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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래일에 사는 사람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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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651회 작성일 22-05-14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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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제 2 편 청 년 조

10

리남웅은 리윤덕부소장이 자기를 방으로 부른 까닭을 알수가 없었다. 무슨 일때문일가?

리윤덕이 짐짓 엄한 표정으로 물었다.

《듣자니 요즘 남웅동무가 별나게 의기소침해서 일을 제대로 안 한다는것 같애? 사람들의 말밥에 올라서야 되겠나.》

《…》

대답이 없는 남웅을 쳐다보며 리윤덕이 다그어댔다.

《어디 말 좀 해보오. 무슨 리유로 기분이 울적해서 그러오?》

그래도 남웅은 묵묵부답이였다.

《혹시 K방식풀이를 전개하다가 못하게 돼서 기분 잡친게 아니요? 정 그렇다면 내가 양보하지, 응?》

《아닙니다.…》

남웅은 이렇게밖에 대답할수가 없었다.

《그럼 좋구.》 리윤덕의 태도가 누그러졌다.

《난 무슨 추궁이나 하자고 남웅동물 부른건 아니요. 송화기계무역회사를 알지? 나라의 기계공업에 봉사한다는 점에서는 그 회사와 우리 연구소가 자매간이라고도 할수 있지. 그 회사 사장이 내 오랜 친구요. 그 사람이 본원을 통해 우리 연구소에서 사람을 하나 보내달라고 정식 요청을 해왔구만. 자기네 회사에 정보통신실을 꾸리는데 그걸 주관할 전문가가 필요하다는거요. 동원기간은 2~3개월인데 사장은 이번에 동원되는 사람이 제 마음에 들면 아예 거기에 눌러앉힐 속심을 은근히 내비치더군. 이건 물론 아무에게나 할 소리는 아니구, 하하하.… 그래 남웅동무가 그 회사에 가볼 생각은 없소?》

《…》

《동원형식으로 갔다가 거기가 맘에 안 들면 기한을 마치고 돌아오면 되구, 밑져야 본전이지. 안 그렇소?》

《글쎄요.…》

《마음이 썩 내키지 않는 모양이군. 이것 보오. 지금 우리 나라 CNC공작기계들이 국제시장에서 인기를 끌고있지 않소. 과학기술교류도 한층 강화되고있구. 이런 추이에 맞게 송화기계무역회사에서는 국내뿐아니라 세계적인 수준의 CNC기술에 깊이 정통하고 폭넓은 안목을 가진 고급한 전문가들을 요구하고있단 말이요. 원래 기술교역에서 솜씨를 보이자면 대방보다 더 실력이 높아야 할게 아니겠소. 이제 가서 능력을 보이게 되면 해외에 꾸리는 지사에도 내보낼수 있다는데 좀 좋소. 무슨 다른 나라 구경을 하게 돼서 좋다는게 아니라 사방으로 트인 시야를 가지고 연구도 할수 있으니 좋다는거요. 물론 수입도 높고… 그래 이번 동원문제가 상정되게 되자 난 소적으로 이름난 젊은 실력가들을 두루 꼽아보다가 결국 남웅동무를 짚게 되였소. 송동무도 내가 좋게 보는터이지만 다음 기회에 또 생각해보기로 했소. 남웅동무를 이렇게 앞에 앉혀놓고 말해서 좀 뭣한데, 동무야 실력으로 보나 성품으로 보나 소에서 첫손가락에 꼽을수 있지. 절대로 어떤 편애를 하는건 아니요.

그래도 내가 데리고있던 젊은 사람한테 좋은 일을 해줄수 있게 된게 기쁘구만. 속담에 이 팔도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하하…》

리윤덕부소장의 호방한 웃음에 남웅이도 부지중 미소를 지었다.

남웅은 그에 대한 고까운 마음이 얼마간 풀리는것 같았다.

(부소장이 K방식론문때문에 스스로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마음을 쓰는걸가?)

