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래일에 사는 사람들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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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제 3 편 오늘의 의미
5
진수현은 이튿날 출근하자바람으로 부소장실로 찾아갔다. 앓는 소장을 대리하는 리윤덕을 만나려는것이였다. 우선 그를 돌려세워야 송화기계무역회사 사장이나 남웅이를 움직일수 있을것 같았다.
진수현은 날이 갈수록 리윤덕에게 확실히 문제가 있다는것을 느끼는터였다. 그의 사업에서는 의문되는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부소장실은 비여있었다.
진수현은 연구소 뒤마당으로 나가보았다. 그의 짐작대로 리윤덕은 증축하는 차고주위를 돌아보고있었다.
《일찍 나왔구만.…》 리윤덕이 그를 보고 먼저 알은체를 했다.
《어제 남웅일 데리러 갔댔다지?》
진수현은 기분없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는 돌아오고싶어하는데 이런저런 사정때문에 주저하는것 같네.》
《주저한다구?》 리윤덕은 그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자넨 젊은이들의 심리를 그렇게두 모르겠나. 그런 전망있는 회사를 누가 마다하겠나. 남웅이 경우에도 같지. 말은 돌아오고싶다고 하지만 속심은 그렇지 않을걸.》
《그렇게 단정할수 있나?》 진수현이 책망하듯 물었다.
《내 어제도 서관범사장과 전화련계를 가졌네. 남웅이하구두 전화를 했구. 그의 속심은 뻔해. 이보라구, 진정으루 남웅일 생각한다면 그가 하는대로 두어두라구.》
《남웅이는 동요할 때는 있지만 안팎이 다른 소리를 하는 위선자같지는 않네. 자넨 그를 잘못 보고있어, 아니면 잘못 평가하든가. 전번에 인계할 때도 자넨 그의 실적이 변변치 않다고 말했었지?》
《그럴수밖에, 남웅이가 K방식풀이를 시작했다는걸 내가 알게 된건 그후의 일이니까.》
《그래?!》 진수현은 남웅이가 풀이 죽어 다니던 두석달전의 일을 상기하였다. 의혹은 도리여 점점 짙어졌다.
《그럼 자넨 그때라도 남웅의 K방식풀이에 대해 나한테 알려줄수 있지 않았나? 내가 미처 모른것도 잘못이지만…》
《오, 그땐 벌써 그 사람이 K방식을 포기하고 회사로 가고싶어하더군.》 리윤덕은 사공 배머리 돌리듯 매번 이렇게 저렇게 받아넘겼다.
《그래서 그를 보냈구만? 나한테는 가치없는 인간을 보내는것처럼 이야기하면서… 아직까지도 딴 소릴 할 작정인가? 자넨 지금 자기 행동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못하고있네.》
《허허, 이거 뭐 심문인가? 어쨌든 내가 자네앞에서 감춘게 있다면 그건 다 남웅이 본인을 위해 그런거네. 고박한 자네가 괜히 남웅일 옆에 끼구 안 놔줄가봐 K방식소리를 꺼내지 않은걸세.》
《무책임한짓이네. 자네 그러다간 남웅이의 전도를 망치고마네!》 진수현이 이렇게 성나보기는 처음이였다. 《그래 자네가 남웅이를 회사로 빼돌릴 때 나 하나만을 속여넘겼다고 생각하나? 나라의 큰 재부를 못쓰게 만들번 하지 않았나.》
《이거 말을 주의하게. 자네 성나니 무섭구만. 근데 뭣때문에 심각해서 이래?》
《아닌게아니라 심각한 문제야. 남웅이를 꼭 데려와야 하네. 지적자원을 중시하는 때에 일군인 자네의 립장부터 바로 가지는게 좋겠네.》
《과연 집요하구만.》 리윤덕은 이 일이 시끄럽게 번져질것 같아선지 단호하게 말했다. 《자넨 연구소의 장래요 뭐요 하면서 괜히 남웅이를 괴롭히지 말게. 자꾸 그러다간 혼사까지 깨져나갈수 있어! 그의 조동에 대해서는 연구소측에서 일단 동의한거니 자넨 좀 가만히 있게.》
《그러니 자넨 직권을 가지고…》
《그렇네, 이건 소장 대리로서 말하는거네.》
《?!》
진수현은 억이 막혀 그 자리에 굳어졌다.
