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공포'는 정권재창출 시나리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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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개가 꼬리를 흔들까? 그야 개가 꼬리보다 더 똑똑하니까. 꼬리가 더 똑똑했다면 꼬리가 개를 흔들었을 걸.'
가상의 시나리오가 현실을 대체하고 미디어가 정치를 왜곡하는 시대를 절묘한 풍자로 희화화시킨 영화 <왝 더 독>(1997년작)의 오프닝 장면입니다. 영화는 시니컬한 풍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권력의 장막 뒤에서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조정하는 검은 그림자들의 생리까지 낱낱이 해부합니다.
'꼬리가 개를 흔들다'는 뜻의 <왝 더 독>은 흔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연막을 치는 뜻으로 쓰이는 정치 속어입니다. 영화는 권력의 장막 뒤에서 선거판을 좌지우지하는 극소수의 꼬리가 미디어를 이용해 다수 대중의 눈과 귀를 어떻게 바보로 만드는지 그 본말전도의 과정을 정조준합니다. 그리고 꼬리에 휘둘린 대중들이 뒷감당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를 관객들에게 되묻습니다.
가상 전쟁 시나리오로 판세를 뒤엎다
대통령 선거를 보름 앞두고 백악관이 발칵 뒤집어집니다. 대통령이 여학생을 성추행하면서 재선 캠페인에 초비상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당선을 위해 물불 가리지 말라는 지상명령이 떨어지고, 완벽하게 보안이 유지된 지하 벙커로 정치해결사 콘래드 브린(로버트 드 니로)을 불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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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린은 참모들에게 알바니아와의 '가상 전쟁'으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돌려 성추문을 덮고 재집권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습니다. 안보 상업주의의 채택입니다. 근데 왜 하필 알바니아냐고? 건방져 보이고, 미국민들이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곤 알바니아가 '심상치 않다'는 소스가 언론에 흘려 들기 시작합니다.
이튿날, 상대 후보 닐은 대통령이 귀국해 성추문에 대해 진실을 말하라고 압박합니다. 그 와중에 브린은 실전과 다름없는 전쟁을 연출하기 위해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자 스탠리 모스(더스틴 호프만)를 찾아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윽고 할리우드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소집되어 블록버스터 한 편을 제작하는 기분으로 희희덕거리며, 알바니아 전쟁 예고편을 기획하기 시작합니다.
내용인즉슨, 원자폭탄을 제조한 것으로 보이는 알바니아가 가방에 원폭을 넣어 캐나다 국경 인근에서 미국으로 반입하려고 한다는 것. 대통령은 귀국 전용기에서 알바니아와의 전쟁이 임박했음을 시사하며, 미국을 수호할 것을 천명합니다.
가상 시나리오가 매스컴을 통해 미국 전역에 보도되면서 성추문 사건은 묻히기 시작하고, 전쟁에 대한 불안감은 대선을 혼전상태로 빠트립니다. 브린의 1단계 작전이 적중한 것입니다. 이렇게 영화는 매스미디어를 통한 여론조작과 왜곡으로 대중들이 어떻게 농락당하는지를 시니컬하게 들춰내고, 여지없이 까발립니다.
스튜디오에서 전쟁을 기획하고 연출하고 제작하다
제1막 콘티가 완성되자 브린과 모스는 촬영에 들어갑니다. 배우 지망생이 알바니아 소녀로 둔갑해 새끼 고양이를 품은 채로 도망 다닙니다. 불에 타 연기가 나는 무너진 집들, 처절한 비명소리, 사이렌, 총소리 그리고 작은 다리까지 하나하나 합성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알바니아의 도발이 스튜디오에서 창조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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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6시 뉴스에서 앵커는 "방금 알바니아 전방에서 들어 온 생생한 만행의 현장"이라며 새끼 고양이를 품은 알바니아 소녀의 참상을 호들갑을 떨며 보도합니다. 1막의 대성공은 2막을 요구합니다. 이튿날 비가 내리는 공황에서 알바니아 소녀가 어머니와 함께 귀국하는 대통령을 환영하자 대통령은 자신의 코트를 벗어 소녀의 어머니에게 걸쳐줍니다. 악의 축 세력들이 일으킨 전쟁과 공포를 잠재우는 감동적인 장면은 미국인들의 심금을 적십니다.
모스가 할리우드에서 갉고 닦은 솜씨로 알바니아 사태를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연출했다면 브린은 고도의 미디어 조작으로 대중을 회유하고 의식을 교란시킵니다. 이렇게 여론이 개의 꼬리에 의해 조작되고 민주주의가 날조되는 가운데 재집권 플랜에는 날개가 달립니다.
3막의 시퀀스는 모든 전쟁의 단골메뉴인 '영웅 만들기'로 정해졌습니다. 콘티는 별명이 '낡은 구두'인 303 특공부대의 월리 슈먼 상사가 적진에서 실종된 것으로 짜입니다. 대통령이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낡은 스웨터에 "어머니, 용기를 내세요"라는 문구가 모스 부호로 적혀 있는 샤먼의 스틸 사진을 공개합니다. 이로써 샤먼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며 낡은 구두를 나무나 전신주 등에 걸어 두는 캠페인이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면서 마침내 영웅이 탄생합니다.
