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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수적 복음주의와 백인 개신교회의 종교적 근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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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주청년
댓글 2건 조회 5,328회 작성일 10-09-2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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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열(철학박사,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


미국의 보수적 복음주의와 백인 개신교회의 종교적 근본주의

이번 주 칼럼에서 필자는 미국의 보수적 복음주의(American Conservative Evangelicalism) 문제, 특별히 보수적인 백인 개신교회(White Protestant Church)들에서 주로 나타나는 종교적 근본주의(Religious Fundamentalism) 문제와 미국의 해외침략전쟁(海外侵略戰爭)과의 상관관계를 살펴보았다. 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인 이원규 박사의 “근본주의에 대한 종교사회학적 고찰”에 의하면,

“근본주의(Fundamentalism)라는 용어는 1911년 미국 개신교에서 무엇보다도 ... 종교적인 부흥운동 혹은 보수적인 정치적 힘과 동맹하여, 국가나 종교에 대한 자유주의적 입장으로 간주되는 것에 대하여 투쟁을 추구하는 공격적이고 신념에 찬 종교운동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 다음으로 개신교 근본주의는 미국의 주된 개신교 교단 - 침례교, 장로교 등 - 의 분열 직후에 태어난 보수적인 교회운동에 붙여진 이름인데, 실천적 차원에서 다른 종교신앙과 구분되는 몇 가지 특징들을 보입니다: ①철저한 적대관계의 확립, ② 반해석학적(anti-hermeneutical) 및 경전의 절대적 주장, ③ 다원주의(pluralism)와 상대주의 거부, ④ 진화와 발전(진화론)에 반대, ⑤ 계시적(섭리적) 천년왕국설 신봉, ⑥ 현대성이 초래한 인류 문명의 폐해와 신앙의 방해 행위에 반대, 또한 개신교의 경우 일부에서는 복음주의와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복음주의(evangelicalism)’ 와 ‘근본주의(fundamentalism)’는 자유주의 및 에큐메니즘에 반대한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동의어가 아니며 근본주의를 복음주의 하부유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주의 내부에는 근본주의도 있지만 에큐메니즘에 동의하는 그룹도 상당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국 개신교의 경우 복음주의권 대부분이 근본주의에 가까운 것은 사실입니다.”

미국식 복음주의와 그것의 정의, 역사적 배경, 그리고 복음주의와 근본주의와의 관계들에 대한 내용을 요약해서 정리하면 오늘의 “미국식 복음주의”는 큰 틀에서 곧 “백인 기독교ㆍ개신교 근본주의”를 뜻한다. 그런데 미국식 복음주의, 즉 백인들의 기독교ㆍ개신교 근본주의는 이 교수가 지적한 내용들 외에 다음의 몇 가지 중요한 정치ㆍ문화ㆍ사회ㆍ역사적 전통과 특성을 띤다;

① 미국 남부의 백인 개신교를 대표하는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정치적으로 극우적인 인종 차별주의의 전통을 갖고 있다, ② 그들은 현재 미국의 행정부, 경제, 정치, 언론, 교육, 군산복합체, 영화ㆍ예술 등의 요직을 장악한 네오콘(neocon)으로 알려져 있는 유대계 미국인 신보수주의자들과 정치적, 종교적으로 극우적이며 근본주의적인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③ 그들은 전통적으로 더(반동)적이고 친(親)재벌적이며 인종차별적인 공화당의 주요 지지세력이다. ④그들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해외침략정책을 정당화하고 지지한다, ⑤ 그들은 기독교 신앙을 서구자본주의와 동일시한다, ⑥ 그들에게 기독교 신앙은 일종의 “미국의 시민종교”(American civil religion)이다.

