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의 정치탐사] 위협과 공갈이라는 말이 없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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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석의 정치탐사 제19화
2022년 5월 26일
위협과 공갈이라는 말이 없어질 때까지
한호석 (정치학 박사, 통일학연구소 소장)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18년 5월 24일, 연속발파음이 험준산령의 정적을 깨뜨렸다. 함경북도 길주군 만탑산에 연속발파음이 울린 것은 조선이 북부핵시험장을 폭파하였음을 전 세계에 알린 비핵화의 첫 걸음이었다. 북부핵시험장에는 1번 갱도, 2번 갱도, 3번 갱도, 4번 갱도가 있는데, 그날 4개 갱도가 연속발파로 모두 폭파, 폐쇄된 것이다. 이튿날 조선핵무기연구소 부소장은 북부핵시험장 폐쇄상황을 취재하려고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외신기자들에게 '북부핵시험장의 페기방법과 순차'라는 제목이 적혀있는 커다란 입간판 개념도를 보여주면서, 4개 갱도가 어떻게 폭파, 폐쇄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조선이 북부핵시험장을 폭파, 폐쇄한 것은 김정은 총비서가 단행한 선제적이고 주동적인 조치였다. 만일 2018년 6월 12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Dnald J. Trump)가 조선의 북부핵시험장 폐쇄조치에 상응하여 북침전쟁연습을 중단하였다면,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김정은 총비서에게 북침전쟁연습을 중단하겠다는 구두약속을 남겼다. 회담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간 그는 북침전쟁연습 중단을 극렬히 반대하는 당시 미국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를 비롯한 군부인사들의 저항을 제어하지 못했다. 북침전쟁연습을 중단하겠다던 트럼프의 구두약속은 결국 물거품으로 되고 말았다.
정치적 해법은 협상 양측이 등가교환원칙에 따라 서로 주고 받는 것이다. 어떤 사안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려 할 때, 주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받는 것도 있어야 한다. 조선은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전에 선제적으로, 주동적으로 북부핵시험장을 폭파, 폐쇄하였지만, 미국은 그에 상응하는 북침전쟁연습을 중단하지 않았다. 미국이 의무적으로 취했어야 할 상응조치를 외면하였기 때문에 조미정상회담의 정치적 해법은 실현될 수 없었다. 한반도의 비핵화가 조선의 선제적이고 주동적인 조치로 첫 걸음을 떼었으나, 결국 실패로 끝난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에 있다.
한반도의 비핵화가 첫 걸음을 떼자마자 실패로 끝난 이후, 조미관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이 심중한 문제는 2022년 1월 19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논의되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날 회의에서는 2018년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조선에 적대행위를 여전히 자행해왔으며, 오늘에는 "미국의 적대시정책과 군사적 위협이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위험계선에 이르렀다"고 한다. 정치국 회의에서는 지난 4년 동안 미국이 조선에 저지른 온갖 적대정책과 무력위협을 다음과 같이 열거, 지적했다.
- 북침전쟁연습을 수 백차례나 감행했다.
- 각종 전략무기시험들을 진행했다.
- 첨단군사공격수단들을 "남조선에 반입하였다."
- 핵전략무기들을 "조선반도 주변지역에 들이밀었다."
- 조선을 "악랄하게 중상모독하였다."
- 조선의 국가경제를 압살하려는 20여 차의 단독제재조치를 가했다.
- 조선의 "자위권을 거세하기 위한 책동에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다".
조선은 북부핵시험장을 폭파, 폐쇄했지만, 미국은 그에 상응하여 마땅히 중단했어야 할 북침전쟁연습을 중단하지 않고 수 백 차례나 감행해오면서, 조선을 자극하는 적대행동과 무력위협을 감행해왔다는 것, 그리고 그 동안 조선은 '전략적 인내'로 때를 기다려왔다는 것, 바로 이것이 한반도의 비핵화가 첫 걸음을 떼자마자 실패로 끝난 이후 지난 4년 동안 조미관계에서 일어난 사건들이다.
