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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이 말하지 않는 결정적 한가지;맑스 21에서 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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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급좌파
댓글 1건 조회 8,344회 작성일 11-01-03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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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그리고 

장하준이 말하지 않는 결정적

한 가지

정종남 10 8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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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부키, 2010 (클릭하면 확대)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비판하는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이하 《23가지》)가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개발도상국 처지에서 신자유주의의 허상을 폭로한 전작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지금까지 50만 권 팔렸다. 그러나 저자 스스로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대한 총론적 비판”이라고 말한 이 책은 그보다 더 많이 판매될 듯하다고 관측된다. 주류 경제학 이론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조목조목 들춰내는 《23가지》가 돌풍을 일으키는 것은 2008년 가을 금융시장 붕괴로 신자유주의 경제학도 동반 신용 위기에 처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경제가 패닉에 빠진 그 해 11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이런 일을 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느냐”며 경제학자들을 질책했다. 황망해진 영국 학술원은 회의를 소집했으나 뾰족한 답을 못 찾고 결국 반성문을 보냈다. “경제학자들 개개인은 유능하지만 …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했고 … 리스크를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320-321쪽. 이하 쪽수만 표기)

영국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인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최근 저서에서 이번 경제 위기가 낳은 정치적 파장을 다음과 같이 썼다. “이번 위기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운영 방식으로서의 신자유주의 모두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놓았다. 이제 시장은 더는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연력처럼 보이지 않는다.”[1] 2008년 시작된 경제 위기에 각국 정부는 거시적 케인스주의와 미시적 신자유주의를 혼합한 듯한 정책으로 대응하고 있다.[2] 그러나 경제 위기가 해결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위기는 대안에 관한 관심과 논의를 자극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대중적 정당성을 잃은 마당에 장하준이 단지 폭로와 비판만 했다면 《23가지》의 인기가 지금 같지 않을지 모른다. 장하준은 《23가지》에서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대안 경제학으로 케인스주의를 제시하고, 경제 성장과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려면 국가 주도 개발경제 모델과 복지국가 모델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국가가 복지를 책임지고 국민의 삶을 보호해야 한다는 장하준의 호소는 빈부격차와 양극화에 지친 대중에게 위안이 될 만하다. 최근 진보진영과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복지국가 논쟁도 장하준이 각광받는 배경이다.

그러나 ‘장하준 신드롬’이 신자유주의에 반감을 느끼며 진보를 염원하는 대중 사이에서만 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진보진영뿐 아니라 보수 우파와 기업주들도 장하준에 관심을 보인다. 장하준의 대안과 정치에 양면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23가지》는 2008년 경제 위기 전에 출간된 장하준의 다른 책들에 견줘서도 정치적 스펙트럼이 훨씬 넓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통렬하고 유용한 비판들

《23가지》를 관통하는, 장하준의 통렬한 신자유주의 비판을 먼저 다루는 것이 공정할 것이다. 장하준은 시장이 공정하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은 1달러당 1표 원칙에 따라 작동하므로 돈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권력을 준다. 자유무역도 마찬가지다.(25-31) 장하준은 부자들에 유리한 소득 분배가 투자와 성장을 촉발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도 주장한다. 설령 성장률이 오르더라도 시장을 통해 부가 아래로 분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196-197) ‘IMF 위기’ 직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 우리에게도 익숙한 트리클다운trickle down[3] 현실에서는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하준은 성장의 혜택이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흘러 내리게 하려면 복지국가라는 ‘펌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196-197) 달리기 시합에서 출발선이 같아도 누군가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린다면 그 시합은 불공정할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공정한 기회’ 비슷한 것이라도 주려면 복지 등으로 부모 소득을 어느 정도는 균등하게 맞춰야 한다.(288)

