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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 3남 "장호준"목사의 종교 수필-"3위1체론과 교회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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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슴도치
댓글 0건 조회 9,545회 작성일 10-10-0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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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준 수필-④]3위1체론(?)과 교회가 해야하는 일(?)



장호준 목사는 고 장준하 선생의 3남2녀중 3남으로 미국 커네티커트에서 2개 교회 담임 목회자로 활동하면서도 주중에는 교육구 수쿨버스 운송국에서 일한다. 장목사는 이번 주 네번째 수필, "3위1체론(?)과 교회가 해야하는 일(?)"라는 제목의 글을 <민족통신>에 특별기고하면서 재미동포사회에 기독교인들이 많은데 일부 목회자들은 3위1체론이 뭔지,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뭔지 혼돈하고 있는 경향이 있어 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그의 4번째 수필을 소개한다. [민족통신 편집실]

[장호준 수필-④]

"3위1체론(?)과 교회가 해야하는 일(?)"


*글:장호준(UCC 커네티커트 코리안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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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장호준 목사
한 삼십 여년전, 전도사 시절,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데리고 기도원으로 여름 수련회를 갔던 적이 있었다.

기도원문화에 대해, 특히 청소년들에 대한 재래적 한국 기도원 문화에 대한 부적응 증후군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내 맘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말단 새끼 전도사 주제에 이렇다 저렇다 내 의견을 제시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고 또한 그런 의견을 내 놓는다고 해서 들려질 상황도 아니었던 지라 그저 구경 가는 심정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청소년 여름 대각성(?) 심령 부흥회(?)를 한다는 기도원에 가게 되었다. 특별히 그 기도원은 성령의 능력으로 입신(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얻어지는 '무아경'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간단히 '자빠뜨림'이라고도 하는)을 시키는 것으로 유명한 부흥사를 데려다가 여름 내내 집회를 하고 있었다.

대체적으로 여름 부흥회라는 것이 월요일에 시작하면 목요일경에 끝나게 되고 마지막 날쯤에 가서 안수나 성령 세례, 입신 같은 것을 하게 되는데 그 부흥사는 어찌나 성령(?)이 넘쳤던지 부흥회를 시작한 다음날 저녁부터 입신을 시키겠다며 두 손을 펼쳐 들고 "불 받아라!"를 외쳐댔고 그렇게 하면 그 부흥사의 손길이 향하는 쪽에 있는 아이들은 말 그대로 성령의 불을 받아 다 뒤로 자빠지는 것이었다. 마치 운동장에서 응원을 할 때 파도 놀이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선생 만 한 제자 없다’는 말처럼 내가 데리고 간 학생들에게는 그놈의 ‘불’이라는 것이 영 먹혀 들어가질 않았다. 해서 다른 교회에서 온 학생들은 강사의 손길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잘도 넘어져 주는데 내가 데리고 간 학생들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부흥사가 손을 뻗어 "불 받아라!"라고 하면서 목청이 터져라 외치다 못해 온 몸을 내 던져도 눈만 멀뚱멀뚱 처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한 수 더 떠서 내 지극히 사랑하는 중학교 2학년짜리 남자아이 둘은 부흥사가 손을 들어서 그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손을 내리 뻗으면서 “불 받아라!”하고 외치면 오히려 부흥사를 빤히 처다 보고 있다가 몸을 요리 조리 움직이며 싹싹 피하는 것이었다. 마치 누군가 돌을 던지면 그 돌을 피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듯 말이다. 그리고는 집회가 끝나고 나면 자기들끼리 '야, 나는 세대 맞았는데도 안 죽었다.', '나한테는 네 대 쐈는데 세대 피하고 한 대밖에 안 맞았다.' 하고 자랑을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맨 앞줄에 앉아서 말이다.

결국 집회가 끝나고 난 후에 부흥사가 나를 부르더니 내일부터는 아이들을 앞자리에 앉히지 말고 저 뒷자리로 옮기라고 했다. 하긴 맨 앞줄에 앉아 싹싹 피하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불 받아라!"할 맛이 안 나기도 했을 것이다.

대부분 한국 교회는 성령을 불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찬송가도 "불길 같은 성신이여‘라고 하면서 (물론 영어로 된 원제목은 'Come, Thou Burning Spirit'이다) 성령을 불이라고 칭하는 근거를 성서에서 찾는다. 하지만 사도행전 2장에서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사건을 묘사한 부분을 잘 살펴본다면 한국 교회들이 지금껏 잘못된 해석으로 인하여 성령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이유는 성서는 ‘불같은 성령’이라든가 ‘성령의 불’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불길 같이 갈라진 혀'라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제자들이 받은 것은 '불'이 아니라 '혀’(이 단어는 ‘언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기독교가 그리도 찾아 헤매는 성령이란 사실은 ‘불’이 아니라 ‘언어’ 즉 ‘말’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제자들은 자신들이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보지도, 사용해보지도 못했었던 외국어로 말을 하게 되었으며 성령으로부터 받은 ‘혀’를 가지고 언어가 전혀 다른 사람들과 소통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 이었다.

