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친’ ‘팔로어’로는 왜 혁명을 이룰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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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연결이 사람의 연대를 대신하는 시대의 사회운동은 어떤 모습일까.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연대가 약해서 사회변혁 운동으로 발전하기 어렵다는 주장과, 강한 연대로 발전하리라는 전망이 엇갈린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사용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스마트폰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트위터가 인기를 끌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는 별로 친하지 않던 40~50대가 페이스북 열풍에 속속 동참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소셜 미디어의 숨겨진 힘에 주목하면서 소셜 미디어가 우리 사회의 키워드로 떠오른다. 정치인들의 트위터 소식이 알려지고, 김미화씨가 트위터를 통해 KBS 관련 의혹을 제기하고 발 빠른 트위터들이 추석 전날 폭우 현장을 생중계하는 등 소셜 미디어는 이제 우리의 일상생활 도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소셜 미디어 전도사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대표되는 소셜 미디어를 모르고는 현실을 따라갈 수 없다고 목청을 높인다. 이제 인터넷의 대세는 소셜 미디어의 향방에 의해 좌우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처럼 정보의 연결이 사람의 연대를 대신하는 시대에 사회운동은 어떤 모습을 갖게 될까?
<아웃라이어> <티핑포인트> 등을 쓴 인기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최근 미국 주간지 <뉴요커>에 ‘작은 변화, 트윗으로는 왜 혁명을 이룰 수 없나?’라는 글을 실었다. 이 글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가 사회적 행동과 운동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는 소셜 미디어 전도사들의 주장에 쐐기를 박는다. 그의 글은 소셜 미디어와 사회운동은 어떤 관련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그의 주장을 둘러싸고 찬반 양론이 격렬하게 갈렸다.
ⓒ시사IN 안희태
1980년대 운동이 사람들 간의 강한 연대를 기반으로 했다면, 촛불집회(위) 같은 요즘 사회운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한 ‘약한 연결’을 기반으로 한다.
그는 약한 연결을 바탕으로 하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는 근본적인 사회변혁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약한 연결의 광범위함과 빠른 확산 속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1960년대 민권운동 시절 운동이 지녔던 연대의 물질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분명 미국의 1960년대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은 현장과 물질을 바탕으로 한 운동이었다.
한국의 1970~1980년대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넷은커녕 대자보와 유인물 이외에 변변한 대항 미디어조차 없었던 시대에 거리에서 온몸으로 권력에 대항하던 1980년대 운동은 사람들 간의 강한 연대를 기반으로 했다. 그것은 손가락 클릭으로 정보를 연결하고 리트윗한 글을 읽고 컴퓨터 앞에서 머리로 판단해 그 글을 비트로 확대 재생산하고 널리 퍼뜨려 여론의 힘을 모으는 정보 전파에 기대는 운동이 아니었다. 거리에서 짱돌과 화염병을 던지고, 어깨를 걸고 스크럼을 짜던 당시의 운동은 분명 몸의 운동이었다. 그것은 무수한 ‘연결(link, tie)’의 양적 확산이라기보다는 강력한 몸의 ‘연대(solidarity)’에 바탕을 둔 운동이었다. 1960년대의 몸에 기반한 사회운동을 경험하거나, 그것을 운동의 전형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손가락으로 리트윗하는 링크 기반 운동은 가소롭기 그지없는 일이다. 강한 연대의 운동 동지 처지에서 볼 때 약한 연결의 ‘트친’ ‘팔로어’는 같잖은 것이고, 손가락 클릭으로 하는 ‘좋아요’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한편 사회학자 투페키는 소셜 미디어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찬양을 비판하는 글래드웰의 핵심적 주장에는 공감하지만, 약한 연결과 강한 연결을 서로 연결하지 못하는 인식적 오류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비판을 가한다. 그녀는 글래드웰이 ‘약한 연결’과 ‘강한 연결’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데, 양자를 너무 대립적이고 모순적인 것으로 파악했다고 비판한다.
ⓒ시사IN 조남진
1980년대 운동이 사람들 간의 강한 연대를 기반으로 했다면, 촛불집회 같은 요즘 사회운동은 소셜 미디어(위)를 통한 ‘약한 연결’을 기반으로 한다.
‘연결’이 실질적인 연대로 상승해야 가능
강한 연결과 약한 연결은 질과 양의 구분으로 볼 수도 있다. 사실 소셜 미디어 효과는 대부분 질이 아니라 양에서 출현한다. 약한 연결과 강한 연결을 대립적으로 보는 글래드웰의 견해는 분명히 근본주의적 냄새를 풍기는 데 반해, 투페키의 주장은 소셜 미디어를 좀 더 유연하게 현실 사회운동과 연결시킬 여지를 열어놓는다.
소셜 미디어의 사회운동적 가능성은 그것이 강한 연결이건 약한 연결이건 어떻게 실질적인 연대로 상승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지속성을 확보하고 물질적 힘으로 전환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 40~50대 장년층의 경우 페이스북은 이전의 나름 ‘강한 연대’를 가졌던 사람들이 ‘약한 연결’로 다시 만나는 특이한 양상을 보여준다. 1980년대 ‘강한 연대’로 엮여 있던 사람들이 2010년에 ‘약한 연결’로 만나고 있는 것이다. 매우 재미있는 현상이다.
사람들의 네트워크라기보다는 정보 전달이라는 미디어 기능이 더 큰 트위터는 약한 연결의 요소가 더 많다. 페이스북·트위터 친구들과 맺어지는 이 약한 연결에 기대어 다시 강한 연결이나 더 나아가 약한 연대에서 강한 연대로 나선적 상향을 경험할 수 있을까? 소셜 미디어의 새로운 가능성은 약한 연결을 통한 이슈의 형성과 강한 연대로의 상향에서 나올 것이다. 친구들 간의 수다, 기술 동향 정보 공유, 이웃돕기 같은 캠페인, 연예계 비평, 감상공유 등은 분명 사회적 행동주의(social activism)에는 못 미치는 것들이다.
소셜 네트워크는 현실 세계에서 강한 연결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서 출발한다. 때로 약한 연결이 여기에 끼어들어 ‘약한 연결→강한 연결→약한 연대→강한 연대’라는 나선적 발전의 기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일상적 차원에서 보면 강한 연결은 강한 연결대로, 약한 연결은 약한 연결대로 반쯤 폐쇄된 닫힌 집합체를 형성하기도 한다. 집단적 공감과 공유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배타적 집단 의식이 강화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의 트위터와 페이스북 실태를 근거로 사회운동과 연결해 논하기는 아직 이른 듯하다. 그러나 이건 ‘올드 보이’의 생각이고, 최근의 20~30대 젊은 층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의 새로움은 이미 있던 곳이 아니라 이전에는 없었던 곳에서 생겨날 것이다.
출처: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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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약한 연결이라 할지라도 트윗이나 페이스북의 연대가 평소에는 약한 연대를 유지하다가
정말 꼭 필요한 때, 예를 들어서 중요한 선거의 이슈를 공감하게 된다거나, 커다란
힘을 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비록 대형 매스컴은 권력자가 좌지우지할지라도 약한 연대를 통하여 민중이 서로 연대할 수 있는 미래가 열리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