《23가지》가 세계화 통념을 예리하게 비판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1980년대 이래 자본주의가 ‘탈산업사회’나 ‘지식기반경제’로 바뀌고, 국민국가도 약화했다는 주장이 좌우파 모두에서 꽤 오랫동안 유행했다. 1990년대 후반 영국 노동당이나 독일 사민당 등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세계화 통념을 받아들이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했는데, 이러한 노선을 ‘제3의 길’이라고 한다.[4] 김대중·노무현 정부뿐 아니라 진보진영에서도 상당수가 ‘지식기반경제’론이나 ‘탈산업화’론을 받아들였다. 가령 장하준이 참여하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일부 금융화론자들은 한국 경제를 지식기반경제로 전환함으로써 성장을 지속할 수 있고, 복지국가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5]

이와 달리 장하준은 세계화 시대에도 자본에는 국적이 있고, 따라서 국가가 여전히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옳게 지적한다.(109) 그리고 지식기반·서비스 산업들조차 튼튼한 제조업 기반 없이는 발전하기 어려우므로 선진국 경제가 탈산업사회나 지식기반경제로 바뀌었다는 주장은 과장이다.(138-141) 선진국의 탈산업화 근거로 종종 제시되는 ‘국민총생산 대비 제조업 비중 감소’는 산업 자체가 축소돼서라기보다 제조업 부문의 급속한 생산성 향상으로 가격이 하락했기 때문이다.(125)

탈산업화론, 지식기반경제론, 국민국가 약화론 등은 진정한 투쟁을 회피하거나 노동계급의 투쟁과 잠재력을 무시하는 근거가 됐다. 크리스 하먼은 현실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이런 주장을 반박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국가는 약화되지 않았고 따라서 국가에 맞선 투쟁을 회피해선 안 되며, 노동계급의 정치적 비중은 오히려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6] 비록 장하준이 노동계급 투쟁을 방어하려고 신자유주의 경제학과 세계화·신경제의 신화를 비판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주장은 진정한 투쟁을 회피하고 노동자 투쟁의 잠재력을 무시하는 이데올로기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2008년 국방부 불온도서 목록에 올리고 최근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한 것은 장하준의 이와 같은 통렬한 신자유주의 비판을 불편하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보수 진영이 관심을 갖는 이유

그러나 부르주아 정치권과 보수언론, 기업주 집단이 장하준을 순전히 못마땅하게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보수진영이 본격적으로 장하준을 재조명하는 듯한 분위기마저 일고 있다. SBS는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시리즈 교양물을 편성했고, <조선일보>는 이명박 당선 직후 1년 동안이나 고정칼럼 난을 장하준에게 할애하기도 했다.

재벌들의 대정부 로비 기구인 전경련의 신문 <한국경제>가 G20 서울정상회의에 즈음해 개최한 대규모 국제 컨퍼런스에 장하준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의장 앨런 그린스펀과 함께 개막 토론 연설자로 초청한 것도 시사적이다. 전경련·전국상공인회의소와, 장하준이 비판하는 금융기업들도 그의 강연을 청해 듣는다. 보수정치권도 예외가 아니다. 박정희 묘 앞에서 “우리의 궁극적 꿈은 복지국가”라고 말한 박근혜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와도 교류하면서 시장경제의 맹점 보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7] 민주당뿐 아니라 한나라당 의원들도 장하준을 국회 토론회에 초청해 신자유주의 비판 강연을 듣는다.

이는 세계경제 위기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신뢰를 잃으면서 그 비판자인 장하준의 주가가 올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장하준의 대안에 보수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장하준은 《23가지》가 “반자본주의 성명서는 아니”라고 못 박는다. 영국 <가디언>도 “장하준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최고의 비평가이지만 반자본주의자는 아니”라고 소개했다. 장하준은 지난 30년간 세계를 지배한 특정 자본주의 시스템, 즉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싶을 뿐, 자본주의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자본주의는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좋은 경제 시스템”이므로 그 안에서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 방법을 보여 주겠다고 한다.(14)

