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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우리더러 죽으라고 하지 마십시오”
[르포] 박정희 새마을운동이 만든 마을, 낙동강변 ‘합수들’의 애환
(오마이뉴스 / 정수근 / 2010-10-20)
낙동강과 금호강 두 물길이 만나 빚어놓은 작은 섬 ‘하중도’에 농민들이 들어와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40년 전부터라고 합니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온 농민들이 4대강 사업으로 쫓겨나게 된다고 합니다. 그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기자 말
대구 달성군 화원읍 낙동강변에 위치한 화원유원지. 그 화원유원지 안의 화원동산에 오르면 저 멀리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 빚어놓은 하중도 두물머리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신라 35대 경덕왕이 행궁을 짓고 꽃과 경관을 완상하던 곳이라 하여 상화대(賞花臺)라고 불렸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두물머리 하중도가 4대강 토목공사와 대구시에서 추진 중인 에코 워터폴리스 개발구상안으로 사라지거나 파헤쳐질 위기에 놓였다. 이 비옥한 땅이 4대강 사업에 편입돼 이곳에서 수십 년째 농사짓던 농민들도 하루아침에 쫓겨나게 된 것이다. 하중도 두물머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9월부터 10월까지 몇 차례에 걸쳐 이곳 농민들을 만나봤다.
▲ 지난 5월 촬영한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 빚어놓은 두물머리 합수들. 좌측이 낙동강이고 우측이 금호강(달성습지)이다. ⓒ정수근 |
▲ 10월 현재 굴착기에 파괴된 하중도 합수들 ⓒ정수근 |
박정희 새마을운동이 만든 마을, 합수들
하중도 안에는 ‘합수들’이라 불리는 농지가 있다. 행정구역상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대구시 달서구, 고령군 다산면에 걸쳐 25만 평에 달한다.
20여 년 전에는 하중도를 흐르는 낙동강과 금호강의 물길이 연결돼 있었다고 한다. 장마와 태풍 등으로 물이 들고 나는 과정에서 육지와 연결된 현재와 같은 모습을 띠게 됐다고.
농민들이 이곳에 정착하게 된 계기는 새마을운동이다. 박정희 정권이 하중도 백사장에 새마을운동 일환으로 나무젓가락 재료로 쓰이는 일명 ‘이태리 포플러’ 나무를 심게 했고, 이로 인해 흙이 쌓이기 시작했다.
▲ 새마을운동 때 나무젓가락용으로 심었던 포플러 나무. 4대강 사업 공사로 모두 베어졌고, 공사를 피해 아직까지 남아있는 건 한 그루뿐이다. ⓒ정수근 |
1980년 초, 흙이 쌓이기 시작한 하중도에 농민들이 하나둘씩 들어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선친 때부터 이곳에서 농사를 지어왔고, 지금은 삼형제가 함께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김중섭(55) 씨는 “큰물이 들 때면 이곳이 3~4미터 복토가 된다”며 “그렇게 자갈과 쓰레기들이 뒤엉킨 이곳을 수십 차례 걷어내고 30여 년 전부터 경작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중도 백사장은 ‘합수들’이 되었다. 최근까지는 20~30여 명의 농민들이 이곳에서 감자와 무, 배추, 우엉 등의 채소농사를 짓고 있었다.
농민들에 따르면, 합수들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1년 전이다. 2009년 10월 중순, 농민들이 보리 파종을 마친 직후, 낙동강 23공구 시공사인 대림산업 측이 공사를 시작하면서 합수들이 4대강 사업에 포함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후 대림산업은 주민들을 모아 한차례 설명회도 열었다. 그 자리에서 대림산업은 파종한 작물에 대해 보상해 주기로 구두로 약속했고, 그해 12월 전경들이 현장을 지키는 가운데 보리밭을 그대로 밀어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보상은 없었다. 농민들은 하루아침에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농민들은 20여 명이다.
“권리금 6천만 원 주고 경작권 샀는데, 그냥 나가라고?”
“진작부터 농사를 못 짓게 하지, 수십 년을 경작해온 땅을 하루아침에 내놓으라고 하는데, 분통이 안 터질 사람이 누가 있노? 그리고 실제로 이곳은 강변의 각종 유기물질이 쌓이고 쌓여서 농사도 얼마나 잘 된다고.”
김중섭 씨는 “그동안은 아무 소리 않고 경작하게 하더니, 이제 와서 아무 대책 없이 떠나라고 한다”고 억울해한다.
김씨는 20여 명의 농민들과 올해 초 대책위를 꾸려 강정보건설단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공사(대림산업)에서 무단경작 고발로 벌금을 물리는 방법으로 대응해 와 이제는 싸울 엄두도 내지 못 한다”고 했다.
▲ 합수들의 산 증인인 김중섭 씨. ⓒ정수근 |
합수들에서 20년 이상 채소농사를 지어오고 있다는 정무영(72) 할아버지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아래쪽 밭은 벌써 ‘빼앗기고’, 지금 남은 1천2백 평 밭에 조선배추와 감자를 비롯한 채소를 키워 내다 팔아 호구지책을 하고 있다는 할아버지는 “노후대책도 못 세우고, 자슥들한테 용돈도 못 받는 소위 말하는 3대 바보가 나요”라며 “그래도 이렇게라도 나와서 벌어 먹고사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뒤늦게 합수들에 합류한 사람들은 더 속을 태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부분 이 땅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권리금을 주고 경작권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합수들은 국가 하천부지기 때문에 매매는 불가능하지만 경작권은 매매됐다고 한다.
