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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석의 정치탐사] 무엇을 위해 전력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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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490회 작성일 22-04-1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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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석의 정치탐사 제14화

2022년 4월 14일

무엇을 위해 전력해야 하는가?

한호석 (정치학 박사, 통일학연구소 소장)



1989년 3월 27일 김일성 주석은 평양을 방문한 문익환 목사를 접견하였다. 김일성 주석은 문익환 목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조국통일문제에 관한 중요한 담화를 하였다. <통일뉴스> 통일역사자료실에 있는 담화록의 마지막 부분에 문익환 목사의 발언이 다음과 같이 수록되었다.

"남쪽에도 통일장애요인들이 있어서 이걸 제거하려고 우리는 힘을 다 합니다. 그것이 곧 민주화운동입니다. 그것은 남쪽에 사는 우리 책임입니다."

위의 인용문에서 문익환 목사는 남측에 있는 통일장애요인들을 제거하기 위해 민주화운동에 전력한다고 말했지만, 민주화운동과 조국통일운동은 구분되어야 한다. 운동의 전개범위에서 차이가 보인다. 민주화운동은 남측의 진보적인 사회정치세력이 수행하는 지역운동이고, 조국통일운동은 남, 북, 해외를 포괄하는 전민족적인 운동이다. 민주화운동과 조국통일운동은 성격, 역할, 임무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양자를 동일시할 수 없다.

원래 민주화운동이라는 개념은 1980년대 전두환종미우익정권을 반대하는 대중투쟁 속에서 정립된 것이다. 그 이전 박정희종미우익정권 시기에 남측의 진보인사들은 그 정권을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하면서도, 자기들의 투쟁을 민주화운동이라는 개념으로 인식하지 못했고, 재야운동 또는 반유신투쟁 같은 통속적인 개념을 사용했었다. 그러다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을 전환적 계기로 하여 남측 진보운동의 인식이 심화, 발전되면서 민중항쟁과 민주화운동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정립되었고, 민주화운동의 최고발전형태를 민중항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광주민중항쟁은 광주시민들과 전남도민들이 손에 무기를 들고 계엄군에 맞서 싸운 무장항쟁이었는데도, 종미우익정권은 광주민중항쟁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격하시켰다.

주목되는 것은, 민주화운동이 초기단계, 발전단계, 완성단계로 진전된다는 사실이다. 문익환 목사가 담화 중에 언급한 민주화운동은 초기단계의 민주화운동, 곧 반독재민주화운동이다. 민주화운동이 반독재민주화운동을 넘어서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면 진보적 정권교체운동이 전개된다. 그리고 진보적 정권교체운동이 고도로 발전하여 진보정권을 세우면, 그것이 곧 민주화운동의 완성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민주화운동을 초기단계와 발전단계를 거쳐 완성단계로 진전시키는 동력은 대중투쟁에서 나온다. 대중은 자신의 투쟁을 전개하면서 민주화운동을 완성단계로 상승, 발전시켜나간다. 그러므로 민주화운동은 반독재민주화운동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대중투쟁을 통해 진보적 정권교체운동으로 강화, 발전되고, 최종적으로는 진보정권수립운동으로 상승, 발전하게 된다. 민주화운동은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사회력사발전과정이다.

그런데 민주화운동이 사상적, 정치적, 조직적 준비를 갖추지 못하면, 대중투쟁이 전개되어도 종미우익정권을 무너뜨릴 수 없으며, 설령 무너뜨린다 해도 진보적 정권교체운동으로 상승, 발전하지 못하고, 다른 종미우익세력이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남측에서 전개되어온 민주화운동역사에서 그런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이를테면, 1960년 4월 민중항쟁으로 이승만종미우익정권이 무너졌으나, 당시 민주화운동은 진보적 정권교체운동으로 강화, 발전될 수 있는 사상적, 정치적, 조직적 준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장면종미우익정권이 세워졌고, 1961년 5월 군사정변을 일으킨 박정희종미우익정권이 들어섰다. 1987년 6월 민중항쟁으로 전두환종미우익정권이 무너졌으나, 당시 민주화운동은 진보적 정권교체운동으로 강화, 발전될 수 있는 사상적, 정치적, 조직적 준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노태우종미우익정권으로 교체되었다.

