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래일에 사는 사람들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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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제 3 편 오늘의 의미
7
리란희는 과학원도서관일을 하면서 짬짬이 여느 기관들에서 요구하는 외국문자료들을 번역해주었다.
그러느라고 집에 늦게 들어오는 일이 빈번하여 맏딸 정임이가 저녁동자질을 도맡다싶이하였다. 정임이는 또 정임이대로 바빴다. 몇달후에 대학입학시험을 치게 되여 그 공부도 해야 하였는데 이 아빠트의 크고작은 남녀아이들은 그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모여들어 과외학습방조를 받군 하였다. 상냥한 정임이한테서 재미나는 옛이야기를 듣고싶어 찾아오는 유치원생 《좁쌀친구》들까지 있었다. 저녁시간이면 정임이네 방은 장마당처럼 떠들썩하였다. 정임이가 저녁밥이 잦았는가 보려고 부엌에 나간 사이에 아이들은 남의 머리채를 끄당기고 뛰여다니거나 벽에 그림을 그려놓기도 하였다.
리란희는 하루저녁에 일찍 들어와서 그 애들을 보고 정임이언니는 이제부터 대학시험공부를 하니 짬이 없다고, 후에 배우러들 오라고 모두 돌려보냈다.
우리 집이 왜 이렇게 조용해졌는가고 집안일에 영 관심이 없던 남편이 궁금해서 물어볼 정도였다.
리란희는 그에게 정임이가 입학문건을 인차 쓰게 되는데 어느 대학을 지망해야겠는지 망설이고있다고 이야기하였다.
《유치원교양원을 하겠다더니?…》 남편은 아직 그믐밤이였다.
《이젠 그 애 생각이 달라졌어요. 내가 알아들을만 하게 얘길 해주었더니 자기도 중앙대학에 가겠대요.》
《정임인 이젠 어리지 않소. 나이 열여섯이 작소? 그 애가 자기 앞길을 잘 생각해보도록 놔둡시다. 괜히 마음이 들뜨게 부추기지 말고… 이제 시집을 갈 때도 그래, 곁에서 부모들이 너무 간참하다간 큰 랑패를 볼수 있소.》하고 남편은 대학지망문제는 좀 더 두고보자면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정철동무 있잖소, 나랑 같이 유연체계실에 있다가 이번 전투조에 인입된 〈제대군인〉말이요. 그가 벌써 관리체계프로그람방안을 내놓았는데 아직 사색의 폭이 좁더군. 조바심이 나서 문헌조사를 설친것 같소. 유전알고리듬에 의한 일정계획작성과 사건조종형일정진척관리에 대한 새 자료들이 있겠는데 좀 찾아보우. 정철동무한테도 보이고 나도 좀 보게 말이요.》
이튿날 리란희는 도서관에서 남편이 요구하는 유전알고리듬 새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다른 일에 신경을 쓰게 되였다. 그는 무척 바빴다. 과외시간뿐아니라 이따금 근무시간에도 단풍회사에서 의뢰해온 외문자료들을 번역하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이런 일은 취미로 하는것과 달라서 어지간히 피곤하였다.
얼마전에 리윤덕부소장의 안해 박선옥이 란희를 찾아와 함께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친절을 보이였다. 그러면서 자기는 같이 일할 사람들을 고를 때 상업적인 수완이나 능력보다도 인간의 진실함과 신의를 첫째로 본다고 하였다. 박선옥은 큰 건재상점의 점장이였다. 가지각색 타일들과 칠감들, 건설마감자재들이 잘 팔리고있었다.
리란희는 어느날 저녁 밥상머리에서 남편에게 도서관일을 그만둘 의향을 내비쳤다.