조선은 언제까지나 '전략적 인내'를 계속할 수 없었다. 2022년 1월 19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제8기 제6차 회의에서는 '전략적 인내'를 접고, 마침내 행동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날 정치국 회의에서는 "국가의 존엄과 국권, 국익을 수호하기 위한 우리의 물리적 힘을 더 믿음직하고 확실하게 다지는 실제적인 행동에로 넘어가야 한다고 결론하였"으며, "미국의 날로 우심해지고 있는 대조선적대행위들을 확고히 제압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한 물리적 수단들을 지체없이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국방정책과업들을 재포치하였"고, "우리가 선결적으로, 주동적으로 취하였던 신뢰구축조치들을 전면재고하고 잠정중지하였던 모든 활동들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해볼 데 대한 지시를 해당부문에 포치하였다"고 한다.
위에 인용한 결정사항을 읽어보면, 조선이 북부핵시험장 4개 갱도를 폭파, 폐쇄한 것은 핵시험을 잠정적으로 중지한 조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와 더불어 2022년 1월 하순부터 핵시험을 재개하기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2022년 1월 19일 회의에서 지난 4년 동안 잠정적으로 중지하였던 핵시험을 재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두 달이 지난 2022년 3월 11일 <연합뉴스>는 한국 국방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여 조선의 북부핵시험장 3번 갱도에서 복구공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부핵시험장 갱도복구공사는 핵시험을 재개하기 위한 준비가 진전되었음을 보여주는 뚜렷한 징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북부핵시험장에 있는 4개 갱도 중에서 3번 갱도가 복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3번 갱도를 복구하는 것일까? 1번 갱도는 2006년 10월 9일 제1차 핵시험 이후 붕괴되어 폐쇄되었다. 2번 갱도에서는 2009년 5월 25일 제2차 핵시험, 2013년 2월 12일 제3차 핵시험, 2016년 1월 6일 제4차 핵시험, 2016년 9월 9일 제5차 핵시험, 2017년 9월 3일 제6차 핵시험을 실시했으므로, 그 갱도를 더 이상 핵시험에 사용할 수 없다. 복구하여 핵시험에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3번 갱도와 4번 갱도인데, 지난 4개월 동안 3번 갱도 복구공사가 진척된 것이다.
2022년 4월 29일 미국의 온라인매체 <38노스(North)>는 조선의 북부핵시험장 3번 갱도에서 핵시험이 실시되는 상황을 가정한 분석기사를 실었다. 분석기사에 따르면, 3번 갱도는 길이가 긴 갱도와 길이가 짧은 갱도로 갈라졌는데, 길이가 긴 갈래갱도 위쪽은 두께가 600m인 암반이 누르고 있고, 길이가 짧은 갈래갱도 위쪽은 두께가 450m인 암반이 누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런 지층구조를 생각하면, 두께가 600m인 암반 아래쪽에 있는 갈래갱도는 120킬로톤의 핵폭발위력을 견딜 수 있고, 두께가 450m인 암반 아래쪽에 있는 갈래갱도는 50킬로톤의 핵폭발위력을 견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2022년 5월 6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은 미국 국가정보기관의 정보분석을 인용하여 조선이 앞으로 닷새밖에 남지 않은 5월 중에 핵시험을 실시할 준비를 갖추었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북부핵시험장 3번 갱도를 복구하는 공사가 완료되었음을 의미한다. 2022년 5월 25일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언론설명회에서 조선이 핵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지난 몇 주 동안 여러 차례 기폭시험을 실시해왔다고 하면서, 핵시험을 위한 마지막 준비가 끝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에서 주목되는 것은, 조선이 지난 몇 주 동안 기폭시험을 여러 차례 실시하였다는 사실이다.
기폭시험은 핵탄두 기폭장치(detonator)의 작동상태를 판정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다. 고폭화약, 뇌관, 신관으로 구성되는 핵탄두 기폭장치는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핵탄두를 제조하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 중에서 기폭장치를 만드는 기술이 가장 고난도 기술이다.
