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3]재일동포 조선학교 교장,교원들 민족애, 조국애 등 보람갖고 생활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기획-3]재일동포 조선학교 교장,교원들 민족애, 조국애 등 보람갖고 생활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재미청년
댓글 0건 조회 6,667회 작성일 10-12-22 22:42

본문

[기획-3]민족차별 속에 성장한 재일조선학교

교장,교원들:민족애,조국애등 보람갖고 생활



 

[도꾜=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조국분단은 잔인하다. 민족분단 때문에 해외동포들이 겪는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혹독하다. 특히 재일동포들, 그 중에도 혹심한 민족차별을 받아 온 총련동포들의 경우는
지구촌 그 어느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로 밝혀지고 있다. 민족통신은 특집기획으로 <민족차별 속에
성장한 재일조선학교>에 대해 연재로 다루기로 하고 그 세번 째 글을 소개한다.

news_35869-1.jpg
blank.gif
도꾜제3초급학교 김생화 교장과 고용순 교원과의 대담

[기획-3]민족차별 속에 성장한 재일조선학교

교장,교원들:민족애,조국애등 보람갖고 생활



[도꾜=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조국분단은 잔인하다. 민족분단 때문에 해외동포들이 겪는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혹독하다. 특히 재일동포들, 그 중에도 혹심한 민족차별을 받아 온 총련동포들의 경우는 지구촌 그 어느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로 밝혀지고 있다. 민족통신은 특집기획으로 <민족차별 속에 성장한 재일조선학교>에 대해 연재로 다루기로 하고 그 세번 째 글을 소개한다.

도꾜제3초급학교 김생화 교장(52)과 고용순 교원(47)과 대담


이번에는 도꾜제3초급학교를 찾아가 김생화 교장(52)과 고용순 교원(47)을 만났고, 그 이후에는 사이따마현에 소재한 조선초중급학교 고석전 교장(48) 및 교육계 인사 약간명을 만났다.

news_35869-2.jpg
blank.gif
김생화 교장(52)
총련계 동포들은 고향이 남녘의 영남지역, 호남지역, 제주도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김생화 교장도 2세출신이지만 그의 부모들은 경남울산이 고향이다. 도꾜 조고와 조대 문학부 졸업생으로 교직생활 한지는 30년이 되었고, 도꾜제3초급학교 교장을 맡은지는 4년이 되었다고 소개한다.

조선초급학교는 병설학교를 제외하고 일본 전국에 60개 가량되고, 도꾜 도단위에는 10개가 된다. 도꾜제3초급학교 학생수는 136명인데 교직원은 교장, 교무주임 포함하여 8명이다. 이 학교가 1945년 12월8일 창립되었으니까 금년으로 창립65주년이 되는 셈이다.

학교에서 다루는 과목은 일본인 학교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단지 조선역사와 지리가 추가된 것뿐이라고 한다.

교장으로서 후대의 교육을 책임진 것을 보람으로 생각한다고 말한 김생화 교장은 “우리 학교 문제는 운동장이 적어서 아이들이 술레잡기, 축구 등 공놀이를 하다가 그 공이 주변 민가로 들어가 지붕에 떨어지곤 할 때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리고 “학교행정, 재정행정을 책임진 사람으로 교원들에게 충분한 급료를 주지 못하고 때로는 다른 직장들처럼 보너스도 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사정이 되지 않아 그것이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고백한다.

news_35869-3.jpg
blank.gif
고용순 교원
함께 대화를 나누던 고용순 교원은 교직생활 22년을 하고 있는데 결혼하고 아이들 둘을 둔 어머니로서 남편과 맞벌이하며 생활을 해 나가지만 일본에서의 생활은 순탄치 않다고 털어 놓는다. 조선학교 교직원 생활에 보람과 긍지를 느꼈지만 생활이 너무 어려워 3~4년 전에는 이 사업을 잠시 떠났다가 아이들이 너무 보고싶고 예쁜 얼굴이 자꾸 떠올라 다시 와서 교원생활 중에 있다고 설명한다.