《지금은 녀자들이 하는 일이 많은데 저두 무슨 마련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몇달동안 새 연구실을 맡아 추켜세우느라고 골몰하던 진수현은 그 소리에 한참 놀라는 빛이였다. 가장으로서의 자각이 있어선지 신중히 생각하는 기색이더니 란희를 타이르는것이였다.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견디여냈는데 이제와서 도서관일을 그만둔다.… 당신같이 경험있는 정보검색전문가들이 더 좋은데로 간다고 너도나도 자리를 비워놓으면 우리 도서관이 어떻게 되겠소? 연구사업의 첫 공정이 문헌조사인데…》
《…》
《우리 은정구역은 그만하면 생활조건이 괜찮지 않소. 과학자라고 뭘 좀 연구를 하면 생활비에 우대가 적용되구 주택이나 전기사정도 나은편이 아니요. 이제 나라형편이 더 좋아질거요. 다시 생각해보우.》
《저도 여러번 재던 끝에 말을 꺼낸거예요. 그래도 다시 생각해보겠어요. 정임이 아버지도 좀 더 생각을 해보세요.》
《음, 그렇게 합시다.》
남편은 사뭇 선선히 동의하였다. 그러나 그는 열번 생각해본 다음에도 도서관일을 계속하라고 말할것이다.
리란희는 그런 경우에 꾀병을 할수도 있고 또 다른 그럴듯 한 수를 쓸수도 있었다. 오늘은 이쯤 말꼭지를 떼놓자.
그는 도서관에 정식 사표를 내기 전에 관장의 반승낙까지 받았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아빠트곁에서 만난 박선옥에게 알려주었다.
《저, 인차 퇴직수속을 하게 될것 같아요.》
《난 지금 남의 일에 관심할 경황이 없어요.》
박선옥이 뜻밖에도 랭기를 풍겼다.
리란희는 깜짝 놀랐다.
《우린 약속하지 않았어요, 송이 엄마?》
《참, 마음이 편해 좋겠어요! 며칠전에 세대주가 무슨 얘길 안하던가요?》
《?…》
《이웃을 그렇게 궁지에 빠뜨리는 법이 어데 있어요? 이제 어느 집안 일이 잘되는가 어디 두고보자요.》
어안이 벙벙해졌던 리란희는 오후에 도서관에 나가서 가까이 지내는 사서한테 캐물어서야 유독 자기에게만 와닿지 않은, 며칠전 현대화연구소의 회의소식을 듣게 되였다. 쉬쉬하는 소리가 남편이 부소장의 결함을 까밝혀 공격하여 소장과 비서가 리윤덕부소장을 재평가할 정도로 일이 번져졌다는것이였다. 남편이 비판한 부소장의 주되는 결함이란 리남웅을 회사에 보내려던것이라고 하였다.
리란희는 의문을 금할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운명적인 큰 결함이라고 내놓고 비판한단 말인가? 무슨 자금을 사취했거나 사고를 낸것도 아닌데…
고지식한 남편은 자기 본신사업과 관련된것은 모두 중대한 문제인것처럼 보고있다. 괜히 인심만 잃지 않는가.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그러나저러나 직업개선의 꿈도 이것으로 끝나게 되였다. 한가정의 주부인 리란희에게는 적지 않은 실망을 주었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니 둘째인 정선이가 방구석에 놓인 가정용변압기를 가리켜보였다. 평성시내에 사는 막내이모가 가져다놓은것이라고 하였다.
변압기겉면이 꺼멓게 그슬린걸 보니 권선피복이 타버린것이 분명하였다.
《…아버지한테 보여주면 다 안대요.》 정선이가 이모의 말을 전달하였다. 수리해달라는 소리였다. 가까운 시내 수리소에 맡기면 될텐데 여기까지 가지고 오다니?!… 참으로 무서운 이악쟁이이고 살림군인 막내동생 윤희였다. 전자장치전문가네 집이라고 자주 이런 청을 들이대군 한다. 이 변압기도 윤희의 결혼식직후에 란희가 남편명의로 사준것이였다.
가뜩이나 기분이 상해 들어온 란희는 변압기를 보자 즉시 동생네 집 전화번호를 눌렀다.
《은하 엄마지?… 변압기를 가져왔더구나. 우리 정임이 아버진 얼마나 바쁘게 지내시는지 몰라. 거기에 손댈 시간이 없어. 이런건 시내 수리소에 좀 맡기면 좋겠구나.》
《호호… 그저 아저씨한테 그 변압기를 보이기만 하라요.》
《글쎄 요즘 눈코 뜰새없이 바쁘다니까…》
《언니두 참, 누가 아저씨보구 고치라나 뭐. 아저씨네하구 가까운 실험소에서두 변압기를 만들어 직매점에 내간다는데 새까맣게 탄 처제네 변압기를 보면 무슨 생각이 있을것 아니예요?》
《오, 도매가격으로 말이지?》
리란희는 그제야 말귀를 알아들었다.
