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형제파가 나라 거덜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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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직영사찰 전환문제로 조계종과 갈등을 빚다 경북 문경 봉암사 선방에서 수도 중인 명진(61) 스님은 3일 신도 400여명과 함께 한 대중법회에서 MB정권을 질타했다. 지난해 11월 9일 서울 봉은사 산문을 나선 뒤 50여일만에 처음으로 신도들과 만난 자리였다.
명진 스님은 '산중에 오면 비판의 날이 무뎌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심해졌고 '중증 환자 수준''이라며 껄껄 웃어 좌중에서 폭소가 터졌다. 스님은 작심한 듯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별명을 붙여주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최근 논란 중인 조계종 템플스테이 예산삭감 문제와 관련해서는 "고흥길·안상수 한나라당 의원과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만나 좌파주지 척결문제를 논의했을 당시 그 자리에서 템플스테이 예산문제가 논의됐었다"며 "좌파주지는 일단 내보냈는데 예산을 못 받게 됐으니 얼마나 화가 났겠느냐"고 조계종 총무원과 한나라당을 동시에 겨냥했다.
또한 명진 스님은 "재작년 시청 앞에서 20만 명이 모여 종교편향 항의집회를 열 때부터 정부와 불교 갈등은 예견돼 있었고 계속 누적됐던 문제"라며 "돈 60억 원 때문에 불교가 정신을 차리게 해줘 오히려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감사하다"고 역설적으로 꼬집기도 했다.
그는 이어 "왜 하필이면 템플스테이 예산을 정부가 주지 않는 문제 때문에 갈등을 빚게 됐는지 석연치 않은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템플스테이 예산문제로 우리 전통과 민족문화를 무시하는 이명박 정권의 기독교 편향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일갈했다.
"대한민국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니 좋으냐?"
명진 스님은 또 "이번에 새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에 뽑힌 길자연 목사는 7대 종단협의회에 대화하러 나가는 게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러 나간다고 말했다"며 "대통령도 기독교, 여당 대표-야당 대표도 모두 기독교이니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됐다는 식의 표현을 쓴다"고 말했다.
이어 명진 스님은 "대한민국이 기독교국가가 돼서 좋으냐"고 묻고 "이명박 대통령 이후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도, 떨어질 대로 떨어진 도덕성을 회복하는데 족히 5년은 걸릴 것"이라고 질타했다.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간엔 위장전입 하나만 있어도 총리직에서 낙마했는데 이명박정권에서는 대통령부터 위장전입 3번, 탈세, 심지어 자식들의 위장취업에 거짓말까지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지적했다.
명진 스님은 "이명박 정권을 향해 후안무치하다고 했었는데 이제 그 정도의 도를 넘어선 것 같다"며 "이명박 정권은 철판정권"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이명박 정권에서는 하나 같이 부끄러운 줄 모르는 자들이 판을 치고 있다면서 '남의 글을 도둑질하고도 국회의원 직을 유지하는 전여옥', '교육계의 파렴치 공정택', '국회에서 위증해도 여전히 대법관 직을 수행중인 신영철 대법관' 등을 꼽았다. 이런 사람들이 판치는 나라가 어떻게 선진국일 수 있느냐고 개탄하기도 했다.
청와대가 조폭 쓰는 대포폰으로 민간인 사찰 개탄
무엇보다 명진 스님은 "청와대가 대포폰을 차고 민간인을 사찰했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며 "대포폰은 신분이 들통 날까 꺼리는 조직폭력배나 사기꾼들이 쓰는 휴대폰"이라고 개탄했다. 이어 "부산에 가면 폭력조직 칠성파가 있고 광주에 가면 OB파가 있는데 우리가 포항에 '형제파'라는 조직이 있었다는 걸 놓쳤다"며 "형제파가 대한민국을 접수해서 형님먼저 아우먼저 하면서 대한민국을 거덜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와 관련해서는 "요즘 보온병에 자연산 넣고 다니다 되게 다친 모양이던데 나는 안상수 대표의 별명을 빈대떡 의원이라 지었다"며 "빈대떡 그만 뒤집고 좌파주지 척결발언의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라"고 주장했다.
명진 스님은 특유의 재치를 발휘해 "요즘 안상수 대표가 전쟁 나면 군대 간다고 한 모양인데 군대만 가서 될 일이 아니라 훈련부터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워낙 철판정권이라 총알이 날아와도 딱딱 피해갈 것"이라고 꼬집어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의 단합만이 안보의 최선이라고 밝힌 대목과 관련해서는 "영남위주로 인사해서 지역갈등, 빈부격차로 계층갈등, 남북갈등, 심지어 종교갈등까지 '갈등 활성화'에 공로가 많으신 대통령이 단합 운운하니 단어의 참뜻을 모르고 막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며 "고려대-포항-동지상고-영포회 위주로 국민을 편가르기 해놓고 단합된 힘이 국가안보의 최선이라고 말하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을 일컬어 우이독경이라고 불렀는데 생각해보니 소가 무슨 죄인가 싶다"며 "생각해보니 인간 곁에서 가장 말을 잘 안 듣는 것은 '쥐'여서 앞으로는 '서이독경'이라 부를 생각"이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템플스테이 예산...적당히 안 끝낸다면 적극 도울 것"
그러나 "만일 조계종 총무원이 정부로부터 적당히 예산을 배정받고 끝낸다면 불교 내부에서 엄청난 지탄이 있을 것"이라며 "신도들 또한 심각한 충격에 휩싸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명진 스님은 "고래등 같은 대웅전을 짓고 금단청 은단청 잘 꾸며놔도 그 안에 올바른 부처님의 정법이 살아있지 않다면 무의미한 것"이라며 "허물어진 텐트, 천막에 막대기 하나 꽂혀 있더라도 그 안에 올바른 부처님의 정법이 살아 있다면 그 자리가 바로 대웅전"이라고 말해 신도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총무원장 대신 대선출마 해야겠다" [이모저모] 한류스타 못지않은 신도들의 환호 |
"인기가 이 정도면 중들이랑 경쟁해선 안 되겠지? 아무래도 2012년 대선에 출마해야겠다. 하하하하."
