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대원칙' 확인한 미네르바 헌재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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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지금은 유신 시대와는 그래도 확실히 다르구나.'
이른바 '미네르바' 박대성씨에 대한 헌재의 무죄 판결을 보고서 느낀 것이었습니다.
최근 인터넷에 올라오는 반 정부 의견들에 대해 정부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마음대로 삭제를 할 수 있도록 입법을 추진한다는 뉴스를 듣고 시대가 완전히 긴급조치 때로 회귀한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헌재는 이것이 위헌이라고 판결을 내려 주어 적어도 인터넷상에서 언론의 자유는 닫지 않은 셈입니다.
항상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떠오르는 사건이 있습니다. 뉴욕타임즈의 통킹만 사건 조작 관련 보도입니다. 린든 존슨 정부가 북베트남에 대해 폭격을 가하기 전, 미국 구축함 매독스 호가 베트남의 어뢰정에 의해 피격당했다고 보도한 후 베트남에 대한 정식 개전 결정을 내리고 의회의 승인을 얻어 내었습니다. 그러나 뉴욕타임즈는 이 사건이 허위임을 밝혀내고 이를 대서 특필합니다. 미국 국방부는 국가기밀 폭로를 이유로 뉴욕타임즈를 고발하지만, 미국 대법원은 결국 언론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제 1조 (연방 수정헌법 제 1 조(종교, 언론 및 출판의 자유와 집회 및 청원의 권리)
연방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자유로운 신앙 행위를 금지하거나, 또한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국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및 불만 사항의 구제를 위하여 정부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약화시키는 법률을 만들 수 없다.
Amendment 1 : Religion. Speech, Press, Assembly, Petition (1791)
Congress shall make no law respecting an establishment of religion, or prohibiting the free exercise thereof ; or abridging the freedom of speech, or of the press; or the people peaceably to assemble, and to petition the government for a redress of grievances.)를 들어 이를 무죄 판결합니다.
언론 자유를 규정한 이 판결은 결국 미국 내에 거대한 반향을 일으켜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 운동을 확산시키고 결국 나중에 미국이 월남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상황을 이끌어가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이번 미네르바 사건에서 또 하나 특기할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인 삼권분립 정신의 확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정확히 말하면 미국식의 현대민주주의라는 체제의 기본 골자는 삼권분립입니다. 대통령이 수장인 행정부는 대법원장이 수장으로 있는 사법부와 미국식의 양원제에서는 하원의장(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장)으로 대표되는 입법부 수장과 의원들이 세 개의 삼발이처럼 체제를 지탱하고 있지만, 그그러면서도 입법, 행정, 사법부는 서로를 '견제'함으로서 사회(혹은 체제)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체제의 효율성을 강고히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지금까지 한국의 대의민주주의 체제는 행정부가 기형적으로 비대했던 시대들을 겪어와야만 했습니다.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에게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여함으로서 대통령은 때로는 입법부와 사법부의 수장들을 자기 마음대로 갈아치워가며 전횡할 수 있었던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모습들은 미국식 민주주의가 강제이식됐거나 혹은 이른바 '미국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 1945년 이후 독립한 신흥국가들에서 정권을 잡을 때 거의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었습니다.
이른바 이념 논쟁은 극우세력들이 늘상 그들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써먹던 수단이었지만,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는 '상식'이라고 불리우는 가치가 '안보'와 '국익'이라는 가치보다는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번 판결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인터넷을 통한 허위 사실의 무차별한 확산은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헌법재판소가 인정했다는 것도 의미할 것입니다. 즉 판결을 내리는 데 있어 인터넷 자체 내에서의 자정 작용이 분명히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도 있었다는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헌재의 이번 판결 역시 국가라는 조직 내에서, 사법부가 정당하게 분점해야 할 권력의 한 축을 지켜냄으로서 '민주주의의 기본 틀'을 지키겠다는 의지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며, 또 그러해야만 합니다. 비대하며 기형적으로 컸던 대한민국 행정부의 힘이 지금껏 어떤 식으로 사회에 작용해 왔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이번 일련의 판결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아직은 살아있음을, 그리고 그것 때문에 우리가 아직은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언론 자유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법부의 양심, 그리고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사법부의 건재함. 아직은 우리에게 분명히 희망이 있습니다. 다음 선거에서 이 희망을 더욱 강고하게 굳힐 수 있기를 멀리서나마 희망합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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