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싸움의 역사(11)//진화하는 4세대 전투기, 모두를 경악시킨 베카계곡의 혈투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개싸움의 역사(11)//진화하는 4세대 전투기, 모두를 경악시킨 베카계곡의 혈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나그네
댓글 5건 조회 41,591회 작성일 10-09-13 11:15

본문

                                    개싸움의 역사(11)

                   -진화하는 4세대 전투기, 모두를 경악시킨 베카계곡의 혈투-

    베트남전쟁이 끝나가던 70년대 초부터 이미 미소 양국은 베트남의 공중전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4세대의 전투기 설계에 몰입했습니다. 그 첫 작품이 미 해군이

74년에 실전배치한 F-14톰캣 전투기입니다. 톰캣은 지금도 항공사에 걸작으로 손꼽히는

제공전투기지만 처음 나왔을 당시에는 가히 스텔스 전투기 랩터에 버금간 충격을 일반에

던졌던 최첨단 전투기였습니다. 컴퓨터가 파일럿의 비행지시를 제어해주는 플라이바이

와이어 방식을 채택하여 높은 중력 가속도에서도 조종편의를 높이는 것으로 시작해 미군

최초의 가변익(최초의 가변익 항공기를 설계했던 것은 독일의 루프트바페였으나 이의 실

용화까지 30년의 세월이 걸림) 방식 전투기답게 다양한 속도변화에 따라 날개의 형태를

변형하여 훨씬 안정감 있고 유연한 기동이 가능해졌고 이 때문에 커다란 덩치를 가졌음

에도 항모에서의 이착륙과 선회기동이 용이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의 전훈을 최대한 반영

해 20밀리 벌컨포(675발의 탄약적재량은 역대 그 어느 전투기보다 많았습니다)를 고정무

장으로 장착해 근접공중전에서도 위력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톰캣의 가장 경이로운 성능은 당시 3세대 전투기들이 레이다로 하나의 목표만

을 공중에서 추적하고 공격할 수 있었던데 비해 다중 목표에 대한 추적과 동시 공격이 가

능한 최초의 멀티태스킹 전투기였다는 것입니다. 톰캣은 최대 200킬로 너머의 24개의 목

표에 대해서 동시 탐지와 추적이 가능했고 이중 6개의 목표에 대해서 사정거리 160킬로의

장거리 AIM-54 피닉스 미사일로 동시에 발사 격추할 수 있었습니다. 이 얘기는 F-14 전투

기 한대로 실전에서는 그간 써왔던 F-4 팬텀 전투기 여섯 대의 역할을 한꺼번에 할 수 있

음을 의미했고 그 사정거리 역시 기존 스패로우의 몇배를 넘는 우수한 것으로 함대의 방

공망 구축은 물론 제공전투에서도 획기적인 전환을 예고한 것이었습니다.

 

   F-14 톰캣은 미해군의 요구사항이었던 원거리에서 접근해 미항공모함을 공격하려는 소련

의 전폭기들이 대함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탐지해 추적 격추할 수 있는 전천후 함대

방어용 제공 전투기였습니다. 또한 팬텀과 동일한 수준의 스패로우와 사이드 와인더를 탑

재할 수 있는, 오직 공대공 제공역할만을 하도록 설계된 전투기였다는 점에서 미해군이

베트남전에서 얼마나 새로운 제공전투기(그러나 냉전이 끝난 후 톰캣에도 지상공격용 센

서와 포드를 장비해 톰캣 역시 전폭기 역할도 가능하도록 변형되기는 했으나, 톰캣은 현

역배치기간 대부분을 제공전투기로 활동하다 2006년 퇴역했습니다. 이후 미해군은 다시 다

목적 FA-18 수퍼호넷을 주력함재기로 사용중입니다)에 목말라 했었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미 공군 역시도 새로운 4세대 전투기 개발을 서둘러 팬텀(F-4팬텀은 평소 항공분야에