그러나 본시 영웅담은 영웅이 죽어야 제맛이 납니다. 특수부대 요원 대신 수녀를 성폭행한 특수범이 차출되면서 꼬인 영웅 만들기는, 영웅이 시골처녀를 겁간하려다 사살되면서 막장에 이릅니다. 하지만 영웅의 생환보다 잔혹한 적의 고문 끝에 숨진 영웅의 귀환은 더 감동적이며 그에 보답하기라도 하듯이 '애국적인 언론'은 열광합니다. 슈먼 상사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넘쳐나는 가운데 대통령은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에 성공합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만들다
현실 정치를 신랄하게 풍자한 영화에서 개연성을 따진다는 것은 겸연쩍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현실이 되는 일이 실제로 생기기도 합니다. 미국이 이라크전에서 애국심 고취를 위해 제시카 린치 일병 구하기라는 감동적인 사기극을 만들어 낸 것은 <왝 더 독>의 월리 슈먼과 빼다 박았습니다. 또한 이 영화가 개봉됐던 1997년에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지퍼 게이트'가 터졌고, 이어 수단과 아프간을 폭격한 것도 영화가 현실을 대체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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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클린턴조차 넘어서며 '희대의 사기극'을 벌인 이는 부시 전 미국 대통령입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미사일 폭격을 가하면서 이라크전이 시작되고, 얼마 뒤 부시는 걸프 해역에 있던 항공모함에 전투기를 타고 내리면서 미국의 승리를 선언하는 원맨쇼를 벌였습니다.
애초 이라크에는 부시의 말처럼 대량살상 무기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의 언론들은 <왝 더 독>의 언론들처럼 특종을 잡기 위해 날뛰다 미 정부의 언론조작에 걸려들고 한배를 탑니다. 마치 브린이 미친 듯이 이슈를 교체하는 미디어의 탐욕에 미끼를 던져 대중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의 뉴스와 정보를 제공하게 만들듯이 공범이 됩니다.
<왝 더 독>은 전쟁을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참혹한 살상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하는 매스미디어에 대한 경배로 대체시켜 버린 미국 정부를 신랄하게 고발합니다. 그와 함께 영화는 이런 기막힌 사기극이 미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동맹국 어느 곳에서도 재현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알바니아를 비롯해 미국의 적대국들이 언제든지 국내 정치의 제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정부여당과 조중동 등이 '연평도발 공포'에 목매는 이유
<왝 더 독>은 전쟁에 대한 공포로 대중들의 의식을 조작합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탄 권력에게 전쟁은 여전히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장막 뒤에서 어떤 식으로 전쟁을 기획하든지 미디어가 알아서들 여론을 거들고, 대중들에게 이식되고, '판'은 요동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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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한국처럼 애국적이고 호전적인 미디어들이 여론을 지배하는 곳에서는 금상첨화가 따로 없습니다. 특히 마을과 집이 불타는 연평도는 천안함과는 공포의 질이 다릅니다. 미국의 정보판단대로 비록 북한이 재래식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할지라도 문제 될 게 없습니다. 북한 핵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여당과 조중동, KBS가 삼위일체가 되어 전쟁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뉘앙스를 지속적으로 띄우는 이유입니다.
이명박 정부와 조중동은 그간 북한의 핵문제에 대해 동북아 평화-한반도비핵지대화라는 관점에서 거들떠도 보지 않았습니다. 성공적인 비핵화를 이룬 우크라이나와 리비아에 대해서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던 그들이 '핵 한 방' 논리로 남북한 간의 군사력을 뒤집어엎을수록 <왝 더 독>의 가상 전쟁 시나리오는 더욱 뚜렷하게 연상됩니다. 영화에서 미디어들이 개 꼬리가 원하는 방향의 정보만을 대중들에게 제공하듯이, 연평도 발 '안보 상업주의'도 연일 생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영부인 로비 의혹을 제기했던 야당 의원이 얼굴을 가격당해 입 주위를 꿰매고, 보좌관은 코뼈가 부러지는 등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서도 이명박 정부는 의연하게 날치기를 감행했습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까짓, 날치기쯤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문제는 '연평도발 공포'를 후원군으로 한 일방적 국정운영 기조가 쉬이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점입니다.
영화에서처럼 한나라당이 2012년 4월의 19대 총선과 12월 대선에서 승리해 정권을 재창출하기 전까지 다목적 포석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명박 정부와 조중동의 그런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않는 유일한 길은 국민이 '멍청한 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무기력한 야권도 새판을 짜야겠지만, 무엇보다 꼬리가 아무리 몸통을 흔들어대도 진실과 거짓을 헤아릴 줄 아는 지혜와 슬기가 절실합니다.
꼬리가 개를 흔들려고 하는 참을 수 없는 시절, 필요한 경우 개 꼬리를 잘라내 순치시키기도 하니까요.
2010년 12월 12일(일) 오후 04:08 오마이뉴스 박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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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님의 댓글
돼지 작성일
쥐박이 정부가 북한의 코 앞 연평도에서 포격훈련 한답시고
북한에 자극적인 전쟁 시나리오로 계속해서 입질을 한건 아닌지....
그 전에 개인 사찰문제, 김윤옥 수뢰문제, 청와대 대포폰 문제가
대두됬었느데...
꼬리님의 댓글
꼬리 작성일꼬리가 개를 흔들려는 세상, 당연히 꼬리를 잘라버려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