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치권력 결탁 한국사회 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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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 예속 ·사회파행… 시민단체 감시가 출구
재벌 ·골든패밀리 횡포 경제민주화 필요 시점
박근혜 '오늘의 현상'…신문 여론장악 못해
‘불편한 진실’을 담은 소설이 출간됐다. 한 재벌이 법망을 피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경영 세습’에 나선다. 검찰, 국정원, 공무원, 언론사 사주까지 재벌의 로비에 포섭된다. ‘국민 경제를 위하여’라는 단 한 마디에 국민 여론은 잠잠하다. 소설을 읽을수록 김용철 변호사의 ‘제2 폭로’를 보는듯한 느낌이다.
조정래(68· 사진) 작가는 신작 장편 소설 ‘허수아비춤’을 출간하며 “이 작품을 쓰는 내내 우울했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 사회의 ‘자화상’을 그린 것처럼, 작품 곳곳에는 ‘불의’와 ‘증오’의 기운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런 소설을 쓸 필요가 없는 세상을 소망하면서 이번 소설을 썼다”며 “작가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정래 작가를 지난 11일 서울 목동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불신· 침묵· 냉소의 시대를 또박또박 원고지에 쓸 수밖에 없었던 작가로부터 한국 사회의 ‘그늘’과 ‘희망’에 대해 3시간 여를 들었다. 원래는 신간 ‘허수아비’ 집필에 대한 간략한 인터뷰로 시작했지만, 인터뷰는 어느 새 차수를 변경하며 한국 사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한 전망에 이르기까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결국 그 인터뷰의 정리 또한 꼬박 1주일 가깝게 걸리는 긴 작업이 됐다.
▲ 이치열 기자 truth710@ |
“제가 쓴 어떤 소설보다 책 판매 속도가 빨라요. 1주일 만에 10만 부를 돌파했는데, 출판사에선 책을 찍지 못할 정도라고 합니다. 인터파크에서 인터넷 연재를 할 때는 누적 조회 수가 220만 건에 달했죠. 이 소설의 소재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집중적 관심을 받고 있다는 얘기죠. 그만큼 시급하고 큰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겁니다. 작가로서는 희비가 엇갈려요. 이런 사회에서 이런 소설 쓰는 것의 비극성이 있지만, 대중들이 관심을 갖는 면에선 글 쓰는 의미가 있죠.”
- 재벌의 비리를 상세히 짚었습니다. 집필 과정에서 시민단체를 많이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참여연대, 아름다운 재단 등 많은 시민단체를 후원하고 있어요. 시민단체가 낯설지 않습니다. 제 경험을 토대로, 민주주의를 신장시키려면 선진국처럼 시민단체가 활성화 돼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이 소설을 썼어요. 소설에서 밝혔듯이 정치권, 법조계, 고급 공무원, 언론 등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 집단이 경제 권력과 결탁하거나 그들에게 예속돼 버린 이런 세상 속에서 국민은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가 없어요.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결탁해 있고, 사회가 계속 파행으로 가는데, 이걸 막고 정상화하려면 시민 단체들이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고서는 다른 해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집필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재벌의 영향력이 사회적으로 안 뻗친 곳이 없지만, 나는 작가입니다. 그들이 내게 압력을 가할 방법이 없고, 내가 그 압력에 굴복할 이유도 없습니다. 작가들은 사회의 모순이 많고 갈등이 클수록 앞장 서 그걸 타개하려고 노력을 했어요. 빅토르 위고, 톨스토이, 에밀졸라 등 어느 시대나 작가는 산소 역할을 하죠. 작가에게 금력이라는 것은 아무런 압력, 유혹이 될 수 없어요.”
-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를 가슴에 담지 않으면 작가일 수 없다’고 말했는데.
“작가만이 아니더라도 이 시대 살아가는 민주 시민 모두가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를 가슴에 품어야 하는 거죠.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권, 사회 질서도 지켜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여럿이 모여 있을 때는 공동체를 느끼지만, 돌아서서는 개인의 사적 욕구를 충족하려는 이중성이 있어요. 하지만, 개인주의로 파편화 된다면, 이 사회는 결국 권력과 재력을 가진 자의 손아귀에 노예가 됩니다. 이 인식을 철저히 하는 게 민주 시민이죠. 공동체 의식을 잃어버리고 ‘남이 해주겠지’라고 생각한다면, 민주 시민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정치권력이 지켜주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힘을 합해 지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투표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중, 삼중의 감시를 위해 시민단체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이제 시작입니다. 아직 멀었어요.”
- 우리 사회의 경제민주화가 오늘 이 시점에서 특별히 중요하다고 보는 이유가 있는지요.