서 묘한 라이벌 의식으로 대립하곤 했던 미공군과 해군이 동시에 사용한 유일한 전투기

로 역사에 기록됩니다. 뭐 그만큼 걸작이라는 얘기지요. 베트남에서 조금 고전을 했었지

만) 이후의 차세대 전투기로 하이-로 믹스 개념을 도입해 고성능이며 다목적 활용이 가능

한 F-15이글(76년 실전배치)을 하이 기종으로, 다소 저렴한 가격의 제공전투용으로 쓸

로 기종으로 F-16 팰콘(78년 실전배치)을 채택합니다. 독수리(이글)와 매(팰콘)는 최우선

적으로 공중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역시도 베트남 전쟁의 교훈이 철저하

게 반영되었습니다. 근접 공중전을 위해 20밀리 기관포를 장착했고 두 전투기 모두 제공

전투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F-86 세이버 이후 하늘에서의 우위를 선점하는

전투기다운 전투기로의 회귀를 의미했습니다. 또한 전자탐지장비의 개선에도 힘을 쏟아

여태까지 전투기 레이다의 약점으로 지적되어온 룩다운(저공에 있는 목표 탐지)과 슛다

운 능력(저공에 있는 목표에 대한 공격)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3세대 전투기들의 레이다는 자신과 비슷한 고도 혹은 더 높은 고도에 떠있는 적기를

탐지하는 데에는 별 다른 어려움이 없었으나, 자신보다 낮은 저공에 있는 항공기들에 대

해선 제대로 식별하지 못했습니다. 레이다의 전파가 지상에서 반사되면서 난반사를 일으켜

목표물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지요. 그 때문에 베트남전에서도 저공에서 머무는 미그를 미

처 발견하지 못해 역습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 했었구요. 팰콘과 이글의 레이다는 탐지거

리의 향상과 더불어 이러한 난반사를 걸러내고 저공에 있는 항공기들도 식별할 수 있는

도플러 펄스장치를 부착하여 본격적인 원거리 비가시권의 공격이 가능토록 했습니다.

 

  또한 미사일의 성능개량에도 힘을 써 레이다 유도 스패로우의 탐지거리와 정확성을 높

였고 급격한 중력가속도가 걸리는 기동상황에서도 조준발사가 가능하도록 개선했습니다.

열추적 사이드 와인더 미사일 역시 성능을 개량해 목표항공기의 후미 열배출만을 추적하

지 않고 전면 엔진 흡입구의 열배출만으로 조준과 사격이 가능하도록 적외선 탐지장치의

성능을 강화했습니다. 또한 태양열과 전투기의 배출열의 구분이 가능해져 이제까지 열추

적미사일을 회피하는 데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되었던 태양쪽으로의 도피가 원천적으로 불

가능해져 버립니다. 한마디로 베트남전에서 실전을 경험한 파일럿들의 성능개선요구들이

대부분 반영된 결과물이 미 공군과 해군의 첫 번째 틴시리즈(Teen series)들인 F-14 톰

캣, F-15이글, F-16팰콘, F-18호넷들이었지요. 또한 미 공군은 차세대 중거리 미사일인

암람(AMRAAM)이 실전배치 되면서부터는 해군의 피닉스 미사일과 같이 중장거리 (80킬로-

150킬로)에서도 다중 목표를 탐지하고 동시에 이를 발사 격추하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하게

