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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 3남, 장호준 목사의 종교수필⑤---"그가 바로 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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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주동포
댓글 2건 조회 9,853회 작성일 10-10-1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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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준 목사 수필-⑤] “그가 바로 너다!”

 

장호준 목사는 고 장준하 선생의 3남2녀중 3남으로 미국 커네티커트에서 2개 교회 담임 목회자로 활동하면서도 주중에는 교육구 수쿨버스 운송국에서 일한다. 장목사는 이번 주 다섯번째 수필, "그가 바로 너다"라는 제목의 글을 <민족통신>에 특별기고하면서 재미동포사회에 기독교인들이 많은데 이들에게 외치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5번째 수필을 소개한다. [민족통신 편집실]

[장호준 수필-⑤]

"그가 바로 너다!"


*글:장호준(UCC 커네티커트 코리안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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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장호준 목사
다윗이라는 사람이 있다. 골리앗과 싸웠다는 그 다윗이다.

물론 신빙성은 없지만 그저 사람들이 다들 그렇다고 하니까 다윗이 골리앗과 싸웠고 이겼다고 한다. 물론 이 다윗이라는 사람은 성서에 등장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의심 가는 부분들이 많다. 그래도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지는 것 인지라 영웅 신화는 영웅을 만들고 마침내 다윗은 영웅이 되었다. 그래서 아직도 이스라엘은 다윗을 성군(聖君)이라고 부르며 국기에 등장하는 별을 “다윗의 별”이라고 부르지만 이 사람 속내를 드려다 보면 성군(聖君)이라는 칭호가 가히 부끄럽기 짝이 없고 오히려 성군(成群) 하여 패거리 문화를 창출한 시조라고 여여지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전쟁광이다. 어려서부터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각각의 부족들이 독립적 지위를 유지하였던 사회였다. 물론 사울이라는 사람이 다윗 이전에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사울의 왕권은 모든 부족들에게 영향력을 행사 할 수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남쪽의 몇몇 부족들 만을 모아서 나라를 만들고 왕 노릇을 했었다. 다윗의 등장으로 이스라엘 정치 권력의 판도에는 일대 변화를 겪게 된다. 그 결과 사울은자신의 사위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죽이기에 전력을 다 한다. 하지만 사울은 실패하고 다윗은 왕이 된다.

정치적 야합과 군사적 무력으로 제 부족을 정복한 다윗은 이이서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력마져 손아귀에 넣고자 법궤(성궤, 언약궤라고도 불리는 이스라엘 하나님 야훼의 상징)를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옮겨 놓는다. 그리고 이렇게 선포한다.
“이제부터 여기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다. “

지금까지 하나님은 자유로운 존재 였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존재였다. 온 세상 어디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갈 수 있는 존재였다. 세상 땅끝이라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찾아 갈 수있는 존재였다. 혼자 숨은 골방 구석에서도 함께 하는 존재였다. 소리 내지 못하는 흐느낌을 들을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예루살렘, 다윗 자신의 손아귀 안에서만 하나님은 존재한다. 아니 자신의 손아귀 안에서만 존재 해야 했다. 해서 모든 백성들은 누구도 어김없이 예루살렘으로 와야 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말이다. 하나님을 알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윗의 성’ 다윗의 손아귀 안으로 와야만 한다고 했다.

인간은 참 어리석다


참 어리석은 인간이다. 인간은 참 어리석다. 하나님을 자기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윗 뿐 아니다. 오늘도 어리석은 종교는 하나님이 자기 손아귀에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미친 생각이다. 그런데 그 미친 생각이 통한다. 그래서 자기가 최고란다. 하나님은 자기 기도를 들어주신단다. 자기 기도만 들어 주신단다. 불교의 기도는 듣지 않으신단다. 이슬람의 기도는 듣지 않으신단다. 오직 기독교의 기도만 들으신단다. 그건 하나님이 아니다.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을 기독교라는 밴댕이 속에 꾸겨 넣고자 하는 미친 생각이다.

다윗은 모든 것을 정복했다. 정치력, 군사력 그리고 종교력까지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다. 이제는 할 일이 없다. 이제는 힘에 부쳐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것도 할 수 없다. 전쟁은 휘하 장군들에게 맡기고 어슬렁 거리는 시간들만 늘어간다. 전쟁광은 전장에서 전쟁을 하다 죽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전쟁광 답다. 하지만 다윗은 전쟁광도 못되는 인간이었나보다. 결국 사단이 난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장수의 아내 밧세바와 정을 통한다. 얼마후 그 여인에게서 전갈이 온다. ‘아이를 가졌습니다.’

