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래일에 사는 사람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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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회
제 4 편 새세대들
1
4월 1일, 과학원지구를 떠난 소형뻐스가 리남웅, 리정철, 송춘도, 지학준이를 태우고 진흥기계공장으로 달리고있었다.
연두색봄빛이 흐르는 차창밖을 내다보며 청년들은 웃고 떠들고 노래도 불렀다.
리남웅만은 근심이 가득하였다. 과제부책임자로 임명되여 이들을 한두달동안 통솔해야 하였다.
그는 원래 크든작든 자기가 무슨 책임을 맡는것을 꺼려했었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것이 달갑지도 않았거니와 적지 않은 연구시간을 빼앗기게 되기때문이였다. 게다가 자기에게는 남들의 앞에 나설만 한 비위도 수완도 없다고 여겼다.
진수현실장이나 최일이 지금 함께 갔더라면 남웅은 이런 고민같은건 하지도 않을것이였다.
실장은 연구실의 일처리를 마저하고 병원에 입원하여 눈치료를 한두달 받기로 하였다. 실장이 남아서 할일도 많았다. 개발에 성공한 《조종7호》를 유연체계시험공장의 공작기계들에 일식으로 도입해야 하였고 새로 받은 연구사 2명을 포함하여 연구실에 남은 여러 연구사들의 몇달간 사업방향도 의논해주어야 하였다.
그다음에 입원치료까지 받다나면 실장이 적어도 두어달가량 지나서 진흥기계공장에 도착할수 있었다.
이런 사정을 아는 최일이 자기 론문집필을 뒤로 미루고 진흥기계공장에 나가겠다고 제의하자 실장은 시간을 끌지 말고 우리의 성과를 제때에 론문으로 고착시켜 조종기계부문 전문가들에게 도움이 되게 해야 한다면서 그를 연구소에 남겨두고 리남웅에게 과제부책임자로서 먼저 공장으로 나가라고 지시하였다.
사실 요즘 리남웅에게는 남들의 일에까지 신경을 쓰고 책임을 질만 한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회사에 동원되였다가 연구소로 돌아온 후에 그는 프로그람작업에서 그간의 공백을 메꾸면서 겨우 제 앞처리나 했을뿐이고 K방식론문에서 손을 떼고나서는 자신을 분발하게 하던 의욕도 기대도 다 잃어버린것 같은 허전한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었다.
약혼말까지 났던 서진주와의 사이는 날이 갈수록 버그러졌다. 남웅은 우정 진주를 찾아가기도 하고 때없이 전화도 걸면서 그 간격을 좁히려고 제 보기에도 민망스러울 정도로 애를 썼다. 그럴수록 진주는 점점 더 차거워졌다. 절망에 빠진 남웅은 그만두자, 잊으면 그만이지! 하고 속으로 거듭 부르짖었지만 마음의 상처는 아물줄 몰랐다. 생각할수록 그 처녀가 원망스러웠다. 진주는 화려한 생활을 더 바라볼수가 없으니 앵돌아진게 아닌가?! 아니, 내가 못났기때문이 아닐가? 진주는 제 맘에 드는 상대라면 어떤 자기희생도 두려워하지 않겠노라고 말했었지, 사실 그런 기질이 보이는 처녀다.
내자신이 그와 마주설 때마다 점점 더 자부심보다 자기 렬등감을 더 느끼게 되는데 그 처녀가 멀어지는거야 당연한 일이 아닌가…
리남웅은 소심하면서도 외곬으로 사고하는 형은 아니여서 매정한 처녀의 심정이 어느 정도 리해되기까지 하는것이였다. 리해가 된다고 해서 마음에 평온이 깃드는건 아니였다. 그는 여전히 착잡하고 구슬픈 생각에서 헤여나지 못했다. 이상한것은 그 처녀를 원망할수록 그가 더욱 그리워지고 매력이 더해지는 그것이였다.