끔 진화합니다. 암람은 여태까지 해군이 사용해왔던 최장사정거리의 피닉스 미사일이 표

적을 탐지하고 발사하여 중간까지는 F-14의 파일럿이 유도를 해줘야 했던 세미 레이더 유

도방식에서 일보 진전하여 일단 표적을 조준하고 발사하면 미사일 스스로가 알아서 표적

을 탐지하고 날아가 목표를 파괴하는 Fire&Forget방식(전문용어로 말하면 능동형 레이다

유도미사일, 영어로는 Active Radar Homing Missile)으로까지 진화해버립니다. 뿐만 아

니라 레이저로 표적을 조준하는 폭탄을 비롯한 각종 정밀 지상타격무기들을 탑재할 수 있

도록 꾸준하게 성능개량이 이어져 베트남 전 이후 그 어떤 전폭기들보다 더 정밀한 지상

타격능력과 폭격능력도 함께 보유하게 됩니다. 베트남전에서 활약했던 전폭기들은 대규

모 폭격능력을 중시하고 공중전 능력을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한 반면, 4세대 이글과 팰콘

과 호넷은 공중전의 우위를 점하는 전투기의 기본적 제공능력을 최우선시하면서도 정밀

지상타격 능력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달랐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밀지상타력 능

력이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걸프전으로 미군의 전폭기들은 목표한 표적을 거의

90%이상 명중시키는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능력을 과시합니다.(물론 개중에는 패트리

어트 지대공 미사일처럼 실제 성능이상으로 과장되거나 과대포장된 경우도 있었지만)

 

 

    소련 역시도 계속되는 냉전과 베트남 전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계속 신형 전투기개발에

나서지만, 사실 70년대부터 소련의 전투기 개발은 서서히 미국에 뒤처지기 시작합니다.

체제특유의 경직성과 관료화로 인해 새로운 전자전개념의 전투기 설계를 등한시 했으며

무엇보다 전자기술의 낙후로 우수한 기초과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실용화하

는데 한계를 드러냈고 미국과 서방세계가 이뤄낸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미 60년대 중반 미국보다 앞서서 가변익설계를 택한 신형 미그 23 전투기를 개발해냈

으나, 미국의 톰캣은 속도에 따라 컴퓨터가 날개의 모양을 알아서 제어해주는 플라이바

이와이어 방식이었던데 비해 소련의 미그23은 파일럿이 손잡이를 돌려서 날개의 모양을

바꿔줘야 했습니다. 원래부터 인체의 편의성을 중요시하지 않던 소련제 무기들이었지만,

몸을 가누기도 힘든 중력가속도가 걸리는 실전상황에서 이런 수동식 제어장치는 점점 고

속화되는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설계방식이었고 반도체 기술이 미국보다 뒤떨어지면서

대체적인 전자전 장비가 낙후한 상태로 진보하지 못해 이후 실전에서 약점을 노출하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미그 25전투기였습니다. 당초 미그 25전투기가 처음

서방의 정보기관들에 의해 탐지되었을 때, 미그 25의 최고속도는 무려 마하 3에 달하는

초고속이었고 한때 이 전투기를 능가할 미국의 전투기는 없을 것으로 우려해 비싼 가격

의 F-15 이글의 개발과 배치에 들어갔을 만큼 공포와 신비의 대상이었으나, 막상 76년

일본 북해도 공항으로 망명한 벨렌코 중위가 몰고 온 미그 25전투기는 다목적 전투기인

이글과는 달리 고공에서 미 폭격기를 공격하기 위한 요격기에 불과했고 기체 조사결과

서방의 전투기들에겐 보편화된 가볍고 단단한 티타늄이 아닌 일반 스테인레스 강판을 사

용하는가 하면, 이미 미국의 전투기들은 사용하지 않게 된지 20년이 넘었던 진공관이 장

착된 전자탐지장치가 발견되는 등, 상대적으로 실체가 과대평가되었음이 드러납니다.

 

  이후 소련이 본격적인 4세대 전투기를 내놓게 된 것은 80년대 말이 되어서 미그 29를 선

보이면서였습니다. 소련의 체제가 70년대를 넘어오면서 점차 동맥경화증상을 보이면서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 항공기개발 분야에서도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82년 비록

미소간의 직접 대결은 아니었지만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대규모 공중전에서 양측 전투기들

의 격돌은 미소 당사자를 모두 경악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른바 베카 계곡 상공의

공중전에서였지요.

