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왜 수학을 어려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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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베이비 | 입력 2010.10.15 09:16
'셋, 넷, 다섯' 다음에 다섯을 또 세는 아이, 한 자리 수 더하기도 자꾸만 틀리는 아이를 보면 속이 답답하고 머리가 나쁜 게 아닐까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말도 종알종알 잘하고 며칠 전에 읽어준 그림책 내용도 모두 기억하면서 왜 유독 숫자에만 약할까?
갓 태어난 아이도 수에 대한 감각이 있다. 하지만 그 범위는 '1, 2, 3'이 전부. 단번에 눈으로 파악해 알 수 있는 수량을 '즉지(subitizing)'라고 하는데, 아이들은 3이내의 개수는 본능적으로 파악하지만 4부터는 일일이 '세어야' 한다. 아이들이 인형 2개와 3개는 구분해도 4개와 6개는 구분하지 못하는 이유다. 사실 이런 즉지 능력은 생존의 의미가 깊은데 적이 나타났을 때 자신보다 수가 많은지 적은지 판단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 즉지를 담당하는 뇌의 시각 영역은 타고나지만 수 세기와 연산 같은 담당하는 이마엽(front lobe)은 뇌의 다른 영역보다 유독 늦게 발달한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이 언어보다 유독 '수학'에 약한 것이다.
◆ 수 세기의 힘겨움
수적 능력과 언어적 능력은 다르다. '하나, 둘, 셋'처럼 수를 지칭하는 말을 배우더라도 아이들이 머릿속에 그리는 '실제' 숫자와 대응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하나'라는 말과 1이라는 수량을 일치시킬 수 있는 2~3세 아이들이 넷 이상의 말과 그에 상응하는 수량을 일치시킬 수 있기까지 평균 1년 정도 걸린다는 보고가 있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수 세기'는 어렵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하나, 둘, 셋'을 세면서 늘어나는 숫자의 의미를 이해한다고 착각하지만 처음에는 단순히 수 이름은 암기하고 한참 후에야 비로소 이를 실제 수량과 연결시킬 수 있다. 수를 나타내는 말을 익히는 과정 역시 만만치 않다. 우리말의 경우 일단 10까지만 습득하면 나머지는 비교적 쉽게 응용할 수 있지만 아이들이 그러한 규칙을 찾는 것은 어렵다. 수 세기를 시작한 막 시작한 아이들이 순서를 틀리거나 빼먹는 것은 이런 이유. 머뭇거리지 않고 잘 외우는 아이들도 아무 수나 불러주고 그다음 수를 물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3세에 10, 4세에 30, 5세에 100까지를 센다고 하는데 당연히 아이들마다 차이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나라'마다도 차이가 있다는 점. 우리나라의 경우 일(1)부터 십(10)까지 외운 다음 십일(11), 십이(12)처럼 앞에 십이 나오고 뒤가 반복된다. 하지만 영어는 ten-one(11)이 아니라 eleven, twelve로 이어진다. 규칙성 없이 바뀌다 보니 당연히 익히기 더 까다롭다. 중국 아이들이 4세에 40까지 세는 데 비해 미국 아이들은 1년이 더 늦다는 재미난 조사 결과도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아이들은 '왜 세는지'를 잘 모른다. 어른들은 얼마나 있는지 알기 위해서 세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엄마 아빠가 좋아하니까 그냥 세는 경우. 아이가 '다섯'이라고 사물의 개수 세기를 마친 뒤 "여기 있는 게 모두 몇 개지?"라고 물어보면 대답하지 못하는 것도 그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가 수 세기의 목적을 깨닫는 것은 '놀랍게도' 초등학교 입학 이후부터다.