기독교는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가지고 있다. 물론 성서에 근거한 교리는 아니지만 교회의 이름이라는 절대적 종교 권력으로 교리를 만들어놓았고 그 교리에 따라 성령을 하나님의 영으로 즉 삼위 중의 한 하나님이라고 가르쳤다. 더 나아가 이 ‘삼위일체’교리라는 것을 기독교의 정체성을 판가름하는 잣대로 사용해 왔고 또한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너 삼위일체를 믿어?’하는 물음에 ‘믿어’라고 대답하면 기독교인인 것이고 ‘글쎄’ 또는 ‘잘 모르겠는데’ 라든가 ‘아니’라는 대답을 하게 되면 기독교인이 아닌 것으로 판단을 했었다는 것이다. 하긴 ‘내가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아니면 이슬람교인이든 그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는 생각이라든가 또는 ‘네가 어떤 종교를 믿든 그것은 네 선택이며 자유이다’라는 신념이 통하는 세상에서 라면 네가 ‘삼위일체’라는 교리는 믿든 않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겠지만 기독교라는 이름의 절대적 종교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 안에서는 ‘너 삼위일체 교리를 믿어?“라는 질문은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을 갈라놓는 기준이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응, 믿어‘라는 대답 외의 어떤 대답도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죽기 싫으면 ‘삼위일체’ 교리를 믿어야 했다. 그리고 그 ‘삼위일체’교리가 가르치고 있는 성령을 믿어야 했다. 그런데 그 성령이 무엇인지 몰랐다. 아니 자기들 편한 대로, 자신에게 유용한 방식으로 해석을 했다. 아니 어쩌면 성령을 불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조차도 성령이 무엇인지 몰랐을 것이다.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저 그런 줄 알고 ‘성령의 불 받아라’라고 용감하게 외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무식해서 그렇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 그래서 더욱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성령의 불 받아라!“

Bible Society의 자료에 의하면 현재까지 성서가 번역된 언어가 일천육백여개에 달한다고 한다. 이를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참 많은 다른 언어들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정작 사람과 사람 간에 의사가 통하지 않는 것이 단순히 언어의 다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같은 언어,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간에 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서로 간에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다른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배추 값이 한국 사회를 뒤 흔들고 있다고 한다. 국민들이 배추김치를 담아 먹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자 그 처절한 사정을 대통령이 전해 듣고는 ‘배추 값이 너무 비싸 국민들이 김치를 담아 먹을 수 없다고 하니 내 식탁에는 양배추로 담근 김치를 올려라’라고 했다고 한다. 말이 안 통한다. 국민의 기본 반찬인 배추 값이 천정부지가 된 정부 정책의 실패에 대한 비판은 들리지 않고 기껏 양배추 김치 타령을 하고 있다. 그 대통령이 개신교 교회의 장로라고 한다고 한다. 과연 그 대통령이 다닌다는 교회에서는 성령이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치기는 했는지 의심이 간다.

많은 한국 교회들은 아직도 성령을 ‘불’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자기 불이 진짜 ‘성령의 불’이라고 우기고 있다. 말은 없고 불만 있다. 다른 교회가 아니라고 하면 ‘불’을 던져 버린다. 소통은 없고 서로 불지르기 싸움만 하고 있다. 그 덕에 교회는 온통 불바다가 되어 버렸다.

과부 사정 홀 애비가 안다고 한다. 과부가 하는 말은 사정이 같은 홀 애비가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슴에 상처를 입은 자에게는 가슴의 상처를 입은 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눈물을 흘리는 자에게는 눈물을 흘리는 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배고픈 자에게는 배고픈 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이산가족에게는 이산가족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있고 분단된 민족에게는 분단된 민족 끼리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북한 조선적십자회가 2010년 추석을 맞아 남과 북으로 갈라져있는 이산가족들을 만나게 하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이산가족의 말’을 한 것이다.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금강산 상봉을 계기로 북남 사이의 인도주의 협력 사업이 활성화되기를 바란다고 했다고 한다. 분단된 ‘민족의 말’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남한 정부는 아직껏 대답이 없다. 들리지 않는 것이다. ‘이산가족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분단된 ‘민족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말은 분명 같은 단어, 같은 한국말인데 소통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성령은 말이다. 들리게 하고 알아듣게 하는, 소통하게 하는 말이다. 성령 하나님을 믿는 곳이 교회다. 그러므로 이제는 교회가 나서서 들리게 해야 한다. ‘이산가족의 말’이 들리지 않는 남한 정부에게 ‘이산가족의 말’이 들리게 해 주어야 한다. ‘민족의 말’이 들리지 않는 남한 정부에게 ‘민족의 말’이 들리게 해 주어야 한다. 평화를 전쟁으로, 통일을 분열로, 상생을 고립으로 알아듣는 먹은 귀가 뚫리게 해 주어야 한다. 제대로 알아듣게 해야 한다. 말이 통하게 해야 한다.

미국 내 한인교회가 사천여개라고 한다. 불 던지는 일은 그만하자. 무식한 불장난은 이제 그만 두자. 들리는 말, 통하는 말을 하자. 듣지 못하는 자들이 들을 수 있게 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자들이 소통 할 수 있게 하자. 민족의 말이 들리게 하자. 이산가족들의 울음이 들리게 하자. 평화 통일의 말이 들려지게 하자. 화해 상생의 말이 소통되게 하자. 이것이 성령 하나님을 믿는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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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 Hojun 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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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준 수필-③]"평화, 사랑, 통일이 하나님의 뜻이다""
*[장호준 수필-②]"믿으려면 제대로 믿어라"
*[장호준 수필-①]"네 삶의 주인공으로 다시 일어나라"

*관련 보도자료---장준하 선생 35주기 추모모임(로스엔젤레스)





[출처 : 장호준 목사 2010-10-03]

민족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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