고민하던 나머지 남웅은 수현실장까지 섭섭하게 생각되는것이였다. 자기가 회사에 입직수속을 하다가 도로 연구소로 돌아온데는 실장의 권고도 적지 않은 작용을 했다고 볼수 있었다. 그때 실장이 회사로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자기와 진주와의 혼사는 순풍에 돛단듯이 예정대로 진척되였을것이 아닌가.…
리남웅은 맥없이 고개를 저었다. 진주도 실장도 탓할게 못된다. 내 일을 그르친건 나자신이다. 나한테서 손꼽을만 한 장점이 대체 뭐란 말인가?
이번엔 과제부책임자라?!… 어쨌든 이제 와서 못하겠다고 할수도 없고 림시책임에 불과하니 그럭저럭 해보자, 그러느라면 실장선생도 도착하겠지.…
소형뻐스가 진흥기계공장에 다달으자 남웅은 우울한 생각에서 깨여났다.
큰 공장의 기사장이 직접 정문에서 청년과학자들을 맞아들이는것을 보고 공장보위대처녀들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리남웅, 리정철, 송춘도, 지학준― 하나같이 키가 후리후리하고 멀쑥해보이는데 간편한 잠바차림에 트렁크들을 들고 등에는 배낭들을 졌다. 지학준은 기타와 그물에 넣은 새 배구공까지 들었다. 이 행렬의 앞장에 멋쟁이 최일이가 섰더라면 썩 어울렸을것이나 그대신 그중 외양이 초라하고 쭐나보이는 남웅이 인솔하는데 이끈다기보다는 오히려 떠밀려가는것 같았다.
리남웅은 공장 사무실청사 현관에서 지배인과 책임비서를 만나 인사를 하면서도 주눅이 들어 쩔쩔맸다.
복도로 안내되여갈 때 송춘도가 남웅에게 귀띔을 하였다. 《이제 방에 들어가면 구석자리에 앉지 말구 지배인과 딱 마주앉으라구. 떨것 없대두! 우린 여기서 귀빈이니까…》
지배인방에 들어가자 송춘도는 남웅의 등을 몰래 떠밀어 그를 지배인과 마주앉히고 자기도 그곁에 점잖게 앉았다. 그를 따라 지학준이와 리정철이 나란히 앉게 되여 청년과학자들은 공장일군들과 회담탁에 마주 앉은것처럼 되였다.
리남웅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떠듬떠듬 자기들이 공장에 와서 하게 될 사업내용을 이야기하였다. 말끝마다 《구체적인건 우리 실장선생님이 오신 다음에 확정할수 있을겁니다.…》하는 애매한 소리를 덧붙이군 하였다. 따끈한 차들이 나오고 화제가 《조종7호》에 이르자 남웅은 트렁크에서 그 조종장치를 꺼내보이며 성능과 특성을 설명해나갔다. 그는 학술적인 문제를 론할 때는 말을 더듬지 않았다. 사뭇 담담하고 조리있게 엮어나갔다.
이때 문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뜻밖에도 리윤덕이 큰 가방을 들고 밤색덧옷자락을 펄럭이며 나타났다.
남웅은 제 눈을 의심하였다. 리윤덕은 그사이 퍼그나 유들유들해지고 거동이 무게있어보이는게 이전 부소장같지 않았다. 두눈만이 여전히 열기를 띠고 불안하게 번쩍거렸다.
《책임비서동지, 지배인동지, 건강들 했습니까? 공장구내가 더 환해졌습니다. 말그대로 공원이더군요.》
리윤덕은 일군들쪽에 대고 인사를 건네고나서 남웅이네를 돌아보았다.
《낯이 익다 했더니… 그새 잘들 있었나? 송동문 얼굴이 좀 못쓰게 된것 같애? 오, 학준인 아예 몰라보게 번졌는걸. 그래 집에랑 자주 가보나?》
학준이는 연구소대표처럼 한껏 의젓하게 앉아있다가 갑자기 어린사람 취급을 받게 되자 그만 낯이 빨개지고말았다.