◆ '연산'에서 만나는 새로운 고비
이런 수 세기가 제대로 자리잡히려면 엄마의 상상 이상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의 뇌는 새로운 일과 익숙한 일을 할 때 다르게 반응한다. 새로운 일을 익힐 때 활성화되는 부위는 일을 계획하고 전략을 짜는 부위지만 일단 그 일을 익히면 더 이상 활성화되지 않는다. 그 일을 자동으로 처리하는 부위에 새로운 회로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산도 마찬가지. 처음 아이에게 연산 문제가 주어지면 손가락에 의존하다가, 한 번 보고 참고만 하고, 마지막에야 기억에 의존해 문제를 푼다. 어른들 눈에야 한 자릿수 덧셈, 뺄셈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일일이 수를 세어 기억하고 계산한 후 다시 처음부터 숫자를 헤아려 결과를 찾는 것. 암산이 가능하게 되는 것은 연산 과정을 잠시 유지할 수 있는 작업 능력의 발달 덕분이다. 작업 기억에서 다루는 수는 매우 짧은 시간 존재하며, 작업의 대상과 결과를 장기 기억으로 변환시킨다. 문제는 작업 기억이 작동하는 동안 주의가 산만해지면 정확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 아이가 블록을 세고 있을 때 말을 걸어보라. 자신이 몇까지 세다 말았는지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이 숫자를 더하거나 뺄 때 '손가락'을 사용하는 이유도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그렇듯 아이가 기억에 의존해 문제를 푸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많은 연습과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아이의 수 감각을 깨우는 방법
1. 수와 실제 사물을 연관 짓는다 '2+3=5'보다 "사과 두 개가 있는데 엄마가 세 개를 더 주면 모두 다섯 개가 됐네"라고 이야기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2. 자주 '수 세기'를 한다 단순하고 의미 없는 듯이 보여도 수 세기는 아이의 수 감각을 일깨우는 것은 물론 이후 연산 등의 수학 활동의 기초다. 따라서 아이와 수 세기 하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아이가 '하나, 둘, 셋'으로 세는 것에 익숙해지면 '둘, 넷, 여섯(2·4·6)' 또는 '셋, 여섯, 아홉(3·6·9)' 등 일정 간격에 따라 세는 방법도 알려준다. 수 세기를 통해 기본적인 연상도 가능할 뿐 아니라 세는 수가 커지면서 머릿속의 '수직선'도 점점 확장된다.
3. 수직선 자주 노출시킨다 스케치북이나 A4 종이 등에 일직선을 긋고 왼쪽 끝에 1, 오른쪽 끝에 10을 쓰고 "5는 어디쯤에 있을까?", "9는 어디쯤일까?" 하는 식으로 아이와 수의 위치를 짐작하는 놀이를 해본다. 아이가 표시하면 엄마가 10등분한 뒤 아이의 답과 비교한다. 아이가 익숙해지면 1부터 20, 50, 100등으로 수 범위를 점차 넓혀간다.
4. 수와 관련된 놀이를 한다 주사위 놀이, 도미노, 카드게임, 시계, 달력, 자, 숫자가 등장하는 그림책 등을 자주 접하게 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 수 감각을 깨우는 데 효과적인 놀이
01. 도트 플래시 카드게임 카드 점(도트)이 찍혀 있는 플래시 카드는 간단한 형태로 대칭을 포함한 규칙성을 지녔고, 숫자와 배경이 뚜렷이 대조돼 '즉지' 능력을 키우는 데 좋은 재료다. 1~8개의 점을 임의로 찍은 플래시 카드를 여러 장 준비해 다음 게임을 해보자.
play1 점의 개수를 세지 않고 단번에 맞히기
play2 여러 카드를 섞어놓고 점의 개수가 같은 카드까지 고르기
play3 엄마가 수를 불러주면 그 수에 해당하는 점이 찍힌 카드를 빨리 찾아내기
play4 임의로 카드를 선택한 후 그 카드에 있는 점의 개수보다 하나 더 많은 수를 말하기
02. 10 만들기 1에서 9까지 적힌 카드를 늘어놓고 엄마가 1을 들면 9, 2를 들면 8 등 두 숫자의 합을 10으로 만들어 카드를 치우는 게임. 10의 보수 개념을 자연스레 알려준다.
5. 큰 수를 경험시키고 같은 수도 달리 표현해본다.