서울 봉은사 주지시절보다 몸무게가 4kg 정도 빠졌다. 얼굴은 많이 야위었다. 그래도 명진 스님은 오랜만에 만난 신도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포옹하며 진한 인사를 나눴다.
신묘년 벽두부터 명진 스님을 만나겠다고 이른 새벽 안개를 헤치고 나온 이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400여명의 봉은사 신도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불자들은 명진의 법문을 듣기 위해 눈 쌓인 경북 문경 봉암사 법당에 빼곡히 들어앉았다.
사열종대로 눈밭을 걸어갈 때는 새하얀 도화지에 까만점이 찍히는 것처럼 꼬물꼬물 행렬이 이어졌다. 마치 순례객들의 참배행렬 같았다.
명진을 찾은 신도들에게는 소담스러운 떡국 한 그릇이 대접됐다. 고기 대신 표고버섯과 가로 1.2cm 세로 0.8cm 크기의 부침두부, 들기름이 섞인 게 이색적인 맛이었다.
젊은 스님은 연신 떡국을 퍼내며 서울손님들에게 반갑게 외쳤다.
"보세요! 떡국 많이 있으니까 많이들 드세요!"
해처럼 밝게 웃는 젊은 스님의 청유에 모두들 한두 그릇씩 떡국을 더 퍼 들고, 발우공양하듯 몽땅 비웠다. 한켠엔 쪄서 식혀낸 찐옥수수가 즐비했다. 신도들은 떡국을 먹고 옥수수를 하나씩 들고 명진 스님과 해후했다.
"스님이 써주신 글 놓고 기도했더니, 우리 아들 사법고시 붙었어요!" "스님 냉면 좋아하신다면서 냉면 사잡수셔(돈 만 원 쓰윽)." "스님 너무 뵙고 싶었어요. 언제 서울로 돌아오시나요? 스님 안 오시면, 저희 모두 바리깡으로 머리 밀고 이 앞에 누울랍니다."
10대 청소년부터 팔순이 넘은 노보살들까지 하나같이 눈물을 훔치며 이명박 정권 때문에 '쫓겨난' 주지 스님을 갈망하고 있었다.
명진 스님은 3일 보름 만에 한번 찾아오는 휴일을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5시까지 참선하고, 새벽 6시 아침 공양, 오전 8시~10시 참선, 낮 12시 점심 공양, 오후 2시~4시까지 또 참선, 오후 5시 저녁 공양은 거른 채 저녁 6시~9시까지 정진, 오후 10시까지 책 좀 보다가 잠든다고 했다.
"저녁밥을 먹으면 저녁기도할 때 속이 부대껴서 그냥 두끼만 먹어. 그래도 되지 않아? 굶어죽는 사람도 많은 세상에서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겨먹는 것도 죄야, 나 같은 사람에게는. 하하."
명진 스님은 늘 그대로 명랑했고 쾌활했다. 천일기도를 하면서 열심히 도를 닦았던 그대로 수도중이었다.
해학과 기지, 비유와 은유는 그대로였지만 수많은 신도들이 찾아오니 벅찬 마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첩첩산중, 인적이 드물어 발길조차 뜸한 선방에 나타나 와락 스님을 껴안는 신도들에게 그는 고마움을 일일이 표현하며 사진찍기에 바빴다.
명진 스님과의 추억을 간직하려는 신도들은 핸드폰과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대며 빈틈을 주지 않았다. 어떤 신도는 복숭아캔을 건네고, 또 어떤 신도는 2년간 손수 짠 '이불만한 목도리'를, 기침가래약을, 선물꾸러미를, 또 어떤 신도는 기도문을 들고 스님을 응원했다.
꽃 피는 봄이 되면 서울 봉은사에서 명진 스님을 꼭 뵙고 싶다는 신도들은 법회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 탑승하면서도 눈물을 뚝뚝 흘렸다. 거기에 대고 명진 스님이 한 마디했다.
"아! 왜 울어? 어디 누구네 초상 났어? 울지마세요. 자 올 한 해 건강들 하시고…. 네?"
10대의 관광버스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명진 스님은 로션을 바르지 않아 튼 손을 하염없이 흔들며 신도들을 배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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