남편은 제시간에 저녁식사를 하러 들어왔다. 아마 또 야간작업을 나갈것이다.
란희는 윤희네 변압기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남편은 변압기가 탄것을 알아보고 중얼거렸다.
《권선이랑 구해서 감아줘야겠구만.》
그 말이 고작이였다.
리란희는 저녁상을 들여온 다음 은근히 상기시켰다.
《저, 정임이 아버지가 자주 다니는 실험소에서도 가정용변압기를 감는다지요?》
《그런데?…》
남편이 남보듯하며 심상하게 묻는 소리에 란희는 가슴에서 울컥 고까운 생각이 솟구쳐올랐다.
《그저… 아니, 됐어요.…》
그는 직매점에 넘기는 가격으로 윤희네 집에 변압기를 한대 사다주자는 소리가 끝내 나가지 않았다.
그럴바엔 직접 실험소에 부탁을 하는게 차라리 나을것 같았다. 아니, 그러다가 남편의 이름이 팔릴수 있으니 그것도 해서는 안될 일이였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수 없는 처지였다.
리란희가 돌이켜보니 남편은 너무도 가정일을 모르고 관심도 없었다. 오늘따라 그가 원망스럽고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두 딸은 무슨 낌새를 챘는지 숟갈들을 놓고 하나, 둘 슬그머니 저희들 방으로 올라가는것이였다.
《당신 왜 그러오?》 진수현이 놀란듯 물었다.
《정임이 아버진 언제한번 집안일을 생각해보신적이 없지요.》
리란희는 마음속의 설음이 넘쳐흘렀다.
《살림살이부담을 같이 지자는건 아니예요. 제가 집안살림을 좀 추세울가 해서 하는 일을 리해해주고 듣기 좋은 말이라도 해주실수야 있잖아요.》
《…》
《제가 도서관에 계속 남아있으면 어떻게 한다는거예요? 우리처럼 부부가 다 과학원에 출근해야만 하나요? 오늘 송이 엄마를 만났는데 찬 기운을 풍기면서 어느 집안 일이 잘되는가 두고보자고 하더군요. 그바람에 저는 전번에 같이 일해보자던 건재상점소리를 다시 꺼내지도 못했어요. 우리가 무엇이 모자라서 그런 사람들한테 부탁을 하면서 살아야 해요? 주위를 좀 보세요. 다른 사람들은 우리처럼 살지 않아요.》
남편은 천천히 숟갈을 놓았다. 그는 어지간히 충격을 받은것 같았다. 그러나 격했을 때 늘 그런것처럼 더 랭정하고 엄한 기운이 풍겼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처럼 살지 않는다?… 당신은 현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있소. 지금도 그렇지만 지금보다 더 어려웠던 시기에도 우리 사람들은 훌륭한 면모를 보여주었소.》
《?…》
《〈고난의 행군〉때 구성이나 희천에도 나가봤지만 그곳 사람들은 그 어려운 조건에서도 일터를 떠나지 않았소. 우리 연구소 사람들도 그렇게 살았지. 허리띠를 조이면서도 밀가루보다 먼저 기계들을 사들였고 끝내 시험공장을 일떠세웠소. 말그대로 기적을 창조했단 말이요. 당신도 그때 현장지원을 했더랬지.》
《…》
《물론 지금 제 살궁리만 하는 사람들도 있지. 우린 그렇게 살수 없소. 생각해보오. 우리가 서로 처음 만났을 때 바란것이 무엇이였소? 살림을 유족하게 꾸리자는 그 한가지만 바라지는 않았댔지… 다시 잘 생각해보오.》
남편은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오늘 밤도 연구실에 나가 새우려는 모양이였다.
리란희는 홀로 앉아 눈물만 흘렸다.