1~10이 아닌 좀더 큰 단위의 숫자에도 노출시킨다. 가장 좋은 것이 '돈'. 10원, 50원, 100원짜리 동전에서 시작해 1000원, 10000원까지 다양한 단위의 수를 소개할 뿐 아니라 수의 크기를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보게 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또한 사과 반쪽을 '사과 ', 1m는 100cm 등 같은 수를 다르게도 표현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초등학교 수학, 이렇게 대비하자
1. 추상적 사고의 기초를 세운다 '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의미 있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아이에게 이를 제대로 이해시키는 것이 우선. '전화놀이' 같은 역할놀이를 여러 번 하면 실제로 전화 거는 것이 어색하거나 어렵지 않은 것처럼 아이가 여러 개의 실제 사물을 보고 만지고 놀면서 어떤 것이 다른 어떤 것을 상징할 수 있다는 원리를 받아들이게 한다.
2. 수학 놀이를 십분 활용한다 놀이를 통한 수학적 토대를 만드는 것이 좋다. 크기가 다른 블록을 조립하면서 아이들은 물체가 점점 커지거나 작아지는 현상을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은 나중에 배우게 될 수의 규칙적 증가를 보다 빨리,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 수학 놀이에 활용하기 좋은 장난감
01. 바둑알, 땅콩 아이의 흥미를 끄는 주변의 사물을 활용해 수 세기를 경험시킬 것. 어떤 종류든 관계없다.
02. 블록 구조물이나 특정한 패턴을 만들어 놀면서 수학적 감을 익힌다.
03. 트럼프 숫자가 쓰인 플래시 카드나 숫자와 해당 수만큼의 도형이 함께 나오는 트럼프를 가지고 놀면서 즉지 능력을 키울 수 있다.
04. 밀가루반죽 자유롭게 변형되는 특성을 활용해 자유롭게 떼보고 붙이는 과정을 통해 나누기, 더하기, 분수 등의 개념을 심어주기 좋다.
05. 그밖에 보드게임, 주사위 놀이, 특정 기준에 의해 분류가 가능한 장난감 세트, 시계 등 숫자와 관련된 놀잇감.
3.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게 한다 수학과는 별로 관계없어 보이는 체육 활동도 중요한데 이를 통해 공감각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에 비해 수학적 감각이 뛰어난 이유를 이것으로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감각을 키우면 '숫자 수직선'의 감각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된다.
4. 실생활에서 '수학'을 찾아본다 수학은 종이 속의 숫자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려준다. 가령 라면을 하나 끓일 때에도 물의 양, 끓이는 시간, 끓이는 방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또 마트에 쇼핑을 갔다면 물건을 고르고 값을 비교하고 돈을 지불하는 과정을 통해 수를 익힐 수 있다. 아이에게 직접 돈을 지불하고 거스름돈을 받게 하면 더욱 좋다. 여행을 하면서는 속도의 의미와 시간의 흐름 등을 느낄 수 있고, 내비게이션이나 지도에서 도착지를 찾아보면서 공간적 감각을 키우는 것도 권할 만하다. 키나 몸무게, 신체기관의 길이를 측정하거나 '얼마 정도 될지' 짐작해보는 것도 좋다. 이처럼 아이에게 수학이 나와 전혀 무관한 영역 아님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5. 연산 문제는 '시각화'하는 훈련을 한다 연산 기호와 숫자로만 돼 있는 수학 학습지를 잘 못 푼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 것. 중요한 점은 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숫자나 기호가 아이의 머릿속에 어떻게 '이미지화'되고 있느냐다. 10-7이라는 연산을 "곰 인형 10개가 있는데 친구에게 7개를 주었다면 몇 개가 남을까?"로 바꿔 생각하게 하면 아이가 머릿속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된다. 이처럼 상황을 떠올릴 수 있도록 돕는다면 시각적으로 쉽게 상상할 수 있고, 나아가 공감각을 요구하는 문제의 해결 능력도 키울 수 있다.
