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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처녀와 대한민국 청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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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387회 작성일 10-09-28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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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평범한 이들처럼 살고 싶은 부부
<밀착취재>조선 처녀와 대한민국 청년은 어떻게 만났을까④
newsdaybox_top.gif 2010년 09월 27일 (월) 11:53:12 김양희 기자 btn_sendmail.giftongil@tongilnews.com newsdaybox_dn.gif

리정애와 김익의 결혼에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조선적 처녀와 대한민국 국적의 청년은 지난 9월 9일 혼인신고를 했고, 국적란이 공란으로 이루어지는 등 불안정하지만 그래도 혼인신고는 16일 확인 결과, 성립이 됐다.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조선적과 대한민국 국적의 부부가 탄생한 만큼, 이들의 만남에 축하를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한 일간지에 이들의 사연이 소개된 후 ‘북에 가서 살아라’, ‘이들이 말하는 조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이런 식으로 간첩이 많이 들어오는 것이다’라는 식의 댓글이 수 없이 달려 이들 부부를 가슴 아프게 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들의 결혼을 두고 조선적 문제를 여론화하기 위한 기획성 이벤트로 치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몸소 실천(?)한 것뿐이다. 왜 신부는 조선적을 버리지 않는지, 그리고 재일동포와 한국인 청년이 어떻게 만나고 사랑을 했는지 주변 사람들에게는 궁금한 것 투성이다. 이들 부부에게서는 특별한, 그렇지만 다른 연인들과 특별할 것이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서 들어봤다. 이 밀착 취재는 네 차례에 걸쳐 연재된다. / 편집자 주


   
▲ 조선 처녀 리정애와 대한민국 청년 김익은 국적만큼 서로의 성격이 많이 다르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다르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가며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어한다. [사진 제공-김익]

달라도 서로에게 반한 두 사람

30여년이 지나도록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자란만큼 물과 기름처럼 너무나도 다른 성격을 가진 리정애와 김익. 옛말에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가며 잘 산다고 해서 그런지 첫인상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대체 언제 반해 결혼을 결심한 것일까?

리정애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서 김익에게 반했다고 한다. 평화적인 촛불집회에서 물대포가 등장하는 등 점점 경찰의 탄압이 심해질 무렵 학생운동 경험이 많은 김익이 많은 도움이 됐다.

“당시 물대포가 심했는데 온몸으로 물대포를 막아줬어요. 어떻게 움직이면 좋을지 등을 꼼꼼히 챙겨주는 등 운동을 했던 경험이 발휘 됐죠. 특히 정세나 통일이야기를 할 때 많이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참 멋있어요. 학생운동을 했던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데 이야기를 듣다보면 익이가 활동을 했던 모습이 상상이 되면서 모르던 사실 알게 되고 저도 같이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불같이 화를 내도 언제나 한결 같은 김익의 모습도 리정애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끔씩 멍한 모습이라 대체 이 남자가 최고의 대학인 고대를 나온 게 맞나 싶어요. 이렇게 멍청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나 걱정이 될 정도죠. 가끔은 제가 민족고대가 아니라 만족고대를 나온 게 아니냐고 하곤 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짜증을 내며 헤어지자고 해도 익이는 항상 참아주거든요. 그게 늘 미안하고 고마워요.”

반면에 김익은 느릿하고 무던한 성격만큼이나 아내 리정애에게 확 끌리고 반한 순간도 없었다고 한다. 대신 처음 봤을 때부터 조금씩 더 좋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결혼을 결심했다고.

“처음 봤을 때 워낙 기대가 커서 생각과는 달라 실망을 하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좋았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만날수록 더 좋아져 특별히 언제 반했는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결혼 결심도 하게 된 것이죠. 만나면서 정애에게 헤어지자는 말도 아주 지겹도록 들었는데요, 그냥 듣고 넘겨버립니다. 다행히 아내의 화는 순간 치솟고 지나면 아무렇지 않게 사라지는데 몇 분, 심지어는 몇 초짜리도 있어요. 제가 오히려 맞받아치면 며칠도 가기 때문에 그냥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에요. 그 부분에 대해 아내가 고마워하는 줄 몰랐어요.”

