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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부재와 음악, 그리고 내가 만난 구자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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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댓글 2건 조회 4,092회 작성일 10-10-1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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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클래식 음악은 우리나라의 클래식 열기에 비하면 참 홀대받는구나 싶을 정도입니다. 음반을 사러 가서도 꽤 괜찮은 클래식 음반들은 팝 음반 가격에 대면 절반 정도이고, 그나마 중고 가게에 가면 그 정도가 더하다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약에 대해 홀대하는 것에 대해 지적들을 많이 하지만, 이들의 고전음악 홀대는 적어도 음반 판매 상황으로 보면 정말 홀대하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

 

반면, 클래식 음악을 지원하거나 키우는 것을 보면 뭔가 이율배반 같은 것을 느낍니다. 미국의 어지간한 중등교육기관 이상의 학교에 오케스트라 없는 곳이 없고, 심지어는 클래식 음악을 키우는 것을 하나의 국가적 지원사업처럼 보이게 만들 정도입니다. 팝 음악과 비교할 때 음반 구입 수준은 형편없는데,(가격까지도 저렴한데도) 클래식 음악을 스스로 연주하고 즐기는 사람들은 많다는 것 또한 이해 못할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금 스타성 있는 클래식 음악가들은 팝스타 이상의 대접을 받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고 널리 향유되는 클래식 음악은 모차르트입니다. 이것도 사실 헐리우드 영화 '아마데우스'가 이뤄낸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아마데우스는 미국인들의 클래식 음반 구입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그의 생일날이면 이곳에서도 모차르트의 생일임을 알리는 뉴스가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아무튼, 시애틀에서 클래식 음악을 방송하는 스테이션이 있습니다. KING FM (http://king.org) 인데, 이곳에서 특히 제가 좋아하는 코너가 있습니다. 일요일 아침에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인데, From the Top 이라는 것으로, 원래는 NPR(전국공영방송)에서 제작하고 만드는, 일종의 장학생 발굴 프로그램입니다.(http://fromthetop.org) 라디오 방송을 통해 실력있는 학생들을 지원하고, 이들을 클래식 음악가로 양성하는 것이죠. 재밌는 건, 이 방송을 들을 때마다 한국 학생이 올라오지 않은 적이 거의 없다는 겁니다. 처음엔 "야, 정말 우리나라 학생들 많이 올라오는구나!" 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만, 요즘은 오히려 한인 학생이 소개되지 않으면 "아니, 이번주엔 우리나라 학생들이 없네, 어쩐 일인가?"라고 중얼거릴 정도가 됐습니다. 글쎄요, 그만큼 우리 민족은 음악에 소질이 있는 걸까요? 하지만, 이렇게 많은 우리나라 학생들이 소개가 되는데도 프로그램이 의도하는 대로 전문 클래식 연주자나 지도자로 진출하는 한인은 별로 없는 듯 합니다. 항상 거기에 대해서 뭔가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우연히 광주 시립교향악단의 5.18 특집 음악회 연습 과정및 공연상황을 볼 수 있는 비디오를 감상하게 됐습니다. 링크는( http://www.kjmbc.co.kr/tv/index_02.asp?code=SPECIAL_PROGRAM&b_id=630&page=2&mode=view# 입니다. 동영상 자체 링크는 http://www.kjmbc.co.kr/vplayer/vod_s.asp?num=630&fmode=f0 ) 여기를 따라가시면 됩니다.

 

평소에 클래식 음악을 즐겁게 즐겨듣던 제게 구자범이라는 이 지휘자와의 만남은 비록 영상을 통한 간접적인 것이긴 하지만 제겐 큰 충격이었습니다. 일단 그의 경력도 특이했습니다. 철학도로서의 독일 유학, 그러나 음악으로의 인생 전환과 독일 하노버 국립오페라단의 수석 상임지휘자라는 특별한 경력, 그러면서도 "우리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곳, 해방 광주가 있었던 바로 그곳"을 말하며, 음악으로서 역사에 진 빚을 갚겠다며 광주시향 제의를 받아들여 한국으로 귀국한 그의 생각... 그의 면면은 알게 되면 되는대로 충격이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음악회의 곡으로 선택된 구스타프 말러의 '부활'이 광주에서 말러가 의미했던 그 의도 그대로 부활되는 모습을 영상으로 지켜보면서 저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구자범 지휘자는 공연 당시 그의 지휘동작 하나하나로, 그가 광주의 부활을, 이 땅 공동체의 부활을 소망함을 절절하게 보여주었고 그것은 그대로 제 가슴 속에 각인됐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클래식 공연실황보다도 너무나 절절하게 감동적이었던 공연이었습니다. 그리고 저 구자범이라는 지휘자가 한국인임을 너무나 자랑스럽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왜 내가 지금까지 이곳에서 그 많은 클래식 전공 학생들을 보아 왔으면서 그들 중 이름난 음악인으로 자란 사람이 별로 없는가를 바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철학의 부재.' 예, 그것은 바로 철학의 부재였던 것입니다. 음악을 명문대로 진학하기 위한 필요수단 정도로 인식하고, 이를 위해 음악 교육을 강요하는 한인 학부모들의 생각을 아이들이 그대로 가지고 자랄 경우, 우리에게서 구자범같은 위대한 (감히 저는 그를 위대하다 말하겠습니다) 음악가를 배출하기 힘들 듯 합니다. 아이들은 그저 실력있는 연주기계로 자랄 뿐, 정말 음악 안의 그 깊이와 음악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하긴 힘들 것입니다. 물론 구 씨는 철학을 전공하고 그것이 자신이 소화해 내는 음악 안에 녹아들어가기가 더 쉬울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에 철학이 녹아들어가있지 않은 이상, 또 세상을 이해하려는 어떤 노력이 없는 이상, 그 음악은 헛것이 되는 거지요. 물론 음악은 인간의 희노애락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그러나 메시지가 담긴 음악과 그렇지 않은 음악은 그것을 바라볼 때의 태도가 틀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려면, 오히려 아무런 생각 없이 음악을 '과제'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합니다. 한국에서의 음악 교육, 그리고 심지어는 미국내 한인 사회에서의 음악 교육 인식은 연주 엘리트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그것이 지속되면 결국 음악을 '음'으로만 이해하지, 그 정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을 만들어 내는 것 같습니다.

 

구자범이라는 이 음악가를 만나게 된 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그리고 그런 음악가가 내 동시대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음악과 역사에 대해 인식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매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 하는 그의 모습을 영상으로나마 훔쳐볼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기쁩니다. 언젠가 한국에 가면 꼭 광주에 가서 그가 지휘하는 모습을 눈으로만 보지 않고 호흡해보고 싶습니다. 정말 '혼'이 담긴 음악을 연출해 낼 수 있는 클래식 음악 지휘자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 참 뿌듯합니다.

 

 

시애틀에서...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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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님의 댓글

경계인 작성일

구자범, 철학적 사고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 음악이란 예술적 축복도 받았네요.  사상과 예술의 통합이라 대단합니다.  그리고 받은 재능 뿐만 아니라 깨닭은 역사의 부채의식을 행동으로 보답하는 그 정신과 용기가 참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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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꿈리님의 댓글

불꿈리 작성일

역사의식이라고는 전혀 없는 또라이 정명훈과 비교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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