Interview < 아이들은 왜 수학을 어려워할까? > 저자 안승철 교수
"아이에게 '수학'은 당연히 어렵다"
올여름 출간된 < 아이들은 왜 수학을 어려워할까? > 를 쓴 안승철 교수의 전공은 '교육'이 아닌 '생리학'이다. 의대에서 뇌와 청각에 관한 연구를 하는 그가 '수학교육'에 관한 책을 쓴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의 수학 공부를 봐주다 '속 터진 경험'이 계기가 됐다. "딸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치다가 좌절했어요.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수학을 곧잘 했는데 왜 아이는 수를 어려워할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죠. 아내가 읽어주는 동화책은 거의 외우다시피 했으니 무척 대조적이고요." 딸아이의 수학 능력에 관심을 갖다 보니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수를 깨우치고 연산 과정을 받아들이는지 궁금해져 논문을 찾고 공부를 하다가 무릎을 쳤다. 문제는 딸이 아니라 아이가 어떻게 수를 인식해가는지를 알지 못했던 자신에게 있었던 것. 이를 알게 된 이후 아이를 가르치는 태도가 바뀌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책에는 본능으로서의 수가 기술적·사회적 의미로서의 수로 아이들 마음에 자리잡는 과정이 여러 가지 심리 실험과 연구결과로 제시돼 있다. 안 교수는 아이가 수학을 어려워한다면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보다 더 과한 걸 요구한 게 아닌지, 아이가 '수'를 내면화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었는지 먼저 생각해보라고 충고한다. 많은 엄마들이 궁금해하는 '반복 연산 훈련'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 학습지 한 장에 어떤 요소 없이 '1+1, 1+2, 1+3' 등 비슷한 패턴의 문제만 연달아 나오고 기계적으로 계산을 반복하는 것은 아이의 호기심을 끌기 어렵고 결국 수에 대해 '무감'해지기 쉽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 뽀로로 > 를 봐도 되는 시간에 책상에 앉아 수학 문제를 푸는 '의미'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 안 교수의 생각. 유아 수학교육은 답을 맞히는 기술보다 머릿속의 수를 눈앞에 그릴 수 있는 '수학적 상상력'을 키우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몇 번을 알려줘도 수 세기를 제대로 못하고 쉬운 계산 문제도 틀리는 아이를 보면 '왜 이것도 몰라?'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죠. 하지만 어른이 보기엔 쉬워도 아이는 '진짜' 어려운 거거든요.
뇌가 수를 인식하고 연산하는 과정 자체가 '본능'을 극복하는 일이랍니다."
*기획 | 한보미 기자
*사진 | 이주현
*일러스트 | 경소영
*도움말 | 안승철(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부교수)
*참고도서 | < 아이들은 왜 수학을 어려워할까? > (궁리출판사)
'셋, 넷, 다섯' 다음에 다섯을 또 세는 아이, 한 자리 수 더하기도 자꾸만 틀리는 아이를 보면 속이 답답하고 머리가 나쁜 게 아닐까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말도 종알종알 잘하고 며칠 전에 읽어준 그림책 내용도 모두 기억하면서 왜 유독 숫자에만 약할까?