핵탄두 기폭장치에 들어가는 고폭화약을 만드는 것부터 고도의 기술을 요구한다. 핵탄두 기폭장치에 들어가는 고폭화약은 TNT라고 부르는 일반폭약이 아니다. 일반폭약을 기폭시키면, 핵폭발에 필요한 순간림계체적(instantaneous critical volume)을 얻을 수 없다. 핵탄두 기폭장치에 들어가는 고폭화약을 만드는 기술은 고난도 화학기술이다.
고폭화약을 만든 다음에는 고폭화약의 순간폭발력을 커다란 공처럼 생긴 핵탄두 내부의 중심점으로 모으는 내폭집초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고폭화약의 폭발력을 핵탄두 중심점으로 집초시키기 위해 폭속이 느린 화약과 폭속이 빠른 화약을 기하학적으로 배렬하는데, 기하학적 배렬에 따라 폭속이 서로 다른 고폭화약들이 커다란 렌즈 모양으로 고형화된다. 그처럼 정교하게 기하학적으로 배렬하고 고형화시켜야 고폭화약의 순간폭발력이 바깥쪽으로 허실되지 않고 핵탄두 중심점으로 내폭집초될 수 있다.
폭속이 서로 다른 화약들을 기하학적으로 정교하게 배렬하고 고형화시킨 다음, 내폭집초상태를 실제로 검증해야 하는데, 이런 검증이 바로 기폭시험이다. 만일 기폭시험에서 오차가 생기면 이를 수정, 보완해야 한다. 핵탄두 기폭장치를 사용하는 기폭시험은 한 두 차례로 끝날 수 없으며,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수 십 차례 계속된다.
기폭시험을 실시하면, 엄청난 폭발력이 발생한다. 그래서 기폭시험은 실내시험장에서는 할 수 없고, 야외시험장에서 해야 한다. 야외시험장에서 기폭시험을 실시하면, 지표면에 커다란 폭발분화구가 생긴다. 미국의 정찰위성이나 첩보위성은 조선의 야외시험장에 생겨난 기폭시험 폭발분화구를 발견할 수 있다. 미국 국가정보기관은 기폭시험 폭발분화구 숫자를 헤아리면서 핵시험이 임박하였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만일 조선의 야외시험장에서 기폭시험 폭발분화구가 더 이상 생기지 않으면, 기폭시험이 완료된 것이므로 핵시험이 임박했다고 볼 수 있다. 2022년 5월 25일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조선에서 지난 몇 주 동안 기폭시험이 여러 차례 실시되었다고 하면서, 핵시험을 위한 마지막 준비가 끝나가고 있다고 말한 것은, 조선의 야외시험장에서 기폭시험 폭발분화구가 더 이상 생기지 않는 것을 위성영상자료를 통해 식별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폭시험이 완료되면, 기폭장치와 핵분렬물질을 폭결전선으로 연결하여 핵탄두를 완성한다. 내가 이 글을 집필하고 있는 2022년 5월 26일 현재 조선의 핵과학자들은 기폭장치와 핵분렬물질을 폭결전선으로 연결하여 핵탄두를 완성하는 최종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완성된 핵탄두는 특별렬차에 실려 북부핵시험장으로 운반된다.
북부핵시험장 3번 갱도는 거대한 달팽이관처럼 생겼는데, 90도 각도로 네 번 꺾이는 내부구조로 설계되었다. 이런 고차원적인 핵시험갱도설계는 오직 조선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달팽이관처럼 생긴 갱도 안에는 핵폭풍을 차단해줄 9개의 차단문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설치되었다. 머지 않아 조선의 핵과학자들은 3번 갱도 안에 설치된 9개의 차단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갱도 중심부에 핵탄두를 설치하고, 방사능계측장비와 지진파계측장비를 갱도 안에 설치할 것이다. 그러면 공병부대가 갱도를 흙, 자갈, 모래, 석고, 시멘트로 밀봉한다. 너비와 높이가 각각 2~3m이고, 길이가 수 백 m인 갱도를 메우는 밀봉작업은 시간을 요구한다. 공병부대가 갱도밀봉작업을 마치면, 핵시험 준비가 완료된다.
