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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우리 모두에게 내려진 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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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댓글 2건 조회 2,865회 작성일 11-01-04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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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부로 매일 걸어다니며 제가 일하다 만나는 친구들은 꼭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우편물을 배달하는 한 아파트는 고풍스런 건물에 담쟁이가 건물을 휘감고 있고, 정원까지 만들어져 있는데, 큰 나무가 몇 그루 서 있습니다. 이곳엔 다람쥐 가족들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사람을 겁내지 않고 쉽게 친해져서, 요즘은 아예 우편 행낭에 볶은 땅콩을 한 줌씩 넣고 다닙니다. 그렇게 몇번 다람쥐들에게 밥을 주니, 얘들은 이제 저를 알아보는 모양입니다. 나무에서 내려와 우편함 바로 위에까지 올라와 제 코 앞에서 저를 뻔히 쳐다보며 땅콩을 달라고 조르니, 안 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집에도 그런 다람쥐들이 있습니다. 옆집 루디 아저씨가 꼭꼭 먹이를 챙겨주는 다람쥐들이지요.  루디는 다람쥐는 물론이고 집에 오는 너구리들까지 먹이를 주는 취미가 있어서, 옆집에 있는 저까지도 다람쥐와 너구리 밥주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 놓은 동물 친구들은 정말 자기 밥 주고 예뻐하는 사람들을 알아봅니다. 그렇게 자연 속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동물들도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제게 우리가 자연 속의 한 부분임을 다시 실감시켜 주곤 합니다.

 

오늘 저는 어떤 사진 한 장을 보고 큰 충격을 먹었습니다. 그것은 구제역이 확산되자 살처분 대상 돼지들을 생매장 시키는 장면이었습니다. 그것은 제겐 충격이고 슬픔이고, 또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잡식성 동물'인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해주어야 하는 운명의 가축들이기에 '오염된 위험한 상품'으로서 폐기처분되는 그들이지만, 글쎄요, 이들을 길러 온 사람들에겐 그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소든 돼지든 사람이 기르는 짐승은 그것들이 아무리 나중엔 '고기가 되어야 할' 운명이라도 밥 주어 기른 이들에겐 정말 억장 무너지는 일일텐데... 축산업이 아무리 짐승을 매정하게 다루는 업종이라고 해도, 자기가 직접 밥 주며 기르던 짐승들이 느닷없이 '일제히 사형선고'를 받아 죽어나가는 모습은 정말 차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 듯 합니다.

 

여기에 방역당국과 관계자들이 파죽지세로 번지는 구제역의 기세를 잡지 못하고 계속해 병에 걸리는 가축들을 '살처분' 해야 하는 과정에서 일손과 시간이 딸리자 결국 생매장이라는 극단적 방법까지 동원해서 이들을 '없애'버리는 장면은 우리 인간이 얼마나 자연에 수많은 죄를 짓고 사는지를 새삼 깨닫게 했습니다. 거기에, 이 돼지들의 시체가 묻힌 곳에서 넘쳐나는 핏물 때문에 인간이 사용해야 할 지하수까지도 짐승들의 피로 오염됐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쩐지, 저는 자꾸 죽어가는 이 가축들이 우리 인간이 씻어야 할 죄를 대속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구제역의 발병 원인이나 기전 같은 것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전염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이런 끔직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확산된 이 구제역은 구제역 발병 지역에 다녀온 '사람' 때문에 생긴 것이었고, 결국 인간의 사소한 실수가 수많은 가축들이 겪어야 하는 참담한 비극으로 번진 셈입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자기 쓰임새대로 살다가 생을 다 마치지 못하고 비명에 간다는 점에서 이것은 전쟁과 별 다름없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 소중한 수많은 생명들을 생명으로 보지 않고 '처분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도 말입니다.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아니라, 솔직히 '피해자' 입장인 가축들이 죽어나간다는 것은 그들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이것은 비단 '축산 농가들의 재앙' 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내려진 징벌입니다.

비명에 저렇게 가는 짐승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불쌍하게 생각하고 가엾게 여겨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들이 비록 우리에게 '먹힐 운명'이라고 해도, 그때까지는 비명에 가지 말고 나름 평화롭게 살아 있었어야 합니다. 아무리 상품이라고 해도, 그들 역시 생명입니다. 이것이 그냥 '재난'이 아니라, 자꾸 우리에게 가해진 '징벌'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우리가 그 생명들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해 자꾸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디 이 끔찍한 재앙이 빨리 사라지기를 기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루바삐 이 역병이 물러나고 축산농가에도 웃음이 다시 깃들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시애틀에서...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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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툰님의 댓글

폰툰 작성일

훌륭한 통찰이라 동감합니다. 우리 인간들에게 내려진, 특히 한국인들에게 내려진 징벌이자 계시로 여기고 두려운 마음으로 우리 자신들을 되돌아 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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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상님의 댓글의 댓글

권종상 작성일

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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