 

 

   1982년 시리아는 내전이 발생한 레바논에 개입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협적으로 생각한

이스라엘과 또다시 전쟁에 돌입합니다. 이미 73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차지한 골란

고원의 반환문제로 내내 불편한 신경전을 벌였던 양측은 82년 레바논 사태로 또다시

일전을 겨루게 됩니다. 시리아 공군도 이번만큼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큰 위력을 발휘했던 레이다 관제에 의한 요격기술을 다년간의 소련군사고문들의 교육

으로 숙지했고 다수의 레이다 기지와 베트남전에서 미 공군을 괴롭혀 왔던 SAM 미사일

기지를 설치해두고 있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최신예 미그 23과 미그 25, 수호이 22기등

전통적으로 공중전에 강하다는 소련의 기종들을 도입하여 맹훈련을 쌓아왔었기에 이번

에는 10년전의 상황과는 달리 설욕을 해보일 심산이었습니다.

 

   이미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부터 예견된 잦은 분쟁과 다툼은 하루이틀의 일은 아니었으

나, 거의 30년에 걸친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항공력의 우위를 앞

세워 대부분 승리했고 특히나 공중전에서는 기본에 충실한 근접공중전 전술을 구사하여

일방적인 승리를 거뒀습니다. 특히 73년 6일 전쟁에서는 단 이틀만에 상대국인 이집트와

시리아의 공군력을 궤멸시키는 등 놀라운 실력을 발휘합니다. 70년대 세계 전투기 전쟁

의 역사에서 에이스가 된 사람들은 대부분 이스라엘 공군 파일럿들이었습니다.

 

   82년에도 시리아와의 일전을 앞두고 이스라엘 역시 충분한 대비를 해오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유태계의 로비가 든든했기에 미국의 최신 무기를 가장 먼저 공급 받을 수 있었던

이스라엘은 이미 미국의 최신예 전투기 F-15 이글(예를 들어 한국공군은 팬텀이 노후화

되면서 진작부터 이글의 구매를 희망해왔으나, 미국은 까다로운 수출심사와 일본의 방해

공작 등으로 꽤 오랜 기간 동안 한국의 요청을 무시했었을 정도로 이글의 수출은 까다로

웠지만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언제나 최우선적으로 이러한 최신무기가 공급되곤 했죠)과

F-16 팰콘을 모두 가지고 있었고 기존의 팬텀은 성능이 개량된 상황에서 와일드 위즐

(대 레이더 기지 공격)용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실전경험이 풍부한 우수한 파일럿들이

이들 최신 전투기들을 조종하고 있었습니다.

 

 

