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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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환 詩, 이진섭 曲, 박인희 노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싸늘한 가슴에 있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싸늘한 가슴에 있네.
.........................................................................
박인환「세월이가면」(노래가 된 시)
모더니즘의 깃발을 높이 들고 전후 폐허의 공간을
술과 낭만으로 누비던 박인환(1926∼1956)의 「세월이 가면」은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연인을 잃고,혹은 살아 있는 사람과 이별했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적신 화제작이었다.
을지로 입구 외환은행 본점 건물을 왼쪽으로 끼고
명동성당쪽으로 비스듬히 뻗어 간 명동길을 걷다보면
세월의 이끼가 낡고 앙상하게 묻어나는 3층 건물이 나타난다.
이 건물의 2층에는 놀랍게도 딜레탕트 박인환의 흔적을 기억이라도 하듯
「세월이 가면」이라는 간판을 내건 카페가 들어서 있다.
바로 이곳이 전후 명동에서 문인들의 사랑방 노릇을 하던 「명동싸롱」이었다.
박인환은 이곳에서 문우들과 어울리다가
계단을 내려와 죽음이 휩쓸고 간 세월의 쓸쓸함을술로 달래기 위해
맞은편 대폿집(은성: 당시 새로 생긴 술집이었다.)으로 향했다.
동석했던 가수이자 배우인 나애심에게 노래를 청하자 끝내 빼는 바람에
역시 같은 자리에 있었던 박인환의 친구 이진섭이 제안을 했다.
인환이 니가 시를 쓰면 내가 곡을 붙이겠다고.
그리고 시가 나오자 이진섭은 즉석에서 샹송풍의 곡을 붙여 흥얼겨렸다.
이렇게 「세월이 가면」은 명동의 허름한 대폿집에서 누구나의 가슴 속에있지만
미처 명확한 단어로 규명하지 못한 "그 눈동자와 입술" 을 발굴해냈다
이 시에 대하여 강계순은 평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 박인환, 문학예술사, 1983. pp. 168-171)
1956년 이른 봄 저녁
경상도집에 모여 앉은 박인환, 이진섭, 송지영, 영화배우 나애심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이 몇 차례 돌아가자 그들은 나애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졸랐지만
그녀는 좀체 부르지 않았다.
그 때 갑자기 박인환이 즉석에서 시를 쓰기 시작햇다.
그 시를 넘겨다 보고 있던 이진섭도 그 즉석에서 작곡을 하고 나애심은 흥얼 흥얼
콧노래로 그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깨어진 유리창과 목로주점과도 같은 초라한 술집에서 즉흥적으로 탄생한 것이
오늘까지 너무나도 유명하게 불려지고 있는 「세월이 가면」이다.
한 두 시간 후 나애심과 송지영은 돌아가고 임만섭, 이봉구 등이 합석을 했다.
테너 임만섭이 그 우렁찬 성량과 미성으로 이 노래를 정식으로 다듬어서 불러, 길 가는 행인들이 모두
이 술집 문 앞으로 모여드는 기상천외의 리사이틀이 열렸다.
마른 명태를 앞에다 놓고 대포잔을 기울이면서 아름다운 시를 쓰고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부
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며 박수를 보내는 많은 행인들―.
그것은 마치 낭만적인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은 순식간에 명동에 퍼졌다.
그들은 이 노래를 명동 엘리지라고 불렀고 마치 명동의 골목마다 스며 있는
외로움과 회상을 상징하는 듯 이곳 저곳에서 이 노래는 불리어졌다.
이 「세월이 가면」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애절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이 시를 쓰기 전날
박인환은 십년이 넘도록 방치해 두었던 그의 첫사랑의 애인이 묻혀 있는 망우리 묘지에 다녀왔다...
그는 인생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랑도, 시도, 생활도..
차근 차근 정리하면서 그의 가슴에 남아 있는
먼 애인의 눈동자와 입술이 나뭇잎에 덮여서 흙이 된 그의 사랑을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
순결한 꿈으로 부풀었던 그의 청년기에 아름다운 무지개처럼 떠서 영원히 가슴에 남아있는 것,
어떤 고통으로도 퇴색되지 않고 있던
젊은 날의 추억은 그가 막 세상을 하직하려고 했을 때
다시 한번 그 아름다운 빛깔로 그의 가슴을 채웠으리라.
그는 마지막으로, 영원히 마지막이 될 길을 가면서 이미 오래 전에 그의 곁에서 떠나간
연인의 무덤에 작별을 고하고 은밀히 얘기하고 싶었다...
<朴寅煥>
1926 강원도 인제 출생
1944 황해도 재령 명신중학교 졸업. 관립 평양의학전문학교 3년제 입학
1945 광복 후 학교를 중단하고 상경. 종로 3가 2번지 낙원동 입구에 서점 마리서사를 개업
1946 12월, <국제신보>에 [거리]라는 작품을 발표하여 시인으로 데뷔
1948 입춘을 전후하여 마리서사를 폐업. 김 경린, 양 병식, 김 수영, 임 호권, 김 병욱 등과동인지 <신시론> 제1집을 발간. 자유신문사에 입사
1949 김 경린, 김 수영, 임 호권, 양 병식 등과 5인 합동시집 {새로운 都市와 市民들의 合唱} 발간. 경향신문사에 입사. 동인 그룹 <후반기> 발족
1951 경향신문사 본사가 있는 부산과 대구를 왕래 종군 기자로 활동
1952 경향신문사를 그만두고 대한해운공사에 취직
1953 환도 직전. 부산에서 <후반기>의 해산이 결정됨
1955 화물선 남해호의 사무장으로 미국을 여행. 귀국 후 <조선일보>에 [19일간의 아메리카]를 기고. 대한해운공사 퇴사. {박인환 선시집} 간행
1956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사망
1986 시집 {木馬와 淑女} 간행
1946년 『국제신보』에 「거리」를 발표하면서 등단. 1959년 5인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여 본격적인 모더니즘의 기수로 각광을 받았다. 1940년대의 모더니스트로 알려진 이들의 모더니즘 운동은 김기림이 제창한 반자연(反自然), 반서정(反抒情)의 기치에 1940년대 후반의 시대고(苦)가 덧붙여진 것으로 확대되었다. 『후반기』 동인으로 모더니즘 운동을 계속하면서도 도시적인 동시에 인생파적인 비애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기타 동인의 시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시집으로는 『박인환선시집』(산호장, 1955), 『목마와 숙녀』(근역서재, 1982)가 있다.
*모더니즘 : 현대주의 또는 근대주의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기성의 도덕과 권위를 부정하고 기계 문명과 도회적 감각, 자유와 평등을 중시하고 추구하는 사조이다. 예술에서 모더니즘은 1920년대에 일어난 표현주의, 미래주의, 다다이즘, 형식주의 등을 가리킨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프로문학이 퇴조하고 일제의 군국주의가 노골적으로 대두한 1930년대에 영미(英美)의 주지주의 영향을 받고 일어난 사조로 불린다. 김기림이 시의 낭만주의를 배격하고 기술주의를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소설에서는 최재서와 이상이 대표적인 모더니즘 작가이다.
<예비 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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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저도 박인환을 좋아하고
그의 시 가운데 세월이 가면을 참 좋아했는데
그의 시집에도 실려있지 않은 '세월이 가면'이 태어난 이야기를
덕분에 잘 알게 되었습니다.
박인환 같은 지식인이 살아남기엔
참으로 모진 세월이었을 것 같습니다.
1950년대 초 중반은.......