사람들을 움직이는데 미립이 튼 리윤덕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너그러운 태도를 보였다.
《허, 이러다간 동창들끼리 다투겠네. 여보게, 남들이 웃어.》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듯 차고 천반휘틀을 받친 굵은 통나무들을 주먹으로 툭툭 건드려보며 그 자리를 떴다.
진수현은 딴 사람을 보듯 그를 쳐다보았다.
저 사람이 이젠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가?!…
한두걸음 더 저렇게 나가다가는 아예 헤여나기 어려운 구렁텅이에 빠질것 같았다.
진수현이 하나만이 그것을 우려하고있는것은 아니였다.
그날 저녁에 열린 초급당위원회에서 김정태비서가 리윤덕부소장에게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는 리윤덕이 리남웅연구사의 회사입직에 대하여 일군으로서 심사숙고하지 못하고 동의를 하였다고 지적하였다.
리윤덕은 자기 결함을 인정하였다.
《저는 리남웅동무의 조동문제를 확실히 소홀히 대했습니다. 본인의 의향과 송화기계무역회사의 사정만 고려하고 그에 쉽사리 동의하였습니다. 이것은 책임있는 일군의 사업태도가 아니였습니다. 일부 연구사들이 다른데를 넘겨다본다고 해서 그들을 안착시킬 대신에 이처럼 하나, 둘 내보내기 시작하면 우리 연구소 력량을 보존하기가 어려울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심각한 교훈을 찾았습니다.》
초급당위원 두사람도 품고있던 의견을 말했다. 각기 표현은 달랐지만 그 골자는 비슷하였는데 부소장으로서 학적지도보다도 작업동원에 치우치는것 같다는 내용이였다.
리윤덕은 저도 모르게 김응일소장을 쳐다보았다. 병석에서 겨우 일어나 초급당위원회에만 참가한 소장은 오늘은 그를 두둔하지 않았다.
리윤덕은 허심한 태도를 보이려고 애쓰는것 같았다.
《부소장으로서 과학연구내용보다도 기관의 외적인 형식미를 돋구는데 치중한것도 사실입니다. 주선을 놓쳤다고 할가… 저의 욕심은 기왕 손을 붙였던김에 우리 연구소건물을 과학원지구에서도 손꼽히는 대상으로 번듯하게 꾸려놓자는것이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일들은 일시 지장을 받더라도 꾸리기에 력량을 집중하고 무리하달 정도로 내밀었습니다.…》
《윤덕동무…》하고 김응일소장이 괴롭게 기침을 깇으며 충고를 하였다. 《내 몇번이나 말했소. 여기는 연구기관이지 무슨 경제기관이 아니라고… 랭동실구상은 집어치워야겠소. 지금 큰 창고를 다른 회사에 임대해주는것도 그런데 랭동실까지 건설하면 우리 연구소가 무슨 판이 되겠는지 모르겠소. 물론 연구소자금도 축적해야지만 그것도 도가 넘으면 과오로 된단 말이요. 그런 조짐이 이것저것 나타나는데 더 늦기 전에 채심해야겠소. 우리 연구소조건에서 승용차들이나 새걸로 교체해선 어쩐다는거요? 뻐스는 필요하다고 보오. 승용차 같은거야 우리 살림살이형편을 봐가면서 차차 생각해볼 일이 아니겠소. 너무 서두르는것 같단 말이요.》
리윤덕은 고개를 떨구고있더니 다 접수한다면서 다시금 자기를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근원까지 헤집어보였다.
