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사회' 내세웠던 전직 대통령의 파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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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사회의 화두 중의 하나는 '정의'이다. 최근 하버드대학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12주 연속으로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정의'가 사회의 화두가 되는 이 같은 현상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일 것이다. 정의롭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정의에 대한 갈구를 보여주는 것이리라.
지난 11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미납된 추징금 300만 원을 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1672억이나 되는 미납 추징금 중 5만573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정말 미미하기 짝이 없는 소액이다. 그렇다면 전두환은 왜 이런 행동을 했나? 보도된 바에 따르면, 내년 3월로 끝나는 추징금 납부 시효를 앞두고 강제집행에 의한 재산 압류의 험한 꼴을 막기 위해서이거나, 추징금 납부 없이 그 시효가 끝났을 시 그에게 돌아올 국민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틀린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전직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그런 얄팍한 '꼼수'나 쓰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니, 이에 대해 우리가 분노해야 할지, 아니면 슬퍼해야 할지 참으로 착잡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사회의 지도층들이 그에 걸맞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행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마당에 전직 대통령을 역임한 사람까지 이런 파렴치한 행동을 하는 판이니, 사람들이 정의에 대해 목말라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대통령 재임 당시 전두환이 '정의사회 구현'을 국정목표의 하나로 내걸었다는 사실이다. 불법적인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했고, 쿠데타 과정에서 이에 저항했던 광주시민들을 참혹하게 진압하면서 집권했던 전두환 정권의 국정목표로서는 정말 뜻밖의 목표였지만, 아무튼 전두환 정권은 '정의사회 구현'을 국정의 주요 목표로 내걸었다. 그렇다면 전두환 정권의 '정의사회 구현'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우선 전두환정권 초반기인 1982년에 "단군 이래 최대의 금융사건"이라 지칭되었던 장영자ㆍ이철희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전두환 대통령의 처삼촌으로 당시 광업진흥공사 사장이었던 이규광의 처제였던 장영자와, 육사 2기 출신으로 중앙정보부 차장과 유정희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그의 남편인 이철희가 건설업체에 접근하여 현금을 제공하는 대신 그 몇 배에 달하는 어음을 받아 이를 사채시장에 할인함으로써 거액의 자금을 조성했던 사건이었다. 당시 그들이 사채시장에서 할인한 액수는 무려 6404억 원에 달했다.
이후에도 전두환 정권 기간 동안 권력비리사건은 끝이지 않았다. 1983년에 발생한 명성그룹사건과 영동진흥개발사건도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 시기의 권력비리와 관련하여 무엇보다도 눈길을 끌었던 것은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이 그 책임을 맡았던 새마을운동중앙본부의 권력비리였다. 전경환은 노태우정권 초기였던 1988년에 구속되었는데, 검찰은 그를 73억6000만 원의 횡령과 10억 원의 탈세 그리고 4억1700만 원의 이권 청탁 혐의로 기소하였다.
정작 '정의사회 구현'을 가장 크게 배반했던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 자신이었다. 김영삼 정부 시기에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진행되었던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비자금 수사 결과 재임 당시 전두환은 9500억 원 규모의 비자금을, 그리고 노태우는 5000억 원 구모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1997년 4월 대법원은 이들 비자금 중 일부를 뇌물로 인정하여 전두환의 경우 2205억 원을, 노태우의 경우 2628억 원을 그 추징금으로 부과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지금까지 전두환은 추징금 전체 액수의 24.2%인 533억 원을 납부했고, 노태우는 추징금 전체 액수의 89.2%인 2345억 원을 납부했다. 따라서 그 미납액은 전두환의 경우 1672억 원에 달하고 있으며, 노태우의 경우 그것은 283억 원에 달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전두환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300만 원을 더 납부하기에 이르렀다.
미납 추징금 300만 원을 겨우 낼 정도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돈이 없었나? 그것은 아닌 듯하다. 그가 수시로 가족이나 측근들과 골프를 회동을 갖거나, 그의 아들들이 고가의 고급 빌라를 구입하는 등 엄청난 재력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정답은 검찰이 그의 은닉된 재산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두환의 300만 원 납부와 관련하여 검찰관계자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생각하여 최대한 자진 납부를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다. 이로 미루어본다면 검찰은 추징금 납부보다 예우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뿐 아니라 추징금 300만 원 납부와 관련해 전두환과 검찰 사이에 타협이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추측도 있다. 추징금을 받아내지 못하고 있는 검찰의 딱한 처지와 추징금 납부 시효를 연기하고 하는 전두환의 처지가 맞아 떨어져, 300만 원 납부로 서로 타협이 되었으리라는 추측이 그것이다.