반국일주(半國一週)의 신혼여행

현해탄을 넘은 사랑인 만큼 아무리 힘든 역경이 닥쳐도 극복하겠다는, 견고하고 단단한 이들은 오는 10월 10일 전통혼례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백년해로를 다짐한다. 전통혼례가 아니면 절대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리정애의 의견에 따른 것이다. 어렵게 만난 이들을 축하해주기 위해 결혼식에 가수 우리나라, 가극단 미래, 청춘, 우리학교 팬까페 등이 달려와 도움을 주기로 했단다.

이들은 결혼식이 끝나면 바로 보름가량 신혼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신혼여행의 주제는 ‘반국일주’(半國一週). 분단으로 인해 국토의 반쪽은 갈 수 없기 때문에 나머지 반쪽이라도 곡곡을 돌아본다는 의미로 반국일주로 정했다고.

“정애가 국적 문제로 해외에 나갈 수 없습니다. 특히 정애는 온천을 좋아해 꼭 금강산에 가고 싶어했는데, 갈 수 없기 때문에 대신 남쪽에서 전통과 관련있는 곳들을 가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쪽 땅 곳곳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장모님도 저희와 함께 일주일 정도 여행을 함께 합니다. 장모님은 특히 월출산과 통영을 가보고 싶어 하시고 김장체험을 꼭 하고 싶어 하셔서 그 곳들엔 꼭 가려고 하고 정애를 위해 전주 한옥마을과 각종 전통관련 체험장과 축제들을 돌아보려 합니다. 여행을 위해 지인에게서 얻은 차로 맹렬히 운전연습중이예요. 비용이 많이 들다보니까 차에 텐트를 실고 야영을 하기도 하고 섬진강 같은 곳에서는 은어를 잡고 동해안을 지날 때에는 바다낚시를 할 예정입니다. 결혼도 하고 이제 취업도 걱정해야하기 때문에 신혼여행은 15일 정도의 일정이 될 듯합니다.”

경제적인 부분 고민

이들은 석관동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결혼은 연애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말처럼 이들은 이제 석관동에서 현실과 맞서 싸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김익의 취업 문제. 김익은 지난 8월 2년간의 공익근무를 마치고 소집해제 됐으며 지금은 결혼과 신혼여행 준비로 정신이 없고 아내의 번역일 등을 돕고 있지만 조만간 앞으로의 진로 등을 결정해야한다.

좋아서 결혼하는 것은 하는 거지만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내의 걱정도 많다.

“일본에서는 주변사람들 눈도 있고 왠지 꼭 명품가방을 가져야 하는데 오히려 이곳에 오면 필요가 없고 오히려 명품가방이 부끄러울 정도로 가치관이 달라졌어요. 그렇지만 막상 운동권 남자랑 결혼을 하려니 경제적인 부분 등 현실적인 문제와 맞닿으면서 걱정스러운 게 많았어요. 그때 주변의 조언을 많이 들었는데 ‘김익이 좋은 사람이니 괜찮을 꺼다, 사람 좋은 것이 최고다’라는 말에 결심을 한 것이죠. 결혼식을 앞두고도 경제적인 고민은 여전히 됩니다. 김익이 전과2범에 나이도 많으며 직장 한번 다녀보지 않은 사람이라 일반회사를 다니지는 못할 것인데 이 험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이력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조선적’ 동포에 자유로운 여행 보장돼야

   
▲ 지난 9일 서울 종로구청에서 김익 씨와 리정애 씨가 혼인신고를 접수하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통일뉴스 자료 사진]

당장 앞으로 어떻게 경제활동을 하면서 살아갈 지도 걱정이긴 하지만 이들은 가장 큰 걱정은 리정애의 국적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 당장 오는 11월 12일에는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 정부 때만 해도 여행허가서를 신청하면 거부 없이 거의 다 마음대로 들어오고 연장도 할 수 있었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까다로워졌다.

특히 결혼을 앞두고 상견례 등을 이유로 신청을 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가 9개월여 만인 지난 8월 12일 오사카 한국영사관에서 ‘3개월 뒤 꼭 돌아오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3개월짜리 여행증명서를 발급 받으면서 겨우 들어올 수 있게 됐다.