《…이상의 결함들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있는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되였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저의 허영심에서 나온것이였습니다.
승용차문제도 그렇습니다. 일군들이 어떤 차를 타는가에 따라 기관체모가 서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고 여겼던것입니다. 참으로 치사한 생각이였습니다. 실장시절에는 화물차를 타고가는것도 다행으로 여기던 제가 변질되기 시작한것입니다.
결함의 원인은 다음으로…》
심각한 자기반성은 계속되였다.
그러는 리윤덕을 쳐다보는 진수현의 마음은 무거웠다.
진수현이 보기에 그의 결함은 점점 더 조장되여왔다. 특히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 많은 사람들이 고난속에서 더 굳세여졌고 연구사들이 허리띠를 조이며 자체의 힘으로 유연체계시험공장과 같은 거창한 창조물을 일떠세웠다면 리윤덕은 당장 리득이 있는 연구에만 신경을 쓰면서 전망적인 연구과제는 뒤전에 밀어버리는 버릇이 붙었다. 실장으로부터 부소장으로 올라가자 그는 자기의 삶의 방식이 더욱 옳은것으로 느끼는것 같았고 커진 사업범위와 함께 그 결함도 크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 점을 제일 먼저 발견한것은 진수현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는 남들이 눈치 못채게 윤덕에게 귀띔하기도 했고 새 자료들과 실험설비 같은것들을 갖다주는것으로 그를 돕는다고 자기 위안을 했으며 요즘에 와서는 좀 언성을 높여서 남모르게 충고하군 했는데 이 모든것은 바로 동창생 리윤덕이 사람들앞에서 비판을 받게 되지 않기를 바라서 그랬던것이였다.
그런데 어떻게 되였는가?!
리윤덕은 이 자리에서까지 자기의 결함을 뼈저리게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그는 지금 비통한 기색으로 자감상태에 빠져 허영심으로부터 공명주의 그리고 관료주의에 대해서 자기비판을 계속하고있었다.
그는 동지들의 몇마디 의견들속에 비껴있는 심각한 의미를 아직 헤아리지 못하고있었다.
드디여 그는 마감으로 결의를 다지였다.
진수현은 이 자리에서 그를 깨우쳐줄 기회를 놓치였다. 아니, 이제라도 저 사람의 속이 뜨끔하게 비판을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그를 떠밀었다. 그러나 불안이 뒤따랐다.
(그러다가 물에 빠진 사람 꼭뒤를 누르는 격으로 되지나 않을가?… 아니, 아직 물에 빠지지는 않았다. 설사 빠졌다 하더라도 구원하려면 자기를 알게 해야 한다. 자기 결함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리윤덕이 결의를 다지고 자리에 앉자 뒤미처 진수현이 일어섰다. 초급당위원들이 모두 그를 쳐다보았다.
《리윤덕동무는 자기의 결함을 아직 잘 모르고있는것 같습니다.》
진수현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동무는 오늘밖에 모르는 인간이 되였습니다. 때문에 연구소의 장래는 아랑곳없이 그시그시 살아가려 하고있는것입니다. 동무는 젊은 연구사들을 아끼고 내세워주고 이끌어주면서 연구소를 떠메고나갈 인재로 준비시킬 대신에 그들을 장정로력이라고 다른 일에 동원시키는가 하면 지어 과학연구의 길에서 떠나가게 하고있습니다. 리남웅연구사로 말하면 세계적인 발견의 맹아를 포착한 수재입니다. 동무는 그의 재능을 알고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송화기계무역회사에 입직수속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본인의 의향을 고려해서 동의하였다고 하는데, 윤덕동무에게 묻고싶습니다. 남웅동무가 정말 그런 범속한 인간이였습니까?… 우리는 젊은 인재들에 대한 관점을 옳게 가지고 그들의 장래를 위한 토대를 지금부터 하나하나 쌓아주어야 합니다. 물론 래일을 위해 바치는 노력이 오늘 당장은 빛이 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래일을 내다봐야 합니다.