어쨌든 이렇게 된바치고는 한 두석달 기분전환을 하고 오는것도 좋을상싶었다.

(아니, 그건 한가하고 나약한 생각이다. 한시바삐 번민을 털어버리고 최일이처럼 분발해야 한다.)

《조종7호》는 시일이 갈수록 비상히 흥미가 있고 해볼만 한 큰 과제로 남웅에게 안겨왔다.

《저, 우리 실장선생님이 내가 동원되는걸 승낙하겠는지 모르겠습니다.》

리남웅은 이런 완곡한 말로 리윤덕의 호의를 사양하였다.

《그건 마음 놓소. 아무렴 내가 실장을 거치지 않고 동무 의향부터 묻겠소?》

《우리 실장선생님도 동의했단 말입니까?!》

《허, 왜 그렇게 놀라오. 동무네 실장이 좀 랭정하긴 해두 그렇게 옹졸한 사람은 아니요. 말하자면 본위주의와는 인연이 없지. 물론 내가 그를 설복하느라구 품은 좀 들였소. 까놓구 말해서 요즘 연구소를 꾸리구 건설판을 펴느라구 매 부서들에서 젊은 사람들을 거의다 불러냈지만 조종장치실은 건드리지 않았지. 이 사정을 아는 수현실장이 이제 젊은 사람 하나 내라는데 안 낼수가 있소? 일은 그리된거요. 자, 그럼 그렇게 알구 동원갈 차비나 하오. 래일 떠나야 하니까.》

부소장방을 나오면서도 남웅은 야릇한 기분이였다. 자기를 보내는데 동의한 실장의 그 도량은 고마운것이지만 아무 미련이 없이 보내는 그 리면에는 남웅이 자기에 대한 못미더운 감정이 깔려있을것이였다.

그것은 남웅이로서는 각별히 섭섭한 점이였다. 하긴 실장에게 자기가 그렇게 무맥하게 보인것도 사실이지만…

그가 실험실로 돌아오니 마침 실장이 최일이네 청년조원들과 함께 기판작업을 하고있었다.

《그래 부소장선생을 만났댔소?》 실장이 일손을 멈추고 절차대로 물었다.

《예, 저… 송화기계무역회사로 동원을 가라는데…》

《남웅동문 가고싶소?》 례의를 갖춘 질문이였다.

《글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남웅이의 착잡한 소리를 실장은 오해한것 같았다. 가고는싶은데 차마 말은 꺼내지 못하는것으로…

《가오.》

실장은 추궁하는것이 아니라 인연이 먼 사람을 대하듯, 동정하듯 말했다.

《그럼 가겠습니다.》

남웅은 꼬부장해서 말했다.

《못 가! 뭐, 동원?》 다시 조장사업을 하는 최일이 분개하여 소리쳤다.

《실장선생님, 남웅동물 보내면 어떻게 합니까? 청년조 인원 셋을 가지구 무얼 한단 말입니까?》

《프로그람작업을 시작할무렵엔 돌아오게 되오.》

《두고보십시오. 난 저 동무가 갔다가 쉽게 돌아올것 같질 않습니다.》

최일의 직감은 언제나 예리하고 적중하였다.

어쩐지 속이 뜨끔했지만 남웅은 자기가 동원끝에 돌아온다고 여기면서 떨리는 소리로 부정하였다.

《근거없는 소린 하지 않는게 좋겠구만.》

《얼렁뚱땅하지 말구 솔직히 말해보라.》

《최동무, 이건 동원이요.》

실장이 흔연하게 말했다.

부소장도 겉으로는 태연하게 동원이라고 말하고있다. 실장도 내막을 짐작하면서 보내는걸가? 이젠 이러나저러나 매일반이다.

《실장선생님, 래일 떠나겠습니다.》

《그렇게 하오. 오늘은 일찌기 들어가 준비를 하지.》

실장이 이렇게 말하고 실험실에서 나갔다. 최일은 질시하듯 남웅을 흘겨보았다.

