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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남의 나라 이야기였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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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댓글 2건 조회 3,352회 작성일 10-12-1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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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부시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던 그때, 미국은 상당히 분열 상태였습니다. 전체 득표수는 앨 고어가 더 많았지만, 일렉트롤 칼리지라고 불리우는 대통령 선거인단의 숫자를 더 많이 가진 것은 부시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플로리다의 선거에서 당시 주지사를 하고 있었던 조지 부시의 동생 젭 부시가 히스패닉 표를 상당히 끌어모아 공화당에 투표하도록 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훗날의 이야기였습니다. 젭 부시의 아내는 히스패닉계여서, 이같은 일도 가능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어쨌든, 이 선거는 결국 대법원의 개입을 불러옵니다. 그리고 대법원은 부시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조지 부시의 당선 이후 대법원 판사의 임명이 있었습니다. 이때 조지 부시는 무척 숙고해서 자기 편이 될 수 있는, 즉 보수 성향이 뚜렷한 사람들을 그 자리에 앉혔습니다. 그때 미국에서 꽤 인기있는 '투나잇 쇼'의 사회자가 이런 농담을 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대법원을 무척 중요한 기관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국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으니까." 직접투표였다면 더 많은 표를 받아 고어가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을것을, 선거 제도 때문에 부시가 대통령이 된 것을 비꼬는 농담이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삼권분립이라는 말과 거의 같습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이 삼권분립제를 도입했을 때, 그것은 솔직히 인간의 선한 성품보다는 좀 악한 쪽을 고려해 만든 것과 같습니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적절히 서로를 견제하는 것. 야심가들이 서로를 견제하여 누군가가 홀로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이 제도의 골자였습니다. 문제는 이게 세계에 '민주주의의 전범'이 되어 퍼졌다는 것인데, 민주주의의 전통이 없는 나라들에서는 이 제도가 그 골간이 유지돼지 못했다는 겁니다. 삼권분립보다는 대통령에의 권한의 집중이 이뤄졌고, 이로 인한 폐해들이 세계 곳곳에서 속출했습니다. 그래도 이 대의민주주의, 즉 '의회민주주의'는 나름으로 국민들의 뜻을 정치에 반영할 수 있기에 많은 곳에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민주주의에서 삼권분립의 원칙이 중요하고 그 존재의 근원이 된다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번 예산안 통과과정에서 보듯, 의회, 즉 입법부의 여당은 그냥 거수기가 됐습니다. 이게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인민대표자회의와 다를 게 뭔가 싶습니다만. 하긴 우리나라에도 북에 질세라 그런 전통(?)들이 있었지요. 유정회, 통일주체국민회의... 그리고 이승만부터 박정희에 이르기까지 기형적으로 행정부의 권력이 큰 정권 하에서 이런 일들은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21세기, 이명박 정권에 이어서 이 잔혹한 추억들은 그대로 되살아나는군요. 막걸리에 넘어가 그 사람들을 찍어줬던 중우정치의 시대나, 혹은 안정희구세력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에 안주하고 그냥 이 현실이 지켜지겠지, 혹은 내 집값이 올라가겠지 하면서 별 고민 없이 지금의 집권세력에게 표를 던져준 분들이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 옛날로 돌아간 기분으로 지금의 상황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정말 가슴아프지 않으세요? 이 현실이? 그냥 체념하고만 있을 겁니까?

민주주의의 근간이 다시 완전히 흔들리고, 그 와중에 지켜져야 할 사회정의는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오늘날의 이 되살아난 구태에 대해서 그냥 눈 감고 가슴을 닫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눈 감고 살아버리면 되는데, 그게 안 되는군요. 내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것, 나름으로 그 나라에 애정을 갖고 있다는 이것 때문에 요즘은 잠이 안 옵니다. 차라리 이게 남의 나라의 일이라서, 과거 아이티의 통통 마쿠트나 우간다의 이디 아민의 터무니없는 짓거리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에 별 꼴도 다 있네." 하면서 혀를 차고 금방 잊어버릴 수 있는 그런 '남의 이야기'면 차라리 좋겠다는 생각이 다 든단 말입니다. 근데 왜 이게 하필이면 내가 태어나 자랐던 나라의 이야기란 말입니까. 

나는 믿을 수 없습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이 절망의 나락들이 현실의 일이라는 걸.

 

 

시애틀에서...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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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모르는게 약이라는 옛말이 있지요...ㅠㅠ

그렇지만 민중이 모르는 사이에 민중이 가져야 할 몫을 모조리 가로채가는
날도적들이 날뛰는 세상을 훤히 보고 알면서 양심을 갖고
침묵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모든 민중이 알고 깨닫게 만드는 것이 그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

똑똑한 민중에겐 야비한 권력이 절대로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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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엘님의 댓글

제이엘 작성일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마지막까지 행동하는 양심을 당부하시며,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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