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무식한 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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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 중앙대 법대교수가 8일 " ‘4대강’을 ‘녹색 뉴딜’이라고 포장해서 홍보하는 이명박 정부를 보면 '세상에 무식한 것만큼 무서운 게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며 4대강사업 예산 통과를 밀어붙이고 있는 MB정부에 독설을 퍼부었다.
이상돈 교수는 이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강(江)과 나'라는 글을 통해 자신과 강들에 얽힌 사연을 통해 왜 자신이 4대강사업 저지 운동에 나서게 됐는지를 밝히며 이같이 말했다.
이 교수는 또한 과거정권때 <조선일보>가 환경보전에 적극적이었던 사실을 상기시킨 뒤, "요즘 4대강에 대한 조선일보의 기사와 칼럼을 보면 그런 시절이 언제 있어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강(江)과 나
지난 주말을 이용해서 몇몇 사람들과 함께 문경의 어느 사찰을 갈 기회가 있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경천대과 회룡포를 들러 볼 수 있었다. 나는 안동과 하회마을을 지나가는 낙동강은 몇 차례 가보았지만 상주와 예천을 지나는 낙동강은 이번에 처음 가 보았다. 나는 우리나라 하천에 관심이 많으니까 가보지 않은 지역도 하천지도 정도는 머릿속에 그리고 있지만 동행한 사람들 대부분이 낙동강을 처음 본다고 해서 놀랐다. 거짓말 같이 들리겠지만, 4대강 사건을 계기로 강에 난생 처음 가까이 가보았다는 사람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4대강 문제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 데 있는 것 같다. 특히 우리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살고 있고, 수도권 주민들은 가뭄이 와도 홍수가 들어도 물 걱정을 하지 않으니까 아예 강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수도권 주민들이 편안하게 물을 쓸 수 있게 된 데는 나도 기여한 바가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상수원 수질보호와 그린벨트 보전이 현안문제이던 김영삼 정부 후반기와 김대중 정부 전반기에 나는 조선일보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상수원 규제 강화와 그린벨트 보전을 주장하는 사설을 많이 썼다. 그 문제에 관한 한 조선일보가 가장 강력한 환경보전 입장에 서 있었고, 덕분에 지역의 반발을 무릅쓰고 환경부는 강력한 상수원 규제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그린벨트 주민들이 신문사를 쳐들어 온 적도 있었고, 상수원 지역의 지국장들이 사설 때문에 신문구독이 끊어진다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편집국에선 한삼희 기자가 수질보호를 주장하는 기사를 많이 썼다. 요즘 4대강에 대한 조선일보의 기사와 칼럼을 보면 그런 시절이 언제 있어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 한복판에서 자란 사람이 어떻게 해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환경법을 전공하게 됐느냐는 질문을 나는 자주 당하는데, 사실 거기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나는 갖고 있지 못하다. 1970년 대학 입학 후 타임지를 계속 보아왔고, 당시 미국에선 환경문제가 큰 쟁점이었기 때문에 DDT 판매금지, 초음속 민간여객기 SST 개발중단 같은 환경이슈를 타임지를 통해 접하게 됐던 것이 계기였던 것 같다.
우리가 대학에 다닐 때에는 방학도 길었을 뿐더러 데모와 휴교의 악순환이 잦았다. 방학 때면 서울 법대생들은 책 보따리를 싸들고 한적한 시골로 공부를 하러 들어가곤 했다. 나는 대성리와 청평 쪽에 자주 갔는데, 그 때는 팔당댐을 세우기 전이라 북한강에서 노를 젓는 보트를 탈 수 있었다. 자주 동행을 했던 친구와 같이 대성리에서 청평댐까지 노를 저어 갔다 오기도 했는데, 겨울에는 물이 맑아서 한길 아래 강바닥이 보였다. 대학 시절에 절친했던 그 친구는 20년 전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서 지금도 북한강 줄기를 보면 그를 생각하게 된다.
대학 3학년 여름 방학에는 전남 광양의 섬진강변의 다압(多鴨)이란 마을에서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어두워지면 촛불을 키고 이런저런 책을 읽었다. 이따금 가 본 섬진강의 강물은 너무 맑았고, 집주인은 은어를 잡아서 반찬으로 해 주곤 했다. 한번은 비가 엄청 오자 강물이 갑자기 늘어난 적이 있었다. 은어 떼가 물가로 몰려 나왔고, 주인 식구들이 비를 맞으면서 양동이를 들고 나가서 물가로 나온 은어를 퍼갖고 와서 며칠 동안 은어 튀김과 은어 매운탕으로 호식을 했다. 요즘 섬진강은 광주 목포 광양 등지에서 물을 하도 빼어 써서 다압 취수장 아래로는 강물이 아예 말라버려서 염수화(鹽水化) 현상이 있다고 한다.
