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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칸타타와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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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댓글 2건 조회 3,422회 작성일 11-01-0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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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처음 맞는 비번날, 아침엔 안과를 다녀왔습니다. 안압 검사도 해 봤고, 조금조금씩 나이먹어 가는 몸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차원에서 이런저런 운동 계획도 세워 봤습니다. 어제 저녁에도 운동을 하고 왔는데, 모처럼 승모근과 등배근 운동을 했더니 조금 뻐근한 것을 느낍니다. 제가 가는 헬스클럽에 1년에 지불하는 돈이 149달러입니다. 처음에 1년 반을 720달러 내고서 등록을 했는데, 이때 이른바 '바이 원 겟 원 프리' 세일이 있어서 3년동안 이 돈을 내고 다닌 셈입니다. 그리고 이 기간이 지나면 매년 149달러씩을 내고 갱신하기로 했었는데, 그게 벌써 10년이 된 일입니다.

다행히 제가 다니고 있는 이 클럽은 체인이고, 또 미국 전역에서 아무 브랜치에서나 쓸 수 있기에 운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나면 가는데, 매년 5월 초면 갱신 비용을 냅니다. 어쨌든, 첫 3년은 매년 240달러씩 내고 다닌 셈이고, 그 다음해부터는 149달러씩을 내고 있는데, 한번 갈 때마다 얼마씩이 드는건가 계산을 해 봤더니 대략 1년에 1백번은 간다 쳐도 1달러 49센트씩을 내는 셈입니다. 올해 목표는 이 수치를 1달러 미만으로 낮추는 것이니, 한번 해 봐야겠습니다.

 

안압 검사하느라 동공 확장을 위해 넣었던 안약이 풀리질 않아 집에 돌아와서 잠시 눈감고 쉬고 있다가 컴퓨터에 앉았더니 가물가물, 그래서 이 시간동안에 집안 일이나 하자 하고 대략 청소하고 설겆이 다 해 놓고 나서 녹차나 한 잔 마시자 하고 물을 올려놓고 컴퓨터 앞에 앉았더니 네이버 캐스트 앞에 뜨는 '커피 칸타타' 때문에 결국 커피가 땡겨 버렸고, 그 바람에 아침에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라인더에 커피콩을 넣고 갈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향기로운 커피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애틀에서 산다는 것은 그래도 미국 안에서는 꽤 수준 높은 커피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저처럼 커피를 프레셔에 넣고 우려 마시는 사람들도 많고, 아예 집에다가 에스프레소 기계를 사다 놓고 직접 라테며 카푸치노를 만들어 즐기는 이들도 있고, 스타벅스 커피 카드가 일상화 되어 있는 곳이니 커피의 인기를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말 오늘처럼 우중충한 날이라면, 커피 한 잔의 도움 없이는 활력을 얻기 힘들 것 같기도 합니다.

 

얼마전에 함께 점심을 먹던 조지앤 아주머니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커피 문화가 이렇게 변한 것이 스타벅스 때문인지, 아니면 시애틀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 때문인지 하는 것이었는데, 조지앤은 그나마 스타벅스가 글로벌화되지 않았을 때 훨씬 멋잇는 커피집이었다며 오히려 지금은 그 때문에 좋은 커피 문화를 너무 상업화시킨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분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대략 미국의 식자층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데, 미국 사람들 중에서도 자신들의 문화가 세계 최고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지식을 쌓는 것과는 전혀 담 쌓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이곳에서 알고 있는 미국인들의 대부분은 유럽의 문화를 동경하고 있으며 사회 체제 역시 유럽의 그것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까이 캐나다와도 비교가 되어 버리는 이 미국의 키치한 문화에 대해 미국인들 중에서 조금 머리에 뭐가 들어 있는 사람이라면 넌덜머리난다고들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아무튼, 그런 곳이라서 그런지... 와인에 대해서도 미국의 다른 곳보다는 많이 자유롭고 와인이란 술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도 상당히 됩니다. 이런 저련 분위기 속에서 저도 와인을 알게 되고, 이것을 제 취미로 만들어 냈지요.

오늘부터는 다시 개강입니다. 저녁에 다시 학교에 가는데, 일주일에 두 번 나가야 합니다. 지난 학기보다 부담도 약간 되지만, 그래도 하고 싶어서 하는 심도깊은 와인 공부이니 열심히 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보면, 저도 늘 이런 가벼운 고민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뭔가 특별히 내가 행동하지 않아도 사회가 상식적으로 돌아가준다면,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냥 내 사는 고민만 할 수 있다면. 그러나 내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이나, 비록 내 자의가 아니었더라도 부모님의 이민 결정으로 인해 떠나게 된 고향이나, 지금처럼 앙가주망을 요구하고 있는 때라면 그냥 가만히 있기가 죄스러워서라도 하다못해 벽에 낙서라도 갈기는 기분으로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 현실은, 사실 기막히고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만일 와인 이야기, 커피 이야기나 쓸 수 있고 사회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었다면, 나는 이런 저런 사람들과 척질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얼마전 저와 완전히 담을 쌓아버리고 만 친구가 있었습니다. 취미도 비슷하고, 나이도 저와 비슷한, 함께 있으면 늘 같이 즐거웠던 이 친구와 척을 진 것은 사회적인 이슈들을 바라보는 입장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글쎄요, 세상이 조금만 상식적으로 돌아가 줬다면 이런 일이 있었을까 싶으니 조금은 답답하고 힘도 듭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또 생각을 함께 하는 많은 분들도 새로 알게 됐으니 그것은 또다른 기쁨이긴 합니다만.

 

사실, 이 세상을 내가 사랑하기에 고민이 더 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냥 염세적으로 바라봐야 할, 별로 사랑할 것이 없는 세상이라면 고민할 이유도 없겠지요. 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은 참 아름다운 부분들이 많고, 그것을 보고 사랑스럽게 여기고 찬미해야 할 것들도 너무나 많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좋은 것들, 즐거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보다 슬프고 분한 것, 아름답지 못한 것들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는 것 역시 저에겐 괴로움입니다. 그러면 그냥 모른체, 입닥치고 있으면 되는데 그러기엔 내 분노가 너무 크단 말입니다. 그냥 그걸 슬픔으로 삭여내고 앉아 있기엔 말입니다.

 

 

시애틀에서...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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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사회에 대하여 고민하고 분노하는 것은 그만큼
이 세상을 더 사랑하기 때문인 것 맞습니다.
이세상, 즉
보다 민중을 더 사랑하고
그래 더욱 행복한 세상을 이루기 위한 사랑의 마음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져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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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툰님의 댓글

폰툰 작성일

참으로 동감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고보면 얼빠진 개념이 많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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