《이제보니 동문 과학을 할 사람같질 않아.》

《아니, 기왕 갈 사람보구 섭섭한 소릴 할게 있소?》 송춘도가 끼여들었다. 《이제 가야 할 길을 축복해주진 못할망정…》

《갈테면 가라구! 과학이란 원래 머리수를 가지구 하는건 아니야. 한데 임동무가 간건 아쉽다. 남웅이! 춘도! 동무넨 그의 발꿈치에도 못 가.…》

리남웅은 연구소밖으로 나왔다.

뭔가 께름한 기분이였다.

그는 대학시절 스승인 지형원교수를 만나 이 일을 의논하려고 가다가 어쩐지 두려운 생각에 발길을 돌리고말았다.


송화기계무역회사의 정보통신실은 채광이 좋은 넓은 방에 꾸리고있었다. 주콤퓨터와 말단콤퓨터들, 그 주변장치들, 통신설비들을 끌어들이고 배선도 하고 구동프로그람들도 짜넣는 작업을 하였다.

설비도 비품들도 거의다 새것이고 값비싼것들이였다.

리남웅은 대학을 갓 나온 회사의 프로그람전문가 2명을 데리고 일했는데 별로 막힐것이 없었다.

서관범사장은 성미가 데면데면해보이지만 사업의욕이 높고 꼼꼼하였다. 그는 남웅을 한동안 주시하면서 그에 대한 리윤덕의 평정을 제 눈으로 하나하나 확인하는것 같았다.

보름만에 사장은 남웅을 보고 객지생활이 불편할거라면서 (사실 남웅은 회사측의 우대에 황송할 지경이였다.) 오늘 저녁은 자기네 집에 가서 식사를 하는게 어떤가고 은근히 초청하는것이였다.

남웅은 그를 따라갔다. 그의 집은 회사에서 그닥 멀지 않았는데 이전에 리남웅이 다니던 평양제1중학교가 바라보이는 보통강기슭의 고층아빠트 3층 3호실이였다.

서관범이 초인종을 울리자 발랄한 웃음을 띤 키 큰 처녀가 문을 열고 반겨맞아주었다. 뒤미처 전실로 나온 그의 어머니도 키가 크고 성미가 시원시원해보였다.

리남웅은 그 처녀의 황홀한 검은 눈과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며 넓은 전실을 둘러보았다. 어두운 금빛액틀에 넣은 그림이 눈에 띄였다. 어딘가 단순해보이는 채색으로 여러 송이의 꽃들이 꽃병에 꽂힌것을 그린 정물화였다. 오래된 후기인상파작품같기도 하였다.

《그림이 어떻소?》 서관범은 제집에 들어오자 아주 딴 사람처럼 친절하고 사근사근해져서 손님에게 물었다.

《특색있어보입니다.》 예술에 문외한인 리남웅은 처녀앞에서 어엿한 자기를 유지하려고 처음으로 이런 과장된 소리를 하였다.

《허, 이건 우리 집안의 이 녀류화가가 어릴 때 그린거요. 지금도 더러 그림을 그리지만…》

《그렇습니까?!》 리남웅이 점잖게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럼 저 처녀가 그렸나?!)

《마음에 드세요? 호호, 제가 처음으로 받는 찬사예요.》 하고 처녀가 명랑한 표정으로 무랍없이 물었다.

《어떤 점이 특색있는가요, 네?》

《난 그림을 잘… 모릅니다.…》

점점 곤경에 빠져드는 남웅을 부엌에 들어갔던 처녀의 어머니가 구해주었다.

《진주, 손님을 어서 안으로 모셔라.》

《네, 어서 들어가세요.》

아래방에 벌써 둥근상이 차려져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수저가 놓인것이 두사람분이 아니라 네사람분이였다. 가족들과 함께 둘러앉는 격식이 없는 저녁상인것 같아보였다.

그는 잘못 생각하였다. 가까운 친척이 아닌 손님은 쉽게 끼여앉을수 없는 이 가정의 희귀한 연회상이였다.