“이곳에 들어올 때 6천만 원의 권리금을 주고 경작권을 샀서예. 그동안 막대한 빚을 얻어 농기계들을 구입해서 융자돈 다 갚은 지 3년밖에 안 됐어예. 이제 한숨 좀 돌릴 만한가 했더니 이런 꼴을…”
10년 전 이곳에 들어와 지금은 1만 5천 평에서 딸 내외와 채소농사를 짓고 있다는 진경순(62) 씨는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며 눈물을 보였다. 진씨는 “경작권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말을 이었다.
“85마력짜리 트랙터가 한 대 8000만 원 하고, 거기에 아세아관리기가 큰 거 하나에 작은 거 하나가 있제, 경운기도 두 대에, (물을 주기 위해서 설치한) 스프링클러도 한 개가 4만 원 하는데, 그게 260개나 들어가 있는데, 이들 농기계 값이 모두 얼만데예…”
▲ “농기계 값이 얼만데…” 합수들의 여성농민 진경순 씨가 제발 농사만은 지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하면서 하소연하고 있다. ⓒ정수근 |
진씨는 혹 다른 땅이라도 빌릴 수 있을까 싶어 주변을 알아봤지만 남는 땅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강 주변 하천부지들이 모두 이곳과 같은 처지였다고.
“대토라도 좀 주면 좋겠는데, 그마저도 받을 수 없으니 정말 죽겠어예 … 정말 억울해 죽겠어예. 제발 농사만 좀 짓게 해주세예.”
4대강 공사로 합수들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몰라
이런 가운데 합수들에는 굴착기 굉음이 이어지고 있다. ‘합수들’의 낙동강 쪽 강변을 따라 굴착기가 하천 숲의 나무를 사정없이 후려치며 뽑아내고 있었고, 덤프트럭도 쉴 새 없이 그 ‘옥토’의 흙을 퍼 나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합수들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4대강 사업 낙동강 22, 23공구 발주처인 수자원공사 한주헌 차장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이곳의 관리수위가 14미터이기 때문에 하중도 중에서 물에 잠기는 부분을 미리 (나무 베기 등) 정리작업 해주는 것이며 하중도는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보존할 것”이라며 “그 작업을 위해 낙동강을 가로질러 차량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하는 공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낙동강에 미니 교량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 파괴되는 습지와 나무. ⓒ정수근 |
그곳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으니 그는 “농민들이 그동안 그곳에서 무단경작을 한 것인데 그로 인해 생태계가 훼손된 측면이 많다”며 “원래의 하중도로 되돌려서 흑두루미가 날아올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전망대는 들어서지 않을 것이며 하중도와 달성습지도 그대로 보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달성군 재난방재과 담당자는 지금 합수들에서 하고 있는 공사가 무슨 공사냐는 필자의 질문에 “도류제(導流堤)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낙동강의 큰 물길 때문에 금호강 물길이 잘 못 흘러나오는 것을 잘 흐르도록 물길을 잡아주는 호안공사 즉 제방 공사를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두물머리 하중도에 공원이 들어서고 전망대 같은 시설물이 들어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구시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의 한 관계자는 “그 위치도 잘 모를뿐더러 그곳의 작업내용에 대해 모르겠다”고만 답했다. 한 지역에서 진행되는 사업을 두고, 왜 이렇게 말이 다른 걸까.
4대강 사업도 모자라 선상카지노까지?
아마도 생태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수공 관계자의 말대로 이곳을 인간들이 전혀 손을 대지 못하게 보존하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지금 벌이고 있는 공사는 납득하기 어렵다. 그의 말대로라면 지금 굴착기가 ‘정리하고’ 있는 강변 숲은 공사가 완료되면 물에 잠기는 부분이라는 것인데, 하천변 버드나무들은 하중도의 땅보다도 훨씬 높이 자라 있는 상태다. 낙동강 관리수위가 14미터가 된다고 해도 버드나무를 제거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그곳에 ‘도류제’를 위한 제방을 쌓고, 공원을 만들고 전망대를 세운다는 달성군 관계자의 말이 더욱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기 위해선 이곳의 농민들은 모두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고 말이다.
또 이곳을 연구해온 학자들에 따르면 원래 달성습지는 수공이 이야기하듯이 금호강 쪽의 일부 지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낙동강과 금호강, 하중도 모두를 이르는 말이다. 이들은 생태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지금과 같은 4대강 공사를 중단하고 이 일대를 모두 습지보전지역으로 지정해 보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농민들에 대한 보상책도 함께.