백인개신교의 종교근본주의와 미국의 해외침략전쟁

21세기 초 세상의 다수가 새롭게 다시 인식하게 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나선 미국에 의한 불법적인 주권국가침략문제, 즉 미국의 해외침략전쟁의 분수령으로 우뚝 선 “이라크전쟁”을 한 예로 들어보자. 이라크전쟁 전까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진짜 얼굴”을 잘 몰랐다고 할 수 있다. 도대체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역사에 뿌리내리게 되었으며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더 깊이 더 바르게 알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라크전쟁은 좋은 교훈을 세상에 준 셈이다. 이제 세상의 소수가 아니라 다수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도대체 어떤 나라인지를 잘 알게 되었다. 미국의 해외침략전쟁문제 뿐만 아니라 작년 미국 남부를 강타한 카타리나 태풍으로 발가벗겨진 미국사회의 진면목, 즉 “미개한 미국”(<한겨레21> 제577호 표지제목)에 대해 비로소 더 깊이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상 서구 제국주의가 미 대륙을 발견한 1492년 뒤로 북미대륙을 비롯해서 전체 중남미대륙에 서구는 줄곧 “한 손에는 성경(서구기독교)을 다른 한 손에는 총ㆍ칼(제국주의)”을 들고 왔다. 물론 이 이야기는 미 대륙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서구제국주의가 발을 디딘 온 세상에 서구는 한 손에 서구종교(서구문화)인 기독교를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총ㆍ칼로 무장한 서구식민주의를 들고 갔다.

문제는 유럽 백인들에 의한 제국주의침략과 식민주의에 의한 서구(자본주의)화가 이루어졌던 지난 수백 년 동안 백인기독교(구교와 신교)는 대부분 이 모두를 정당화했다. 오늘 미국 남부를 중심으로 미국 사회의 다수로 남아있는 보수주의적이며 인종차별적인 미국 종교로서의 소위 “복음주의적 백인기독교”는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별히 남부침례교를 중심으로 한 대부분의 보수적인 백인개신교는 지난 500여년의 바로 이 “부끄러운 범죄적 전통”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래서 반성할 줄도 모르는 이런 “미국적 전통(American Tradition)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꾀한 뒤 이제까지 약 200여 년이 지나는 동안 끊임없이 진행된 미국의 해외침략전쟁사에서 더욱 구체화된다. 램지 클라크 전 미 법무부장관과 노암 촘스키 교수를 비롯한 미국을 대표하는 많은 양심들은 오늘의 미국을 세웠던 유럽백인들의 역사적 배경과 뿌리가 처음부터 그러했음을 고백하고 있다.

자신을 “기독교국가”라고 자랑하며 오늘의 세계 유일(有一)의 초(超)강국인 “아메리카제국”(American Empire)으로 자라난 미합중국은 1492년 뒤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7천만에서 8천만 명에 달한다는 아메리카 대륙 전체 원주민들에 대한 대학살(holocaust), 즉 “인종학살”(ethnic genocide)을 비롯해서, 수천 수백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 흑인들에 대한 노예무역(Black Slave Trade)으로 대표되는 끊임없는 침략과 학살, 약탈, 착취, 억압, 차별의 “부끄러운 역사전통”을 갖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백인들이 세운 미합중국의 전체 역사 동안 미국식 복음주의적 백인 기독교 역사는 국내에서의 인종차별전쟁과 대외관계에서의 해외침략전쟁으로 점철된 인종차별주의적이고 보수적이며 공격적인 미국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바로 이 미국역사는 ‘미국식 복음주의ㆍ기독교 근본주의’와 ‘미국의 해외침략전쟁’이 서로 땔래야 땔 수 없는 상호불가분의 상관관계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500년의 미국 죄악사(罪惡史)”라고 해야 옳을 이 “부끄러운 반(反)복음적(福音的) 역사”를 대부분의 미국 백인기독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화했다. 마치 지난 400여 년을 남아프리카(South Africa)의 백인기독교가 다수의 흑인들에 대한 그들의 극심한 “인종차별정책”(Apartheid)을 정당화했듯이. 오늘 이 순간도 “미국식 복음주의”를 대표한다는 많은 “백인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불법적인 해외침략전쟁을 지지하고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미국의 지배와 침략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정당하게 저항하는 국가지도자들을 암살할 것을 공개적으로 제안하기까지 한다.