일본 경제는 여전히 거품경제로 미국이나 다름 없이 경제가 엉망으로 평가받고 있다. 수출도 내수도 전과 같이 않은게 요즘의 일본경제의 현주소로 나타나고 있다. 교통비도 비싸고, 음식값도 비싸고, 생필품 가격이 미국 보다 훨씬 더 비싼 것으로 관찰되었다.

그러나 조선학교 교원들은 그 누구보다 직업에 대한 보람과 사명감에 불탔다. 애국심이 뜨겁다는 말로도 표현된다.

고용순 교원은 “나의 꿈은 제자하고 사업을 같이 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는데 올해 처음으로 제자의 아이를 담임맡게 되어 무척 기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요즘들어 ‘무상화’문제를 비롯하여 ‘연평도 사건’ 등 남북관계가 화해하지 못하고 서로 갈등을 빚는 것이 몹시 가슴이 아프다고 피력한다. 그리고 일본언론들의 보도를 볼 때마다 객관적으로 보도하지 않고 편견을 갖고 보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쾌감을 갖는다는 것이 그의 불만이기도 하다.

김생화 교장이나 고용순 교원 모두 재일동포들의 문제와 남북분단 문제가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민족갈등이 발생하면 우리 동포들이 고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이들 가슴에 맺힌 슬픔이기도 하다. 역시 조국분단은 잔인한 역사이다.

이들은 말한다. “총련과 민단문제에 있어 민단 간부들의 문제이지 일반 동포들 사이에서는 총련이다, 민단이다하여 서로 갈등을 빚지 않고 있다. 동포대중들은 양쪽이 서로 교류하며 불편없이 지난다. 동포대중들은 정말로 남북화해와 협력을 바란다. 서로 돕고 서로 지원해 주기를 바란다.”

사이타마현 조선초중급학교의 고석전 교장(48)과 대담


news_35869-4.jpg
blank.gif
고석전 교장(48)
이번에는 또 사이타마현 조선초중급학교의 고석전 교장(48)을 만났다. 그는 미술을 전공한 교육자이다. 그의 그림 중 하나는 1995년 통일희년을 형상화하여 그린 조선화인데 북조선 미술박문관에서 국가전람회가 열릴 때 전시된 작품이었다.

이 학교에는 유치원생이 50명이 있고 초급학교에 250명으로 총3백명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다. 이 유치원은 보육반(3살), 낮은반(4살), 높은반(5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최근에는 남녘에서 온 동포들 자녀들도 포함되어 있다. 초급학교는 6살부터 시작된다.

사이타마현에는 우리 동포들이 약2만명 가량 거주하고 있는데 북부지역(군마), 중부, 남부지역에 살고 있는 동포들이 주로 이 학교에 다닌다. 그런데 이중에 중부지역에 사는 동포들 자녀들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 초급학교는 1961년에 창립되었고, 유치원은 1971년에 세워졌다.

유치원 교육내용들이 흥미롭다. 민족성을 교양하기 위해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고, 김치, 무용, 농악, 신체균형을 위한 어린이 체조 등을 지도하는데 특히 부모들의 열성이 대단하다고 한다.

고석전 교장은 기자와의 대담 중 특히 학부모들의 민족적 자긍심에 대해 자랑한다. 일본 당국의 탄압상황, 민족차별이 심한 환경속에서, 더군다나 경제가 아주 악화된 조건에서도 가까운 곳에 일본인 학교에 무료로 보낼 수 있는데에도 조선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부모들의 민족애와 자녀에 대한 조국애가 대단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조건과 환경은 자연히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조선학교 관계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이었다. “학생 한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몇번이고 찿아가 다른 일본인 학교에 비해 우월점과 장점이 무엇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설득한 결과”라고 고석전 교장은 그 배경을 설명해 준다.