◆ 수 세기의 힘겨움
수적 능력과 언어적 능력은 다르다. '하나, 둘, 셋'처럼 수를 지칭하는 말을 배우더라도 아이들이 머릿속에 그리는 '실제' 숫자와 대응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하나'라는 말과 1이라는 수량을 일치시킬 수 있는 2~3세 아이들이 넷 이상의 말과 그에 상응하는 수량을 일치시킬 수 있기까지 평균 1년 정도 걸린다는 보고가 있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수 세기'는 어렵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하나, 둘, 셋'을 세면서 늘어나는 숫자의 의미를 이해한다고 착각하지만 처음에는 단순히 수 이름은 암기하고 한참 후에야 비로소 이를 실제 수량과 연결시킬 수 있다. 수를 나타내는 말을 익히는 과정 역시 만만치 않다. 우리말의 경우 일단 10까지만 습득하면 나머지는 비교적 쉽게 응용할 수 있지만 아이들이 그러한 규칙을 찾는 것은 어렵다. 수 세기를 시작한 막 시작한 아이들이 순서를 틀리거나 빼먹는 것은 이런 이유. 머뭇거리지 않고 잘 외우는 아이들도 아무 수나 불러주고 그다음 수를 물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3세에 10, 4세에 30, 5세에 100까지를 센다고 하는데 당연히 아이들마다 차이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나라'마다도 차이가 있다는 점. 우리나라의 경우 일(1)부터 십(10)까지 외운 다음 십일(11), 십이(12)처럼 앞에 십이 나오고 뒤가 반복된다. 하지만 영어는 ten-one(11)이 아니라 eleven, twelve로 이어진다. 규칙성 없이 바뀌다 보니 당연히 익히기 더 까다롭다. 중국 아이들이 4세에 40까지 세는 데 비해 미국 아이들은 1년이 더 늦다는 재미난 조사 결과도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아이들은 '왜 세는지'를 잘 모른다. 어른들은 얼마나 있는지 알기 위해서 세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엄마 아빠가 좋아하니까 그냥 세는 경우. 아이가 '다섯'이라고 사물의 개수 세기를 마친 뒤 "여기 있는 게 모두 몇 개지?"라고 물어보면 대답하지 못하는 것도 그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가 수 세기의 목적을 깨닫는 것은 '놀랍게도' 초등학교 입학 이후부터다.
◆ '연산'에서 만나는 새로운 고비
이런 수 세기가 제대로 자리잡히려면 엄마의 상상 이상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의 뇌는 새로운 일과 익숙한 일을 할 때 다르게 반응한다. 새로운 일을 익힐 때 활성화되는 부위는 일을 계획하고 전략을 짜는 부위지만 일단 그 일을 익히면 더 이상 활성화되지 않는다. 그 일을 자동으로 처리하는 부위에 새로운 회로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산도 마찬가지. 처음 아이에게 연산 문제가 주어지면 손가락에 의존하다가, 한 번 보고 참고만 하고, 마지막에야 기억에 의존해 문제를 푼다. 어른들 눈에야 한 자릿수 덧셈, 뺄셈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일일이 수를 세어 기억하고 계산한 후 다시 처음부터 숫자를 헤아려 결과를 찾는 것. 암산이 가능하게 되는 것은 연산 과정을 잠시 유지할 수 있는 작업 능력의 발달 덕분이다. 작업 기억에서 다루는 수는 매우 짧은 시간 존재하며, 작업의 대상과 결과를 장기 기억으로 변환시킨다. 문제는 작업 기억이 작동하는 동안 주의가 산만해지면 정확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 아이가 블록을 세고 있을 때 말을 걸어보라. 자신이 몇까지 세다 말았는지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이 숫자를 더하거나 뺄 때 '손가락'을 사용하는 이유도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그렇듯 아이가 기억에 의존해 문제를 푸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많은 연습과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1. 수와 실제 사물을 연관 짓는다 '2+3=5'보다 "사과 두 개가 있는데 엄마가 세 개를 더 주면 모두 다섯 개가 됐네"라고 이야기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2. 자주 '수 세기'를 한다 단순하고 의미 없는 듯이 보여도 수 세기는 아이의 수 감각을 일깨우는 것은 물론 이후 연산 등의 수학 활동의 기초다. 따라서 아이와 수 세기 하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아이가 '하나, 둘, 셋'으로 세는 것에 익숙해지면 '둘, 넷, 여섯(2·4·6)' 또는 '셋, 여섯, 아홉(3·6·9)' 등 일정 간격에 따라 세는 방법도 알려준다. 수 세기를 통해 기본적인 연상도 가능할 뿐 아니라 세는 수가 커지면서 머릿속의 '수직선'도 점점 확장된다.
3. 수직선 자주 노출시킨다 스케치북이나 A4 종이 등에 일직선을 긋고 왼쪽 끝에 1, 오른쪽 끝에 10을 쓰고 "5는 어디쯤에 있을까?", "9는 어디쯤일까?" 하는 식으로 아이와 수의 위치를 짐작하는 놀이를 해본다. 아이가 표시하면 엄마가 10등분한 뒤 아이의 답과 비교한다. 아이가 익숙해지면 1부터 20, 50, 100등으로 수 범위를 점차 넓혀간다.