장하준은 재벌과 시장을 긍정하며, 신자유주의를 대신할 경제 발전 방안으로 박정희식 개발모델이나 그보다는 덜 억압적인 케인스주의적 국가자본주의 모델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모델은 신자유주의가 확산되기 전 한동안 세계 지배계급이 채택했던 정책으로, 당장은 아닐지라도 지배계급이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는 모델이다. 장하준이 자유시장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는데도 지배자들 사이에서 그의 경청자가 느는 것은 그가 지배자들에게도 유용한 충고를 하기 때문이다. 《23가지》가 “기업의 기획가들이나 시장과 국가의 관계를 모색하는 정치인들에게도 맞춤한 책”이라고 <가디언>이 평한 것은 괜한 소리가 아니다.[8]

이런 사실은 신자유주의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어떤 관점에서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지가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진보신당 장석준 연구실장처럼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입장 차를 찾는 것보다 신자유주의 반대 그 자체가 더욱 중요”하다며[9] 대안 논의를 부차화하는 것은 새 시기에 걸맞은 도전 과제를 회피하는 태도다.

경제 위기 원인에 대한 잘못된 진단

장하준은 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적 형태인 ‘더 나쁜 유형’과 케인스주의적 형태인 ‘더 나은 유형’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 세계를 지배한 자유시장주의가 2008년 위기를 낳았다고 진단하고(12) 케인스주의적 국가자본주의나 국가가 강력히 주도하는 개발경제 모델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 경제 위기의 원인을 그저 신자유주의에서 찾고 케인스주의 정책으로 돌아가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1970년대 말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국가자본주의가 유력했던 시기의 장기호황이 더는 유지될 수 없음이 명백해진 이후에 시작됐다. 케인스주의적 정책이 1970년대 중엽에 시작된 경제 위기 해결에 효과가 전혀 없음이 분명해지자 당시만 해도 비주류 경제학으로 치부되던 신자유주의를 지배계급이 채택하기 시작한 것이다.[10]

게다가 전후 호황을 지속시킨 것은 케인스주의가 아니라 대규모 군비 지출이었다.[11] 1930년대 대불황을 끝낸 것도 대규모 군비 지출과 제2차세계대전이었듯이 말이다. 군비 경제로 호황이 오래 지속되자 복지에 지출할 여력도 생겼다. “케인스가 장기호황을 불러왔다는 얘기는 아침 기상이 해를 떠오르게 만들었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12]

장하준이 신자유주의를 금융자본의 쿠데타나 자본가 계급 일부만의 술책인 것처럼 묘사하고, 이 때문에 산업자본의 성장이 억제됐다고 설명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당시 신자유주의의 등장은 자본가 계급 전체가 불가피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객관적 현실이었다. 그들은 이를 통해 착취를 강화해 위기를 벗어나려 했다. 그 결과 실제로 일시적으로는 이윤율이 다소 회복됐다. 위기 이전 시기인 1960년대 수준만큼 회복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주주자본주의가 투자를 가로막아 국민소득 증가를 방해하고 이것이 경제 전체에 부담이 됐다고(41) 보는 것도 피상적이다. ‘주주자본주의’라는 단기적 경영 패턴은 경제 위기로 줄어드는 이윤을 만회하려는 기업주들의 시도였다. 만약 이윤율이 일정 수준 유지돼 과감한 투자로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어느 경영자도 그리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하준은 산업자본은 건전한 기능을 하지만 금융자본은 기생적이고 부도덕하다는 듯이 비판한다. 그러나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대립은 허상이다. 금융시장 개방, 금융기관 민영화, 재벌의 금융권 진출을 비롯한 한국 경제의 신자유주의화도 국내 자본의 필요, 특히 재벌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이다. 19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 전환을 추동한 것도 재벌이었다. 전두환 정부가 재벌의 요청으로 민간 주도 경제발전을 추구하고 김영삼 정부가 이를 확대한 것이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이다.[13] 그래서 금융자본만 손보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단지 특정한 정책 레짐의 실패나 그것이 지향했던 특정 형태의 자본주의의 실패가 아니다. 2007~09년에 재앙을 몰고 온 금융 부문의 과잉 팽창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를 괴롭혀 온 훨씬 더 뿌리 깊고 오래된 위기, 즉 과잉 축적과 이윤율 하락의 위기가 다른 형태로 전이된 것이었다. 한마디로 이번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위기다.[14]

