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그렇게 좋으면, 정치권 너희부터 효율성 높여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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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상님이 바쁘신지 귀한 글을 여긴 못올리셨군요. 옮겨왔습니다.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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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애틀의 우체부입니다.
휴식시간, 한국인답게 다른 동료들보다 일손이 빠른 편인 저는 이미 케이싱(배달 순서대로 우편물 챙겨 놓는 것) 다 마치고 첫 배달을 하기 전에 트럭에 메일을 실어 놓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여유가 있으면 친구들과 잡담 하면서 보내기도 하는데, 브라이언이라는 동료가 제게 말을 건넵니다. "조셉, 이거 들었어? 연방의회에서 우정국 사유화 검토한다는 이야기."
오래 전부터 들어왔던 이야기지만, 적어도 민주당 정권에서는 별로 나올만한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그냥 가볍게 흘려 넘겼는데, 다른 동료 우체부들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할 때는 그것이 그만큼 현실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우려가 짙게 배인 셈입니다. 당장 오늘 내일 벌어질 일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강력한 노조가 연방우정국 설립 취지를 내세우며 잘 버텨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불안감은 적어도 친구들 사이에서는 꽤 구체화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우체국이 사영화(저는 이른바 '민영화'라는 말엔 이상하게 앨러지가 돋습니다. 공기업의 반대가 사기업이지 민기업은 아니잖습니까) 된다면, 이것은 '이윤 추구'라는 목적이 가장 앞으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의 발호 이후 모든 것에 '효율성'을 내세우며 각종 공기업들을 민영화해 왔고, 이같은 움직임은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면에선 매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지금까지 걸어온 사유화의 길을 살펴본다면, 이것이 얼마나 많은 비효율과 인간적인 것들의 희생을 동반했는지가 그대로 나타납니다. 가장 최근에 '의료보험'을 둘러싼 논쟁은, 사유화를 통한 효율의 극대화란 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희생을 동반했는지에 대한 각성과 반성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이를 통해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고 있는 의료보험계와 의료계의 반발은 주민들에게 의료보험의 공영화가 '사회주의와 같은 맥락'이라는 허무맹랑한 선전까지 하게 만들고, 문제는 적지 않은 순진한 미국 노인네들 - 사회주의란 말엔 앨러지적 반응을 보이는 매카시즘 시대를 겪은 베이비 부머들 - 이 이 말을 듣고 의료보험의 공영화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에게 조직적인 반대표를 던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11월 2일의 미국 중간선거에서도 이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으며 공화당 정치인들은 민주당 정치인들을 공격할 때 이 점을 먼저 내세우는 저질적 행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체국은 어차피 처음부터 이 우정 사업이란 것이 적자를 안고 시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국가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즉 이것은 '주민에 대한 서비스' 차원으로 운영을 시작한 것이지, 이것을 통해 연방정부가 '이윤을 얻고자' 시작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급속한 발호 이후 '이윤을 못 내고 효율성이 떨어지면 그것을 민자에 넘겨 버린다'는 위협이 꾸준히 있어 왔고, 이제는 그런 위협들이 우리 일반 직원들에게도 피부로 느껴질 정도가 된 것이죠.
그리고 이런 바람은 이른바 '글로벌라이제이션', 즉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서 미국 뿐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의 거의 전체에 마찬가지 움직임을 불러옵니다.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복지 혜택의 축소, 이윤 증가를 위한, 즉 '효율성'을 위한 고용인원의 축소 등의 바람이 불게 됩니다. 그런데, 그래서 나타난 현상이 뭡니까? 결국 이는 부익부 빈익빈, 즉 사회의 양극화를 더욱 가파른 속도로 앞당겼고 인간적인 면들이 철저히 배재된 '숫자로 세분화되는 사회'만을 이뤄냈을 뿐입니다. 부자들은 그 숫자 놀음을 통해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들은 그 숫자놀음이 앗아간 '인간적인 것들'의 부재로 인해 더욱 심각한 사회적인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G20 회담이란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결국은 이 효율성으로 인해 만들어진 '이윤'을 보다 쉽게 국경너머로 옮겨가기 위한, '이윤은 철저히 개인적인 것'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이른바 '금융선진국'들의, 더 정확히 말하면 '기업 대표'들의 말장난 같은 거 아니었습니까?
미국이 이 정도라면,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것이 과거부터 심하게 존재해 왔던 주변국에서의 '효율성 관철'은 더욱 심각하고 잔혹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우리나라의 경우 일례를 들자면 최근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을 두고 일었던 논쟁이 그 하나의 비근한 예가 될 것입니다. 지하철은 공공 교통수단의 대표적인 것이지요. 그것이 가지고 있는 것은 일단 '공공성'입니다. 국가가 돈 버는 기관입니까? 국가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적인 기관입니까? 국가가 '기업화'되면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비인간성은 여기저기서 표출되고 있는 듯 합니다.
여기에 금전이 '효율성을 알려주는 바로미터' 혹은 '삶의 중심 목표'가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은 더욱 대기업, 즉 대자본이 전횡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즉 인간적인 것들에 대한 배제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윤만들기'의 윤리는 대기업으로 하여금 동네 수퍼마켓 근처에 대형매장을 세워 동네 피짜집까지도 잡아먹게 하고 이를 '보다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효율성의 극대화'라고 말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런 과정에서 정치세력의 도움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들이 스스로 '정치세력'이 됨으로서, 일반 민중의 정치 참여까지도 막고 그들에게 권력이 집중되도록 합니다.
신자유주의가 그렇게 훌륭하고 효율적이라고 한다면, 제일 먼저 그것을 국회와 정당, 정치세력들에 가장 먼저 적용하라고 하고 싶습니다만. 생산적인 법안을 생산하지 못하고 늘 세력 싸움만 하는 국회, 공기업의 건전한 재무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예산만 낭비하는 정부 등이야말로 가장 먼저 신자유주의의 타겟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 비효율성을 없애기 위해 얼른 저렴하고 돈 안들고 국민 말 잘듣는 정부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말하는 신자유주의, 바로 '효율성'을 세우는 데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기왕에 중요하게 생각되는 효율성이라면, 먼저 그들의 모습에 이를 적용시키도록 하는 것이 공평하지 않겠습니까?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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