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백호와 박인환에 대한 비대칭적 편애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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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사과부터 올려야 겠군요. 제목은 거창한데 글은 그저 토요일 밤의 여유를 배설하는데 지나지 않습니다. 취중의 이유없는 서러움이 갑자기 최백호와 박인환을 떠올렸고 그들의 작품중에 나름 연관 있다고 생각된 작품을 떠올렸는데--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와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실수로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까지 퍼졌군요--쓰러졌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런데 그의 '세월이 가면'을 읽고 있자니 '낭만에 대하여'와 '목마와 숙녀'를 대비시키는 것보다 더 어울릴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세 편의 글을 모두 옮기고 보니 적당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다가 또다시 그 못된 '관념의 배설을 위한 외설적 표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요즘 동아시아에 신냉전의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비대칭적'이라함은 '절대적 군사력 우위'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고 '세대를 달리하는 무력적 우위'의 다른표현이기도 하다지요.
박인환과 최백호는 살았던 시대도 주요 활동 공간도 달랐지요. 하지만 그들의 역할 내지는 존재이유는 역시 '시대와의 소통'을 그 책무로 하는 예술인임에 분명하지요. 물론 박인환은 모두 아시는 것처럼 '모더니즘'계열의 시인으로 남한 문학사에 자리잡은 이며 최백호의 노래는 그의 고향 포항을 배경으로하는 다소 '향토적'정서 일으키는 노래제목으로 더 잘 알려진 이이지요. 하지만 오늘밤 둘은 모두 "잃어버린 것" 내지는 이미 "가버린 것'내지는 "가을속으로 떠난 것"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군요.
그들은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나요? 먼저 가버린 또는 떠나간 그리고 이제는 너무도 슬프게도 '잊혀져가는' 나의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아마도 그것은 첫사랑이거나 또는 가장 소중한 사랑에 관한 기억일 겁니다--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노래를 부를때나 들을 때의 관객이나 가수도, 그리고 시를 직접 집필하던 그 순간 박인환도 아마도 울고 있었을 겁니다. 마침 창밖에도 비가 내리고 있군요.....
노래에 '뽕끼'라는 외설적 요소가 있어도 내지는 그 시에 허위의식과 관념성이 점철된 언어로 당대 '자유'와 '이상'에 목말랐던 젊은이들을 근거없는 노스텔지어로 선동했어도 그들의 작품이 진실로 '눈물'을 동반한 그리고 '회한'을 품에 안고픈 아픈 창작의 진솔한 과정이었다면 저는 오늘 밤 아니 내일도 또 그 내일도 그들과 그들의 작품을 '내 맘대로' 기리고 싶을 것 같습니다. 저역시도 '아름다운'--적어도 저 스스로에게만은--사랑의 기억이 있군요. 그리고 그것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잊혀지지 않을것 같습니다. 물론 제 식구에게도 그것을 기릴 권리를 저는 줄 겁니다. 만일 마누라가 그런 기억이 없다고 하면 저는 도덕적으로 더 나쁜 놈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저는 오늘 이 슬픔이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역시 인생은 1막 1장이 아닌것 같습니다. 하물며 역사는 어떠할까요? 슬픔과 기쁨, 승리와 패배 그리고 환희 그래도 끝나지 않을 물음들에대한 피할 수 없는 질문과의 마주함을 '오늘 당장'끝내려고 조급해하신 적은 없는지요? 박인환이 "인생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이라 했지만 실지로 그의 인생은 30이라는 짧은 생으로 마감했지만 그 역시도 그의 시가 그 30년만에 운명을 다 할것을 원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낭만에 대하여
최백호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밤 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연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이 다시 못 올 곳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보아야 한다......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두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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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권종상님의 댓글
권종상 작성일
우수를 가질 이유야 맍지요. 요즘은 우수를 가질 여유가 없어서 문제지만.
우수 대신 분노라도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문득 해봅니다.
조조님의 댓글
조조 작성일
젊은시절 참 좋아했던 가수,시인을 접했내유
지금도 좋아하지만 ...잃어버렸던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내유....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우리가 인간이기에 감정이 없을 수 없지요.
떠나간 것, 잃어버린 것, 잊어버린 것, 지나간 것........추억들
가끔씩 되돌아보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