    82년 6월 6일 이스라엘군은 전차를 앞세우고 레바논으로 진격했고 시리아군과 PLO는

격렬하게 저항합니다. 6월 9일 이스라엘 공군은 시리아의 주요 레이다 기지와 SAM 미사

일 기지에 대한 공습을 감행 합니다. 이 공습에서 이스라엘 공군은 F-4E전투기에서 대

량의 레이다 교란 물체(채프)를 살포하여 일시적으로 시리아 공군의 지상레이다를 무력

화시킨후 레이더 유도폭탄과 공대지 레이다 전파 추적 미사일을 발사하여 25개의 SAM

기지중 23곳을 파괴하는 대전과를 올렸고 그러면서도 고작 한 대의 F-4전투기와 A-4공

격기를 잃는데 그쳤습니다. 또다시 아랍권은 전투초기에 기선을 제압당했고 특히나 레

이다 기지와 SAM미사일 기지가 대부분 파괴되면서 당초 계획했던 레이다 관제에 의한

이스라엘 공군기 요격이 불가능해집니다. 시리아 공군은 이미 전투초기부터 공중전을 위

한 눈과 귀가 없는 상황에서 전투를 벌이게 된 셈입니다. 이토록 SAM기지들이 공습을

당하자, 시리아 공군도 미그 23과 25 수호이 22등 최신예 전투기를 총동원하여 이스라엘

공군기들을 저지하고자 나섰고 이들은 베카계곡의 상공에서 3일 동안 2차대전이래 최대

규모의 공중전을 벌입니다. 베트남전에서 미군과 베트남군의 공중전이 자주 벌어지기는

기는 했지만 베카계곡의 공중전만큼 대규모의 전투기들이 단일 장소에서 정면충돌을 했

던 적은 한 번도 없었을 정도로 항공전사에 의미 있는 싸움이었지요.

 

   그리고 결과는 이스라엘 85대 격추 :시리아 1대 격추라는 압도적인 이스라엘 공군의

완승으로 끝났습니다. 지금도 시리아는 이 전투결과가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

만 베카 계곡의 공중전이후 시리아 공군은 한동안 전혀 전투기를 하늘에 띄우지 못했다

는 사실로 미뤄 볼 때, 시리아 공군은 나름 충실한 준비를 하고서도 또 한번 참패의

고배를 들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특히나 이 공중전의 일방적인 결과는 무기의 판매국이

자 스폰서였던 미국과 소련을 모두 경악케 했습니다. 미국은 미국대로 너무도 압도적인

승리가 못내 안 믿겼고 너무도 경악스러운 참패에 소련은 스스로의 기술력에 대해서 커

다란 회의와 함께 이 전투결과에 대해서 도리어 의구심을 가질 정도였지요.

 

   6월 9일부터 11일까지 3일 동안 베카 계곡의 하늘에서 벌어진 공중전에서 양측은 2개

에서 4개의 편대단위로 계속해서 공중전을 벌였는데, 이스라엘 공군의 F-15이글은 월등

한 레이다 탐지장비와 우세한 사격통제장치를 앞세워 44대의 미그기를 격추하는 동안

자신은 단 한 대도 잃지 않는 경이로운 성적을 냅니다. 특히나 스패로우 레이다 유도

미사일의 성능이 개선되어 상당수 시리아 공군 전투기들은 이글의 모습을 보기도 전에

날아온 미사일을 맞고 불덩어리가 되었습니다. F-16 팰콘의 경우도 이제까지 소련의 전

투기들에 비해 근접공중전에서 뒤졌던 징크스를 깨고 이글보다 더 우수한 근접 공중전

능력을 선보이면서 역시 한 대의 손실도 없이 34대의 미그를 격추했습니다. 특히 팰콘이

사용했던 열추적 사이드 와인더는 월남전에서의 사이드 와인더와는 달리 목표물의 전방

열만으로도 추적과 발사가 가능한 신형이어서 구식 열추적 미사일로 이스라엘 공군기의

후미를 잡기 위해 선회하는 미그 23과 수호이 22들에게 선제공격을 가해 전혀 상대에게

공격할 틈을 주지 않아 이를 확인한 소련과 시리아의 공군관계자들을 경악과 충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 신형 사이드와인더는 비슷한 시기 영국과 아르헨티나간에 벌어진

포틀랜드섬의 공중전에서도 음속보다 느린 해리어 전투기가 그보다 더 빠른 아르헨티나

의 A-4 전투기와 프랑스제 슈페르 에탕다르 공격기등에 압승을 거두는데 일조했습니다.

