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청년을 통해 일본동포사회 현황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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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재일한청 박명철 부위원장
“한통련 선배들 통해 역사 눈떠”
[도꾜=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재일한국청년동맹의 일꾼들은 예절이나 자세에서도 모범을 보였다. 복장이나 말씨, 태도 등도 선배, 후배들에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훌륭하게 성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대담 마지막에서 "재일동포의 권익을 위해서도 그리고 해외동포 전체의 긍지와 자부심을 위해서도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을 통하여 지구상에 마지막 분단국인 우리 민족이 통일조국을 이룩하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출처 : 노길남 민족통신 특파원 2010-12-17]
민족통신
[대담]재일한청 박명철 부위원장 “한통련 선배들 통해 역사 눈떠”
유럽과 미국에서도 동포들이 참석했고, 남녘 6.15청한연대에서도 청년대표 한명이 참석하여 50주년을 축하해 주었다. 성황리에 행사를 마친 일꾼들 가운데 해외동포들 안내를 맡은 박명철 부위원장과 주고 받은 이야기들 중에, 그리고 공항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공항으로 가면서 나눈 대담을 중심으로 인상에 남는 몇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가정 이야기와 교육 배경에 대해 질문해 보았다. 그는 1남3녀의 가정에서 자라났다. 아버지는 3년 전 90세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생존해 계신데 75세라고 말한다. 초중급학교는 우리 말을 배울 목적으로 조선초중급학교에 다녔고, 고등학교는 일본학교, 대학교는 일본학교인 중앙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한 공학도 출신이다. 재일한청에 관계하게 된 계기를 물어 보았다. 대학재학시절인 지난 1993년 봄 당시 학생협의회 회원이었는데 그 친구가 여자친구들이 많이 오는 모임이 있다고 하여 한 행사에 가자고 권유하여 그 행사에 간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의 한통련 의장인 손형근 선생이 당시 재일한국인학생협의회 학생담당 간부였는데 그분을 알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돌이켜 본다. 그는 “지금의 한통련 선배님을 통하여 역사의 눈이 뜨기 시작했다.”고 설명하면서 무척 고마워하는 표정이다. 이제 결혼한지 2년되었으니 아직도 신혼생활이나 다름이 없는데 결혼생활과 한청활동 모두 만족한다며 밝게 웃는다. 성격이 쾌활하고 당당한 품위를 지난 청년이다.
한청은 민단과 총련 가운데 위치한 입장이어서 재일동포사회에서 생활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애로가 있었을 것 같다. 민단과의 관계를 물어 보았다. “우리가 민단에서 빠져 나온뒤 민단에는 ‘대한청년회’라는 명칭의 단체가 활동해 왔으나 회원들은 3천5백명이라고 발표하지만 실제로 회비 내는 사람은 몇십명 밖에 안되는 처지로 알고 있다.”고 대답하면서 그 단체 간부들 소수는 일종의 어용공무원처럼 처신하는 정도라고 말한다. 한국정부는 민단에 1년에 약 8억엔을 지원해 왔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청은 민단에서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빠져 나온 이래 지금까지 50년 동안 동포대중들의 성금으로 운영하여 왔기 때문에 자매조직인 한통련, 한청, 민주여성회는 모두 동포대중의 힘으로 운영해 온 조직으로 그 어느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는 독자적인 단체라고 말한다. 한청은 한통련의 산하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청의 중앙본부 산하에는 몇개 지부들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도꾜지부를 비롯하여 오사카, 효고, 히로시마, 가나가와, 아이찌, 미에, 교토 등 8개지역 지부들을 두고 있다고 대답한다.
재일한청의 일본 내 활동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는 주문에 대해 박명철 부위원장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우리말조차 모르는 채 일본의 차별사회에서 신음하고 있는 재일한국청년을 민족적으로 각성시켜 해방시키기 위한 각종 교양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매주 우리말 강습회, 청년교실(민족의 역사, 재일한국인의 현상과 차별문제, 조국의 민주화, 통일문제 등), 문화써클, 지역의 동포청년을 지부에 참가시키기 위한 호별방문, 동기강습회(스노 패스티벌), 하기강습회 등 다양한 교양사업, 대중사업을 개최하고 재일한국청년을 참된 애국자로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역청년에 대한 이러한 교양사업, 의식화활동은 지부가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활동거점이다. 민족간부, 애국자는 이러한 착실한 활동을 통해 지역에서 태어나고 또 민족간부, 애국자로 자란 청년들이 새로운 민족간부, 애국자를 낳게 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일본주류사회의 평화세력이 보는 한반도에 관한 관점은 어떠한가. 특히 북한을 보는 측면에서 알고싶다고 묻자, 그는 “북한에 대한 이해는 많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미국주류사회의 평화운동 진영의 현상과도 유사한 양상을 띄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민단에서 탈퇴하여 나온 단체들로서 재일총련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과 자세를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질문해 보았다. 그는 “그 동안 독자적인 입장에서 운동해 왔으나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시기 우리 한청과 재일조청과 공동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었고, 그후 20년 세월이 지난 1992년 남북간에 기본합의서가 이뤄지던 시기 우리 한청과 조청간에 공동으로 연극을 출연하는 정도였는데 특히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남부조국도 갈 수 있게 되었고, 6.15민족공동위원회 조직을 통하여 재일총련은 물론 남과 북, 해외동포들과 3자연대 운동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뻤다.”고 설명한다.
그는 일본 언론들의 동향에 대해 그리고 일본 정치인들의 자세에 대해서도 똑같이 비판했다. 이들은 미일한 3각동맹이나 외치면서 북일간의 화해협력적 자세에 대해서는 기를 쓰고 반대하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일제36년의 암흑역사에 대한 반성은 커녕 남북을 이간하고 분열시키는데 앞장서 왔다고 질타한다. 박명철 한청 부위원장은 “그러나 민단내 일반회원들과의 관계는 좋다. 단지 문제는 소수 간부들”이라고 강조한다. 이들 간부들은 한국 당국 뿐만 아니라 일본 당국의 지원도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지적하며 향후 일본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자위대가 미-일동맹을 강화하며 점차 군사대국화 쪽으로 방향선회하고 있어 우리 민족이 하루 속히 분단을 종식시켜야 또 다시 외세의 희생물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재일동포의 권익을 위해서도 그리고 해외동포 전체의 긍지와 자부심을 위해서도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을 통하여 지구상에 마지막 분단국인 우리 민족이 통일조국을 이룩하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면서 “그러자면 우리 해내외 동포들은 누가 뭐래도 6.15선언과 10.4선언의 깃발을 들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쟁취해 내야 되지 않겠느냐?”고 힘있게 외친다. 짧은 시간의 대담에서 많은 것들을 주고 받았다. 아모쪼록 재일한청이 더욱 발전해 나아 갈 것을 마음 속으로 기원했다.(끝) * 재일한국청년동맹 50주년 기념식 진행 *[기획]재일한국청년동맹 50년 발자취③ *[기획]재일한국청년동맹 50년 발자취② *[기획]재일한국청년동맹 50년 발자취① |
[출처 : 노길남 민족통신 특파원 201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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