국가와 시장을 대하는 태도

장하준은 케인스주의적 국가자본주의나 박정희식 개발국가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대로 케인스주의적 국가자본주의는 장기호황이 막을 내리며 위기에 처했던 모델이다. 국가의 강력한 개입에 기대어 성장했던 박정희식 개발국가 모델도 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자본 축적이 오히려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이 이 모델에도 고스란히 나타났고, 세계경제의 이윤율 하락 상황에서 수출주도형 모델은 위기에 취약했다. 이 모델은 1997년 위기로 수명이 다했다.[15] 장하준은 낮은 대외 개방 수준을 유지한 동아시아 수출주도형 모델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이윤율이 낮은 상황에서 수출주도형 모델을 확산시키는 것은 경쟁을 더 치열하게 만들어 그 모델의 성공 가능성을 오히려 낮추게 된다는 모순이 있다.

더 큰 문제는 박정희식 국가자본주의가 노동계급에 대한 초착취와 초억압을 바탕으로 해서만 성공할 수 있었다는 점을 장하준이 간과하는 것이다. 장하준은 자본축적의 계급적 성격을 보지 않고 미화한다. 신자유주의가 ‘효율성’이라는 계급 중립적 가치를 내세워 착취적 본질을 은폐하듯이 발전국가론도 ‘발전’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그렇게 한다.

장하준은 국가를 ‘발전’을 이끌 주체로 본다. 그는 국가를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계급 중립적인 도구로 여긴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국가는 자본과 긴장을 빚으면서도 상호 의존하는 관계다. 국가는 주로 자본이 얻는 이윤에서 세금 형태로 재원을 분배받는다. 자본은 국가의 무력과 정치적 영향력이 필요하므로 국가에 재원을 댄다. 계급 적대가 엄존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는 기업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억압하고 관리하는 구실을 한다. 때로는 국가 자신이 자본가 구실을 하기도 하는데, 국가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이 점이 더 두드러진다.

한편 장하준은 신자유주의를 만악의 근원으로 비판하면서도 시장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가정을 신자유주의와 공유한다. “이윤 동기는 여전히 우리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연료이며, 우리는 이런 이윤 동기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 시장은 엄청나게 좋은 일을 할 수도 있고, 안 좋은 일을 할 수도 있다.”(328-329)

그러나 시장은 기분 내키는 대로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기계다. 시장경제에서는 자원 배분이 집단적으로 결정되지 않으므로 시장은 결코 민주적으로 조직될 수 없다. 이 때문에 시장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 국가를 통해 시장을 통제·조절하겠다는 의지가 있다고 해도 결국 시장 논리와 타협하고 그것에 포섭될 수밖에 없다.[16]

장하준의 복지국가론 ― 양날의 칼

《23가지》에서 장하준은 국가가 나서서 사회 전체의 복지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복지병’을 비난하는 우파의 주장 — 복지제도가 잘 갖춰져 있으면 경제의 생산성과 활력이 떨어진다는 — 에 반대한다. 복지국가의 대표 사례인 스웨덴이 신자유주의적인 미국보다 경제성장률이 나은 적도 있었다.(299) 기업의 복지비 지출이 성장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장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주장은 신자유주의자들의 논리를 반박할 근거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문제점도 있다. 장하준은 노동자들의 복지 증진 자체에 우선순위를 두기보다는 경제발전의 한 수단으로 복지국가 모델을 제안한다. 그는 심지어 “복지 정책은 노동자들이 변화에 더 개방적이고 그에 따른 위험[구조조정에 따른 해고]을 더 기꺼이 감수하는 태도를 갖도록 해 준다”며(297) 기업주들을 설득하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정부와 자본가들을 설득해서 복지국가를 이룰 수 있다는 장하준의 복지국가론은 몽상적이다. 그가 모범 사례로 꼽는 스웨덴조차 세계경제가 위기에 빠진 1970년대 이후 복지가 야금야금 축소돼 왔다. 지금 유럽 전역에서 경제 위기에 따른 긴축정책으로 복지제도는 공격받고 있다.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노동계급이 투쟁하지 않는다면 자본가들은 결코 스스로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장하준의 대안은 자칫 박근혜 같은 우파 정치인들의 정치적 수사에 휘둘려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설득하기 십상이다.