리윤덕은 공장일군들곁에 앉아 긴 탁자우의 《조종7호》기판을 인차 알아보고 《동무네가 수골 했구만, 응? 새 조종장치를 하나 개발한다는게 간단한 일은 아니지.》 하고 찬사를 했다. 그리고 확인하듯 물었다.
《수현실장은 같이 안 왔나?》
《일이 좀 있어서 후에 오실겁니다.》
리정철이 대답했다.
《책임비서동지는 이 장치를 어떻게 보십니까?》
리윤덕이 이젠 토의를 좀 해보자는 잡도리로 물었다. 그러자 지배인이 신중하게 대꾸하였다.
《지금 설명을 듣고있는중이요. 성능지표들이 기록적인 수자들이구만! 믿어지지 않을 정도요. 최첨단수준이라는게 말이 쉽지.…》
《놀라시는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우리 수준에서 이 정도로 비약한다는게 어디 조련한 일입니까. 응당 평가해야 할 일이지요.》
《아, 부사장동무도 연구소에 있을 때 이 개발에 관여했댔지요?!》
지배인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예, 파악은 좀 있습니다.》
《좋소, 이제 련동시험을 해보고 이 〈조종7호〉를 도입해야겠소. 그럼 추가수입계획은 어차피 재검토되여야겠지. 막대한 외화를 절약할수 있을거요.》
《그렇게 되면야 좋지요!》 하고 리윤덕이 의미심장한 소리를 했다.
《한데 련동시험이나 해보고 추가수입계획을 단념하는건 좀 이르지 않을가요?》
《그건 무슨 소립니까?》
지배인이 물었다.
《신뢰도가 문제입니다. 원래 이런 조종장치를 하나 개발해서 도입하는데까지 이르자면 상당한 기간 운영시험을 거치는게 상례가 아닙니까. 지배인동지, 매사에 안전계수를 두는게 등탈이 없을겁니다. 그런 실례는 부지기수지요.…》
리윤덕은 자체개발의 불안한 점과 수입의 유리한 점에 대해 길게 늘어놓았다.
그가 이 공장에 우연히 나타난건 아니였다. 원래 송화기계무역회사 서관범사장은 보름전에 진수현네가 《조종7호》개발에 성공했다는 통보를 받고 신임부사장 리윤덕에게 직접 연구소에 가보고 오라고 지시하였다.
리윤덕은 진수현과 다투고 헤여진탓에 그와 얼굴을 다시 마주하고싶지도 않았거니와 이전부터 자기가 안된다고 속으로 치부했던 《조종7호》가 성공했다는 소리를 그대로 믿을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높이에서 사물을 인식하였다. 그래서 사장에게 가보나마나 뻔하다, 이전에 내가 그 개발을 떠밀어주었기때문에 내막은 잘 안다, 세계 최첨단수준이라는건 좀 과장된 소리다,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전진한걸 가지고 크게 떠들고있다, 무얼 하나 비슷이 만들어놓는 경우에도 실지 생산에 도입하면 고장이 자주나고 신뢰도가 떨어진다, 그래 수입제를 찾는거라고 납득을 시켰다.
진수현을 좋지 않게 보던 서관범도 글쎄 소문이 지내 요란하다 했지, 그 수현이라는 위인이 어딘가 허황해보이더라니 하고 추가수입계획을 그대로 추진하였다.
리윤덕은 진흥기계공장에 도입하는 유연생산체계에 필요한 설비와 기구들을 수입하려고 외국출장을 준비하다가 문득 머리를 치는것이 있어서 송춘도와 전화련계를 가졌다. 아니나다를가 진수현실장이 남웅이네를 진흥기계공장에 먼저 내보내서 공장에 《조종7호》를 도입하게 하려고 한다는게 아닌가! 그러면 자연히 공장에서는 공작기계들에 장비하게 되는 수자조종장치들을 수입항목에서 빼도 된다고 송화기계무역회사에 통지할수 있었다. 리윤덕은 첫 외국출장을 앞두고 진흥기계공장과 다시한번 신중히 합의를 봐야겠다고 작정하고 부랴부랴 내려오는 길이였다.