내가 강과 관련된 여러 논쟁을 알게 된 것은 미국 유학 중에 환경법을 공부하면서 접하게 된 판례를 통해서다. 미국 환경법 초기 판례는 댐과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사건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공부했던 뉴올린스는 미시시피 강에 접한 항구도시이고, 루이지애나 주 남부는 거대한 습지와 바이유라고 부르는 습지를 흐르는 작은 하천으로 되어 있어서 해운항만 활동과 석유시추를 두고 논쟁이 많았다. 차라리 바다라고 할 정도로 크고 웅장한 미시시피 강에는 고풍(古風)이 깃든 유람선이 지금도 다닌다.
뉴올린스는 2005년 가을에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에 배수운하(drainage canal)의 제방이 붕괴되어 도시가 잠겨버려서 큰 피해가 났는데, 내가 공부하던 시절에는 미시시피 강이 별안간 물줄기를 바꾸어서 주 수도인 베이턴 루지에서 뉴올린스에 이르는 세계 제1의 항만시설이 기능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미시시피 강은 수백 년 전에 지금의 상태로 물줄기를 잡았다는데, 원래에는 뉴올리스 쪽으로 강이 휘돌지 않고 아팔라차야 습지를 통해 멕시코 만으로 직접 흘러들어갔다고 한다. 이에 대비해서 미 육군 공병단은 강줄기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공사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공사 책임자가 그 사업의 계획과 환경적 영향에 대해 대학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뉴올린스는 제방 붕괴로 인한 범람과 강줄기 변경으로 인한 수위 저하라는 두 개의 위험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1970년대에 TVA가 계획하거나 공사 중인 댐이 소송 등으로 인해 취소되거나 지연된 경우가 있었다. 고등학교와 대학에선 루스벨트 대통령이 TVA 사업 같은 뉴딜 정책을 통해 대공황을 극복했다고 배웠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공기업인 TVA가 세운 댐 중에는 불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테네시와 노스캐롤라이나를 여행하던 중 TVA 댐을 여러 곳 지나가게 됐는데, “쓸데없는 댐을 많이도 세웠구나” 하고 생각하곤 했다. TVA에 유감이 많은 레이건 대통령은 공기업인 TVA를 민영화하려 했는데 결국 실패했다. 적자 덩어리 부실 공기업인 TVA를 인수할 사기업이 없는 것이다. ‘4대강’을 ‘녹색 뉴딜’이라고 포장해서 홍보하는 이명박 정부를 보면 “세상에 무식한 것만큼 무서운 게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북한강, 섬진강, 미시시피 강, 그리고 테네시 계곡을 흐르는 강이 내가 공부를 하던 시절에 체험으로 접했던 강인 셈이다. 교수가 되어선 그랜드 캐년을 흐르는 콜로라도 강, 미국 북서부를 흐르는 컬럼비아 강, 로스앤젤레스의 젖줄인 오웬스 강, 뉴욕을 흐르는 허드슨 강, 덴버 부근을 흐르는 플랫 강, 이스라엘의 요르단 강 등 많은 강을 가보고 또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4대강’에 대해 내가 본능적으로 반대하게 된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출처] : 뷰스앤뉴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69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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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나그네님의 댓글
나그네 작성일아...정말 원칙과 기준이 없는 자칭보수는 수구일수밖에 없음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중잣대 정말로 문제네요. 특히나 조중동의 이중잣대...
제이엘님의 댓글의 댓글
제이엘 작성일필요와 편리에 따라서 언제든지 말을 바꾸는 저들의 이중성이야 사실 새로운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언론사라고 부르기가 부끄럽지 않을까요!!
maha님의 댓글
maha 작성일
한마디로...
쥐~ 대~ 가 ~ 리 들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십 년 이십 년 전의 매스컴에선 늘상 강 주변의 환경에 대한 걱정이 끊이지 않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환경에 대한 생각이 더 깊어진 현 시점에서 저런 무차별적인 사대강 공사를 감행하는 무지한 것들을 어떻게 심판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