이와 관련한 좋은 예가 하나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소위 “미국식 복음주의자”요 “백인 기독교 근본주의자”로 부시 행정부의 핵심지지세력인 남부의 보수적인 백인기독교 복음주의자들ㆍ근본주의자들의 조직인 “미국기독교연합”(Christian Coalition of America)을 이끌고 있는 팻 로벗슨(Pat Robertson) 목사는 미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자주적 독립국가 건설을 꾀하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Hugh Chavez) 대통령을 “미국 정부가 암살할 것을 공개적으로 제안”하기까지 했다.

미국식 백인 개신교의 종교근본주의와 한국식 보수 개신교의 종교근본주의

백인 개신교회의 “미국식 복음주의”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 모두가 참으로 경계해야 하고 극복해야 할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의 자칭 “보수적인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라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지난 50여 년을 위에서 지적한 “미국식 복음주의”를 마치 “절대선”(絶代善)인양 받아들인 데 있다. 미국식 백인 개신교회에 대한 아무런 비판과 올바른 역사이해 없이 그것을 여과 없이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마치 “미국식 복음주의”가 “성서적 복음주의”인양 동일시하고 일종의 “미국 따라 배우기”에 급급했던 우리나라의 친미사대주의적인 한국기독교역사와 무관치 않다.

이렇게 싹튼 대부분의 보수적(극우적) 기독교, 특별히 많은 개신교들인들은 반세기를 넘는 분단시기 내내 민주화, 민족화해문제, 평화와 자주통일문제, 여성평등과 해방문제 등에 있어서 사회와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것이라기보다는 주로 그 반대의 역할을 하지 않았나 돌아보아야 한다. 특별히 “반공, 반북, 친미사대주의”를 마치 “기독교의 복음”인양 동일시한 역사에서 우리나라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자유롭지 못했다.

이러한 현실은 “6.15시대”라는 오늘에도 여전하다. 반세기에 걸친 분단이 낳은 극심한 분열과, 양극화 현상, 대결, 대립구도를 넘어 복음의 핵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대화와 화해, 평화, 나아가서는 하나됨과 상생”의 복음(기쁜 소식)을 선포해야 할 기독교인들이 오히려 대화를 거부하고 갈등과 분열, 대립과 대결을 주장하는 자리에 더 많이 서있는 것 같은 안타까운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서구의 이분법적 논리와 미국식 단순 흑백구도가 지난 수세기에 걸쳐 전 지구적으로 야기한 극심한 정치사회적 분열과 위기,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과 군사적 대결과 침략, 특별히 전 지구적 차원의 환경파괴와 생태학적 위기를 경험하면서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이 미국과 서구사회를 포함한 온 세상에서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야 한다. “미국식 복음주의”가 낳은 단순한 이분법적 논리, 즉 부시의 “미국과 함께 하면 선(善)이고 아니면 악(惡)이다”라는 소위 “Us versus Them”(우리말로 “우리 아니면 그들”이라는) “흑백논리”가 온 세상에 결과한 상극(相剋)과 상멸(相滅)의 논리ㆍ구도를 넘어 통전적(通ㆍ統全的)인 조화(調和)와 상생(相生)의 논리ㆍ구도를 새롭게 세워내야 할 것이다. 세상의 다수가 평화공존(平和共存)과 공영(共榮)의 길을 모색하는 이 때에 이 땅의 모든 종교인들이 특별히 기독교인들이 ‘종교의 사회변혁적 책임과 역할’을 바르게 감당하여 진정한 의미의 “성서적 복음주의에 입각한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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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님의 댓글

나그네 작성일

웬지...좀...개신교가 자꾸...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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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님의 댓글

교인 작성일

정말이지 공감하는 부분이 너무 많네요

  기독교을 잘알아야한다

  잘되는것만이 좋은것은 아니다라는것을

  생존경쟁이라고 말할수밖에 없는것같다

  끝없는욕심 지들끼리 잘 해먹는 지구가 안되니까
 
  바다속 아니 우주까지 차지 할려는욕심 신에 영역까지 다른놈이야 죽든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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