그는 지금 앞에 놓인 학습장만 한 크기의 《조종7호》기판을 미심쩍게 들여다보면서 역시 수입안이 랑패가 없고 이 《조종7호》같은건 차츰 파악이 되는 차제로 부차적인 부문에 먼저 도입해보는게 안전하다고 공장일군들을 설복하였다.
그와 마주앉은 청년연구사들은 달라진 이전 부소장을 놀랍게 쳐다보았다.
리정철이 가만히 있지 말고 한마디 하라고 남웅에게 눈짓을 하자 그는 온몸의 힘을 끌어 입을 뗐다. 《저― 우리 〈조종7호〉의 신뢰성에 대해 말한다면 그… 단기판형이고 높은 계렬의 A―20소자를 썼으며 배선정밀도와 기술적특성으로부터…》
《허허, 그걸 내가 왜 모르겠소. 그것만 가지구 신뢰성을 보장할수 있을가?》
리윤덕이 가볍게 일축해버렸다.
지배인이 그들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있었다.
리정철은 남웅이가 얼굴을 붉히며 떠듬거리는것을 보다못해 제가 나섰다.
《A―20소자는 이전 개별소자들 몇천개와 맞먹는데 그안에서의 동작은 100% 담보됩니다. 믿음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문 누구더라? 유연체계실에서 동원되여오지 않았던가?》
리윤덕이 새삼스레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좀 잠자코 있소. 동무야 수자조종장치전문가도 아닌데…》
《…》
리윤덕의 그 말에 리정철의 눈빛이 날카로와졌지만 더 말을 못했다.
남웅이 가까스로 또하나의 론거를 찾아냈다.
《저… 우리 유연체계시험공장에서는 지금 공작기계들에 일식으로 〈조종7호〉를 결합하고있습니다.》
《그거야 말그대로 시험공장이 아니요, 시험공장!》
역시 림기응변하는 리윤덕이였다.
리남웅은 그하고는 맞서기가 싫어 입을 다물고말았다.
그러자 리윤덕은 이 문제는 그쯤하자는듯 빙긋이 웃으며 지배인을 돌아보았다.
《그리구 지난해 협의회때도 론의가 있은거지만 우리 회사에서는 이번에 체계관리프로그람도구도 수입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동무네가 체계관리프로그람을 짜기도 쉬울겁니다. 이번 유연생산체계도입에서 중추적인 문제가 해결되는셈이지요.》
《그 개발도구는 퍼그나 비싸다는데?…》
지배인이 근심스레 중얼거렸다.
《그것도 지적자원이니까 눅을수가 없지요. 어쩌겠습니까. 과학기술을 위해서는 어차피 큰 투자를 해야지요.》
《체계관리프로그람은 우리가 거의다 개발했습니다.》
리정철이 또 참다못해 말했다.
리윤덕이 그를 아니꼽게 쳐다보았다.
《동문 좀 가만 있으래두 그래.》
《제가 체계관리프로그람을 맡았기때문에 말하는겁니다.》
《동무네 프로그람은 실제적인 생산공정에는 도입하기 힘들거요.》
《우리 프로그람에 대해 얼마나 파악하고계십니까? 고심어린 남의 창조물을 짐작으로 부정할수 있습니까?》
《여보, 문제는 어떤 고심에 있는게 아니라 그 결과와 질에 있는거란 말이요!》
《아아, 서로들 자중하시오.》
지배인이 두팔을 들어 량편의 언쟁을 막는 시늉을 하였다.
《수입문제는 좀더 신중히 토의해서 확정합시다. 오늘 연구사선생들이 먼길을 오셨는데 공장구경이나 하고 휴식하십시오.》
지배인은 후방부지배인을 전화로 불러 이들을 안내하라고 지시하였다.
남웅이네들은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리윤덕은 제 의자를 지배인곁에 붙이며 또 한차례 이야기판을 펼 자세였다.