리란희는 이튿날 저으기 후회가 되였다. 엊저녁에 밥상머리에서 자기가 설분을 터뜨려 남편이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밤작업을 나가게 한 일이며 더구나 요즘처럼 자기 눈에 남편의 장점보다 약점이 더 크게 보이는것이 못내 괴롭게 생각되는것이였다.
남편 말마따나 《고난의 시기》에도 자기는 도서관을 떠나지 않았고 부부간의 리해도 두터웠는데 한결 살림이 펴인 오늘에 와서 오히려 서로 간격이 벌어지는것은 무슨 까닭인지 알수 없었다.
그는 도서관에 출근해서도 울적해 앉아있다가 외출승인을 받고 다시 집에 돌아와 문제의 그 변압기를 큰 보자기에 싸들고 평성시내로 넘어갔다. 이것을 막내동생네 집에 그대로 돌려보낼수는 없었다. 수리소에 맡겨 권선을 다시 감게 하려는것이였다.
그가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종합편의》안의 가정용전기제품수리실에 들어가니 거기서는 뜻밖에도 송춘도가 여러 수리공들에게 에워싸여 그들의 갖가지 질문에 명쾌한 조언과 해명을 주고있었다.
리란희는 그와 여기서 만나게 되여 좀 난처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우정 피할것도 없고 해서 변압기보따리를 접수탁우에 끌러놓고 수리공들이 돌아볼 때를 기다렸다.
송춘도는 비선형체계의 주파수응답해석에 대한 원리강론을 여기서 마치겠습니다하고 손수건을 꺼내여 이마에 내돋은 땀을 찍어낸 다음 점잖게 주위를 둘러보다가 자기 실장의 안해가 와있는걸 보고 질끔 놀라더니 란희에게 어떻게 여길 왔는가고 친절히 묻는것이였다.
《아, 변압기를 수리하려구요?… 이거 새까맣게 탔구만요. 이런 변압기잔해는 수리소에 기증하십시오. 오랜 수행장치전문가네 집에서 이런걸 수리소에 가져온다는게 어딘가 좀 어울리지 않는데요. 우리 실하구 련계가 있는 실험소에서두 가정용변압기를 조립하는데 실장선생보고 하나 해결해달라고 하시라요. 그런다고 나무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리란희는 엊저녁에 자기가 남편에게 하던 소리가 남의 입에서 나오자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글쎄 그렇게 하시라는데두요. 난 오늘 몸이 찌부듯해서 집에 누웠다가 하도 답답해 이렇게 나와 바람을 좀 쏘이는 길이지요. 실장선생한테는 좀 미안하게 됐지만…》
송춘도의 말을 듣던 리란희는 얼결에 유리를 댄 출입문쪽을 돌아보다가 흠칫 놀랐다. 뜻밖에도 남편이 현관에 들어서서 두리번거리며 이쪽저쪽을 살펴보더니 이쪽 복도로 걸어오는게 아닌가! 난처해진 리란희는 뒤걸음을 쳐서 문뒤에 숨었다가 남편이 그 자리에 굳어져버린 송춘도에게 다가가는 사이에 급히 밖으로 뛰여나오고말았다. 가슴이 콩콩 뛰였다. 그는 그길로 도서관으로 되돌아가고싶었지만 접수탁우에 올려놓았던 변압기때문에 그냥 가지도 못하고 멀찌감치에서 오락가락하며 《종합편의》쪽만 바라보고있었다.
《아니, 어떻게 여기에 오셨습니까?》
뒤에서 최일이가 그를 불렀다.
리란희는 뭐라고 대답할지 몰랐다.
《저, 그저…》
그는 자기 남편과 송춘도와 최일이 거의 동시에 여기에 나타난 까닭을 알수가 없었다.
사실 최일은 수현실장이 평성시내로 일보러 나가는 길에 병결을 한 송춘도네 집에도 들려보겠다면서 떠난 후 본원에서 실장을 전화로 찾기에 춘도네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누구도 받지 않았다. 최일은 춘도가 또 시내의 전자제품판매소나 수리소 같은데로 돌아다니는 모양이라고 짐작하고 그를 만나 단단히 추궁을 하고 겸사해서 실장도 찾으려고 이렇게 떠나온 길이였다.