4. 수와 관련된 놀이를 한다 주사위 놀이, 도미노, 카드게임, 시계, 달력, 자, 숫자가 등장하는 그림책 등을 자주 접하게 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 수 감각을 깨우는 데 효과적인 놀이
01. 도트 플래시 카드게임 카드 점(도트)이 찍혀 있는 플래시 카드는 간단한 형태로 대칭을 포함한 규칙성을 지녔고, 숫자와 배경이 뚜렷이 대조돼 '즉지' 능력을 키우는 데 좋은 재료다. 1~8개의 점을 임의로 찍은 플래시 카드를 여러 장 준비해 다음 게임을 해보자.
play1 점의 개수를 세지 않고 단번에 맞히기
play2 여러 카드를 섞어놓고 점의 개수가 같은 카드까지 고르기
play3 엄마가 수를 불러주면 그 수에 해당하는 점이 찍힌 카드를 빨리 찾아내기
play4 임의로 카드를 선택한 후 그 카드에 있는 점의 개수보다 하나 더 많은 수를 말하기
02. 10 만들기 1에서 9까지 적힌 카드를 늘어놓고 엄마가 1을 들면 9, 2를 들면 8 등 두 숫자의 합을 10으로 만들어 카드를 치우는 게임. 10의 보수 개념을 자연스레 알려준다.
5. 큰 수를 경험시키고 같은 수도 달리 표현해본다.
1~10이 아닌 좀더 큰 단위의 숫자에도 노출시킨다. 가장 좋은 것이 '돈'. 10원, 50원, 100원짜리 동전에서 시작해 1000원, 10000원까지 다양한 단위의 수를 소개할 뿐 아니라 수의 크기를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보게 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또한 사과 반쪽을 '사과 ', 1m는 100cm 등 같은 수를 다르게도 표현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1. 추상적 사고의 기초를 세운다 '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의미 있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아이에게 이를 제대로 이해시키는 것이 우선. '전화놀이' 같은 역할놀이를 여러 번 하면 실제로 전화 거는 것이 어색하거나 어렵지 않은 것처럼 아이가 여러 개의 실제 사물을 보고 만지고 놀면서 어떤 것이 다른 어떤 것을 상징할 수 있다는 원리를 받아들이게 한다.
2. 수학 놀이를 십분 활용한다 놀이를 통한 수학적 토대를 만드는 것이 좋다. 크기가 다른 블록을 조립하면서 아이들은 물체가 점점 커지거나 작아지는 현상을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은 나중에 배우게 될 수의 규칙적 증가를 보다 빨리,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 수학 놀이에 활용하기 좋은 장난감
01. 바둑알, 땅콩 아이의 흥미를 끄는 주변의 사물을 활용해 수 세기를 경험시킬 것. 어떤 종류든 관계없다.
02. 블록 구조물이나 특정한 패턴을 만들어 놀면서 수학적 감을 익힌다.
03. 트럼프 숫자가 쓰인 플래시 카드나 숫자와 해당 수만큼의 도형이 함께 나오는 트럼프를 가지고 놀면서 즉지 능력을 키울 수 있다.
04. 밀가루반죽 자유롭게 변형되는 특성을 활용해 자유롭게 떼보고 붙이는 과정을 통해 나누기, 더하기, 분수 등의 개념을 심어주기 좋다.
05. 그밖에 보드게임, 주사위 놀이, 특정 기준에 의해 분류가 가능한 장난감 세트, 시계 등 숫자와 관련된 놀잇감.
3.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게 한다 수학과는 별로 관계없어 보이는 체육 활동도 중요한데 이를 통해 공감각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에 비해 수학적 감각이 뛰어난 이유를 이것으로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감각을 키우면 '숫자 수직선'의 감각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된다.