연구사들은 위대한령도자김정일동지의 현지지도사적비앞에서 해설을 듣고나서 쇠물이 흐르는 주물직장으로부터 시작하여 갖가지 CNC공작기계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여러 가공직장들과 공구측정실, 조립직장, 공작기계수리직장들을 차례로 돌아보고 공장 설계연구소에도 들려보았다. 록화가 잘된 구내에는 3층짜리 공장대학도 있었다. 이번에 유연생산체계를 도입할 가공직장건물은 새로 지었는데 한창 푸른색철판기와를 씌우는 중이였다.
남웅이네들은 공장 외래자합숙 2층에 들어 려장을 풀었다. 두개 호실이 차례졌다. 한방에 침대가 2개씩 놓여있지만 울긋불긋 색을 먹인 돗자리를 깔고 산뜻한 창가림을 친 깨끗한 방이였다. 한 방에는 리남웅과 리정철이 들고 다른 방에는 송춘도와 지학준이 함께 들었다.
송춘도는 이 방들이 2부류에 속한다고 단언하였다.
《워낙 귀빈이라면 1류급침실에서 운반식사대접쯤은 받아야 하는건데…》
푸념을 하던 그는 리윤덕이 든 호실로 찾아간다고 나가더니 식사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리남웅이네는 기다리기를 단념하고 합숙식당으로 갔다. 식탁에 오른 료리들이 여러가지였고 별맛이였다. 지학준은 료리가 나오는 쪽을 흘끔흘끔 들여다보다가 슬그머니 일어나 숟갈을 든채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평양기계대학시절의 선배인 오은경을 만나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였다. 은경은 지금 최일을 맞이한 심정으로 그의 동무들에게 반찬이라도 한가지 더해주려고 주방에 들어와 손을 걷어붙이고 료리사들을 돕고있었다.
학준의 손에 이끌려 연구사들의 식탁곁으로 온 오은경은 다소곳이 인사를 하고나서 래일부터 자기가 연구사선생들의 사업을 도와드리게 되였으니 불편한 점이나 요구되는것들을 제때에 알려달라고 상냥하게 이야기하고 조용히 물러가는것이였다. 청년들은 최일의 애인이라는 그 처녀의 아름답고 기풍있는 자태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학준은 그가 제 누이이기나 한것처럼 뻐기였다.
《대학의 숱한 녀학생들속에서도 단연 으뜸가는 존재였어요.…》
리남웅은 저도 모르게 진주의 모습이 떠올라 꺼지듯 한숨을 지었다.
한편 리윤덕의 호실에 찾아간 송춘도는 넓은 방안부터 둘러보았다. 푹신한 주단과 술이 달린 비단창가림, 주런이 놓인 가구들과 안락의자들…
제길, 이거야말로 1류급호실이 아닌가!
그는 리윤덕에게 팔목을 잡혀 운반식사맛까지 보게 되였다.
《역시 급수가 다른데요!》
송춘도는 진심으로 감탄하였다.
리윤덕은 그의 큰 잔에 거품이 이는 맥주를 부어주었다.
《송동문 요즘 재미가 좋은 모양이다? 그래 이젠 안착이 된셈인가?》
《안착되려면 멀었지요. 딴데로 갈 땐 가더라두 뭘 좀 착실히 배우고 가야 할것 같애요. 우리 연구실만 봐두 요즘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는데 어디 가서 발언권을 가지재두 그렇구…》
《연구소수준 가지군 부족해. 우리 사람들이 눈이 좀 터야 한다니까.》
《참, 그새 세상구경을 좀 했겠구만요?》
《이제 겨우 첫 해외출장을 준비하는중이야.》
리윤덕은 솔직하게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대외사업대상에 대한 사전파악은 일정하게 한셈이지. 이 진흥기계공장의 유연생산체계두 외국기술이 일정하게 들어와야 은을 낼수 있어. 자체의 힘으로 하자는 립장은 백번 찬양해야겠지만 다른 나라의 기술과 설비들도 한편으로 받아들여 현대화를 다그치는게 오히려 시간과 로력을 절약하는 길이라구. 한급 높은 곳에 서서 사물을 봐야겠는데 이건…》
《아― 이 송춘도에겐 언제 시야를 넓힐 기회가 찾아오겠는가? 과연 오기나 하겠는지?!―》
《허어, 노력해서 안되는 일이 있나. 춘도, 좀 기다리라구. 내 아직 새 일터에서 〈모살이〉를 채 못해서 손을 못쓰고있어. 외로울수록 내곁에 송동무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하지. 옛정이 새 정보다 낫다고 하잖나.…》
자기 호실로 돌아온 송춘도는 역시 리윤덕이라는 인물이 사고하는 품이 한수 높더라는 소리를 늘어놓더니 이튿날부터 자주 그 호실로 드나들었다.