“지금은 경제민주화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시점입니다. 이번 소설에 허수아비 춤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그동안 국민은 ‘기업이 잘 되면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막연한 환상, 몽상이 있었는데, 그걸 깨야 합니다. 소설은 재벌의 잘못만 지적한 게 아니라 이를 방임한 모든 사람들이 의미 없는 허수아비 춤을 춘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같은 재벌의 횡포가 나타난 것이죠. 둘째, 재벌을 에워싸고 있는 친위대 즉 최고 학벌을 가지고 ‘골든 패밀리’라고 하는 자들의 비리 행위를 허수아비 춤으로 만들지 않으면 이 땅에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기자들이 시민단체와 지식인 몇이 나선들 어떤 문제가 해결되겠느냐고 자꾸 회의를 품습니다. 하지만 몇몇 재벌들이 법적으로 문제가 돼 재판을 받고, 비리가 일부 드러난 것도 시민단체의 고발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활동하는 시민단체 200여 개가 2000개, 5000개 되면 이 땅은 달라지지 않겠어요? 달라진다니까요.”
- 경제민주화가 안된 핵심 이유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첫 번째 이유는, 국가의 비호 하에 오늘의 재벌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경제 범죄에 대해 너무 관대하거나 무관심하게 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비리를 저지른 경제인들이 중형을 살아야 하는데 무죄로 나와도 ‘그들이 잘 돼야 우리가 잘 산다’는 망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방심하고 막연한 기대를 한 국민의 무책임 탓도 큽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에 대해 국민들이 ‘민주주의’ 대신 ‘경제’를 선택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책 뒷부분을 보면 재벌 친위대들이 모여 앉아 대중들을 비웃잖아요. ‘자발적 복종을 한다며, 우리는 영원할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지난 대선 얘기 나오잖아요. 당시 ‘경제 살린다’는 한 마디에 엄청난 표를 주었는데, 대중들이 가진 이기주의가 있었던 겁니다. 맹목적 이기주의로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기회주의가 있었던 거에요. 어리석은 거에요
-국민들이 무엇이 중요한지를 잘 몰랐다는 것인가요?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체제는 60여 년 밖에 안 됐고, 거기서 30여 년이 군부 독재였습니다. 국민 70~80%가 고등교육을 받은 것도 한 10년 정도일 뿐입니다. 기본만 갖췄을 뿐이죠. 구체적으로 여러 사회 병리 현상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능력을 갖추기에는 짧은 기간입니다. 이제 그것을 시작하고 있고, 이 작품에선 지금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촛불 집회 등에서 큰 목소리를 냈지만, 지금은 침체돼 있습니다.
“침체라고 보면 안 됩니다. 물이 흘러가다가 무른 땅을 만나면 스미고 구덩이를 만나면 스스로 채워 넘칩니다. 흐르는 물을 막지 못해요. 국민의 뜻도 잠시 잠복해 있을 뿐이지, 그 불만이 쌓여서 정권을 교체합니다. 매 번 마다 국민 뜻대로 안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은 정권에서 느낀 배신을 정권 바꾸는 것으로 보복합니다. 기다려야죠. 국민은 영원하니까. 초조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기다리는 인내도 민주주의입니다. 지금은 민주주의 훈련을 하고 있는 거에요. 국민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정권을 만들어 내려고 심사숙고를 하고 있습니다.”
- 소설을 보면 기자들이 촌지를 받고, 언론사가 광고에 휘둘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우리나라만 아니고 세계 언론이 자본과 결탁했거나 예속된 경우가 많습니다. 도요타 사건도 그렇죠. 15년 전부터 문제가 있는데도, 도요타가 광고와 로비로 문제를 계속 덮었다가 썩은 게 터져버렸죠. 자본으로부터의 언론 자유는 경제 민주화가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풀립니다. 경제 민주화라는 것은 기업들이 비자금을 모으지 않고 투명 경영을 해서 세금을 정직하게 납부하는 것이죠. 투명하면 언론이 기업에 굴복할 것이 없습니다.”
- 하지만, ‘족벌언론’이 여론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선 경제 민주화가 되기 전에 언론이 여론을 왜곡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겠습니까.
“IT 산업의 발달과 함께 신문의 제왕적, 사회 영향력도 엄청난 속도로 감소되고 있습니다. 뜻대로 안 될 것입니다. 신문이 과거처럼 자기 입맛에 맞게 여론을 주도할 수는 없습니다. 언론이 사회를 좌지우지했던 시대는 서서히 종말을 고하고 있는 겁니다. 올바른 것, 진실한 것을 쓰지 않으면 국민으로부터 외면을 받게 돼 있습니다. 과거처럼 신문사들이 여론을 장악하는 그런 시대는 안 옵니다. 정직하지 않고서는 그나마 생존도 존속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 4대강 등 사회의 중요한 쟁점에 대해 언론이 침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문이 어떤 정책에 찬성할지, 반대할지는 자유죠. 그러나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언론은 그 정책이 실패할 때 정권과 함께 비판받아야 합니다.”