민주화운동을 진보적 정권교체운동으로 강화, 발전시키는 사상적 준비는 그 운동의 주체가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심화, 발전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주체라는 진리를 깨닫고, 그런 진리에 의거하여 진보적 민주주의의 역사적 발전전망과 과학적 실현방도를 습득하는 것이다. 또한 민주화운동을 진보적 정권교체운동으로 강화, 발전시키는 정치적 준비는, 정권교체를 당면목표로 제기한 진보적 사회정치세력이 결집하여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것이다. 또한 민주화운동을 진보적 정권교체운동으로 강화, 발전시키는 조직적 준비는, 진보정당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지지기반 위에서 자기의 조직정치력량을 계속 장성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민주화운동은 진보적 정권교체운동으로 강화, 발전되지 못하였다. 2000년 1월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이후 어느덧 22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 진보당은 약체정당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95년 11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창설된 이후 어느덧 27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민주노총은 진보정당과 전면적으로 결합하지 못하였다. 2016년 10월 말부터 2017년 4월 말까지 전개된 박근혜종미우익정권을 퇴진시키는 대중투쟁이 활발히 전개되었지만, 그 대중투쟁은 1980년대 반독재민주화운동 이상으로 발전된 것이 아니었다. 1980년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진보정당과 민주노조가 오늘 존재하는 데도, 오늘의 민주화운동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전진하지 못한 원인을 밝혀내야 한다. 대중투쟁이 1980년대 반독재민주화운동 이상으로 발전되지 못한 주요원인은 대중투쟁을 이끌어야 할 주도세력의 사상적 준비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진보당과 민주노총이 진보적 민주주의의 역사적 발전전망과 그것의 과학적 실현방도를 심층적으로 연구, 습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상적 준비가 미흡하면, 대중투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도 없고, 대중투쟁의 주도세력으로 일어설 수도 없다. 사상적 준비가 사회정치운동의 수준을 결정한다.

그런데 위의 인용문을 다시 읽어보면, 문익환 목사는 민주화운동을 통일장애요인들을 제거하는 대중투쟁으로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그가 노태우종미우익정권을 통일장애요인으로 보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종미우익정권과 통일장애요인을 등치시키는 것은 단견이다. 진짜 통일장애요인은 종미우익정권이 아니라, 제국주의국가이다. 이 땅의 종미우익정권은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체제에서 산생되고 그 체제에 기생하는 부산물이다.

그러므로 부산물을 제거하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주산물을 제거하려고 애써야 한다. 주산물을 제거하지 않으면, 부산물을 제거할 수 없다. 만일 주산물을 제거하지 않고 부산물만 제거하면, 또 다른 부산물이 나타나게 된다. "십년 공부 도로 아미타불"이라는 말은 그런 경우에 쓰는 속담이다. 그러므로 주산물을 제거하기 위한 반미자주화운동을 전개해야 하며,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체제에서 벗어나 자주화를 실현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민주화운동과 반미자주화운동을 절반씩 병행하여 추진하면 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게 아니라, 반미자주화운동을 앞세우고 그 운동에 전력해야 한다. 반미자주화운동에 전력해야 하는 까닭은, 민주화운동이 승리하여 종미우익정권이 진보정권으로 교체된 이후에 그 새로운 정권이 반미자주화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반미자주화가 실현되어야 종미우익정권을 진보정권으로 교체할 수 있고, 그 새로운 정권이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보정권의 성격과 구성, 역할과 임무, 그리고 진보적 민주주의의 성격과 내용에 관해서는 심층적인 분석과 고찰이 필요하므로, 이 짤막한 글에서 서술하기 어렵다.)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체제 아래서 종미우익정권이 진보정권으로 교체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정치적 환상에 불과하다. 미국의 제국주의체제에서 벗어나는 반미자주화가 실현되어야 진보정권을 수립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반미자주화운동은 2002년 6월 두 명의 중학생이 미국군 장갑차에 깔려 압사당한 사건을 전환적 계기로 하여 대중운동으로 발전될 것처럼 보였으나, 지난 20년 동안 대중운동으로 발전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체제를 떠받쳐주는 한미동맹을 신성동맹으로 섬기는 굴종적인 종미우익사상이 대중의 의식 속에 여전히 만연되었다. 우리 사회는 우크라이나와 더불어 전 세계에서 종미우익사상이 가장 만연된 기형적인 사회다. 우리 사회의 종미우익세력은 반북적대감을 선동하여 대중을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체제에 굴종하게 만들고, 우크라이나의 종미우익세력은 반로씨야적대감을 선동하여 대중을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체제에 굴종하게 만든다. 동맹의 간판 아래서 굴종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반미자주화운동의 투쟁목표는 한미동맹을 철폐하는 것이며, 한미동맹을 철폐하기 위한 반미자주화운동에 전력하지 않으면, 민주화운동은 언제가도 1980년대 반독재민주화운동 이상으로 발전할 수 없다.

모든 진보운동이 그러하듯이, 반미자주화운동도 사상적, 정치적, 조직적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위력적인 대중투쟁으로 발전할 수 없다. 반미자주화운동의 사상적 준비는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체제를 과학적으로 인식한 기초 위에서 반제자주사상을 정립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연구와 토론이 더욱 활발히 진행될 필요가 있다. 또한 반미자주화운동의 정치적 준비는 대중투쟁을 한미련합군사훈련반대운동과 평화협정체결촉구운동에서 출발시켜 주한미국군철거운동과 한미동맹철폐운동으로 더 높이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다. 또한 반미자주화운동의 조직적 준비는 진보당과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적 사회정치세력들이 결집한 광범위한 반미연대전선체를 건설하는 것이다. 사상과 조직이 있으면, 큰 산도 떠옮길 수 있고, 바다도 메울 수 있다. 오늘 우리는 1980년대의 반독재민주화운동에 머물러 있을 수 없으며, 답보상태에서 벗어나 전진의 길에 들어서야 한다.

(김일성 주석과 문익환 목사의 담화에 대한 서술은 다음 주에 발표할 글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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