우리가 자주 말하는 혁명의 전도에 대한 신념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과학자들의 경우에 그 신념은 당에 더 큰 기쁨을 드릴수 있는 미래의 과학인재들을 키워내는데서 표현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 장군님의 뜻은 인재가 모든것을 결정한다는것입니다.
천만금의 가치를 가지는 젊은 인재들을 발굴하고 보호하고 내세워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리남웅과 같은 연구사들이 〈광명성1호〉를 쏘아올린 과학인재들처럼 강성대국건설에서 큰 몫을 할수 있을것입니다.
저는 리윤덕동무가 이 기회에 자기의 본질적인 결함을 깨닫고 꼭 고쳐야 한다고 봅니다.》
《가만…》 소장이 앉으려는 진수현에게 질문을 던졌다. 《리남웅연구사의 실력이 어느 정도요? 좀 자세히 이야기해보오.》
진수현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리윤덕과 리남웅이 각기 K방식풀이법의 단서를 쥔데 대하여 설명하였다.
초급당위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김응일소장은 재빛눈섭을 곤두세웠다.
《부소장동무, 동무는 전번에 리남웅동무가 전망이 없는것처럼 말하지 않았소? 그때 나한테 진실을 말한거요?》
《…》
리윤덕은 대머리를 붉히며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한 초급당위원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저런 동무가 어떻게 부소장사업을 할수 있습니까?!》
장내가 죽가마 끓듯 하였다.
여기저기서 일어나 윤덕의 결함을 까밝혀 비판하였다. 학적자질이 점점 떨어진다느니, 계획수립에서 근시안적이라느니, 쩍하면 동원로력을 내란다느니, 솔직하지 못하다느니, 리해관계만 따진다느니…
리윤덕은 머리를 들지 못하였다.
그곁에 앉은 진수현도 마음이 편할리 없었다.
비판들이 고조될수록 그 역시 고통스러웠다.
초급당위원회는 한밤중에 끝났다.
이튿날 진수현은 다시 송화기계무역회사로 찾아가 서관범사장을 만났다.
사장은 이젠 시쁘둥해서 뇌까렸다.
《나두 모르겠소. 남웅이나 만나보우.》
리남웅은 여전히 동요하고있었다. 하루동안에 얼굴이 초췌해졌다.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였다.
《이런 땐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진주는 내가 돌아가는걸 달가와하지 않는데… 이러다가… 나중엔 서로… 》
《…》
진수현은 인차 말을 못했다. 남웅이 연구소로 내려가면 윤덕의 예언처럼 혼사가 정말 깨질수도 있었다. 어찌보면 이건 매우 이상한 론리였다.
진수현은 서진주의사를 깊이 알고있지는 못했지만 그만하면 좋은 인상을 가지고있었다. 훤하게 트인 용모에 성미가 활달하고 그만큼 사고범위도 넓어보이는 처녀였다. 지금 처녀는 애인이 연구소로 돌아가는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는 모양이였다. 일생이 좌우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랑이라는 강렬하고 민감한 감정의 세계에 어찌 동요나 오해인들 없겠는가. 진주는 머지않아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게 될것이다.…
《내 생각엔 역시 남웅동무가 연구소로 돌아오는게 옳을것 같소. 진주동무도 이제 따라오겠지.》
《저도 그렇게 믿고싶습니다만…》
《남웅동무가 할탓이 아니겠소. 자기 결심이 옳다는걸 실천으로 보여주는게 중요하다고 보오.》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리남웅은 저으기 힘을 얻은듯 했다.
진수현은 먼저 떠났다.
남웅은 그날 저녁 진주와 나란히 보통강변을 거닐며 연구소로 돌아가겠노라고 굳은 결심을 보이였다. 그러자 처녀는 몹시 실망한 기색이였다.