2022년 4월 25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돐 경축열병식은 조선인민군이 전술핵탄두를 장착하는 여러 종의 첨단무기들을 보유하였다는 것을 실증해주었다. 대구경 조종방사포, 변칙비행미사일, 극초음속미사일, 철도기동미사일, 잠수함발사미사일, 장거리순항미사일에 전술핵탄두가 각각 장착된다. 거기에 더하여, 대륙간탄도미사일들인 화성-14형, 화성-15형, 화성-17형에도 많은 핵탄두들이 장착된다. 이처럼 다종다양한 첨단무기들에 전술핵탄두를 장착하려면, 기존 전술핵탄두로는 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으며, 여러 종의 신형 전술핵탄두들을 더 많이 증산해야 한다. 조선이 북부핵시험장 3번 갱도에서 전술핵탄두를 기폭시키는 핵시험을 실시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2020년 4월 6일 미국 국방부가 발표한, "핵억지력: 미국의 토대와 방위를 위한 안전장치'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국가핵안보국(NNSA)은 15억6,000만 달러의 국가예산을 쏟아부으며 신형 핵탄두를 생산하고, 기존 핵탄두의 작전수명을 연장하고, 3대 전략핵무기를 현대화하는 중이다. 2020년 2월 4일 당시 미국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 존 루드(John C. Rood)는 미국이 5킬로톤급 신형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잠수함발사미사일을 핵추진 전략잠수함들에 탑재하여 실전배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전쟁을 아직 끝내지 않은 정전상태에서 조선을 극단적으로 적대하는 미국이 이처럼 핵무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그에 대항해야 하는 조선이 핵무력을 증강하지 않고 사태를 수수방관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2021년 1월 9일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 김정은 총비서는 "핵기술을 더욱 고도화하는 한편, 핵무기의 소형경량화, 무기화를 보다 발전시켜 현대전에서 작전임무의 목적과 타격대상에 따라 각이한 수단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들을 개발하"여야 한다고 언명하였다.
조선은 지하핵시험을 실시하지 않고 임계전 핵시험을 실시하여 신형 전술핵탄두를 생산할 수 있다. 임계전 핵시험(subcritical nuclear test)은 핵분렬련쇄반응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핵분렬물질에 초고온과 초고압을 가해 핵분렬물질의 반응상태를 측정하는 것인데, 핵탄두를 완전히 기폭시키지 않고 컴퓨터를 사용하여 핵폭발모의시험을 하는 것이다. 컴퓨터모의시험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오늘, 조선을 비롯한 핵보유국들은 지하핵시험을 하지 않고, 임계전 핵시험을 실시한다. 2018년 4월 21일 조선은 핵시험 중단조치를 발표하면서, 그 전에 이미 임계전 핵시험을 실시했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조선이 2018년 이전처럼 임계전 핵시험을 실시해도, 미국은 그것을 전혀 탐지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조선은 임계전 핵시험을 조용히 실시하여 신형 전술핵탄두를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지만, 굳이 지하핵시험을 실시하는 이유는 침략적 핵무력을 가지고 조선을 위협, 공갈하는 미국의 경거망동을 힘으로 억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머지 않아 북부핵시험장 3번 갱도에서 핵시험이 실시되면, 상상을 초월한 초고열과 초고압이 발생하여 지층 속 깊은 곳에 있는 화강암반이 줄줄 녹아내리고, 핵폭풍을 견디지 못한 만탑산은 거대한 몸을 부르르 떨 것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조선은 "적대세력들의 위협과 공갈이라는 말 자체가 종식될 때까지" 핵시험을 계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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