장하준의 관점은 “계급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을 앞세운다는 점에서 ‘진보적 경쟁력주의’나 ‘민족적 발전주의적 접근’으로 볼 수 있다.”[17]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익이 충돌하는 계급 사회에서 장하준의 관점은 계급 타협과 노동자들의 양보를 강요하는 주장으로 쉽게 연결될 수 있다. 장하준이 전작 《쾌도난마 한국경제》 등에서 진보진영에 재벌과의 대타협을 요구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따라서 장하준의 복지국가론은 그 날이 노동자들을 향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다.

MARX21

참고 문헌

강동훈 2010, ‘한국진보진영의 경제 대안 논의’. 《마르크스21》 7호(2010년 가을).
김호균 2001, 《제3의 길과 지식기반경제》, 백의.
던, 빌 2009, ‘세계화와 신경제라는 신화’, 《마르크스21》 1호(2009년 봄).
정성진 2006, 《마르크스와 트로츠키》, 한울 아카데미.
정성진 2010, ‘신자유주의에 대한 개혁주의적 대안의 문제들’, 《마르크스21》 5호(2010년 봄).
캘리니코스, 알렉스 2008, 《‘제3의 길’은 없다 - 반자본주의적 비판》, 인간사랑.
캘리니코스, 알렉스 2009, ‘세계화, 제국주의, 자본주의 세계체제’, 《마르크스21》 2호(2009년 여름).
캘리니코스, 알렉스 2010, 《무너지는 환상: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세계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책갈피.
하먼, 크리스 2001, 《신자유주의 경제학 비판》, 책갈피.
하먼, 크리스 2009a, ‘또다시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21세기 대공황과 마르크스주의》, 책갈피.
하먼, 크리스 2009b, ‘세계의 노동계급’, 《마르크스21》 2호(2009년 여름).
<국민일보>
<레디앙>
<문화일보>
[1] 캘리니코스 2010, p200.
[2] 캘리니코스 2010, pp181-182.
[3] 낙수효과. 윗 물통에 물이 다 차서 시간이 지나 넘쳐 흐르면 자연히 아래 물통에도 물이 찬다는 것으로 기업주와 부자들에 편향된 정책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 이론. 1997년 경제 위기 직후 김대중도 아랫목을 먼저 데우면 시간이 지나 윗목까지 따뜻해질 테니 노동자들은 허리띠 졸라매기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데워지기는커녕 윗목에는 고드름이 얼어붙었다.
[4] 김호균 2001.
[5] 강동훈 2010, pp263-266.
[6] 관련한 최신 논의로는 던 2009, 하먼 2009b, 캘리니코스 2009, 캘리니코스 2008을 참조하시오.
[7] <문화일보>(2010.10.13).
[8] <국민일보>(2010.10.1).
[9] <레디앙>(2010.11.22).
[10] 정성진 2006, pp354-362.
[11] 하먼 2009a, pp36-38.
[12] 하먼 2001, p156.
[13] 정성진 2010, p189.
[14] 캘리니코스 2010, p187.
[15] 정성진 2010, p180.
[16] 정성진 2006, p374.
[17] 정성진 2010, p188.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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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님의 댓글

조조 작성일

60%정도 읽었내유...
빨리 읽을수 없는 책.시간이 걸려두 작가의 의미를 깨닫고 지나가야할 책 이내유
많이 배우고 있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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