영남자연생태보존회 류승원 회장도 “수자원공사가 그 일대는 건드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대구시가 아마 그곳을 그대로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대구시도 금호강을 4대강 사업처럼 개발한다고 이야기를 흘리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류 회장은 이어 “수자원공사에서 흑두루미 운운하는 것은 우스갯소리”라며 “흑두루미는 얕은 물에 노는 철새인데 관리수위가 14미터나 된다는 낙동강에 왜 오겠느냐”고 반문했다.
▲ 에코 워터 폴리스 개발구상 조감도. 이 개발구상안에서 낙동강과 금호강 사이에 놓인 곳이 ‘합수들’이고, 이 구상안에 따르면 ‘합수들’의 농민들 대신 선상카지노와 박물관 및 공연장이 들어선다고 한다. ⓒ대구경북연구원 |
4대강 사업뿐만이 아니다. 한나라당 조원진 의원이 제안한 개발구상안, 즉 ‘에코-워터 폴리스’ 개발구상안에 따르면 이곳에 선상카지노와 박물관, 공연장 그리고 철새탐방타워 등이 들어선다고 한다. 이와 관련, 예산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들려오는 한편 ‘미 투자은행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대구시 수변 공간 개발추진 부서의 권호성 사무관은 “아직 연구용역도 들어가지 않은 검토단계”라며 “미 투자은행과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은 맞으나 그쪽에서 적극적인 후속조처를 하지 않고 있고, 양해각서 시한도 다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사견임을 전제한 뒤 “투자수익이 없을 듯해서 실현가능성이 적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영남자연생태보존회 류승원 회장은 “그렇게 말해놓고 슬그머니 추진하는 게 대구시”라고 못 믿겠다고 말하고 있다.
▲ 대구시가 추진하려 하고 있는 에코워터폴리스 개발구상안에 따르면 합수들 가장자리 부근에 선상카지노를 위해 20만 톤급 크루즈선이 놓인다고 한다. ⓒ대구경북연구원 |
“우리더러 죽으라고 하지 마십시오”
그동안 농민들은 물을 대기가 수월해 낙동강을 따라 하천변에 채소농사를 많이 지어왔다. 그러나 낙동강변은 국가 땅이라 대부분이 무허가 관행농사다. 정부에서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지는 채소밭 1.4% 운운할 때 이런 미허가지들은 통계에도 들지 않았다. 이렇게 전국적으로 2만 5천 명의 농민들이 생업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있다고 한다.
합수들 농민들은 국가 땅이었지만 허가받고 농사짓기도 했다고 말한다. 이들 중 일부는 하천부지 이용세를 냈다는 말이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세금을 거둬가지 않았다고 한다.
전농 경북도연맹 이재동 사무처장은 “달성군과 고령군의 개진이나 우곡의 농민들도 그동안 자신들이 경작해온 하천부지 이용세를 납부하다가 몇 년 전부터 관청에서 거두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농민들을 통해 많이 들었다”며 “그것이 의도적이든 의도적이 아니든 농민들의 생계를 완전히 빼앗은 상황에서 무대책으로 농민들을 내쫓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 처장은 이어 “농민들이 대항해서 싸우면 좀 보상해주고 아니면 안 해주는 등 불합리의 극치”라며 “지금이라도 지자체나 정부 차원의 적절한 보상이 있어서 농민들이 최소한의 생계는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는 것이 이명박 정부가 주장하는 그 공정사회에도 부합하는 일일 것”이라고 했다.
굴착기가 휩쓸고 간 합수들에서는 뭇 생명들의 방황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삽질에 둥지를 잃어버린 듯한 한 무리의 쇠백로들이 쓰러진 나무 위를 빙글빙글 돌며 방황하는가 하면, 고리니와 너구리, 오소리들도 널렸다.
“저 고라니예, 이곳에 셌심더(많다), 그뿐인가요. 너구리, 오소리도 많심더.”
▲ 고라니 한 마리가 무밭을 가로질러 달려가고 있다. 합수들엔 고라니가 천지라고 한다. ⓒ정수근 |
합수들 농민들과 뭇생명들에게도 봄이 올 수 있을까. 김중섭 씨와 김종갑 다사읍 죽곡리 동장의 허탈한 외침이 더 크게 들려오는 가을이다.
“4대강 사업으로 일자리를 창출한다면서 이게 일자리 창출이가? 이 밭에 보통은 하루 40명, 많게는 하루 100명이 일한다. 연인원 2500명이 이곳에서 일하는데, 이제 더 이상 이곳에서 농사짓지 말라 한다. 이게 무슨 일자리 창출인가?”
“4대강 유역에서 우리 같은 농민들이 이렇게 농사를 지어왔기 때문에 그동안 채솟값이 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국민경제에도 상당한 도움을 드린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지금 우리더러 그냥 나가라 하고 있다. 내쫓더라도 기본 배려는 있어야 하지 않나. 정부에서 이제껏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아서 이곳에서 농사를 지어왔는데, 처음부터 농사를 못 짓게 했으면 탄광이나 청소부라도 하며 먹고살 것인데, 그 수많은 세월 동안 아무 소리 안 하다가 이제 와서 그냥 내쫓으면 어쩌라는 것이냐. 우리더러 죽으라는 소리가 아니냐….”
▲ 두물머리 합수들과 달성습지. ⓒ정수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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