- 시민단체가 그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200년 전 마키아벨리는 정치인을 비양심적 존재가 아니라 무양심적인 존재라고 했죠. 정치인, 법조계 등 권력기관은 물론 언론까지 재벌 돈에 매수돼 나쁜 짓을 하면서 국민을 버리고 있습니다. 믿을 데가 없는 상황이죠. 그들에게 권력을 줬으니 감시, 감독을 안 하면 되겠습니까. 그들을 감시, 감독하는데 시민단체에 한 달에 2만 원씩 내는 것이 뭐가 어렵겠습니까. 술 한 번 안 마시면 됩니다.”
- NGO의 시대는 이미 지나간 것 아닙니까. 일부 시민단체들이 지난 10년 동안 상당히 성장하고 최근 침체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NGO 시대는 이제 시작입니다. 이전 정권에서 시민단체가 정부 지원금을 받기 시작한 것은 잘못한 것이죠. 정부를 감시·감독하는 것이 시민단체인데 돈 받으면 비판적 기능이 약해집니다. 그들이 정부 지원금을 받게 되는 것은 국민이 무관심해 지원을 안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시민단체에 대한 국민의 참여가 중요하고, 바로 지금이 그 때입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정치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 이치열 기자 truth710@ |
“박근혜 인기는 오늘의 현상입니다. 2011년, 2012년 되면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민주주의를 신장시킬 수 있는 기본적 자질이 있는 사람, 국민을 위해서 허심탄회한 사람, 민족의 통일 문제를 긴 안목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식견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업적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박정희는 18년 동안 집권했는데, 지금 단 5년 만에 뭘 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은 인구는 늘어나고 경제 구조가 커져 관리만 해도 벅찬 나라가 됐습니다. 지금 외부적으로는 통일 문제, 내부적으로는 인구 감소가 큰 문제입니다. 인구 감소를 해결하려면 사교육을 없애는 근본 정책을 해야 하고, 직장 여성이 아이들을 마음대로 맡길 수 있는 탁아소를 지어 무상 보육을 해야 합니다. 또 복지 예산을 늘려 고등학교에 무상으로 학비를 대줘야 합니다. 경제 민주화가 되면 기업의 세금을 통해 복지세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모델이 프랑스입니다(기껏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하나 싶었는데, 다시 ‘경제민주화’ 문제로, 원점으로 회귀했다).”
-재벌들의 세습 체제 어떻게 보시는지요.
“스웨덴도 세습하는 기업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는 엄정한 투명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세습을 하더라도 상속세를 제대로 내고 하라는 겁니다.”
-북한의 3대 세습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세습 문제는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세습은 민족 통일에 엄청난 장애가 될 것입니다. 세습 권력을 확고하게 하려고 계속 독재를 하게 될 것이고, 북한 동포들이 힘들게 될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하고 대통령을 갈아 치우는 대한민국 정서와는 정반대입니다. 통일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까지 6·15, 10·4선언까지 대화가 됐고, 앞으로는 답보 상황일 수밖에 없습니다. 민족적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 향후 집필 계획은?
“내가 68살인데 건강합니다. 앞으로 10년 정도 더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중국을 무대로 해서 세계가 각축하는 그 이야기를 쓰면 쓸 만한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편으로 2~3권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 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정말 사람답게 서로를 아끼고 대접하면서 신뢰할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을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민족처럼 비참한 역사를 산 사람들이 없죠. 중국 끝에 붙어 있고 그것도 반 토막이 됐는데, 정신 안 차리면 안 됩니다. 그런데 재벌들은 속이고, 눈앞의 욕심만 챙기고 있습니다. 이런 게 계속되면 나라가 망하고 기업들도 함께 망합니다. 저는 이 소설을 쓰면서 대중들이 자각하고, 기업인들도 스스로 잘못을 인식하길 바랐습니다. 이 땅의 젊은 작가들에게 정신 차리라는 말도 포함돼 있습니다. 책 서문에 ‘나랏일을 걱정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어지러운 시국을 아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옳은 것을 찬양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라는 정약용의 글을 인용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2010년 10월 19일 (화) 15:59:08 최훈길 기자 미디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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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님의 댓글
경계인 작성일'허수아비춤'이 쓰여져야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지만 대박이 터졌다니 기쁨니다. 가능한 많은 한국민이 이 책을 읽고 한국사회의 현실을 보다 잘 파악해서 한국사회를 보다 합리적이고 더불어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읍니다.
제이엘님의 댓글
제이엘 작성일역시 조정래 작가님이십니다! 한번 구해서 읽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한국현실에 꼭 필요한 책이군요. 조정래 작가가 건재해 있는 것이 참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