그는 “모든 어려움과 탄압속에서도 김일성 주석의 가르침과 한덕수 의장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고 본다. 내 기억으로는 조국(북한의 의미)에서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500억 엔의 교육지원금을 보낸 것도 큰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가끔 일본학교에 강연초청을 받았는데 그럴 때 마다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곤했는데 그 때마다 나는 “차별하고 탄압할 수록 더 강해졌다. 일본 지배세력처럼 우리민족에게 못되게 한 역사는 세계사에서도 드물 것이다. 싸우지 않고 단결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는 분명히 말한다. “조선학교가 걸어 온 길을 돌이켜 보면 남한 당국은 민족교육을 외면했고, 기민정책을 써 왔다. 이에 비해 조선은 민족성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일관성 있게 고무각성시켜 왔다.”고 회고한다.

재일총련 동포들은 각계각층이 힘을 모아 일본 사회의 민족차별정책에 도전하여 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조선교육계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20년 동안의 투쟁성과도 컸다.

지난 20년 조선학교를 위한 교육계의 투쟁성과와 과제들


1992년 일본고등학교 야구연맹이 조선학교의 가맹을 인정하게 되었고, 1994년 일본고등학교 체육연맹이 조선학교 경기참가를 인정했고, 1994년 일본철도(JR) 정기권 할인율차별을 시정시켰고, 1998년 교또대학 대학원리학연구과가 조선대학교 졸업생을 대학원생으로 받아 들일 것을 정식으로 표명했고, 2000년 일본 문과성이 조선학교 학생의 ≪대학입학자격 검정시험≫과 ≪대학원 자격검정시험≫수험을 인정한 것 등도 재일총련 투쟁의 성과에 비롯되었다.

하지만 교육계에 대한 차별정책은 아직도 그 벽이 높다. (1)일본의 국립, 사립대학 수험자격에서 다른 외국인학교에 비교할 때 차별을 받고 있는 상황을 시정하는 일, (2)다른 사립학교와 동등한 교육조성금을 지급받아야 한다. 총련동포들은 납세의무를 다하고 있지만 조선학교는 다른 사립학교는 지방자치제 기관으로부터 학생 1인당 받는 연간 조성금이 초급에서 241,071 대 60,000 엔 비율이고, 중급에서 267,715 대 70,000 엔 비율이며, 고급에서 306,689 대 90,000 엔 비율로 차별받고 있는데 이것을 시정해야 하고, (3)다른 학교에서는 학교에 내는 기부금에 대하여 세금에서 손금처리를 해 주는 혜택을 받는데 조선학교에 기부하는 학부모들은 그런 혜택을 제외시켜 왔는데 이것도 시정해야 하고, (4)자격취득에서 차별을 없애야 하고, (5)그 외 일본 당국의 민족교육차별정책에 의하여 편견이 조성되고 있는 데 대하여 시정해야 하고, (6)기타 문제로 여학생 치마저고리를 칼질하는 사건,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폭언, 교내 기물파손 및 협박, <만경봉-92>호의 입항거부에 의한 조선학교 학생들의 수학여행 길에 대한 난관조성, 조선학교 졸업생에 대한 취직차별, 임대계악의 거절 등을 시정하는 투쟁들이 남아 있다고 교육계 인사들은 지적한다.

(다음 기획-4는 재일총련동포들에 대한 탄압정형에 대하여…)



...................................................................


*관련 보도자료 보기



*[기획-2]민족차별 속에 성장한 재일조선학교
일 당국:반인륜적 탄압,감시와 배제,동화정책

*[기획-1]민족차별 속에 성장한 재일조선학교
도꾜조선중고급학교 신길웅 교장(61)과 대담

*[대담]재일평통협 리한수 상임고문(70):"회장 직 그만두고 대중사업 더 바쁘다"

*[대담]재일한청 박명철 부위원장:“한통련 선배들 통해 역사 눈떠”

* 재일한국청년동맹 50주년 기념식 진행
*[기획]재일한국청년동맹 50년 발자취③
*[기획]재일한국청년동맹 50년 발자취②
*[기획]재일한국청년동맹 50년 발자취①





[출처 : 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2010-12-23]

민족통신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