다윗의 비열한 잔머리는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 장수에게 특별 휴가를 주게한다. 왕이 내린 휴가 특명이다. 전장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하루 푹 쉬고 아내와 깊은 밤을 보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아는 예루살렘에 돌아와서도 아내에게로 가지 않고 병사들과 함께 왕궁 뜰에서 밤을 보낸다. 다윗이 걱정되어 묻는다. 우리아에 대한 걱정이 아니다. 자기가 저지른 비열한 일에 대한 걱정이다. 우리아가 대답한다.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모두 장막을 치고 지내며, 저의 상관이신 요압 장군과 임금님의 모든 신하가 벌판에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저만 홀로 집으로 돌아가서 먹고 마시고 내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할 수가 있겠습니까? 임금님이 확실히 살아 계심과 또 임금님의 생명을 걸고 맹세 합니다. 그런 일은 제가 하지 않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다. 이렇게 우직하게 충성스러운 사람이있다. 이렇게 진실하게 책임을 다 하는 사람이있다. 이렇게 성심으로 신뢰를 지켜 나가는 사람이있다. 이런 사람들을 보통은 미련하다고 한다. 세상 물정 모른다고 한다. 덜 떨어졌다고 한다. 멍청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나는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부른다.

특별 휴가를 마치고 전장으로 돌아가는 우리아에게 다윗은 봉인된 편지를 쥐어 준다. ‘요압 장군에게 이 편지를 전하여라.’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너희는 우리아를 전투가 가장 치열한 전선으로 앞세우고 나가라 그리고 너희만 그의 뒤로 물러나서 그가 맞아서 죽게하여라.”

더러운 놈!
다윗이 바로 그 놈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그렇게 죽고 그 아내는 다윗의 아내가 된다.


나단이라는 예언자가 다윗을 찾아왔다.

“어떤 성음에 두 사람이 살았습니다. 한 사람은 부유하였고, 한 사람은 가난 하였습니다. 그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난한 사람에게는 가져다 키우는 어린 암양 한 마리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 어린 양을 자기 집에서 길렀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 양은 그의 아이들과 함께 자라났습니다. 어린 양은 주인이 먹는음식을 함께 먹고, 주인의 잔에 있는 것을 함께 마시고, 주인의 품에 안겨서 함께 잤습니다. 이렇게 그 양은 주인의 딸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에게 나그네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 부자는 자기를 찾아온 소님을 대접하는데 자기의 양 떼나 소 떼에서는 한 마리도 잡기가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가난한 사람의 어린 암양을 빼앗아다가, 지기를 찾아온 사람에게 대접하였습니다."

다윗이 분개해서 나단에게 말했다.

“주께서 확실히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 하지만,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죽어야 마땅하다. 또 그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전혀 없었으니, 그는 마땅히 그 어린 얌양을 네배로 갚아 주어야 한다. “
나단이 다윗에게 말했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기독교는 다윗의 영웅 신화에 눈이 어두워졌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했다. 신도수를 늘리고, 헌금이 많이 걷히며, 교회 건물을 크게 짓기만 한다면 어떤 수단을 동원한다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라고 우겼다. 머리수 많고 돈 많은 교회에 하나님이 있다고 외쳤다. 머리수 많고 돈 많은 큰 교회안에 하나님을 가둘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니다. 그건 하나님이 아니다. 깨져 버린 우상의 한 쪼가리에 불과 한 것이다.

한국 기독교는 이명박의 성공 신화에 눈이 멀었다. 그래서 이명박을 선택 했다. 그리고 지금도 신화속에 빠져 헤매고 있다. 아니다. 신화를 등에 업고 자기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고 있다. 이명박 역시 한국 기독교가 만들어 놓은 신화의 피해자일 뿐이다. 그들은 언제든 자기 이익에 부합하지 못 할 때는 그 우상을 바깥에 내어던져 깨버리고 말 것이다. 이승만 정권에서, 박정희 군사 독재에서 그리고 전두환 살인 정권에서도 그렇게 했다. 하지만 그 깨진 우상 쪼가리에 상처를 입는 것은 민중들이다. 그 민중들이 바로 분단 조국에서 남과 북으로 흩어진 채 흐느끼고있는 참 하나님의 백성이다.

지금 한국 기독교에게는 나단이 필요하다.

“그가 바로 너다!”

이 일갈이 미국내 모든 동포이민 교회들에게서 터져 나올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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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 Hojun Chang
First Korean UCC / Storrs Korean Church U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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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준 수필-④]"3위1체론(?)과 교회가 해야하는 일(?)"
*[장호준 수필-③]"평화, 사랑, 통일이 하나님의 뜻이다""
*[장호준 수필-②]"믿으려면 제대로 믿어라"
*[장호준 수필-①]"네 삶의 주인공으로 다시 일어나라"

*관련 보도자료---장준하 선생 35주기 추모모임(로스엔젤레스)

[출처 : 장호준 목사 2010-10-10]

민족통신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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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단님의 댓글

나단 작성일

/지금 한국교회엔 나단이 필요하다/

옳은 말씀입니다.  장호준님의 명설교를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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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석님의 댓글

이민석 작성일

적어도 다윗은 반성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죄의 댓가를 치루었습니다. 자신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다 죽었습니다. 다윗과 이명박을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일반적인 영웅신화라면 영웅의 추악한 면은 감춥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대로 가감없이 드러냅니다.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다윗의 추악한 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명박은 다윗과 같이 참회하고 반성하는 인간이 아닙니다. 조중동은 성경과 같이 공정한 보도를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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