전직 대통령에 의해 뻔뻔스럽게 자행되는 이런 사태에 직면하여,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그렇게 가혹했던 검찰의 이런 태도에 직면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우리 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지난 11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미납된 추징금 300만 원을 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1672억이나 되는 미납 추징금 중 5만573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정말 미미하기 짝이 없는 소액이다. 그렇다면 전두환은 왜 이런 행동을 했나? 보도된 바에 따르면, 내년 3월로 끝나는 추징금 납부 시효를 앞두고 강제집행에 의한 재산 압류의 험한 꼴을 막기 위해서이거나, 추징금 납부 없이 그 시효가 끝났을 시 그에게 돌아올 국민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틀린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전직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그런 얄팍한 '꼼수'나 쓰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니, 이에 대해 우리가 분노해야 할지, 아니면 슬퍼해야 할지 참으로 착잡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사회의 지도층들이 그에 걸맞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행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마당에 전직 대통령을 역임한 사람까지 이런 파렴치한 행동을 하는 판이니, 사람들이 정의에 대해 목말라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대통령 재임 당시 전두환이 '정의사회 구현'을 국정목표의 하나로 내걸었다는 사실이다. 불법적인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했고, 쿠데타 과정에서 이에 저항했던 광주시민들을 참혹하게 진압하면서 집권했던 전두환 정권의 국정목표로서는 정말 뜻밖의 목표였지만, 아무튼 전두환 정권은 '정의사회 구현'을 국정의 주요 목표로 내걸었다. 그렇다면 전두환 정권의 '정의사회 구현'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우선 전두환정권 초반기인 1982년에 "단군 이래 최대의 금융사건"이라 지칭되었던 장영자ㆍ이철희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전두환 대통령의 처삼촌으로 당시 광업진흥공사 사장이었던 이규광의 처제였던 장영자와, 육사 2기 출신으로 중앙정보부 차장과 유정희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그의 남편인 이철희가 건설업체에 접근하여 현금을 제공하는 대신 그 몇 배에 달하는 어음을 받아 이를 사채시장에 할인함으로써 거액의 자금을 조성했던 사건이었다. 당시 그들이 사채시장에서 할인한 액수는 무려 6404억 원에 달했다.
이후에도 전두환 정권 기간 동안 권력비리사건은 끝이지 않았다. 1983년에 발생한 명성그룹사건과 영동진흥개발사건도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 시기의 권력비리와 관련하여 무엇보다도 눈길을 끌었던 것은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이 그 책임을 맡았던 새마을운동중앙본부의 권력비리였다. 전경환은 노태우정권 초기였던 1988년에 구속되었는데, 검찰은 그를 73억6000만 원의 횡령과 10억 원의 탈세 그리고 4억1700만 원의 이권 청탁 혐의로 기소하였다.
정작 '정의사회 구현'을 가장 크게 배반했던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 자신이었다. 김영삼 정부 시기에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진행되었던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비자금 수사 결과 재임 당시 전두환은 9500억 원 규모의 비자금을, 그리고 노태우는 5000억 원 구모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1997년 4월 대법원은 이들 비자금 중 일부를 뇌물로 인정하여 전두환의 경우 2205억 원을, 노태우의 경우 2628억 원을 그 추징금으로 부과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지금까지 전두환은 추징금 전체 액수의 24.2%인 533억 원을 납부했고, 노태우는 추징금 전체 액수의 89.2%인 2345억 원을 납부했다. 따라서 그 미납액은 전두환의 경우 1672억 원에 달하고 있으며, 노태우의 경우 그것은 283억 원에 달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전두환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300만 원을 더 납부하기에 이르렀다.
미납 추징금 300만 원을 겨우 낼 정도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돈이 없었나? 그것은 아닌 듯하다. 그가 수시로 가족이나 측근들과 골프를 회동을 갖거나, 그의 아들들이 고가의 고급 빌라를 구입하는 등 엄청난 재력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정답은 검찰이 그의 은닉된 재산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두환의 300만 원 납부와 관련하여 검찰관계자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생각하여 최대한 자진 납부를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다. 이로 미루어본다면 검찰은 추징금 납부보다 예우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뿐 아니라 추징금 300만 원 납부와 관련해 전두환과 검찰 사이에 타협이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추측도 있다. 추징금을 받아내지 못하고 있는 검찰의 딱한 처지와 추징금 납부 시효를 연기하고 하는 전두환의 처지가 맞아 떨어져, 300만 원 납부로 서로 타협이 되었으리라는 추측이 그것이다.
전직 대통령에 의해 뻔뻔스럽게 자행되는 이런 사태에 직면하여,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그렇게 가혹했던 검찰의 이런 태도에 직면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우리 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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