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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 깨트리는 낯선 인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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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정일
댓글 0건 조회 2,769회 작성일 11-01-14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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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편집자들과 간혹 어울리는 편이지만 ‘인권’이 인기 있는 아이템이라거나, 그 분야는 독자층이 두꺼워서 본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요 몇 년 동안 이 주제에 관한 책이 줄기차게 나왔고, 작년에도 그랬다. 앤드루 클래펌의 <인권은 정치적이다>(한겨레출판, 2010년)를 번역했던 박용현도 ‘옮긴이의 말’에 “최근 들어 인권을 다룬 책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 건 기쁜 일이다”라고 썼으니, 눈썰미는 나만 있었던 게 아니다.

실제로 인터넷 서점을 검색하면, 2009~ 2010년에 이 주제의 책이 집중적으로 출간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동안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인권 정책은 갈짓자(之) 퇴보를 거듭했는데 이 무슨 역설인가? 작년 10월에 있었던 국정감사장에서 어느 여성 의원은 “위원장님, 안드로메다에서 오셨어요?”라며 그를 조롱했고, 다음 달에는 전문·자문 위원 61명이 동반 사퇴했다. 굴욕은 이후에도 쉬지 않고 찾아왔다.

독자들께 겁을 주려는 건 아니지만, 인권 서적 중에는 두꺼운 것도 꽤 있다. 당연히 값도 비싸다. 새해부터 그런 책을 권하자니 민폐요, 그것도 인권 침해(?)다. 그래서 최현의 <인권>(책세상, 2008년)을 먼저 추천한다. 이 책은 얇고 기본 개념에 충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범생처럼 개념이나 용어 풀이만 하고 있지 않다. 입문서인데도 그 역할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 논점이 또렷하다.

우리는 보통 인권 하면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추정되는 권리’ 또는 ‘하늘이 부여한 권리’ 따위로 추상적으로 생각한다. 그 개념들이 추상적인 것은, 마땅히 그렇게 하거나 되어야 하는 당위적 가치로 인권을 정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처음부터 그런 일반적인 믿음에 쐐기를 박는다. 인권(Human Right)은 그런 당위적 가치만이 아니라, 현실에 바탕을 둔 시민권(Citizen Right)을 통해 현실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가치다. 즉 천부인권이니 자연권설이니 하고 계몽사상가들이 떠들어댔지만, 실제로는 자연·하늘·신과 같은 초월적인 질서가 인간의 권리를 보장하지는 못했다. “현실적으로 인간의 권리를 보장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으로 근대국가가 탄생하면서부터였다.” 정리하면 ‘국가=시민권=인권’이라는 것이다.

   
ⓒ이지영 그림
인권, 근대국가 탄생 이후 보장받아

인권에 대한 우리들의 고정관념 가운데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게 있다. 인권과 국가는 서로 견제할 뿐 아니라,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다는 것!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 시절, 숱하게 있었던 국가기관의 고문과 그것을 폭로하려는 민주(인권) 운동가들의 고문 규명 승강이가 인권과 국가의 반목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그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독립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려 했을 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의 인권단체도 펄쩍 뛰었다. 그런데 <인권>의 지은이는 천부인권이라는 추상적인 인권 개념이 현실 역사에서 실현되기 시작한 것은 민족국가의 탄생에 힘입어서이며, “시민권의 역사가 인권의 역사와 동일하다”라고 주장한다.

인권은 위에서 아래로 베푸는 시혜


중세 신학과 왕권신수설에 기반한 왕정 체제로부터 동시에 벗어나 근대 민족국가가 만들어지면서, 천국의 백성이던 낱낱의 개인은 비로소 시민이 되었다.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이라는 동질성이 없으면 국가도 자본주의도 유지될 수 없었기에 국가는 탄생 때부터 국가 내부의 다양한 문화·지역·종족을 통합하는 시민권 법과 제도를 만들었다. 프랑스의 경우 자유·평등·우애라는 시민적 덕성이 강조되었으며 삼권분립 정치체제와 선거권이 확충되고, 시민에게 평등권·자유권·재산권(소유권)·안전권·저항권을 중심으로 하는 시민권을 보장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근대 세계에서 인간으로 인정받으려면 우선 특정한 국민국가의 시민’이 되어야 했고, 곧 전 세계는 민족주의 열망에 휩싸였다. 특정 국민국가의 시민이 되어야만 인간으로서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민족주의 발상은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무수한 독립국가를 만들었으니, 그것이 오늘의 세계다. 그런데 이주와 이동이 흔해지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전쟁이나 범죄조차 세계화되는 21세기에 민족국가를 기초로 만들어진 시민권 제도는 오히려 장애물이 되었다. 그래서 다원화와 다문화 문제를 고민하는 세계는 지금, 어디서나 인권이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의제다.

 우리나라 역시 다문화 시대의 문턱을 넘는 중이지만, 몇 년 사이에 ‘인권 서적, 뭐하러 자꾸 나오나?’ 할 정도로, 이 분야의 책이 쏟아지고 있는 까닭은 딱히 그 때문이 아니다. 앞서 프랑스 혁명이 쟁취한 시민권 얘기를 했지만 프랑스 혁명은 사회적 강자인 부르주아들이 주도권을 획득하면서 그들 계급의 재산권이나 정치적 권리만 챙겼고, 노동자·여성·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권은 배제되었다. 흔히 인권이라면 사상과 표현의 자유나 집회·결사의 자유만 떠올리게 된 것은 정작 중요한 시민권 가운데 하나인 사회권이 망각되었기 때문이다.

   
<인권>최현 지음책세상 펴냄
사회권은 분배의 정의를 핵심으로 하면서 그것의 이행을 요구할 권리, 일할 수 있는 권리, 실업을 보호받을 권리, 일정 기간의 유급휴가 등 휴식과 여유를 가질 권리, 건강 및 행복에 필요한 생활 수준을 누릴 권리, 학비 걱정 없이 교육을 받을 권리, 노령 보호 등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이명박 정권 들어 인권 서적이 자꾸 나오는 것은, 분배의 양극화와 복지 정책에 대한 홀대가 시민의 권리인 사회권에 대한 관심을 절실히 부추기는 때문이고, 그것으로부터 희망을 찾고자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인권은 본래 정치적이다”라는 앤드루 클래펌의 명제와 만난다.

최현은 인권을 국가 혹은 사회통합의 시각에서 바라본다. 이때 인권은 위에서 아래로 베푸는 시혜다. 인권과 국가의 대치에 익숙한 우리에겐 낯선 도립(倒立)이지만, 제발 이 정권이 그 정도 시늉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출처: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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