그는 합숙책임자녀인네 집에 콤퓨터 사놓는것을 구매자편에서 립회해주고 최신판조작체계를 태워 시동시켜준 다음 중학교에 다니는 그집 아들에게 매일 2시간씩 콤퓨터를 배워주었다. 이웃집들에서도 콤퓨터를 봐달라고 청탁을 해왔다.
춘도의 예언대로 합숙책임자녀인이 생색을 냈다. 연구사들의 생활조건에 더욱 관심을 돌렸다.
리정철은 책임자격인 리남웅이 보고 송춘도에게 주의를 좀 주라고 귀띔했지만 남웅은 못 들은체 하였다.
그러자 리정철은 직접 송춘도를 보고 또 무슨 바람이 불었는가고 책망하였다.
송춘도는 오히려 화를 냈다.
《뭐가 어쨌다는거요, 내가 로동시간에 빠졌는가?》
《송동문 지금 정신이 분산돼서 프로그람작업에 집중하지 못하고있지 않나. 이전 습성이 또 살아나는것 같애.》
《집단의 후방사업때문에 뭘 좀 해보려니까 이건 시작부터 김이 샌단 말이야.》
《송동무, 동무가 맡은 통신프로그람부터 완성해야 다른 프로그람들도 시험해볼수…》
《이보라구, 정철동문 내 일엔 좀 비치지 않는게 좋겠소. 내가 맡은건 내가 책임지지 않으리. 통신프로그람은 연구소에서 거의다 짜가지고 나왔다구. 기본작업량은 대체로 제낀셈이야. 남의 일까지 념려할건 없대두.》
《…》
리정철은 더 할말이 없는건 아니였다. 그는 송춘도가 맡은 통신프로그람이 작성하기는 그닥 어렵지 않은데 현장조건에서 믿음성을 보장하자면 실험도 많이 하고 품도 많이 들여야 한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러나 그는 말로써 송춘도를 움직이기는 어렵다는것을 깨달았다. 자기가 맡은 체계관리프로그람을 짜면서 통신프로그람도 도와주리라 결심하였다. 그러자면 배가의 노력을 해야 하였다. 그는 매일 4시간자는 일과를 세웠다.
리정철은 당원으로서 자기가 림시책임자인 리남웅을 잘 도와주지 못하고있다는 가책도 여전히 안고있었다. 이것은 연구소에서 떠나올 때 김정태비서가 그를 따로 불러서 준 당적분공이기도 하였다.
리남웅은 공장에 가져온 《조종7호》의 련동시험도 주동적으로 내밀지 못하고있었다. 공장기술진에서는 그 도입을 놓고 아직 론의중이였다.
그는 림시책임자로서 동무들의 프로그람작업과 생활에 대하여 요구성을 높이지 못하였다.
공장조건에서 연구사들의 자질향상계획을 세우고 추진해보라는 실장의 당부도 잊어버린것 같았다. 공장대학에서 리남웅선생이 강의에 이따금 출연해주었으면 고맙겠다고 요청을 해왔지만 그럴만한 실력도 없고 시간도 없다면서 외면하고있었다.
리남웅은 정철이 이런 결점들을 지적해주어도 자기는 책임자노릇 못하겠노라는 소리뿐이였다.
공장에 온지 7일만에 리남웅은 연구소에 있는 진수현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실장선생이 언제쯤 공장에 올수 있겠는가고 한숨 섞인 소리로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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