《엊저녁엔 또 안 가시겠다더니… 정말 가변적이군요. 그러니 제가 어떻게 믿고 의지하겠어요?》
《내가 결심을 확정짓지 못했던건 사실이요. 그런데 우리 실장선생님이 또 찾아와서 설복하지 않겠소. 그의 말이 옳소. 그래서 돌아가기로 한거요.》
《그 결심이 이제 또 달라지지 않겠어요?》
《그런 일은 다시 없을거요.》
《그럼 좋을대로 하세요.》
진주답지 않은 이 애매한 소리는 남웅에게 이상한 느낌을 주었다. 가슴이 서늘해졌다.
《근데 저… 우리 일은… 약혼식 말이요.…》
《…우리가 너무… 서두르는것 같이 생각되진 않아요?》
서진주는 연보라빛노을이 비꼈다가 스러지고 침침한 재빛으로 어두워지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것은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였다.
그는 사실 남웅의 동요가 잘 리해되지 않았다. 벌써 몇번째인가. 남겠다, 돌아가겠다, 또 남겠다, 돌아가겠다…
물론 진주는 그가 연구소로 돌아가겠다는것이 여간한 결심은 아니라는것을 알고있었다. 그것은 유리한 생활조건을 버리고 어렵지만 큰 결실이 보이는 길로 내짚는 진짜사나이의 걸음일수도 있었다. 그런 비범한 대상이라면 진주자신은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끝까지 따라갈 용의가 있었다. 그는 자기를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있었다.
남웅이라는 남자가 정말 그럴만한 큰 인물인가 하는 의문이 요즘에 와서 진주의 뇌리에 점점 짙게 떠오르는것이였다. 어찌보면 남웅에게는 소심한 면이 있는것 같기도 하였다. 이번에도 그는 수현실장이 거듭 찾아와 연구소로 돌아가자고 계속 재촉하는 바람에 고분고분 돌아선것이 아닐가? 필경 둘중의 하나일것이다, 큰 포부를 지닌 인물이 아니면 아예 숙맥, 어느쪽일가?… 진주는 지금 판단을 내릴수가 없었다.
《우린 서로가 좀 더 파악해야 할것 같아요.…》
처녀의 신중한 어조에는 반박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있었다. 거무스레한 강복판으로 떠가던 오리들가운데 한마리가 쩜벙 자맥질을 하였다. 동심원모양의 파문들이 연줄연줄 커지며 기슭으로 밀려나왔다.
《그… 그건 그렇소.》 저도 모르게 수긍하던 남웅은 가까스로 용기를 짜내여 그로서는 의미심장한 운명적인 질문을 하였다.
《후에 전화하라오?》
순간 그는 자기의 말이 스스로도 좀스럽고 어리석은것으로 여겨졌다.
처녀도 어이가 없는 모양이였다.
《저에게 묻는 말씀이예요?》
《아니, 내가 말하자는건…》
《알겠어요.》 처녀는 뭔가 자기를 뉘우치는 기색이였다. 《좋은 소식 알려주세요. 저는 남웅동지가 기왕 이렇게 떠나는바엔 사람들을 놀래울 어떤 큰일을 이루어냈으면 해요. 그런 날이 오리라고 기다려도 될가요?》
리남웅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들은 이렇게 헤여졌다.
남웅은 뒤숭숭하고 울적했던 기분이 어지간히 풀리는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얼마나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연구소로 내려가는가를 미처 다는 의식하지 못하고있었다. 아직은 제방에 작은 균렬이 생겼을뿐이였다.…
그가 돌아와보니 그간 최일이네의 프로그람실력은 까마득히 올라간것 같았다. 지식의 갱신주기는 나날이 짧아지고있었다.
더 늦기 전에 따라잡아야 하였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프로그람작업에 달라붙었다. 실장선생의 말이 옳아, 실천으로 나를 보여주자. 그러면 진주의 옹쳤던 마음도 점차 풀리겠지. 그래,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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