리정애는 이전 방문에서 건강이 나빠져 입원치료 등을 이유로 체류 기간 3개월을 넘긴 적이 있고 이런 이유로 여행허가서를 받기가 어렵단다. 오사카 영사관에서는 “왜 국적을 바꾸지 않냐”고 계속 물으며 “바꾸라는 강요는 아니다”고 했다고 한다. 또한 “결혼식을 한다니 안타까워 주지만 자유롭게 다니려면 국적을 바꿔야 한다. 결혼식만 하고 인터뷰 등 일체의 다른 활동은 하지마라”고 했다고.

실제 리정애의 가족들 중 작은고모와 사촌들은 북한에 가본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결혼식 참석을 이유로 방문신청을 냈지만 2주 만에 불허 판정을 받았다. 때문에 리정애와 김익은 이번에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면 2년여 간은 이곳에 돌아올 수 없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 김익은 먼저 부부가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절절한 심정을 전했다.

“모르는 사람들은 정애가 정 조선국적을 유지하고 싶다면 3개월에 한 번씩 일본에 다녀오면서 국적을 유지하면 되지 않냐고 하거나 저보고 일본에서 살면 되지 않냐고 합니다. 없는 살림에 비용도 비용이지만 다시 아내가 돌아오지 못하게 될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내나 저나 모두 일본이 아닌 우리 땅에서 살고 싶습니다. 이곳에서 서로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이어 김익은 정부당국이 ‘조선적’ 동포들에게 여행증명서가 아닌 여권을 발급해 줄 것을 요구했다.

“혼인신고도 됐으며 결혼도 하는 만큼 아내가 이 땅에서 살아야 할 사유는 명확합니다. 재일동포문제를 인도적인 차원에서 검토해 아내가 이곳에서 아무 문제없이 살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꼭 일본을 가지 않더라도 외교통상부의 면담만으로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하고 궁극적으로 ‘조선적’ 동포들에게 여행증명서가 아닌 여권을 발급해야 합니다.”

김익은 1인시위를 할 수도 있다는 비장감을 전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조선적’ 동포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1인시위 등을 계획하는 등 아내가 이곳에 체류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데 온 힘을 쏟을 것입니다. 그래도 안 된다면 아내는 불법체류자가 될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제가 일본으로 가서 대사관 앞에서 아내의 여행허가서를 달라고 1인시위를 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통일을 위한 활동 예정

남한 내에서 ‘조선적’-‘대한민국 국적’의 첫 번째 부부이다 보니 이들의 상징성이 크다. 때문에 이들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 노력할 생각이다. 당장은 리정애가 이 땅에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앞으로도 이들은 재일동포 문제에 대해서 알려나갈 생각이다.

“정애는 재일동포들의 권익을 위한 활동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하곤 합니다. 또 개성공단에서 무역사무와 관련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내비치기도 해요. 그렇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문제가 분단문제로 인한 것이기에, 지금 제일 필요한 것은 분단의 모순을 극복하는 것으로 통일을 위한 진보적인 활동을 지속하고 싶어합니다. 당장 경제적인 문제로 취업 등을 고민해야하지만 그래도 저 역시 정애를 지키며 통일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

이들 부부는 결혼을 앞두고 문득문득 ‘아들 딸 구분하지 않고 애를 많이 낳아야겠다.’, ‘애를 낳으면 입시위주의 경쟁보다는 민족교육을 받을 수 있는 우리학교에 보내겠다’는 등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미래 역시 우선 리정애의 국적문제가 해결되어야 가능한 일.

가뜩이나 결혼을 앞두고서 이런저런 준비로 누구나 정신없이 바쁘다고 하는데 이들은 국적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을 하는 일까지 부여된 상황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다른 연인들과 다르지 않게 서로 싸우기도 하고 서고 애타가면서 연애를 하면서도 다른 연인들과 다른 결혼준비로 바쁘다.

이들은 국적문제가 빨리 해결돼 다른 평범한 부부들처럼 살고 싶어 한다. 재일동포가 결코 특별한 이들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한민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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