이윽고 남웅은 자기보다 키가 더 커보이고(실지 처녀는 그보다 크지 않았다.) 게다가 눈부시게 환한 처녀와 초면에 마주앉아 수저를 놀리고 국물을 목으로 넘겨야 하는 고통(남웅에게는 그렇게 생각되였다.)을 당하게 되였다. 처녀는 그의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머리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상대로 간간이 웃고 떠들다가 때로는 남웅을 건너다보며 친절하게 식성을 묻기도 하였다.

남웅이가 술 반잔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더는 못 마시겠다고 하자 서관범은 거나해서 《참 담배도 안 피운다지, 술도 적당히 하지, 역시 현대지식인들이 달라.》하고 감탄했다. 그바람에 남웅은 어쩐지 더 옹색해졌다. 그는 조심한다는 노릇이 그만 숟갈을 상아래로 떨구었다. 얼른 그것을 집어드는데 처녀의 어머니가 다른 숟갈을 갖다주었다.

그는 억지로 몇술 더 뜨다가 명치끝에 무엇이 무직하게 얹히는것 같아 인차 수저를 놓고말았다.

식사를 마치고 서관범은 그를 서재로 데려다가 한담을 하였다. 실례되지 않는 범위에서 그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보는것이였다.

한편 서진주는 화실처럼 꾸린 방에 들어갔다.

그는 제5병원 안과의사였지만 그림에 남다른 취미가 있었다. 아버지는 그가 어릴 때 이 화실을 꾸려주었고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였다. 이 방은 소묘를 위한 석고조각상들과 그의 그림들, 모사한 명화들로 장식되여있었다.

진주는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방금 본 총각을 생각하고있었다.

며칠전부터 아버지는 나이찬 딸이 곁에서 들으라고 해서인지 어머니에게 리남웅이란 총각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였다. 평양제1중학교 졸업생이며 리과대학에서 몇년에 한번씩 나온다는 수재로 인정되여 학위를 받았고 이제 박사가 되는것은 시간문제이며 더우기 품행이 단정하고 겸손한데다가 키도 작지는 않아 175센치가 썩 넘는다는것이였다.

진주는 그 말을 듣고 준수하고 듬직한 호남아를 그려보았는데 오늘 만나보니 처녀앞에서 눈길 한번 들지 못하고 주눅이 들어 쩔쩔매는 숙맥이였다. 키는 보통이지만 퍼그나 가냘파보였고 피기없는 갱핏한 얼굴에는 어딘가 소심하고 서글픈 미소가 떠돌고있었다. 그 초라한 외양과 미래의 박사이며 학계의 권위자라는 호칭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것 같았다. 처녀의 머리속에서 권위자와 소심성이라는 이 두 개념이 서로 꼬리잡이를 하며 빙빙 돌아가다가 마침내 하나의 화폭으로 떠오르는것이였다.

처녀는 혼자 까르르 웃으며 화첩을 펴들었다.

속사지우에 4B연필로 리남웅의 선이 가는 얼굴을 단숨에 속사하였다. 비슷해! 그다음 그 인물의 이마에 가로 금을 긋고 커다란 갓을 씌워놓았다. 정말 신통한걸?! 호호호…

처녀는 그밑에 제목까지 써넣었다. 《리생원》.

혼자 웃다가 곁방의 손님- 그림의 원형이 들을가봐 웃음을 참는다는 노릇이 오히려 폭소로 터지고말았다.

문이 열리더니 아버지가 들어왔다. 《진주, 손님이 돌아가겠다는구나. 아니, 무슨 기쁜 일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아무것두 아니예요!》 진주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으며 일어섰다.

《웃을 일이 있으면 같이 웃자꾸나. 보아하니 이 선생도 그림에 상당한 조예가 있는가본데. 남웅선생, 왔던김에 우리 미술가의 화실을 한번 구경하지 않겠소?》

《네,좋습니다.…》

리남웅이 공손히 따라들어왔다.