4. 실생활에서 '수학'을 찾아본다 수학은 종이 속의 숫자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려준다. 가령 라면을 하나 끓일 때에도 물의 양, 끓이는 시간, 끓이는 방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또 마트에 쇼핑을 갔다면 물건을 고르고 값을 비교하고 돈을 지불하는 과정을 통해 수를 익힐 수 있다. 아이에게 직접 돈을 지불하고 거스름돈을 받게 하면 더욱 좋다. 여행을 하면서는 속도의 의미와 시간의 흐름 등을 느낄 수 있고, 내비게이션이나 지도에서 도착지를 찾아보면서 공간적 감각을 키우는 것도 권할 만하다. 키나 몸무게, 신체기관의 길이를 측정하거나 '얼마 정도 될지' 짐작해보는 것도 좋다. 이처럼 아이에게 수학이 나와 전혀 무관한 영역 아님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5. 연산 문제는 '시각화'하는 훈련을 한다 연산 기호와 숫자로만 돼 있는 수학 학습지를 잘 못 푼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 것. 중요한 점은 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숫자나 기호가 아이의 머릿속에 어떻게 '이미지화'되고 있느냐다. 10-7이라는 연산을 "곰 인형 10개가 있는데 친구에게 7개를 주었다면 몇 개가 남을까?"로 바꿔 생각하게 하면 아이가 머릿속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된다. 이처럼 상황을 떠올릴 수 있도록 돕는다면 시각적으로 쉽게 상상할 수 있고, 나아가 공감각을 요구하는 문제의 해결 능력도 키울 수 있다.
"아이에게 '수학'은 당연히 어렵다"
올여름 출간된 < 아이들은 왜 수학을 어려워할까? > 를 쓴 안승철 교수의 전공은 '교육'이 아닌 '생리학'이다. 의대에서 뇌와 청각에 관한 연구를 하는 그가 '수학교육'에 관한 책을 쓴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의 수학 공부를 봐주다 '속 터진 경험'이 계기가 됐다. "딸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치다가 좌절했어요.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수학을 곧잘 했는데 왜 아이는 수를 어려워할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죠. 아내가 읽어주는 동화책은 거의 외우다시피 했으니 무척 대조적이고요." 딸아이의 수학 능력에 관심을 갖다 보니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수를 깨우치고 연산 과정을 받아들이는지 궁금해져 논문을 찾고 공부를 하다가 무릎을 쳤다. 문제는 딸이 아니라 아이가 어떻게 수를 인식해가는지를 알지 못했던 자신에게 있었던 것. 이를 알게 된 이후 아이를 가르치는 태도가 바뀌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책에는 본능으로서의 수가 기술적·사회적 의미로서의 수로 아이들 마음에 자리잡는 과정이 여러 가지 심리 실험과 연구결과로 제시돼 있다. 안 교수는 아이가 수학을 어려워한다면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보다 더 과한 걸 요구한 게 아닌지, 아이가 '수'를 내면화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었는지 먼저 생각해보라고 충고한다. 많은 엄마들이 궁금해하는 '반복 연산 훈련'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 학습지 한 장에 어떤 요소 없이 '1+1, 1+2, 1+3' 등 비슷한 패턴의 문제만 연달아 나오고 기계적으로 계산을 반복하는 것은 아이의 호기심을 끌기 어렵고 결국 수에 대해 '무감'해지기 쉽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 뽀로로 > 를 봐도 되는 시간에 책상에 앉아 수학 문제를 푸는 '의미'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 안 교수의 생각. 유아 수학교육은 답을 맞히는 기술보다 머릿속의 수를 눈앞에 그릴 수 있는 '수학적 상상력'을 키우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몇 번을 알려줘도 수 세기를 제대로 못하고 쉬운 계산 문제도 틀리는 아이를 보면 '왜 이것도 몰라?'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죠. 하지만 어른이 보기엔 쉬워도 아이는 '진짜' 어려운 거거든요.
뇌가 수를 인식하고 연산하는 과정 자체가 '본능'을 극복하는 일이랍니다."
*사진 | 이주현
*일러스트 | 경소영
*도움말 | 안승철(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부교수)
*참고도서 | < 아이들은 왜 수학을 어려워할까? > (궁리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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