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그리고 부끄러웠던 내 초등학교 반장 시절
페이지 정보
본문
초등학교, 그러니까 그때는 '국민학교'로 불렀던 때, 3학년 때였습니다. 제가 2학기 때 반장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나름 어렸을 때 영민했고, 또 선생님께서 귀여워 해 주신 덕도 있었고, 또 그때는 반장도 투표가 아닌 선생님의 지명으로 될 수 있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갑자기 그 작은 '권력'을 갖게 된 저는 자랑스럽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반에서 꽤 깡패처럼 굴던 몇 명이 제게 "너 반장 됐다고 우리 괴롭히면 알아서 해"라는 식의 협박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아이들의 따돌림이 두려워 이 애들에게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반장의 권리이자 의무인 '칠판에 떠드는 아이 이름적기'에서 그 애들의 이름은 빠지고 있었고, 저는 그 어린 나이에도 제 비겁이 싫었지만, 이 애들에게서 따돌림을 받는 것이 더욱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한번은 그 그룹에 끼지 않은 다른 아이가 제게 이런 말로 대들었습니다. "넌 왜 그 애들만 봐주는거냐." 부끄럽게도, 저는 그 아이를 협박했습니다. 조용히 하라고. 안 그러면 이름을 적겠다고. 그 애는 저를 경멸하듯 바라보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후 나이가 들고 머리가 커져가면서, 그때의 기억들은 때때로 내 머릿속에서 되살아나 나를 부끄럽게 만들곤 했습니다. 왜 그때 내가 당당하지 못했을까, 왜 내가 공정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제게 어떤 트라우마가 됐던 것입니다.
갑자기 이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이제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G20 정상회담의 진행 모습을 보면서입니다. 초등학교의 반장이 사실 아무것도 아니듯, G20 의장국이라는 자리도 사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제 어렸을 때의 모습처럼 '선진국들의 행패'엔 좌지우지되어버릴 수 있는, 그런 자리이기도 합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내 줏대를 세워야 하는데, 미국에게 FTA 관련 사항들, 특히 자동차 부문에서 대폭 양보를 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온다'는 이유로 '약자'인 국민들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강요하는 모습이 제 어렸을 때의 모습처럼 느껴지며 저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물론 외국에서 손님이 오신다면 최선을 다해서 환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 배어있는 미덕이기도 합니다. 굳이 국민들에게 강요하지 않아도, 이것이 정당하고 기쁜 일이라면 월드컵 때 국민들이 보여주었던 자발적인 참여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일단 스스로 어떤 것이 정당하고 중요하다고 자각하면 자주적으로 알아서 잘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그때 체험을 통해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G20의 정당성이 무엇인가 많은 국민들이 의심하고 정부는 이것이 마치 뭐 엄청난 국위선양의 계기나 국가 중흥의 기회라도 되는 양 선전하면서 국민들에게 이런 통제, 저런 통제를 강요한다면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라, 분뇨도 그 기간동안엔 치우지 않는다. 차량 통행도 통제하고 국민들의 생업조차 그때 닫으라고 강요한다면, 그것은 이 G20 회담이 과연 '나라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 즉 강대국과 대자본을 위한 것인지 그냥 드러내놓는 것 아닐까요?
G20 의장국이란 자리, 세계정세를 놓고 볼 때 사실 힘없는 반장 자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특별히 '엄청나게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저들의 눈치를 살피든 대놓고 담판을 짓든, 우리 국민들이 가장 잘 살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몇몇 부자 기업들에 중심을 맞춘 정책들과 이들이 보다 쉽게 들락날락 투기질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철폐해주는 것 따위가 우리 국민들을 먹여살릴 수는 없는 겁니다. 오히려 이 회담을 통해 각국의 정상들과 그 수행원,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다른 일행들에게 우리나라의 위상을 올리려면 국민들이 웃고 즐겁고 활기차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도록 해야 할 겁니다. 각종 규제로 찌푸리고 인상쓰고 다니는 그런 모습을 보여줄 게 아니라. 그리고 특전사 동원해서 경비세우고 하는 것보다는, 자원봉사자들을 더 많이 대대적으로 모집해 이들이 우리의 가장 우리다운 모습이라 할 수 있는 남대문 시장통의 북적거림이라던지 하는 것들을 더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더 우리를 깊게 이해하고 다가올 수 있도록. 하긴, 이 정부 들어서 많은 국민들이 벌써 웃음을 잃은지 오래여서, 쉽게 국민들의 자연스런 웃음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것은 인정하긴 하지만.
시애틀에서...
- 이전글만평 종합 2010. 11. 11 목요일...쥐!! 10.11.10
- 다음글<도전> 말장난 넌센스 퀴즈 (풀어보세요) 10.11.10
댓글목록
쥐20님의 댓글
쥐20 작성일
역시 이명박이 쥐의 머리가 맞긴 맞나보군..
쥐스무마리의킹이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