진주는 그앞에서 겨우 정색한 표정을 지었는데 까만 두눈에는 아직도 웃음이 남실거렸다.

《난 일이 잘 안되고 머리가 아프면 이 화실에 들려서 생각을 정돈하고 휴식을 한다오.》하고 서관범은 벽에 붙은 그림들을 이 선생에게 설명해드리라고 딸에게 분부했다.

진주는 어느결에 또 웃음이 터져나올것 같아 가까스로 《난 몰라요.》하고는 뒤전에 물러섰다. 아버지는 딸의 겸손한 태도가 의아쩍게 생각되는 모양이였다.

《한데 이상한 취미란 말이요. 내가 진주보고 그림을 하나 골라서 전람회에 출품해보라고 했더니 그때마다 미루질 않겠소. 예술에 대한 높은 요구성이랄지… 내 보기엔 저런 유화같이 큰 작품들보다도 아담하고 생활을 담은 소품들이 좋더란 말이요.》

진주는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빠져나가 전실에서 한참 웃음을 눅잦히였다.

다시 화실에 들어간 진주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리남웅이 심각한 낯으로 《리생원》그림이 끼여있는 화첩을 번지며 아버지의 설명을 듣고있는게 아닌가!

《역시 그런 소묘나 반소묘, 속사 같은것들이 보다 기동적이고 전투적인 형식이 아니겠는가 생각되오. 또 초학도들에게도 적합하고… 아니, 진주는 얼굴이 왜 그러냐? 너 오늘 좀 이상해?…》

진주는 앞뒤를 가릴사이가 없이 남웅에게 다가들어 그가 뒤적이는 화첩에 손을 내밀었다.

《그걸 주세요!》

《오늘따라 겸손하기란! 허허… 아까두 내 말했지만 저 애가 예술에 들어가서는 자신에 대한 요구성이 이만저만이 아니요. 그래서 전람회에 출품하라는데두 한사코…》

진주는 남웅에게서 화첩을 채듯이 받아가지고 화실에서 뛰여나갔다.

그는 자기 침실에 들어가 꽛꽛한 화첩을 먼 구석에 던지고 긴 의자에 털썩 누워 숨을 할딱거렸다. 자기가 무례하고 천박하게 보였겠지만 그가 문제의 그림을 보기 전에 화첩을 빼앗아낸게 천만다행으로 생각되였다. 어쨌든 속이 찔려서 그 총각을 다시는 례사롭게 대할수가 없을것 같았다. 그래 손님이 떠난다는데도 못 들은척 하고 전실로 나가보지도 않았다.

손님이 떠나자마자 어머니, 아버지가 딸의 침실로 들어왔다.

어머니가 책망하였다. 《그런 실례가 어디 있니? 손님이 돌아가는데 나와보지도 않구. 오늘은 별나게 내우를 하면서, 웬일이냐? 그 사람이 괜찮아보이던 모양이지?》

《…》

《무슨 그래서겠소. 제 그림들이 뭔가 미흡하게 느껴져서 그러겠지. 예술에 성실한 사람일수록 자기 작품에 불만이 많은 법이니까. 한데 그 사람은 그림들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야. 무슨 조그만 속사를 보구는 몹시 놀라는 기색이더니 그걸 슬그머니 꺼내서 안주머니에 건사하는것 같애.…》

《어마나?!》 진주는 외마디소리를 지르며 뛰쳐일어나 구석의 화첩을 다시 집어들고 그안에 끼웠던 그림들을 마구 뒤져보았다. 건설장의 원경, 주사기를 쳐든 간호원, 잠자리를 잡는 사내애, 공원의자에 앉은 할머니… 아, 그런데 그 그림만은 없었다!

《대체 무슨 그림을 가져갔니?》어머니가 흥미가 동해 물었다.

《나두 몰라요! 아…》 진주는 마침내 비명을 질렀다.

《여보, 저 애가 왜 저러우?》

《글쎄 모르겠어요. 첫눈에 반한것 같기두 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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