《실장선생님을 못 보셨습니까?》 최일이 물었다.
리란희는 허둥거렸다.
《저기 〈종합편의〉에…》
마침 그곳 현관에서 남편과 송춘도가 나왔다. 둘사이에 벌써 심각한 말들이 오고간것 같은 인상들이였다.
리란희는 얼른 가로수뒤에 몸을 기댔다. 진수현과 송춘도는 아직 더 할말이 있는듯 길옆의 조용한 소공원으로 들어갔다. 최일이가 그들을 따라갔다. 리란희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듯 서있었다. 소공원에서 두런두런 말소리들이 들려왔다.
진수현이 엄하게 송춘도를 책망하고있었다.
《한창시절에 시간이 귀한줄 모르고 이렇게 돌아다니면 어떻게 하겠소. 그 나이에 더 많이 배우고 준비해야 할게 아니요.》
송춘도는 난 죽었수다하고 가만있지 않았다.
《오늘은 나도 말 좀 합시다. 실장선생은 우리보고 밤낮 준비요, 자질이요, 〈조종7호〉요 하는데 까놓고 말해서 세계 최첨단수준에 오르기가 쉽습니까?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볼것두 없지요.》
《그래 송동무가 말하자는건 뭐요?》
《좀 더 현실적인 노력을 하잔 말입니다. 이전처럼 우리 능력에 맞춤하고 실리도 있는 과제를 제기하고 해결했더라면 생활의 여유도 생겼을거구 사람들이 불평도 말하지 않을겁니다. 현장들엔 왜 안 내보냅니까? 거기가서 수리도 하구 장치들도 기동시켜주는게 진짜 실속있는 자질향상이지요. 그렇게 되면 난 누구만 못지 않게 실적을 올릴수 있단 말입니다.》
《그러자구 해두 더 배워야지. 송동무의 자질가지구는 안되오. 장치들이 날을 따라 갱신되는데…》
《예― 옳습니다, 난 자질이 부족합니다. 그래 여길 뜨자는겁니다.》
《이젠 뻗칠내기요? 그래서 일도 안 나오고 이런델 찾아다니누만?》
진수현은 송춘도의 돌변에 놀란것 같았다.
《그렇습니다. 아니, 〈종합편의〉가 뭐 못 올뎁니까? 실장선생 아주머니도 아까 찾아왔댔습니다. 까맣게 탄 변압기를 가지구요. 가정용변압기같은건 실장선생이 공업실험소에 한마디 부탁하면 수리해줄겁니다. 어째서 그런 여유도 없이 고박하게 살아야만 합니까? 난 남의 집안일을 시비하자는게 아니라 실장선생이 부서사람들한테 그런 생활방식을 주입하는것 같아서 하는 소립니다.》
《…》
진수현의 얼굴에서 피기가 사라졌다.
송춘도는 목소리를 높였다.
《난 장치를 전문하는 사람으로서 적어도 집안사람이 변압기를 싸들고 여기저기 수리소로 다니게 하고싶지는 않습니다.》
송춘도가 떠드는 소리를 진수현은 생각에 잠겨 묵묵히 듣고있었다.
리란희는 남편을 힐난하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가로수에 기대여 서있다가 한손을 들어 눈굽을 훔치고나서 그 자리를 떠났다.
《여, 춘도!…》
뒤에서 지켜보던 최일이 그에게 다가갔다. 춘도를 향해 뭔가 격한 말을 하려던 최일은 단념하고 돌아섰다.
《실장선생님, 가십시다! 여기서 지체할 필요가 없습니다.》
《최동무, 먼저 돌아가오. 어서…》
《본원에서 강부원장선생님이 부릅니다.》
《알겠소.》
진수현은 최일을 돌려보내고나서 송춘도를 엄하게 바라보았다.
《송동문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오. 동문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수재교육을 받았고 지금은 첨단과학부문에서 일하고있지 않소. 지금 행동하는걸 보면 나라의 고마움과 기대를 아는것 같지 않소. 송동문 소소한 일에 마음을 쓸게 아니라 나라앞에 큰 과학의 탑을 쌓아야 한단 말이요. 젊은 시절에 리상이 낮으면 속물로밖에 될수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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