술이 석잔이요 잘못하면 뺨이 석대라고 하잖았어요.》

《술은 못 마시겠습니다.》

《아니, 후에 책임 안 지겠다는 소리요?》

《이제 들릴데가 있어서… 잔치때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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