 

  베카 상공의 공중전에서 이스라엘 공군이 상실한 팬텀 전투기도 사실 공중전이라기보다

는 지상을 공격하다 대공포화로 격추된 것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공중전에서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대결은 85:0이라는 믿을 수 없는 완승이었고 이런 기록은 과거는 물론 앞으로

도 한동안은 나오기 어려운 일방적인 것이었습니다. 당시 소련 미그사의 엔지니어들과

소련공군 파일럿들은 미그기의 성능이 뒤졌다기 보다는 시리아 파일럿들의 기량이 너무

떨어져 미그 23이 제성능을 내지 못했고 미그전투기에게 필수인 항공관제가 이스라엘

공군기들의 레이다기지파괴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시리아 파일럿들은 눈과 귀가 사실

상 먼 장님상태의 불리한 상황에서 나온 결과라는 점을 강변했습니다. 기실 이스라엘 공

군은 E-2C라는 조기경보항공통제기(AWACS)를 비밀리에 운영하면서 자군의 파일럿들에게

최적의 공격장소를 미리 알려주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지적은 일리가 있기는 했으나, 이

후 소련이 아프간에 무력으로 개입하면서 인접 파키스탄과 국지적인 충돌로 벌어진 일련

의 공중전(86년-88년)에서 소련은 자국의 정예 파일럿들을 동원해 지상관제의 도움을 충

분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30대가 넘는 미그 23이 격추된데 비해 소련에 비해 한수 아래

라던 파키스탄 공군 파일럿이 몰던 F-16 팰콘은 단 한 대도 격추되지 않아 근본적으로

소련제 미그 23전투기가 성능상의 한계가 있음을 증명하게 됩니다. 이미 4세대 전투기

들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수평선 너머의 적기에 대해서 전자장비의 도움을 받아 베

트남 전시보다 더 정확한 미사일 공격이 가능했고 자신보다 저공에 있는 목표물에 대해

서도 탐지와 추적이 가능함은 물론 다중목표에 대한 공격이 가능한 전천후 성능을 보여줌

과 동시에 근접 공중전에서도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에서도 더 날렵한 선회기동능

력을 갖춰 획기적인 기술상의 진보를 가져왔습니다. 소련의 미그 23이나 25 혹은 수호이

전투기들은 그런 면에서 이도 저도 아닌 엉거주춤한 상태에 머물렀고 그 때문에 베카계곡

의 공중전과 자신들보다 실력이 뒤진다는 파키스탄 공군과의 대결에서도 성능의 한계를

드러내며 몰락합니다. 양적 우위로 질적인 열세를 메운다는 과거 소련이 2차대전시 독일

과의 전쟁을 통해 얻게 된 전훈이 이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현재까지도 소련의 전투기 성능은 미국에 비해 약 10여년

은 뒤져있다고 보는 게 정설이지요. 이제 공중전에서도 수적인 우세보다는 질적인 우세와

정확성이 지배하는 시대를 연 게 바로 4세대 이글, 팰콘, 톰캣, 호넷이었습니다.

 

 

   특히 80년대 F-16 팰콘이 거둔 놀라운 전과는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다는 장점과 함께

많은 나라의 공군관계자를 매혹시켰고 이후 미국은 팰콘의 수출과 라이센스 생산(우리 공

군의 주력기인 KF-16 블록52도 여기에 해당)으로 톡톡히 재미를 봅니다.  

    소련이 붕괴되면서는 동구권의 폴란드까지도 팰콘을 구매했을 정도였고 미국은

현재까지 약 4천대가 넘는 팰콘을 세계각지에 판매하며 자국 공급용 생산이 중지된 지

금도 여전히 수출 상담과 구매 계약이 추진중이여서 가히 베스트셀러 전투기가 됩니다.

 

  이리 팰콘이 약진하면서 그간 제3세계 국가에게 저가의 우수한 성능을 발휘하는 전투기

인 미라지 기종을 팔아 재미를 봤던 프랑스는 번번히 팰콘에 밀려 현재는 시장에서 크

게 위축된 상태입니다. 특히 그들이 야심차게 내놓았던 미라지의 후속작인 4세대 전투기

라팔(우리말로는 돌풍)은 팰콘 못지않은 우수한 성능과 최첨단 기능을 추가했음에도 실전

에서의 성공사례가 부족해 이제까지 단 한건의 해외 판매를 성사시켰을 뿐 60,70년대 미

라지의 인기와 수출호황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하긴 60,70년대 미라지

가 그토록 인기를 끌게 된 이유 역시 5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까지 중동에서 이스라엘

공군이 미라지 전투기로 근접공중전에서 미그전투기들에게 탁월한 전과(이래저래 미그는

베트남전을 제외하면 갈수록 만만한 동네북이 되가는 추세지만)를 냈던 때문이니...

 

 

   이후 소련이 미그 29를 내놓게 된 이유도 80년대 연이은 공중전에서 참패와 망신을 당

하면서 절치부심한 결과이기도 하죠. 그러나 이후 소련이 붕괴했고 냉전이 종식되면서

미국제 전투기의 성능과 소련제 전투기간의 성능격차는 나날이 더 벌어지게 되고 이는

티비로 생중계된 첫 번째 전쟁 걸프전을 통해서 다시 한번 입증됩니다.

   이라크 공군은 이미 걸프전 초기에 상당수의 전투기들을 한때 적국이었던 이란으로

도피시킬 만큼 열세를 자인했고 걸프전의 공중전에서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공군에게 격

추된 이라크 항공기들이 모두 미사일에 의해서였을만큼 미사일의 성능과 신뢰도는 베트남

전 때보다 월등히 진일보합니다. 이미 4세대 전투기들은 과거 3세대 전투기들이 고작 20

-30킬로 정도의 거리(이 정도 거리에서만 탐지가 가능하니, 시속 천킬로가 넘는 고속으로

나르는 초음속 전투기가 활약했던 베트남에서 순식간에 서로가 근접하게 되는 상황은

너무도 당연했던 것입니다)에서 적을 탐지해냈던 것에 비해 그보다 월등한 120킬로나

혹은 200킬로 너머까지 상대를 먼저 볼 수 있음은 물론 다중목표추적과 공격이 가능하며,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성능이 뒤졌던 미그 23등에 대해서 먼저 보고 먼저 발사하는

선제공격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게 됩니다. 60년대 미공군이 베트남전에서 예상 했던

상황이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쳐서 90년대에 와서야 현실화 된 셈입니다. 이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서도 드러났듯이 세대가 다른 전투기간의 대결은 이미 전투가 아닌 일방적

인 살육이 돼버리고 맙니다. 그만큼 기술의 우위가 베트남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크게 진

화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 진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스텔스기술과 함께 제 5세대 전투기

의 출현을 예고합니다.

 

  마지막 개싸움의 역사는 역사라기보다는 개싸움의 미래라는 부제하에 스텔스전투기와

무인 전투기 얘기로 다가올 공중전의 세계를 조망하고 현재 우리 언론의 북한공군력 관

련 보도의 근원적인 문제를 짚어보는 것으로 마무리 짓겠습니다.

댓글목록

profile_image

제이엘님의 댓글

제이엘 작성일

전투기의 개발과 기술의 발전을 한눈에 보듯이 일목요연하게 실전과 더불어 쓰신글을 통해 너무나 잼있게 감사히 읽고 배우고 갑니다.  미래의 전투기에 대한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profile_image

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나그네 작성일

즐겨주셨다니, 제가 더 감사드려야겠지요? ^^; 지금 우리네 안보현실의 위상이 어디쯤 와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다소간 장황하지만 전체 공중전과 항공기의 역사를 조망해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profile_image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나그네님 덕분에 20세기와 21세기의 공군력의 발달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과학기술을 응용한 전투기들이 하늘을 지배하고 있군요.  스텔스와 무인 전투기, 그리고 북한 공군력을 과대평가하는 언론에 대한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rofile_image

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나그네 작성일

고맙습니다. 다음 편에서 말씀드릴 기술의 진보는 지금보다 더하답니다.

profile_image

와와님의 댓글

와와 작성일

와~ 아는 것도 많수~ ^^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